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트 모리조를 논할 때, 우리는 왜 여전히 ‘마네의 여인’이라는 수식어를 앞세우는 걸까? 그녀는 독립적인 화가였고, 인상주의의 중요한 일원이었지만, 대중의 기억 속에서 그녀는 여전히 에두아르 마네의 뮤즈로 남아 있다. 2014년에 개봉했던 영화 <마네의 제비꽃 여인: 베르트 모리조>도 이러한 문제를 반복하고 있었다. 왜 베르트 모리조는 ‘마네의 여인’이라는 수식어로 대상화되는가? 마네 없이 그녀는 독립적인 화가로 존재할 수 없는가? 그리고 왜 여성 화가는 남성 화가에게 영향을 ‘받은’ 존재로만 설명되는가?
일련의 질문들을 떠올리게 했던 이 영화는 베르트 모리조라는 여성 화가를 조명한다는 점에서 분명 의미가 있다. 하지만 영화는 여전히 여성을 남성에게 종속된 존재로 바라보는 이분법적 시각을 유지하고 있으며, 성 이데올로기적 접근을 바탕으로 그녀를 다루고 있다. 이로 인해 베르트 모리조가 독립적인 화가로 보이기 어렵다는 점에서, 기존의 남성이 주체가 되는 미술사적 시각을 답습하는 한계를 지닌다. 따라서 영화 속 장면과 연출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분석하고, 베르트 모리조가 어떻게 서술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예술가로서의 베르트보다, 여성으로서의 삶만을 부각한 영화
영화는 베르트 모리조의 예술적 여정보다는 그녀가 여성으로서 겪었던 사회적 장벽에 집중한다. 부모님의 결혼 강요에도 불구하고 예술을 선택한 그녀, 전업 화가로 살아가기를 원했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가정과 결혼이라는 제도적 굴레에 맞서야 했던 그녀. 이러한 여성으로서의 투쟁은 분명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영화는 여기서 멈춰버리고 만다.
베르트는 예술에 전념하기 위해 부모님의 결혼 강요를 거부했으며, 이와 대비되는 인물로 영화는 그녀의 언니 에드마를 등장시킨다. 에드마는 결국 사회적 요구를 수용해 결혼과 함께 예술을 포기하지만, 이후 이를 후회하며 베르트와 대조되는 삶을 산다. 부모님의 압박으로 급히 결혼 상대를 찾아보던 에드마에게 베르트는 “중요한 건 예술이야, 그게 우릴 지켜주는 거지”라고 말하는데 이는 베르트가 예술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보여준다. 사회는 여성이 결혼, 남편, 가정에 의해 보호받을 수 있다는 명목으로 여성을 결혼이라는 제도로 가정에 종속시키려 하지만 베르트는 그것이 틀렸다고 말한다. 베르트는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자신의 꿈이자 열정인 예술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보호받는 수동적 존재가 아닌 주체적인 존재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언니인 에드마는 결국 남자와 결혼하고 집을 떠나게 되고 베르트는 그녀를 만나러 간다. 베르트를 보자 에드마는 “불행한 운명을 피하려고 결혼했더니 더 불행해졌어”라고 말하며 반강제적으로 선택한 결혼을 후회하고 불만족한 생활을 토로하면서 당대 사회의 요구를 받아들인 여성의 삶을 대변한다. 이런 언니의 말에 베르트는 “난 화가를 핑계로 거부하는 고집스러운 여자야”, “혼자란 게 얼마나 힘든데, 나한텐 나밖에 없단 거 말이야.”라고 말한다.이런 베르트의 대사는 사회에 저항하는 여성으로서의 베르트를 강조하는 반면 오히려 예술가로서의 베르트에 대한 해석은 배제한다.
베르트에게는 여성, 화가, 부유한 집안의 딸, 이후에는 외젠의 아내 등 다양한 정체성이 있다. 그런데 베르트의 입으로 자신을 ‘고집스러운 여자’라고 표현하는 등의 연출은 물론 베르트가 그만큼 사회에 저항하며 꿈을 좇았다는 해석이 될 수도 있지만 여성이라는 정체성 뒤에 있는 예술가라는 정체성에 대해서는 집중할 수 없게 만든다. 이런 연출에 힘쓰다 보니 영화에서는 베르트가 예술가로서는 어떤 고민을 했는지, 당시 급변하는 예술계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고 어떤 변화를 시도했는지는 비교적 서술되지 않는다.
영화에서 베르트는 마네와의 교류에서 영향을 받아 인상주의 화풍을 시도한 것으로만 연출되지만 베르트 또한 미술계의 여러 변화를 직접 겪으면서 스스로 그림의 방향에 대해 고민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연출은 그다지 나오지 않는다. 즉 본 영화는 여성 예술가 베르트 모리조에서 ‘여성’ 예술가에 초점을 뒀기 때문에 베르트의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강조되지 않았고 이에 따라그녀의 작품관에 대한 변화나 기법의 변화 등 예술적 특성에 대해서는 연출이 되지 않았다. 이는 이후 서술될 베르트를 독립적인 화가가 아니라 에두아르 마네라는 남성 화가에게 영향을 받아 변화하는 종속적인 여성 화가로 묘사하는 것과 이어질 수 있다.
마네와의 관계, 화가와 화가의 교류인가, 남성과 여성의 위계인가?
베르트와 마네의 관계 역시 영화 속에서 위계적인 요소가 강조된다. 영화는 두 사람을 독립적인 화가로 그리기보다 한 남성과 한 여성으로 배치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로 인해 두 가지 문제점이 드러나느데, 첫째, 마네와 베르트 사이의 예술적 교류보다 로맨스가 강조되면서 예술가로서의 교류는 경시된다. 둘째, 여성 화가가 남성 화가에게 종속되어 영향을 받는 존재로만 그려지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마네는 베르트에게 그림의 모델이 되어달라고 부탁하며 그녀를 이성적으로 바라보고, 베르트 역시 그에게 끌리지만 예술을 위해 감정을 외면한다. 이후 그녀가 그린 <로리앙 포구>를 마네에게 선물하자, 마네는 그녀에게 언니를 그리고, 인생을 그리라는 조언을 한다. 이후 베르트는 <요람>을 그려 살롱전에 출품하고 호평을 받고, 그녀가 외젠과 결혼하면서 마네에게 <제비꽃과 부채>를 선물로 받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으로 영확 마무리된다. 이러한 흐름은 베르트의 작품이 마네의 조언 덕분에 탄생한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이는 곧 영화 자체가 남성 없는 여성의 삶에 대해서는 주목하지 않는 여성의 종속성을 드러낸다고 해석할 여지가 있다. 그러나 오히려 베르트는 마네의 가족이 된 이후 본격적으로 인상주의 화단에서 활동을 하며 지속적으로 활동을 해 나가고 다양한 인상주의의 특징이 담긴 작품을 남긴다. 그녀는 결혼 후 아이를 낳으면서 <줄리에게 젖을 물리는 유모 안젤라>와 같이 직업 여성과 어머니라는 두 가지 정체성을 교차시키는 작업을 진행했다.
<줄리에게 젖을 물리는 유모 안젤라>를 비롯한 일련의 작품들은 베르트의 정체성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을 보여주고 그녀의 심리적인 혼란과 갈등을 대변하듯 다른 인상주의자들보다 인물의 표현방식이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필치로 표현된다. 하지만 영화는 이런 그녀만의 독창적인 주제적, 형식적 개성을 조명하기 보다는, 남성 화가에게 영향을 받아 변화하는 모습만을 강조한다.
-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