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미식가가 되기 위한 긴 여정의 길라잡이 - 용감한 구르메의 미식 라이브러리

글 입력 2022.03.29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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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식을 자주 하다 보면 음식에 대한 감흥이 없어질 때가 있는데, 나에겐 그 시기가 바로 요즘이다. 소중한 사람과 모처럼 함께하는 식사 약속이라면 모를까, 구내식당 없는 직장에서의 점심시간은 내 의지와는 상관 없는 외식으로 채워지기 때문이다. 습관처럼 시켜먹던 배달음식마저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예상을 빗겨가지 않는 바깥음식의 엇비슷한 맛이 지긋지긋해져 배달 어플리케이션을 켜지 않은지도 한 달이 넘어 간다.


그럼에도 먹는 즐거움은 우리 삶의 기쁨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기에, 음식에 대한 권태를 내버려 둘 생각은 결코 없다. 먹을거리를 향한 감흥이 옅어졌을 뿐, 먹는 즐거움 자체에 대한 애정이 흐려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이 세상에는 내가 먹어본 음식보다 먹어보지 않은 음식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를 새삼스럽게 들여다보면 언제나 내가 안전한 선택만을 취했기 때문이다. 외식을 할 때는 마치 객관식 문제처럼 양식, 중식, 일식, 한식 중 하나를 선택하기 일쑤였다. 그중에서도 양식의 범주는 파스타나 피자 같은 이탈리안식을 벗어나지 않았다. 굳이 낯선 음식을 선택해서 실패하느니, 재미 없지만 실패확률이 적은 ‘아는 맛’을 택했던 탓이다. 맛있는 식사로 얻는 기쁨과 맞바꾸기에는 낯선 음식에 도전하는 용기가 부족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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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으로 정리해 보니 고작 음식 하나를, 뭔가를 씹고 삼킨 뒤 소화하면 끝나 버리는 ‘먹음’의 과정을 두려워한다는 것 자체가 어리석게도 느껴진다. 하지만 일면식도 없는 낯선 음식을 시도해 보기에는 허허벌판에서 홀로 길을 헤매는 기분이다. 이런 내게 알렉상드르 스테른이 지은 <용감한 구르메의 미식 라이브러리>(윌북, 2022)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길잡이가 될 것 같았다. 650여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으로 전 세계 방방곡곡의 음식들이 친절히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책이 정하는 규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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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지리적 원산지를 기준으로 챕터를 나누고 있다. 독자적인 음식 문화를 지닌 나라는 개별적으로 구분하고, 그 이외의 지역은 다소 비슷한 문화를 공유하는 지역으로 묶어서 소개한다. 이때 개별적인 국가로 분류된 나라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한국, 중국, 일본 등 다섯 곳인데 이중 우리나라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괜스레 반갑다.


또한 각 음식은 저자의 취향에 기반해 ‘독자와 나눌 만한 가치가 있는 맛인지’를 기준으로 선별되었다. 첫 입맛에는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맛일지라도, 미각을 훈련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고 판단될 시에는 포함시킨다. 또 지역별로 음식을 소개하는 순서는 통상적인 식사 순서를 따른다.

 

 

 

읽는 책이 아닌 활용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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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 있다면 독자가 책을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점이다. 매 페이지마다 음식 이름 하단에는 작은 체크 박스가 있어 먹어본 음식을 표시해둘 수 있다. 비록 지금은 한국 챕터를 제외하곤 체크 박스를 칠할 수 있는 음식이 거의 없지만, 비어 있는 체크 박스 때문에 이 책에서 소개하는 모든 음식을 맛보고 싶다는 의욕이 생긴다. 음식을 맛보고 체크 표시까지 완료했다면 그 아래의 여백에 맛에 대한 인상을 간단히 메모해 두어도 좋겠다.


또 책에서 소개했던 모든 식재료와 음식명이 책 마지막 부분에 색인으로 정리되어 있어, 백과사전처럼 간편하게 원하는 페이지로 이동할 수 있다. 책의 시작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읽어 나가는 것도 방법이지만, 이름만으로 흥미를 유발하는 식재료가 있다면 그때그때 해당 페이지를 찾아 읽어도 무방하다. 이를테면 ‘뱀고기’나 ‘여왕수정고둥’, ‘비둘기 파스티야’ 등처럼 말이다.


 

 

식재료부터 레시피까지


 

비둘기나 뱀 이외에도, 이 책은 식재료로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다양한 재료들을 소개한다. 그중에서도 곤충들이 적지 않게 소개되어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이때 저자는 식재료에 대한 거부감은 일절 언급하지 않은 채 재료 본연의 맛과 식감, 특징과 역사적 배경을 담백하게 서술한다.


 

호주에서는 18세기 후반 유럽인들이 정착하기 전까지 식충 문화가 널리 퍼져 있었다. 식용 곤충 중에서도 꿀벌레큰나방 애벌레는 특히 사막 거주민에게 중요한 단백질과 지방 공급원이었다. (중략) 

 

꿀벌레큰나방 애벌레는 보통 머리만 잘라내고 날것으로 먹는다. 삶은 달걀흰자와 비슷한 맛이 나지만 질감이 조금 더 액체에 가깝고 아몬드 향을 풍긴다.

 

- <용감한 구르메의 미식 라이브러리>, p.616 中

 

 

또한 조리가 어렵지 않은 몇몇 메뉴는 레시피도 함께 정리되어 있다. 물론 이 책은 어디까지나 미식 가이드지 요리책이 아니기 때문에 세세한 요령까지는 일러두지 않는다. 그러나 대략적인 레시피를 읽는 것만으로도 그 음식의 맛을 상상하는 데 한결 도움이 되며, 때로는 이 음식을 직접 요리해 보고 싶다는 도전의식을 심어 주기도 한다.

 

 

안달루시아 가스파초 (스페인-전통 음식)

 

재료: 토마토 5개, 오이 1/2개, 녹색 피망 1개, 빨간 피망 1개, 빵 1장, 양파 1/2개, 마늘 1쪽, 올리브 오일 6큰술, 백식초 3큰술, 소금

 

토마토와 오이는 껍질을 벗기고 피망은 반으로 잘라 씨를 제거한다. 채소를 종류별로 각각 30g씩 덜어 깍둑 썬다. 빵은 물에 불린 다음 믹서기에 넣고 깍둑 썬 채소를 제외한 토마토, 오이, 피망, 양파, 마늘을 넣는다. 올리브 오일과 식초를 넣어서 곱게 간다. 소금을 섞어서 체에 내린다. 2시간 동안 냉장고에서 차갑게 식힌다.

 

그릇에 담아서 깍둑 썬 채소를 뿌려 장식한 다음 차갑게 낸다.

 

- <용감한 구르메의 미식 라이브러리>, p.106 中

 

 

 

미식가가 되기 위한 긴 여정의 길라잡이



또 이 책은 인도의 커리나 일본의 스시처럼 어떤 나라의 대표적인 음식으로 여겨지는 메뉴는 다루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제목처럼 ‘용감한 미식가’가 되기 위해 시도해 봄직한 음식들을 추천한다는 이유라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소개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충분히 알려져 있는 음식이라면, 미식가가 되고 싶은 이에게 굳이 추천할 이유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저자가 소개하는 음식들이 신중한 판단 하에 선별되었으리라는 일종의 신뢰감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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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자신이 느꼈던 맛을 식재료에 대한 지식과 해당 문화권에 대한 이해에 기반해 세심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그 묘사력의 수준과는 무관하게 맛이 전달하는 감각은 텍스트로 온전히 표현할 수 없다. 음악 교과서를 공부하면서 음악 감상을 빼놓는 것이 어불성설이듯, 이 책 역시도 색다른 음식을 실제로 맛보게끔 인도하는 길라잡이 역할을 할 뿐이다. 활자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훑어도 맛이 전달하는 감각은 100% 채워질 수 없기에 음식을 실제로 맛보아야 한다는 과제가 남는다. 이 점이 <용감한 구르메의 미식 라이브러리>의 매력이자 목적이다.

 

 

 “먹어보기 전에 죽지 마라.”

 

 

다소 강한 표현이지만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를 한 문장으로 응축한 어구다. 책 속에 빼곡히 자리잡은 700개의 음식을 다 먹어보려면, 매주 한 가지씩 쉬지 않고 맛봐도 13년이 넘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내가 알지도 못했던 음식들이 끝없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처음 느껴보는 호기심과 활기를 돋군다.

 

우리의 도전의식을 자극하는 사물은 음식 말고도 많다. 하지만 음식처럼 가장 쉽게 도전할 수 있으면서도 가장 새로운 경험을 가져다줄 수 있는 매개체는 몇 없다. 게다가 이 책과 함께라면 단편적인 미각 경험을 넘어서서 지적인 호기심까지도 풍성하게 채울 수 있다. 앞으로의 내 식탁이 이 책처럼 더 다채롭고 활기 넘쳐지기를 바라면서 책 표지를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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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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