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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불안정한 한 여성의 가장 내밀한 고백 – 연극 ‘플리백’

서로 모르기에 오히려 솔직할 수 있는 교환일기장을 보다

by 곽미란 에디터
2026.08.08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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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플리백(Fleabag)>. 이 작품은 2013년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시작한 여성 1인극으로, 현대인의 고독과 자기파괴적 욕망을 성적 농담과 냉소, 파격적인 유머가 가득한 블랙코미디로 풀어낸다. 초연 당시 ‘에든버러 프린지 신작상’과 ‘더 스테이지 베스트 1인 공연상’을 비롯해 이듬해 ‘최우수 유망 극작가상’, ‘최우수 여자 연기상’, ‘최우수 신인 극작가상’ 등을 수상하며 연극계의 주목을 받았다.

 

큰 사랑을 받은 이 작품은 올해, 한국에서 초연됐다. 6월 19일부터 9월 6일까지 두산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플리백>은 '블랙코미디', '1인극'이라는 설명만으로도 호기심을 자극했다.

 

연극 <플리백>의 주요 내용은 이렇다. 런던의 한 골목에서 기니피그 카페를 간신히 운영하고 있는 주인공은 충동과 실수의 연속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면접 자리에서는 뜻하지 않게 상의를 벗어버리고, 성공한 언니와는 사사건건 부딪힌다. 아버지는 새어머니의 눈치만 살피고, 사랑은 번번이 실패로 끝난다. 겉으로는 유쾌하고 자유로워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 깊은 공허함이 자리하고 있다.

 

공연을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불안정한 한 인간의 요란스러운 정신세계를 90분 동안 들여다본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것도 가장 친한 친구에게조차 보여주지 못할, 서로 모르기에 오히려 솔직할 수 있는 교환일기장을 읽게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 불안정한 한 인간의 정신을 기록한 일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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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리백은 자신의 욕망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고, 이야기하며, 때때로 과할 정도로 분출한다. 보는 이가 당황스러울 만큼. 처음에는 자유롭고 개방적인 삶을 추구하는 인물처럼 보인다. 하고 싶은 말을 하고, 관계를 맺고 싶을 때 맺으며, 타인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사람처럼 말이다.

 

하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그런 과한 표출은 자신의 불안정함을 감추기 위한 자기파괴적 행동이라는 점이 드러난다. 절친한 친구의 죽음, 가족과의 갈등, 남자친구와의 이별. 반복적인 상실은 그녀의 내면을 외로움, 죄책감, 공허함으로 채우게 됐고, 결국 자신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존재라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예상할 수 없던 감정선과 과도한 성적 농담의 이유가 여기서 비롯된다. 자신이 여전히 세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그녀는 자신의 몸을 이용한다. 상대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누군가가 자신을 욕망하는 그 순간에만 살아 있다는 감각을 느낀다. 그렇게 그녀는 망가지는 것도 개의치 않는 듯 쉽게 관계를 맺고 자신의 몸을 내어준다. 그것이 비정상적인 행동일지라도.

 

처음에는 '왜 저러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녀를 둘러싼 관계와 상실의 배경이 하나둘 드러날수록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결국 그녀의 파괴적인 행동은 단순한 자유분방함이나 욕망이 아니라, 깊은 외로움과 애정 결핍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을까.

 

 

 

# 관객이 아닌, 가장 내밀한 고백의 청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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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보며 때때로 불쾌했고, 당황스러웠으며, 결국에는 그녀가 안쓰러워졌다. 마치 누군가의 가장 내밀하고 위태로운 고백을 듣고 있는 기분이었다. 정신없이 흩어지는 그녀의 머릿속을 그대로 옮겨 적은 교환일기장을 읽는 듯했다.

 

플리백은 계속해서 관객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건넨다. 아무렇지 않게 농담을 던지고, 성적인 이야기도 거리낌 없이 털어놓는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공연을 보는 관객이 아닌, 자신을 이해해 달라고 절실히 고백하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치 죄인의 고해성사를 듣는 신부처럼.

 

그녀는 자신의 행동을 변명하지도, 멋지게 포장하지도 않는다. 그저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말하듯 가장 엉망인 모습까지 그대로 내보인다. 그래서 이 작품은 한 인간의 가장 사적인 공간에 들어간 듯한 기분을 남긴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기에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 있는 펜팔 친구와의 교환일기장. <플리백>은 그런 작품으로 느껴졌다.

 

 

 

# 90분을 쉼 없이 이어가는 폭발적인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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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극은 배우 한 명이 극 전체의 리듬과 분위기를 온전히 책임져야 하는 만큼 배우의 역량이 공연의 완성도를 좌우하는 어려운 형식이다. 여기에 블랙코미디라는 장르적 특성까지 더해지면 난이도는 더욱 높아진다.

 

하지만 연극 <플리백>의 배우는 그것을 해냈다. 김주연, 김히어라, 김규남. 세 배우 중 김주연 배우의 공연을 봤는데, 90분 동안 쉬지 않고 계속해서 연기의 변주를 보여줬다. 감정과 생각, 장면의 전환이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별다른 무대 변화 없이도 표정과 몸짓, 말투만으로 전혀 다른 장면을 만들어냈다. 연극을 보고 있음에도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듯한 몰입감을 느낄 수 있었다.

 

가벼움으로 시작해 무거움으로 향하면서도 코미디의 결을 놓지 않는 균형감, 그리고 불안정한 '플리백'이라는 인물을 실제 존재하는 사람처럼 표현해냈다. 자칫 긴 독백처럼 느껴져 지루해질 수 있는 1인극을 끝까지 다채롭고 흡입력 있게 이끌어 갔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 쉽게 이해되지 않기에 더 불안하게 남는 이야기


 

다만 솔직히 말하면 <플리백>을 온전히 이해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해외 작품이라는 문화적 차이 때문인지, 아직 이 작품이 가진 정서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해서인지는 모르겠다. 인물의 행동과 감정 표현 방식이 내 정서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초반에는 '대체 왜 저러는 거지?', '왜 이런 장면이 나오는 거지?'라는 의문이 먼저 들었다. 이해도 공감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극이 전개되면서 그녀가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을 하나씩 알게 된 후에야 비로소 조금씩 납득하게 됐다.

 

결국 <플리백>은 자유분방한 한 여성의 이야기도, 성과 욕망을 거침없이 이야기하는 블랙코미디도 아니다. 관계의 상실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고 싶었던 불안정한 한 인간의 가장 내밀한 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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