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ARE LOOKING FOR COMEDY
문상훈과 무비랜드의 두 번째 만남이라니. 나도 괜스레 끼고 싶어서 오랜만에 성수동을 갔다. 2년 전 무비랜드의 첫번째 큐레이터가 문상훈이었는데, (이 글자를 누르면 무려 그때 당시 내가 쓴 글을 볼 수 있다) 이제는 직접 영화를 수입해온 것이다. 이처럼 무비랜드와 잘 어울리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다. 친절히 빗금을 그어주시는 티켓을 받고, 3분 기다려 받은 핫도그를 2분 만에 먹어치우고, 3층으로 곧장 올라갔다. 영화 상영 전에 틀어주시는 빠더너스 다큐멘터리. 라고는 하셨지만 펼쳐지는 친숙한 그러나 조금 거대한 영상… 나는 이 영상을 볼 때마다 매번 같은 포인트를 본다.
재잘재잘 빠르게 움직이는 입, 그리고 꿈을 꾸는 빛나는 눈동자에 어김없이 시선이 간다. 교환 학생으로 프랑스에 가기 위해 발급 받았던 초록 여권이. 10년이 지나 이제는 영화를 사러 칸 영화제에 가기 위해 새파랗게 되었다. 얼마나 좋을까- 정말 얼마나 설렐까- 하는 부러움 깃든 미소가 나도 모르게 입가에 걸린다. 나는 빠더너스의 오랜 팬도 아니고, 모든 영상을 챙겨본 것도 아니고, 심지어는 문상훈을 본 적도 없다. 그런데도 하염없이 사랑스럽고, 부럽고, 좋아보인다.
칸 필름마켓 스크리닝(너바나 더 밴드)을 보고 나오자마자 “이걸로 하시죠” 라고 말한 문상훈의 미소가 생생하다. 내가 널 어떻게 이겨- 종류의 사랑에 빠진듯한 표정. 이 코미디 영화의 무엇이 문상훈을 그렇게 정신 못 차리게 만들었을까 하는 호기심과. 나도 내 눈을 돌아가게 만드는 무언가를 찾고 싶다는 질투 섞인 부러움이 나를 무비랜드로 이끌었다고 할 수 있겠다.
MOVIE LAND RADIO
영화를 보고난 다음 날, 나는 남아있는 궁금증을 무비랜드 라디오를 통해 적극적으로 해소해본다. 문상훈은 <너바나 더 밴드>의 허접함에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고 한다. "우리 이제 양복 입어야 해? 왜 양복 입은 사람들만 대접해주고…" 와 같은 답답함을 안고 살던 그는, 그 턱시도를 입은 사람들이 얼렁뚱땅 김칫국물 튀긴 후드티 같은 영화를 보고 있다는 것에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고 한다. 무언가로부터 해방되는 느낌, 해소되는 느낌. 이 포인트가 그들로 하여금 "재미 없어도 사고 싶다" 라고 느끼게 만들었다고 한다.
취직 대신 3-4년간 아르바이트하며 유튜브를 키우던 빠더너스는 여전히 아이폰 카메라를 고집한다. 장비보단 아이디어를 앞세우는 것에 프라이드가 있는 그들은 자연스레 트로마 필름과 스웨디드 필름, 진짜 이상하고 짜치고, 성의없고, 기발한 것들에 본능적인 끌림을 느낀다. 1,2등이 안될 바에 그냥 럭키 세븐 77등을 하고 싶고. 그 77등을 하고 싶어하는 과정이 1등을 하고 싶어서 하는 경쟁보다 더 본능적인 즐거움과 재미를 줬던 것 같다고 말한다. 남들이 다 하는 것이 아닌, 진짜 내 가슴 뛰는 것들을 하기로 선택했기 때문에 빛나는 눈동자를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문상훈과 김진혁은 채널에 악플이 달리는 것은 익숙하지만, 영화가 재미없다는 말에는 심하게 긁힌다. 매일 왓챠피디아를 들여다보면서 평을 정독하는 것 같다. (신경 써서 남겨야겠다) 무비랜드 극장주 모춘은 그들의 이야기를 차분히 듣더니 왜 긁히는지 알겠다며 조금 느끼할 수도 있는 (그가 직접 한 말이다) 말을 건넨다.
“영화가 아니라 태도를 산 것 같은데”
그렇다. 코미디를 찾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그들은 단순히 영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평생 코미디를 찾아가는 그들의 삶. 어떤 상황에서도 유쾌함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었을까? 그니까 영화가 재미없다고 하면 나였어도 긁힐 것 같다. 내가 살아온, 내가 살고 있는, 내가 살아가기로 한 삶이 영화에 고스란히 담겨있다고 생각하면 당연하다. 개봉날이 수능날 같았다는 김진혁의 말이 적확하다.
I GOT MY TUX FIRST
BUT FORGOT TICKETING
그들의 태도.
그들이 구매한, 소비한 태도는 이것이다.
티켓은 없지만 턱시도를 먼저 산 그들처럼, 맷과 제이도 공연은 없지만 홍보를 먼저 한다. CN타워 꼭대기에서 스카이다이빙(엄밀히 말하자면 skydove)를 했지만 돔이 닫혀 들어가지 못하고. 한 마디씩 거드는 시민들이야 말로 최고의 장치. 튀어나온 토론토의 너구리. 아 나 빽투더퓨처를 왜 안 봤을까 탄식. 행오버는 봤지롱 아는척하고 싶고. 전선이 짧아 인간 전선이 되기를 자처하고. 그 때에만 마실 수 있던 오비츠. 빠더너스 채널과 타란티노 영화의 자막처럼 노란 노래 가사 자막. 번역해준 타블로와 이하루.
이 모든 것들을 보다보면 나도 헷갈린다. 이 영화에 대해 얘기하고 싶은건지, 빠더너스에 대해 얘기하고 싶은건지, 아님 그냥 내 얘기를 하고 싶은건지.
그리고 나열된 단어들이 물에 흘러가는 듯한 엔딩 노래는 편안함을 준다.
WE ARE LOOKING FOR WHAT
영화가 상영되고 있는 요즘의 심경을 문상훈은 이렇게 말한다.
맛집을 소개하는 리뷰를 써놓고 그 맛집 앞에서 사람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계속 보고 있는 과정들이 재밌는 것 같아요.
순수함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시간이 잦아지고 있다. 그건 내가 순수를 잃어가고 있다는 반증이겠지. 얼마 전 가장 친한 친구가 술에 취해 나에게 냅다 “너는 순수하지 않아!!!! 나만이 순수해!!!!” 라고 큰 소리로 말해버린 사건 이후에 더 심해졌다. 거기에 대고 “아냐 난 순수해!!!“ 라고 말할 생각도 없었지만. 나도 꽤나 취했기 때문에 “네가 생각하는 순수가 대체 뭔데!!” 까지는 말해버렸다. 그 뒤로는 잘 기억이 안 나는데, 대충 어린 아이같은 그런 천진난만함을 생각하는건 아니라고 했던 것 같다.
맨정신으로 생각해보는 순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자본전체주의에 갇히기 쉽다. (비평입문 계절학기를 듣고 있는 탓에 자꾸 대립구조로 생각하는걸 경계하게 된다.) 어쨌든 난 정신분석가는 아니기 때문에. 그 갇힌 순수는 아무래도 돈이나 이득을 좇지 않음 정도를 의미한다는 말 밖에 못하겠다. 조금 더 넓혀보자면 타협하지 않는 마음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나는 물론 이 진흙탕같은 사회 속에서 순수를 지향해야 하고 그게 얼마나 아름답고 따위에 대해 말하고 싶지는 정말 않지만. 문상훈의 반짝반짝한 눈빛을 보면 또 다시 그런 뻔한 얘기를 하고 싶어진다. 영화 오프닝 전에 '수입 빠더너스'를 넣고 싶은 마음, 17년 동안 리볼리에서 공연하겠다는 꿈을 좇는 마음. 유명세보단 내 옆에서 황당무계한 계획을 늘어놓는 친구를 택한 그들을 보며. 그런 소년스러움과 순수에 대한 선망과 동경이 마구마구 커진다. 나도 내 것을 지키고 싶은 마음. 이득 따위에 항복하거나 타협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내 옆자리에 앉아 있는 (너는 순수하지 않아!!!! 나만이 순수해!!!!를 외친) 친구는 영화를 보며 바보 같은 자신과 자신의 절친을 떠올렸다는데. 나는 떠오르는 자가 없었다는 점에서 친구의 취중진담이 너무나 진실이었음을 느낀다. 어쩌면 그래서 내가 무비랜드의 미니 이벤트에서 비매품 뱃지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D2(친구가 앉은 자리)이 아닌 D1(내가 앉은 자리)이 제비뽑기에서 뽑힌건 다 이유가 있다 이 말이다. 오비츠가 그려진 하늘색 작은 뱃지가 어쩌면 나에게서 떠나가고 있는 무언가를 보충해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