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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유물과 대화하는 사진의 언어 - 나는 오늘도 유물과 대화하러 간다 [도서]

진부한 것은 유산이 아니라, 그것을 스쳐 지나가던 우리의 시선이었다.

by 최선 에디터
2026.08.18 16:31

가까이 있는 것일수록 제대로 보기 어렵다. 우리는 유럽의 성당 앞에서는 목이 꺾이도록 고개를 들면서도, 정작 지하철 몇 정거장 거리의 궁궐 앞에서는 "언제든 갈 수 있는 곳"이라며 발길을 돌린다. 익숙함은 종종 무관심의 다른 이름이 된다.


그런데 최근의 풍경은 조금 달라졌다. 고궁 야간 산책이 예매 전쟁을 부르고, 박물관 굿즈가 완판되고, 전통 다과가 2030세대의 주말을 채운다. 이른바 K-헤리티지의 부상이다. 2026년 7월,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열린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를 지나며 한국의 문화유산은 어느 때보다 밝은 조명 아래 놓였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조명이 켜졌다고 해서 보는 눈이 저절로 생기지는 않는다.


『나는 오늘도 유물과 대화하러 간다』는 바로 그 '보는 눈'에 관한 책이다. 30년 차 문화유산 사진작가 서헌강이 처음으로 펴낸 이 에세이는 70여 장의 고화질 사진과 함께, 그가 무엇을 어떻게 보아왔는지를 담담하게 들려준다. 책은 공간·사람·유물·삶이라는 네 개의 축으로 짜여 있다. 종묘 정전과 조선왕릉과 한양도성이 첫 번째 축이라면, 국가무형유산 보유자와 종가의 제례가 두 번째, 고인돌과 미륵사지석탑 사리장엄구가 세 번째, 그리고 마지막은 사진가 자신의 생애다.

 

 

 

기다림이라는 노동



이 책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물론 사진이다. 국립중앙박물관, 국가유산청,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등과 협업하며 연간 6천 건 이상을 촬영해 온 이력이 무색하지 않게, 지면을 넘길 때마다 익숙한 대상이 낯선 얼굴로 다시 나타난다. 조선왕릉부터 울산 반구천의 암각화까지, 세계유산 등재 과정의 핵심이 된 사진들이 그의 손에서 나왔다.

 

 

종묘.jpg

 

 

그러나 정작 인상적인 것은 사진 뒤에 놓인 시간이다. 종묘 정전의 밤을 담기 위해 그는 5년을 기다렸다고 한다. 원하는 빛과 계절과 습도가 한자리에 모이는 순간은 사람이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그저 같은 장소를 수십 번 다시 찾는 수밖에 없다. 그는 스스로를 예술가보다 노동자에 가깝다고 말한다. 촬영 전 기상청 예보부터 확인하고, 분 단위로 동선을 짜고, 빛의 각도를 미리 계산해 두는 방식은 예술적 영감보다 장인의 공정에 가깝다. 백과사전이나 보고서의 정형화된 도판과 그의 사진이 갈라지는 지점이 여기다. 대상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대상이 놓인 시간과 공기를 한 프레임 안에 밀어 넣는 것. 그는 이것을 설명이 아닌 스토리텔링이라고 부른다.


이 책을 읽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마도 조급해하지 않는 것이다. 저자는 사진 앞에 반드시 이야기를 놓는다. 왜 하필 그 계절 그 시각이어야 했는지, 어떤 허가와 어떤 실패와 어떤 기다림을 거쳐 그 자리에 서게 되었는지, 촬영을 준비하며 무엇을 알아야 했고 무엇을 포기해야 했는지가 먼저 온다. 그러니까 독자는 결과물을 보기 전에 그 결과물이 만들어진 조건을 통과하게 된다.


이 순서가 만들어내는 효과가 생각보다 크다. 한참을 읽어 내려가다 마침내 저자가 고르고 골랐을 그 한 컷과 마주하는 순간, 사진은 더 이상 그저 문화유산을 찍은 이미지가 아니게 된다. 이 빛을 얻으려고 몇 해를 기다렸다는 문장을 읽은 눈으로 보는 빛은,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보는 빛과 결코 같을 수 없다. 이미 알고 있던 대상인데도 처음 보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는 몇 번인가 페이지를 앞뒤로 되짚었다. 글을 읽고 사진을 보고, 다시 글로 돌아가 그 장면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확인하고, 또다시 사진으로 돌아오는 식이었다. 사진집도 에세이도 아닌, 두 가지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형태의 책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3. 나는 오늘도 유물과 대화하러 간다_평면표지.jpg

 

 

1장과 3장은 그런 독법이 특히 잘 통하는 자리다. 열아홉 칸의 신실이 푸른 어둠 속에서 빛나는 종묘 정전, 능선을 따라 오르내리며 옛 성곽과 오늘의 도시를 한 화면에 겹쳐 놓는 한양도성, 봉수대 위로 다시 피어오르는 수원화성의 불꽃, 그리고 빛과 시간이 정확히 맞물리는 순간을 기다려 담아낸 부여 정림사지오층석탑. 저자는 궁궐을 찍을 때 다른 대상보다 훨씬 더 깊이 감정을 이입해야 한다고 적는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빈 공간이지만 한때 사람의 온기와 희로애락이 채우던 곳이었다는 사실을 사진 안에서 되살려내고 싶었다는 것이다.


3장으로 넘어가면 대상은 더 말이 없어진다. 고창의 고인돌, 익산 미륵사지석탑에서 나온 사리장엄구, 그리고 이방인처럼 낯선 땅에 놓인 국외 소재 문화유산들. 특히 고인돌 앞에서 저자가 남긴 문단이 오래 남았다. 우리가 모두 사라진 뒤에도 저 바위들은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 그래서 새것을 좇으며 매일 크고 작은 갈등을 반복하는 삶이 문득 덧없게 느껴진다는 고백. 촬영이란 결국 수많은 질문으로 시작해 또 다른 질문을 남기고 끝나는 일이라는 그의 말은, 이 책 전체를 요약하는 문장처럼 읽히기도 한다.

 

 

 

사람을 찍는다는 일



개인적으로 가장 오래 머문 것은 2장이었다. 「사라져 가는 것을 지키는 100인의 손길」과 「명문가의 정신을 잇는 사람들」. 평소 조선시대 장인과 제례에 관한 연구를 읽을 때마다, 나는 늘 전승의 문제 앞에서 마음이 무거워지곤 했다. 기술도 의례도 결국 사람의 몸에 얹혀 있는 것이어서, 그 사람이 사라지면 함께 사라진다. 그래서 그것을 어떻게 남기고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하는 물음은 내게 늘 절박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나는 한 가지를 새로 깨달았다. 사진 역시 그 기억의 방식 가운데 하나이며, 그것 또한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건축물이나 유물은 적어도 그 자리에서 기다려 준다. 그러나 사람은 다르다. 살아 있는 사람을 찍는다는 것은 그의 생각과 감성과 지향을 미리 이해한 상태로 카메라 앞에 서야 한다는 뜻이다. 준비되지 않은 채로는 셔터를 누를 자격조차 얻지 못한다. 종가와 국가무형유산 보유자를 향한 저자의 집요함이 유독 대단하게 느껴진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 마음이 가장 선명하게 잡히는 대목이 윤도장 김종대 선생을 촬영하는 장면이다. 윤도는 지관이 자침으로 풍수를 살피거나 길손이 방향을 가늠할 때 쓰던 나침반이다. 저자는 윤도가 지닌 흑백의 조화에 착안해 선생을 흑백으로 담기로 하고, 한쪽 눈을 윤도로 가리는 과감한 구도를 잡는다. 그리고 피사체의 절반에만 빛을 주고 나머지는 그림자에 두는 스플리트 라이팅을 쓴다. 화가가 빛으로 시선을 그리듯, 사진가는 조명으로 시선을 말한다는 것이다. 난생처음 찍어보는 사진이라며 웃는 노장인에게 저자는 이렇게 답한다. "윤도가 선생님 눈이지 않습니까." 평생 윤도만 보고 살았으니 이제는 그것이 거의 자기 눈이 되었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112~113쪽)


이 짧은 대화 앞에서 나는 잠시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 구도와 조명이라는 기술적 선택이, 한 사람의 생애를 요약하는 문장이 되어 돌아오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저자가 단지 기술이 뛰어난 사진가가 아니라 유물과, 사람과, 건물과 대화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 것도 이 대목에서였다. 그리고 그런 대화 한 번을 위해 얼마나 긴 준비가 선행되어야 하는지도.

 


47921_자침만들기(21) - 정방향에 주사를 칠한다_윤도장_국가유산청 (2).jpg

 

 

책의 마지막 장은 사진가 자신의 삶으로 향한다. 천안의 한 소년이 암실도 약품 판매점도 없던 시절 저울로 현상액을 직접 조제하던 이야기, 『샘이깊은물』 사진기자를 거쳐 문화 다큐멘터리로 방향을 튼 이야기, 마흔을 넘기고서야 젊은 날의 매듭을 하나씩 풀 수 있었다는 고백이 이어진다. 2018년 대통령 표창과 2023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국가유산청장 표창은 그 시간의 부산물처럼 조용히 언급될 뿐이다.


책을 덮으며 남은 문장은 결국 이것이다. 진부했던 것은 문화유산이 아니라 그것을 스쳐 지나가던 나의 시선이었다는 것. 우리 문화유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물론이고, 역사를 좋아하는 이들과 사진을 취미로 삼은 이들, 그리고 무엇보다 무언가를 오래 들여다보는 일의 가치를 잊고 지낸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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