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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영화 결말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매일 타인의 불안과 걱정을 들여다보며 ‘행복해지는 법’을 조언하는 정신과 의사. 영화 <꾸뻬씨의 행복여행>의 주인공 헥터는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자신의 삶에서는 아무런 행복도 느끼지 못한다.
진료실을 찾는 환자들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불행하다. 누군가는 사랑 때문에 괴로워하고, 누군가는 혐오감에 시달린다. 헥터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답을 건네지만, 어느 순간 자신이 하는 말들이 공허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정작 자신조차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다른 사람에게 행복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결국 헥터는 진료를 중단하고 배낭 하나를 멘 채 길을 떠난다. 책에서 정의된 행복이 아니라, 사람들이 실제로 살아가는 삶 속에서 행복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진료실 밖, 길 위에서 써 내려간 행복의 노트
진료실을 벗어난 헥터의 여정은 결코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그는 길 위에서 때로는 죽음이 눈앞에 닥칠 만큼 극단적인 위험에 휘말린다. 특히 아프리카 여행 중에는 납치와 감금을 당하게 되는데,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절망 속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아 다시 자유를 얻은 순간 그는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환호한다. 그리고 노트에 적는다.
행복은 온전히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
(Happiness is feeling completely alive)
진료실에서 헥터는 사람의 감정을 분석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길 위에서는 자신이 직접 두려움에 떨고, 사랑에 설레며, 자신의 미숙함에 아파하고, 살아 있다는 사실에 벅차오르는 한 명의 인간이 된다.
학문적으로만 다뤄왔을 감정의 무게를 온몸으로 통과한 뒤에야 그는 자신을 찾아왔던 환자들의 마음을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기 시작한다. 어쩌면 그가 여행 전까지 알지 못했던 것은 행복의 정의가 아니라 삶의 감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찾기를 멈추는 순간 시작되는 몰입의 기적
여행의 후반부, 행복을 연구하는 뇌과학 교수 코어만을 만난 헥터는 그동안 모아온 행복의 조각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결정적인 통찰과 마주한다. 교수가 청중에게 말하는 다음 한마디와 함께.
“우리는 행복의 추구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추구하는 과정 그 자체의 행복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행복을 인생 어딘가에 존재하는 하나의 도착점으로 상상하는 순간, 우리는 끊임없이 현재와 미래를 비교하게 된다. 지금보다 조금 더 성공하면, 조금 더 사랑받으면, 조금 더 많은 것을 가지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행복을 미래로 미룰수록 현재는 언제나 부족한 상태로 남는다.
영화가 말하는 행복은 오히려 그 반대편에 있다. 행복은 억지로 붙잡으려 할수록 멀어지고, 그것을 찾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을 만큼 삶에 깊숙이 들어갔을 때 불현듯 모습을 드러낸다. 어떤 일에 정신없이 빠져들고,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고, 음악에 맞춰 미친 듯이 춤을 추는 순간처럼 말이다.
돌이켜보면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역설적이게도 ‘나는 지금 행복한가?’라는 질문조차 떠올리지 않았던 때가 많다. 무언가에 흠뻑 빠져 시간의 흐름을 잊고,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조차 신경 쓰지 않은 채 그 순간을 살아냈던 시간들. 행복을 확인하려는 마음마저 사라질 정도로 현재에 몰입했을 때, 우리는 이미 행복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오직 기쁨만이 행복을 의미하진 않는다
영화는 마지막에 이 이야기를 한 단계 더 확장한다. 행복 연구를 위한 실험에서 헥터는 뇌를 측정하는 장치를 착용한 채 기쁨과 슬픔, 공포라는 세 가지 감정을 떠올린다. 그러나 처음 그의 뇌는 좀처럼 뚜렷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던 중 연인 클라라와 통화하며 헥터가 마음 깊숙이 눌러두었던 진심을 털어놓기 시작하자 화면이 달라진다. 기쁨만도, 슬픔만도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애틋함과 미안함,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럼에도 함께하고 싶다는 간절함이 한꺼번에 밀려들자 뇌 스캔 화면은 마치 폭발하듯 아름다운 빛깔로 일렁이기 시작한다.
하나의 감정만을 특정할 수 없을 만큼 모든 색이 동시에 나타나는 광경을 바라보던 교수는 그것을 ‘북극광’, 오로라에 비유한다. 이 장면은 헥터가 긴 여행 끝에 발견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하나의 색만으로는 오로라가 완성될 수 없듯, 우리의 삶 역시 기쁨이라는 단 하나의 감정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 삶이 건네는 수많은 감정을 밀어내지 않고 기꺼이 받아들일 때, 각각의 빛깔은 한데 어우러져 비로소 하나의 삶을 완성한다는 것이다.
<꾸뻬씨의 행복여행>은 행복을 찾아 세계 곳곳을 떠도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지만, 역설적으로 영화가 도착하는 결론은 ‘더 이상 행복을 찾아다니지 않는 것’에 있다. 사랑하고, 두려워하고, 실패하고, 춤추고, 그리워하고, 누군가와 음식을 나누며 웃는 평범하고 불완전한 순간들.
어쩌면 우리는 행복이라는 단어에 너무 오래 매달린 나머지, 행복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현재를 지나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완벽하지 않은 나를 인정하고, 찾아오는 감정을 밀어내지 않으며, 지금 내 앞에 놓인 사람과 일과 순간에 기꺼이 마음을 내어주는 것. 그렇게 삶에 온전히 몸을 던지는 동안에는 행복을 찾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그토록 찾아 헤매던 순간 속에 이미 오래전부터 머물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