내가 가장 좋아하는 피자는 고구마 피자다. 짭짤한 치즈와 달콤한 고구마 무스의 조합은 피자가 낼 수 있는 최상의 맛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물론 누군가는 이 말에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 고구마가 올라간 음식을 진짜 피자라고 부를 수 있겠냐며 화를 낼 수도 있고, 이건 피자에 대한 모욕이라고 여길 수도 있겠다. 마치 '파인애플' 피자와 같은 논쟁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피자 위에는 무엇이 올라가야 하는 걸까? 피자의 진짜 매력은 무엇이든 받아들일 수 있는 유연함에 있는데 말이다.
피자는 자유 그 자체를 상징하며,
무엇이든 담아낼 수 있는 그 형태는 포용과 혼종을 상징한다.
이것이야말로 피자를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음식으로 만든 가장 큰 힘이며,
앞으로도 오랫동안 사랑받게 할 원동력이다.
- 『피자에 담긴 세계사』, p.370
피자의 역사를 다룬 책 『피자에 담긴 세계사』의 저자 루카 체사리는 이렇게 말한다. 만약 한 세기 뒤에도 우리가 살아 있다면 그때도 여전히 훌륭한 피자를 즐기고 있을 것이며, 파인애플이 올라간 피자 역시 지극히 당연한 선택지 중 하나가 되어 있을 것이라고.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피자를 좋아하는가? 당장 배달 앱을 켜서 그 피자를 주문해 보시라. 그리고 피자가 도착하기 전까지 잠시 내 이야기를 들어주시길 바란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면 곧 당신 앞에 놓일 피자 한 조각이 전혀 다르게 보일 테니까.
나폴리의 국밥, 피자 한 조각
피자의 역사는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시작된다. 당시 나폴리는 부유한 왕국의 수도였으나, 수십만 명의 빈민도 함께 살아가던 모순적인 도시였다. 화려한 저택이 늘어선 거리 한편에는 열악한 주거 환경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내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집에서 음식을 조리할 여건조차 마땅치 않아 끼니를 거리에서 해결하는 일이 잦았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적은 돈으로도 허기를 채울 수 있는 음식이었다.
당시 왕국은 밀과 올리브유를 비교적 저렴하게 공급했고, 채소에도 관세를 면제해 주었다고 한다. 밀가루를 기본으로 올리브유와 채소 등 구하기 쉬운 재료를 더한 음식이 발달하기 좋은 환경이었던 셈이다. 나폴리에서 함께 발달한 마카로니와 피자는 값싼 밀가루 음식이자 길거리에서 팔리던 음식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결국 피자는 도시의 생활 방식과 필요에 의해 발달한 음식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피자에 얽힌 나폴리의 역사를 읽다 보면 문득 한국인의 소울 푸드인 국밥이 떠오른다. 뜨끈한 국물에 밥 한 공기를 말아 허기를 달래던 사람들처럼, 피자 역시 나폴리 서민들의 고단한 하루를 달래주는 음식이 아니었을까 상상하게 되는 것이다. 조리법도 먹는 모습도 다르지만 적은 돈으로 든든하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두 음식은 묘하게 닮아 있다. 물론 피자는 시간이 흐르며 그 모습을 바꿔갔다. 부유한 계층도 피자를 사 먹기 시작했고, 피제리아는 손님이 앉아 식사할 수 있는 공간을 갖춘 전문 식당으로 발전했다. 나폴리의 골목에서 시작된 한 끼가 서로 다른 계층을 같은 식탁으로 불러들인 것이다.
피자이면서 피자가 아닌 것들
오늘날의 피자라고 하면 둥근 반죽 위에 다양한 토핑을 얹은 모습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피자가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모습이었던 것은 아니다. 납작한 빵 위에 음식을 올리거나 속을 채워 굽는 방식은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으며, 빵은 한 끼 식사인 동시에 다른 재료를 받쳐주는 그릇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지역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를 더하며 음식의 모습을 다양하게 변주했다.
2부인 「피자와 피자 아닌 것」에는 우리가 아는 피자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한 음식들이 등장한다. 달콤한 반죽으로 외피를 만든 루스티카 피자, 다양한 속재료를 채운 판체로티, 기름에 튀긴 피자까지. 모양도 조리법도 제각각이다. 어떤 것은 피자보다는 파이에 가까워 보이기도 한다. 우리가 익히 아는 모습만을 떠올렸다면 이들이 같은 이름을 가진 음식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러한 음식들은 각 지역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먹히며 오랫동안 명맥을 이어왔다. 다만 오늘날의 피자처럼 널리 퍼지지는 못했고, 일부는 요리책에서조차 점차 자취를 감췄다. 우리가 흔히 '정통'이라고 부르는 피자도 수많은 갈래 가운데 살아남아 주목받은 하나의 형태일 뿐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지금의 피자가 세계인의 식탁을 차지하게 되었을까? 저자는 그 답을 찾기 위해 시선을 나폴리 밖으로 돌린다. 이제 피자의 무대는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향한다.
나폴리, 미국, 나폴리
나폴리의 골목을 벗어나지 못했던 피자는 어떻게 세계인의 음식이 되었을까. 그 시작에는 더 나은 삶을 찾아 떠난 이탈리아인들이 있었다. 당시 이탈리아 곳곳에서는 빈곤과 식량 부족이 이어진 반면, 미국의 산업 현장에서는 노동력이 필요했다. 19세기 말부터 약 40년 동안 미국으로 건너간 이탈리아인은 약 40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들은 낯선 땅에서도 고향의 식문화를 놓지 않았다. 가족이 함께 음식을 나눠 먹는 일은 이들이 정체성을 지키는 방법이었다. 피자도 그렇게 이민자들의 삶을 따라 미국에 뿌리를 내렸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음식이라는 피자의 이미지는 미국 사회에서도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민자들의 식탁에 머물던 피자는 점차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졌고, 냉동 피자의 등장은 그 확산에 힘을 보탰다. 슈퍼마켓에서 피자를 사 오븐에 데우기만 하면 한 끼를 해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산업화와 함께 달라진 생활 방식은 이러한 간편함과 맞아떨어졌다.
그런데 미국으로 건너간 피자는 나폴리의 피자와 똑같지 않았다. 다양한 토핑 가운데 토마토와 치즈를 중심으로 한 형태가 두드러졌고, 현지에서 구하기 쉬운 재료와 새로운 조리 방식이 그 모습을 바꾸었다. 더 흥미로운 건, 미국에서 대중화된 피자가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가 본고장의 피자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이렇게 다른 문화에서 변형된 요소가 본래의 문화로 되돌아와 그 문화까지 변화시키는 현상을 '피자 효과'라고 설명한다.
우리의 국밥처럼 서민들의 허기를 달래던 피자는 수많은 사람과 새로운 재료를 만나며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 한때는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했고, 바다를 건너 새로운 식문화에 적응했으며,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본래의 모습까지 바꾸었다. 그러니 고구마 무스나 파인애플을 올렸다는 이유만으로 피자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는 법이다. 피자에는 정해진 정답이 없다. 앞으로도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자, 이제 주문한 피자는 도착했는가? 그렇다면 상자를 열고 한 조각을 들어 보시라. 그 위에는 당신이 좋아하는 토핑뿐 아니라,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사람들의 이야기도 함께 담겨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