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의 자신을 설명하기 위해 자주 과거로 돌아간다. 내가 왜 이런 성격을 가지게 되었는지, 왜 이런 것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왜 어떤 일에는 쉽게 상처받고 또 어떤 순간에는 유난히 용감해지는지. 그 이유를 찾다 보면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과 가족, 지나온 관계와 경험을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질문 하나가 생긴다. 그렇다면 나의 과거를 모두 알면 지금의 나를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 더 나아가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지까지 예측할 수 있을까. 신경과학자 데이비드 수실로의 『카오스의 가장자리』는 이 질문에 과학과 한 인간의 생애를 동시에 펼쳐놓는다.
그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원인과 결과를 차례대로 늘어놓는 것만으로는 좀처럼 설명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 무관해 보이던 사건들이 만나고, 예상하지 못했던 관계가 개입하고, 우연과 선택이 뒤엉킨 끝에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무언가가 나타난다. 과학에서는 이를 ‘창발(emergence)’이라고 부른다.
부분을 모두 알아도 전체를 알 수 없다

근대 과학이 세상을 이해해온 주요한 방법 중 하나는 복잡한 대상을 더 작은 단위로 나누어 그 작동 원리를 밝히는 것이었다. 물질을 원자와 입자의 수준으로 들여다보고, 생명체를 세포와 분자의 단위로 살펴보고, 뇌를 이루는 개별 신경세포의 작동 방식을 연구하는 식이다. 복잡한 전체를 구성하는 기본 요소와 법칙을 알아내면 전체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환원주의적 접근이다.
이러한 접근은 과학의 발전에 수많은 성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세상에는 부분을 아무리 정밀하게 이해해도 그것만으로 전체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려운 경우가 존재한다. 구성 요소의 수가 많아지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 시작하면, 각각을 따로 살펴보았을 때에는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패턴과 성질이 전체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물고기 떼의 움직임이 대표적이다. 정어리와 같은 물고기들은 주변 개체의 위치와 움직임에 반응하며 방향과 속도를 조절한다. 그런데 수백, 수천 마리가 모이면 거대한 무리가 마치 하나의 생명체처럼 방향을 바꾸고, 흩어졌다 다시 모이며 복잡한 형태를 만들어낸다. 그중에는 포식자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무리가 공처럼 밀집하는 ‘베이트 볼’과 같은 집단 행동도 있다.
어떤 물고기도 전체 무리의 움직임을 지휘하지 않는다. 각각의 개체가 주변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한 결과, 개별 물고기 한 마리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질서가 전체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이다. 이처럼 부분에는 없던 성질이 부분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전체에서 새롭게 나타나는 현상이 ‘창발’이다.
이러한 현상은 물고기 떼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수많은 변수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날씨부터 수백억 개의 신경세포가 연결되어 생각과 감정, 기억과 의식을 만들어내는 인간의 뇌까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는 부분의 합만으로는 온전히 설명하기 어려운 것들이 곳곳에 존재한다.
새로운 질서가 태어나는 곳, ‘카오스의 가장자리’

창발이 일어나는 곳에는 흥미롭게도 질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카오스(chaos)’, 즉 예측하기 어려운 불규칙성과 혼란이 함께한다. 수실로 역시 처음에는 신경망에서 나타나는 불규칙한 움직임을 제거해야 할 문제로 바라봤다. 그러나 연구를 이어가면서 그의 접근은 뜻밖의 방향으로 전환된다. 카오스를 없애는 대신, 오히려 그것을 활용하기로 한 것이다.
네트워크가 가진 불규칙하고 풍부한 움직임을 억누르는 대신 원하는 행동을 만들어내는 방향으로 조금씩 유도하자, 카오스는 더 이상 제거해야 할 방해 요소가 아니었다. 오히려 신경망이 다양한 가능성 가운데 특정한 패턴을 학습할 수 있게 하는 풍부함과 유연성의 바탕이 되었다.
우리 역시 삶에서 불확실한 것들을 가능한 한 제거하고 싶어 한다. 선택이 옳았다는 확신을 얻고 싶고,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고 싶으며, 실패와 우회 없이 목적지에 도착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삶에서 새로운 것이 태어나는 순간은 오히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정돈된 때가 아닐지도 모른다.
계획에 없던 사람을 만나고, 예상하지 못했던 실패를 경험하고, 오래 믿었던 생각이 흔들리고, 내가 알던 나로는 설명할 수 없는 선택을 하는 순간. 질서가 조금씩 흔들리는 바로 그 경계에서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가능성이 생겨난다.
창발이라는 이름의 ‘희망’으로

수실로는 과학에서 발견한 카오스와 창발의 원리를 자신의 삶에도 비추어본다. 그에게는 어린 시절 자신을 방임한 부모, 애정을 베풀면서도 상처를 남긴 친척, 친구들과 첫사랑, 그리고 자신의 가능성을 알아봐 준 이들이 있었다.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과거를 지나왔지만, 그는 수많은 관계와 경험 속에서 자신의 길을 찾아 결국 한 명의 과학자로 성장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서로 다른 모습과 경험 모두가 지금의 자신을 이루는 일부였음을 받아들인다.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성장’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흔히 성장하기 위해 이전의 나를 버리거나 뛰어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창발의 관점에서 본 성장은 조금 다르다. 이미 내 안에 존재하는 수많은 경험과 기억이 새롭게 연결되면서 이전에는 없었던 내가 나타나는 것. 우리의 삶은 사소한 결정과 간헐적인 진전, 행운과 불운이 뒤섞이며 생겨나고, 수없이 많은 기억과 관계, 우연과 선택은 끊임없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새로운 전체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창발이라는 개념은 내게 꽤 희망적인 이야기로 다가왔다. 우리는 과거로 만들어지지만, 과거에 의해 완성되지는 않는다. 과거의 사건은 바꿀 수 없지만 그 사건들이 앞으로 무엇과 연결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어린 시절의 불운했던 경험이 훗날 새로운 경험과 연결되며 전혀 다른 의미를 얻을 수도 있고, 당시에는 실패라고 생각했던 선택이 몇 년 뒤 예상하지 못했던 곳으로 나를 데려갈 수도 있다. 삶에는 언제나 아직 만나지 않은 변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늘도 창발하고 있다
그렇기에 지금의 나 역시 삶의 최종적인 결론일 수 없다. 같은 과거를 지니고 있더라도 앞으로 무엇을 만나고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그다음에 나타나는 ‘나’는 달라질 수 있다. 이것이 이 책이 보여준 창발의 잠재력일 것이다. 우리에게는 언제나, 지금의 나만으로는 예측할 수 없는 다음의 내가 남아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당장 삶의 방향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 순간도 조금은 다르게 바라볼 수 있다. 혼란은 반드시 길을 잃었다는 증거가 아니며, 흔들린다는 것이 곧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뜻도 아니다. 그러니 아직 무엇이 될지 알 수 없는 시간을 너무 서둘러 하나의 답으로 규정하지 않아도 된다. 질서와 무질서 사이에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새로운 가능성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뜻일 테니.
그 카오스의 가장자리에서, 우리는 오늘도 창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