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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빼앗은 예술은 박물관에 놓일 수 있을까 [문화 전반]

베를린, Neues Museum에 대한 단상

by 문경란 에디터
2026.08.28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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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를린에서 찾은 노이에스 박물관은 독일에서 처음 방문한 박물관이었다. 1843년에서 1855년 사이에 건설된 이 박물관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복원되어, 전쟁으로 인한 파괴의 흔적을 함께 안고 있다. 전쟁 이전의 고전주의 건축과 현대식 복원이 결합된 이 건축물은 보는 이로 하여금 과거와 현재의 시간성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건축적 사료로 읽힌다.


    박물관에 들어서자마자 고대 이집트 유물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전시된 미라, 조각, 기록물 등은 고대 이집트인들의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사유를 담고 있다. 특유의 장례문화와 사후세계에 대한 인식 속에서 엿볼 수 있는 고결한 죽음에 대한 갈망과 집착은, 그들의 삶에 대한 열의와 애정으로도 이어진다. 가장 유명한 작품인 네페르티티 왕비 흉상은 황홀한 인상을 자아낸다. 넓은 전시관을 단 하나의 존재감으로 압도하는 이 흉상은, 보는 이로 하여금 역사와 현대의 교차점 위에 서 있다는 감각을 더욱 또렷하게 느끼게 한다. 동시에, 그 황홀한 아름다움이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한 질문을 피할 수 없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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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움 뒤에는 수많은 논란 또한 존재한다. 현재 베를린에 소장된 네페르티티 흉상은 이집트를 원산지로 두고 있으며, 해당 흉상이 "식민지 시대에 부당하게 반출된 유물"이라고 주장하는 이집트와 달리, 소장국인 독일은 "당시 합법적으로 분배된 유물"이라고 반박하면서 국제적인 논쟁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흉상은 1912년 독일 고고학자 보르하르트가 이집트 아마르나 유적지에서 발굴한 것으로, 당시 이집트와 독일이 맺은 발굴물 분배 협정에 따라 독일로 넘어왔다. 그런데 이집트 측은 보르하르트가 이 흉상의 진짜 가치를 숨기고 대수롭지 않은 유물인 척 보고해서 독일 몫으로 챙겼다는 의혹을 오랫동안 제기해왔다. 실제로 흉상이 1923년 베를린에서 처음 공개되어 큰 화제를 모으자마자, 이집트는 그해부터 곧바로 반환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이집트 정부는 여러 차례 반환을 요구해 왔지만, 독일은 이를 거부하고 있어 지속적인 외교적·문화적 갈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논쟁은 단순한 소유권 문제가 아니라, 과거의 권력이 현재까지 어떻게 지속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고대 이집트의 작품들을 주로 전시하는 독일의 박물관인 노이에스는 다소 양가적인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석기시대부터 고대 문명까지 인간 문명의 시작을 엿볼 수 있는 유물들은 위대한 역사적 유산으로서 선대의 삶의 자취를 우리의 눈앞에 가져오는 한편, "빼앗은 예술이 국가의 유산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 또한 함께 따라온다. "독일"의 국립박물관 아트숍에 즐비하게 놓인 "이집트" 네페르티티 흉상의 굿즈들은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처럼 말이다. 19세기 초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유럽 국가들은 식민지를 확장하며 군사 원정과 불평등한 협약을 통해 수많은 유물들을 자국으로 가져왔다. 나이지리아에서 약탈되어 대영박물관에 있는 베냉 브론즈, 그리스가 계속 반환을 요구하는 파르테논 마블, 그 외에도 루브르나 벨기에의 박물관에 흩어진 수많은 아프리카 유물들이 이런 제국주의적 수집의 대표적인 예다.

     

    지금도 유럽의 박물관 곳곳에는 식민지 시기에 가져온 유물들이 수없이 남아 있다고 하니, 이는 노이에스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유럽 박물관 전체가 안고 있는 뿌리 깊은 문제인 셈이다. 잔혹한 식민주의 역사로 인해 생긴 상처와 흉터의 감각들은 탈식민주의 예술들의 서사를 통해 투영된다. 많은 예술가들을 통해 창조된 탈식민주의 작품들은 과거 쓰라린 역사의 파편들을 지속해서 재생산하며 우리 사회에 식민주의 담론을 형성한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서구가 동양이나 비서구를 그려온 방식 자체가 이미 지배하는 자의 시선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말을 빌리자면, 박물관에 놓인 이집트 유물들 역시 그저 아름답게 감상할 대상이 아니라, 서구가 타인의 역사를 자기 방식대로 편집하고 소유해 온 흔적으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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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담론이 그저 개인의 창조물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사회 집단의 움직임, 그리고 미술관과 박물관 같은 기관의 존재를 재정의할 수 있는 무언의 힘을 형성한다. 그렇기에 박물관의 수장고는 상상 이상의 역사의 잔재를 시사한다. 그 안에 품고 있는 것들이, 그리고 그것들을 품고 있다는 그 행위 자체가 주는 사회적 파장은 엄청나다. 그 한 지점에 노이에스가 서 있다. 고개를 뻣뻣이 든 흉상들은 여전히 자신이 태어난 땅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진열대 위에 놓여 있다.

     

    최근 독일의 태도는 조금 이중적이다. 2022년에는 나이지리아에 베냉 브론즈 일부를 돌려주며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정작 네페르티티 흉상에 대해서는 여전히 "당시 분배는 합법이었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반환 논의 자체를 피하고 있다.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면서도, 정작 가장 상징적인 유물 앞에서는 원칙을 슬쩍 접어두는 듯한 모습이다. 이 과정이 "합법"이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오늘날의 역사적 시선에서 다시 바라보면 이러한 획득은 권력의 불균형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더 거칠게 표현하자면 "갈취"로도 해석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박물관은 제국주의 유산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는 곧 박물관이 "유물과 작품을 어떻게 수집하고, 설명하고, 보여줘야 하는가"라는 전시 윤리의 문제로 이어진다.


    이러한 현상들을 목격하고 체험하는 것이 대중들의 시각에도 은밀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 상당히 위태롭다. 어찌 보면 전쟁의 전유물, 승리품이 될 수 있는 유물들을 식민 국가의 공간 내에 전시하는 것은 굉장한 숙고의 과정이 필요하다. 이러한 역사를 함께 경유한 많은 국가들의, 국가의 경계를 상쇄하고 그 범위를 재단해 보자면 끝도 없이 확장된다. 그저 피해와 가해의 문제가 아닌, 이러한 역사를 전시함에 있어서의 신중함과 깊은 사유와 성찰을 회피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네덜란드의 레이크스 미술관은 2021년 '노예제' 특별전을 열어, 자신들도 과거 노예무역과 식민지 착취에 깊이 관여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보여준 적이 있다. 네덜란드 정부 역시 출처가 석연치 않은 유물들을 인도네시아 등 원래 나라로 스스로 돌려보내는 절차를 마련해 두었다. 유물을 계속 갖고 있으면서도 그 역사를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고, 오히려 제대로 된 반환이 기관에 대한 신뢰를 더 높여줄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다. 노이에스가 대중의 비난을 피해 갈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저 소유권의 문제를 넘어서서 투명한 역사적 성찰에 대한 감각을 고려하지 않은 전시 행태를 보이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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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국주의의 비극 속에서 전해져 온 예술과 유물들이 앞으로 어떤 박물관에서, 어떤 방식으로 그들의 예술적·역사적 가치를 이어가야 할지에 대한 논의는 단순 과거의 문제가 아닌, 오늘날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역사를 기억하고 전시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프랑스 학자 베네딕트 사보이(Bénédicte Savoy)는 유물 반환에 관한 보고서에서, 반환이란 단순히 물건의 주인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그동안 깨져 있던 관계를 다시 회복하는 일이라고 말한 바 있다.

     

    결국 노이에스 같은 박물관이 나아가야 할 방향도, 유물을 붙잡고 있느냐 돌려주느냐의 양자택일이 아니라, 원래 나라와 꾸준히 대화하고 함께 연구하며 유물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를 솔직하게 밝히는 데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박물관은 동시대와 과거 역사 사이의 단절을 근절하고 이 진실을 망각하는 것이 죄악이라는 정체성을 향후에도 피하진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박물관에 남은 선택은 비교적 분명하다. 유물이 어디서 어떻게 흘러왔는지를 있는 그대로 밝히고, 원래 나라와 함께 전시를 꾸리거나 유물을 장기간 빌려주는 방식을 고민하며, 반환을 무언가를 잃는 일이 아니라 관계를 다시 회복하는 시작으로 바라보는 태도다.


    박물관의 관람객과 방문객으로서 우리가 가져야 하는 태도는 기관이 전시, 즉 그들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에 쉬이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흉상 앞에서 감탄하는 것과, 그 흉상이 지금 그 자리에 놓이기까지의 과정을 함께 묻는 것은 결코 모순되지 않는다. 오히려 아름다움에 대한 몰입과 그 기원에 대한 의심을 동시에 지니는 이중적 시선이야말로, 관람객이 기관의 서사에 수동적으로 포섭되지 않는 최소한의 방어선이 된다. 즉 수용과 경계를 선택하는 것에 대한 감각을 정확한 인지와 인식의 과정까지 이끌어 나가는 태도가 비극의 제도적인 재생산과 부활을 막는 데 마지막 희망이 될 것이다.


    전쟁의 상처를 안고 무너져내린 기억을 지닌 박물관이, 동시에 제국주의와 전쟁을 통해 획득한 식민지 유물을 전시하는 이중적인 모습은 전쟁과 제국주의가 남긴 폭력의 역사와 예술이라는 거대한 매체 사이에서 '진정 모두에게 아름다운 예술'이 가능한가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과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이는 '전쟁'이라는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오늘날의 세대가 반드시 짊어져야 할 과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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