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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LATE FAME - 나의 사적인 예술가 [영화]

FAME 뒤에 가려진 나의 사적인 모습

by 손현진 에디터
2026.09.21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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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의 우체국에서 일을 하며 살아가는 '에드 색스버거'의 얼굴에서는 활기를 찾아보기 어렵다. 매일 똑같은 하루를 보내는 그는 퍽 지친 모습에 가깝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에드에게도 한 가지 특별한 과거가 있다면 젊은 시절 자신의 이름으로 낸 시집 한 권이 있다는 점이고, 특별하지 않은 과거를 말하자면 그 시집은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으며 그의 삶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거다.

       

      자연스럽게 시로부터 멀어진 에드는 우체국 직원으로 조용한 일상을 이어간다.

       

      누군가 그의 오래된 시집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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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에드의 집 앞에 찾아온 '마이어스'는 당신이 그 에드 색스버거냐고 묻는다. 우연히 그의 시집을 발견한 마이어스는 자신과 친구들이 당신의 작품에 깊이 빠져 있다며 젊은 예술가 모임인 '열의의 사회'로 그를 초대한다. 처음에는 갑작스러운 관심을 낯설어하던 에드도 자신을 알아봐 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묘한 감정을 느낀다. 그렇게 오랜 기간 잊고 지냈던 '시인' 에드 색스버거의 기억이 다시 그의 삶 안에 되살아난다.

       

      켄트 존스 감독의 영화 <나의 사적인 예술가>는 한때 예술가였던 이에게 뒤늦게 찾아온 관심이 그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세심하게 따라간다. 에드의 시는 그대로지만, 그걸 바라보는 사람들의 평가와 시선은 달라졌다. 그렇다면 예술가를 예술가로 바로 서게 만드는 건 작품 그 자체일까 아니면 그걸 알아봐 주는 사람들일까.

       

       

       

      뒤늦은 FAME, 시인으로 다시 서는


       

      예술 모임에서 재발견된 천재로 새롭게 조명받은 에드의 삶은 그때부터 조금씩 달라진다. 우체국에서 일하거나 친구들과 당구를 치며 시간을 보내던 그는 이제 젊은 예술가들과 어울려 작품을 이야기하고, 낭독회에서 새로운 시를 발표하기로 약속한다. 에드는 그들의 관심을 조금씩 즐기며, 오래전 묻어둔 예술가로서의 '에드 색스버거'를 다시 꺼내본다.

       

      누군가 자신의 작품을 기억해준다는 사실 하나가 이토록 에드를 흔드는 것이다. 하지만 그 감정은 이상한 게 아니다. 예술을 하는 수많은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이 만든 것을 누군가에게 나누고 그 안에서 공감을 얻기 위함일 테니까. 뒤늦게나마 자신의 작품을 좋아해주는 사람들을 만난 에드가 느끼는 충만함과 다시 시인으로 서고자 하는 욕망을 품게 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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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에드가 모임에서 특별히 가까워지는 인물은 바로 '글로리아'다. 열의의 사회 속 유일한 여성 멤버이자, 뉴욕에서 활동하는 배우인 글로리아는 자신을 연출하는 데 익숙한 인물이다. 자유분방하고 매혹적인 모습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글로리아의 화려함 뒤에는 배우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불안과 경제적인 현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다 때때로 막이 걷힐 때면 '예술가' 글로리아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모습도 드러난다. 그런 입체적인 면은 에드와도 맞닿아 있다.

       

      두 사람 모두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에드는 오래전에 내려둔 시인의 꿈을 다시 꾸기 시작하고, 글로리아는 배우로서의 삶을 좇는다. 두 사람은 예술이라는 공통 분모 안에서 가까워지지만, 이야기가 끝을 향할수록 그들은 더욱 현실을 바라보게 된다. 예술가로 살아가고 싶다는 욕망만으로는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예술을 할 수 있는 여유


       

      에드의 세계 곳곳에는 작은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특히 에드가 마이어스의 집을 찾아가는 장면에서 드러나는 기시감이 더욱 그 균열을 부각시킨다. 마이어스의 집은 넓고 세련된 공간이었고, 그는 에드가 집을 나서자마자 자연스럽게 인공지능 비서 '알렉사'를 호출해 음악의 음량을 높여달라고 말한다. 짧게 지나가는 그 순간은 예술과 실제 삶 사이의 간격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예술을 이야기할 수 있는 여유는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또한, 시인이라는 감각을 다시 지니게 된 에드는 친구의 생일에 자신의 시집을 선물하지만, 친구들이 그것을 두고 장난을 건네자 웃어넘기지 못하고 화를 내며 자리를 떠난다. 열의의 사회에서는 천재 시인이라고 불리는 에드지만, 오래 알고 지내던 친구들에게 그는 여전히 '그' 에드일 뿐이다. 함께 당구를 치며 그들만의 하루를 보내던. 그렇게 에드는 두 세계 사이에서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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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는 이렇게 사적인 순간들을 쌓아 올리며 주인공의 삶에 조금씩 금을 낸다. 예술을 외치는 사람의 삶도 결국 현실적인 조건 위에 놓일 수밖에 없으며, 뒤늦게 찾아온 인정 역시 그 논리 위에 서 있다는 것을 부각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어긋나던 플롯은 결국 '열의의 사회'의 낭독회 장면으로 향한다. 

       

       

       

      FAME, 하지만


       

      낭독회에서 새로운 작품을 발표하기로 한 에드는 시를 완성하지 못하고, 결국 오래전 발표한 제 시집에 수록된 시 한 편을 읽기로 한다. 관객들의 환호 속에 낭독회는 끝나지만, 그 순간 에드가 마주한 것은 기대와는 조금 다른 모습의 현실이었다. 이후 낭독회를 둘러싼 리뷰와 '열의의 사회'의 이면이 하나둘 드러나면서, 뒤늦게 찾아온 FAME은 처음과는 다른 씁쓸한 감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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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LATE FAME'처럼 에드는 늦게 찾아온 관심을 통해 오래전 두고 떠난 자신의 예술을 다시 바라본다. 타인의 관심으로 되살아난 욕망이 얼마나 쉽게 타오르고 또 사그라질 수 있는지도 함께. <나의 사적인 예술가>는 진정한 예술이 무엇인지를 가려내기보다, 예술가라는 이름을 걷어낸 뒤 그 자리에 무엇이 남는지에 주목한다.

       

      타인의 시선도, 그 위에 쌓아 올린 명성도 사라진 뒤 마주해야 하는 것은 결국 예술가라는 이름 뒤에 남은 가장 사적인 '나' 자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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