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무슨 바람이었는지 책을 탐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원래 같으면 1장의 본론부터 폈겠지만, 목차를 조금 읽다가 다시 덮고선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뒤쪽에 성의 넘치는 추천사들이 적혀있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은 아래와 같다.
"참 이상하다. 서헌강의 열정은 온도가 일정해서 끓어 넘치지도, 그렇다고 해서 결코 식지도 않는다. 멀리, 미지의 영역까지 가야 하는 장거리 주자답다. 그는 척하지 않지만, 그 결과는 늘 반듯하고 진지하다. 문화유산 사진작가이지만, 마침내 서헌강이라는 사람이 문화유산으로 남게 될 것이다."
같은 사진작가가 남긴 글이었다. 존중과 기대가 응축된 마지막 줄까지 읽고 나서는 더 지체하지 않고 프롤로그로 향했다.
큰 세상으로 나간 천안의 소년
매일같이 산과 들을 뛰어다니던 한 중학생에게 카메라가 던져졌다. 막내 누나가 빌려준 것이었다. 대수롭지 않게 건넨 호의는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꿨다. 송아지를 친구삼아 놀던 아이는 곧 사진 동아리로 향했고, 남다른 포트폴리오를 들고 대학까지 단숨에 들어갔다.
사진 분야에서 손꼽히는 중앙대학교 사진학과의 학부생이 된 것이다.
값비싼 레슨을 받으며 화려한 스펙의 카메라로 작업해 왔던 동기들에게 나는 그야말로 '미스터리 맨'이었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제대로 레슨도 못 받았는데 고등학교 때 이미 개인전을 열었고, 전국대회에서 수상한 경력까지 있다고 하니··· (254-255p)
바라보는 눈동자들에 호기심이 어렸다. 진작에 사진전도 열었던 '서헌강'에게는 익숙한 시선일 터였다. 그렇게 기대 속에서 입학한 미스터리 맨에게 찾아온 것은...
"빵점."
과제에 그런 점수가 매겨졌다. 심지어 존경하던 롤모델이 내린 평가였다.
그때 나는 (아내에게는 미안하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가슴 뛰는 순간을 경험했다. 사진을 마음에 품은 이후로 줄곧 동경해 오던 분이었는데, 그분이 지금 내 앞에 있다니 믿을 수 없었다. 그날 강운구 선생님이 걸어오시던 모습은 지금까지도 ··· 마치 제임스 본드만큼이나 강렬하게 남아 있다. (259p)
그만큼이나 좋아하던 사진작가에게 칭찬 한 번을 못 들었다. "왜 매일 빵점이라고만 하세요?" 볼멘소리를 할 때마다 강 작가는 옅은 웃음만 띠었다.
그래도 제자는 매번 사진을 찍어서 스승에게로 찾아갔다. 동경했던 사람에게 빵점만 받으면서도 서헌강은 계속해서 셔터를 눌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만의 사진을 찾아갔다.
5년을 기다린 종묘 정전의 밤
조선 왕실의 사당 중 가장 규모가 큰 곳은 바로 종묘(宗廟)다. 종묘의 중심 건물인 정전(正殿)에는 왕과 왕비의 신주(神主)가 모셔져 있다. 그들의 몸은 능에 묻혔지만 혼은 여전히 한양에 머무른다. 신주를 모시는 신실(神室)은 총 열아홉 칸으로, 나란히 길게 이어져 건물 전체 길이만 무려 101미터에 달한다.
화려한 단청도, 권위를 상징하는 팔작지붕도 없지만 수평의 장관만으로도 숭고함이 느껴진다. 그런 종묘를 카메라에 직접 담는 것이 저자의 오랜 꿈이었다. 구체적인 청사진도 그려놓을 정도였다. 머릿속으로 그려봤을 때 가장 이상적인 종묘 정전은 바로
일몰 후 신실에 촛불이 켜져 있는 모습이었다. 짙은 어둠이 내려앉기 전의 푸르스름한 하늘과 열아홉 칸의 신실 속 불빛이 어우러지며 자아내는 절묘한 대비를, 기품있는 고요를 느낄 수 있게 한 장에 담고 싶었다. (20p)
준비된 자가 기회를 잡는다고 했던가. 관계자들을 만날 때마다 바람을 내비치며 행복한 상상을 거듭하던 어느 날, 기적처럼 기회가 생겼다. 하지만 기뻐하기 전에 문제도 생겼다.
"그래서 문 닫기 직전에 찍는다면 가능할 것도 같은데······. 대신 5분 안에 다 끝내야 해."
촬영만 하기에도 시간이 빠듯했다. 신실마다 촛불을 켜는 것은 아예 불가능했다. 아쉬운 대로 불빛을 포기하고 사진을 찍을지, 아니면 오랜 상상을 어떻게든 실현시킬지 선택해야 했다. 깊은 고민 끝에 그는 놀라운 결단을 내렸다.
나는 무선 스트로브(섬광등) 여덟 개를 서쪽 신실에서부터 차례로 넣은 후 부리나케 정중앙의 카메라 거치대로 달려갔다. 조명의 불빛이 원격으로 켜지면 숨도 쉬지 않은 채 셔터를 눌러댔다. (21-22p)
얼마나 빨랐는지, 지켜보던 관리자가 "당신 사람이야 귀신이야? 어떻게 그렇게 날아다니나?"하고 물을 정도였다. 그런 간절함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일몰 후, 이곳의 '진짜' 주인을 기다리는 종묘 정전의 모습이다. 이미지 파일로는 책장을 넘기던 순간의 감동을 전할 수 없어서 아쉬울 따름이다. 종묘를 향한 애정, 기회와 함께 찾아온 위기, 제대로 된 사진을 찍고 싶다는 열망. 그것들을 순서대로 따라가다가 고화질의 결과물을 마주치자 말문이 막혔다.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어진 것은 문제의식이었다. 서울시가 종묘 근처에 초고층 건물을 세우는 것을 허용하겠다는 계획안을 냈다고 한다. 책에서는 논란을 최대한 중립적으로 다룬다. 종묘 정전의 수평 구조가 자아내는 신성함을 수직의 건물들이 저해할까 우려되지만, 역사와 도심이 어우러지며 특색이 생겨나는 경우도 있긴 하다고.
개인적으로는 '도심과 역사의 조화'는 경복궁과 창덕궁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본문이 개발에 크게 비판적이거나 날카롭지 않은데도 저절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단 한 장의 사진을 통해서 종묘 정전의 가치를 이해했기 때문이다. 긴말은 필요 없었다.
빵점 작가가 문화유산이 되기까지
개인적인 이야기가 담긴 마지막 장까지 읽은 뒤에는 저자가 달리 보였다. 작가를 넘어서 도인처럼 느껴졌다. 알고 보니 부모님에게서 배운 신뢰와 베풂이 삶의 중요한 가치이자 원동력이었다. 문화유산 사진작가를 선택한 것도,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을 받은 것도 모두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책장을 덮고 사유에 잠겼다. 꿈을 향한 열정이나 사사로운 것에 집착하지 않는 태도에 대해 생각하다가··· 별안간 눈동자가 커지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추천사의 이름이 제대로 보였기 때문이다.
"··· 마침내 서헌강이라는 사람이 문화유산으로 남게 될 것이다." /강운구(사진작가)
처음부터 인상 깊었던 그 문장은, 작가가 동경해 마지않던 스승이 써준 것이었다.
'문화유산 보호 유공자 포상'으로 대통령 표창을 받던 날이었다. 강운구 선생님께서 연락도 없이 나를 축하하러 시상식장까지 와 주셨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 그때의 감동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 나중에 알고 보니 강 선생님은 그날 시상식에 오지 않은 후배들에게 "헌강이가 큰 상을 받는데, 왜 다들 축하하러 오지 않았느냐"라며 꾸짖으셨다고 한다. 그날 강 선생님은 꼭 돌아가신 아버지 같았다. (264-265p)
빵점을 받았던 대학생은 신념을 가진 사진작가로 성장했다. 2018년에는 대통령 표창이라는 큰 상도 받았다. 그때쯤에는 강 작가도 내내 아껴두었던 칭찬을 건넸다. 더 이상 '빵점'이 아닌 '문화유산'이라는 극찬을.
올해 겨울에는 창덕궁으로
책에 수록된 사진들은 몇 초 만에 찰칵ㅡ하고 찍힌 것이 아니다. 뷰파인더로 세상을 바라볼 때마다 서헌강은 상상에 잠기곤 한다.
위의 사진은 봄 내음이 들어선 한정당의 모습이다. 그 한가운데서 사진작가는 잠시 헌종이 되었다. 스물세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한 헌종. 비운의 왕이 잠시나마 국정의 짐을 내려놓고 휴식했을 그 공간에서, 그는 창문을 활짝 열고 봄날의 기운을 만끽했다. 가만히 헌종의 마음을 헤아려보다가 셔터를 눌렀다.
가만히 보니 저자가 사진을 찍을 때마다 반복되는 습관이 있다. 상황을 그려보고 그곳에 선 인물이 되어본다. 유물을 찍을 때도, 장인들을 마주할 때도 마찬가지다. 결국은 '사람'에게 공감하며 애정을 가졌기 때문에 사진에서 그토록 따뜻한 시선이 묻어났던 것이 아닐까.
저자의 성장 서사나 각종 이력은 글로도 충분히 전할 수 있다. 하지만 사진이 주는 다정함은 무슨 수를 써도 온전하게 표현할 수 없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의 문화유산이나 서헌강이라는 사람에게 관심이 생겼다면 「나는 오늘도 유물과 대화하러 간다」를 직접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인터넷으로는 찾을 수 없는 사진들을 구경하다가 어느 순간 꽂히는 장면이 생길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는 올해 겨울에 한정당에 가고 싶어졌다. 헌종이 휴식하고 사유한, 창덕궁에 숨겨진 비밀 공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