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하고 있다면 이 영화를 보는 내내 기시감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특히 ‘열의의 사회’와 함께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들은 더욱 그렇다. 캐릭터마다 어쩐지 누군가가 떠오른다. 예술에 대해 누구보다 많이 이야기하지만 정작 자신의 작업은 보이지 않는 사람, 자신의 감각을 알아주길 바라는 사람, 예술가라는 이름 자체를 동경하는 사람.
그런데 이들을 보고 있으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이들은 정말 예술을 하고 있는 걸까.
‘열의의 사회’의 젊은 예술가들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기보다 이미 존재하는 예술과 예술가를 좇는다. 새로운 작품을 보여주기보다 과거의 예술을 이야기하고, 자신들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끊임없이 드러낸다. 그리고 그들이 결국 찾아낸 사람도 새로운 작가가 아니라, 젊은 시절 시집 한 권을 냈던 뒤 오랫동안 잊혀 있던 에드다.
새로운 예술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과거의 예술가를 ‘발견’하는 모습은 아이러니하다. 특히 그들은 에드의 작품을 발견한 뒤 그를 ‘재발견된 천재’로 만들어낸다. 에드는 다시 시를 쓰기도 전에 이미 사람들의 입을 통해 하나의 ‘예술가’가 되어간다.
돈과 인맥은 예술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조건에만 머물지 않는다. 때로는 무엇을 예술이라고 부를 것인지, 누가 예술가로 인정받을 것인지까지 결정하는 힘이 된다.
우리는 우스갯소리로 작가로 성공하는 것보다 누군가의 딸이고 아들이 되는 것이 빠르다고 말한다. 예술을 하는 사람이라면 이 말이 단순한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다. 누군가는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해야 하고, 누군가는 실패해도 계속 작업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더 흥미로운 것은 그 차이가 단순히 ‘예술을 계속할 수 있느냐’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돈과 인맥, 그리고 그들만의 세계가 있다면 아직 이름을 얻지 못한 사람에게 이름을 붙여줄 수도 있다. 작품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다. 서로의 작업을 인정하고 그것을 예술이라고 말해줄 수도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명성은 다시 그 작품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처럼 작동한다.
그렇다면 예술의 가치는 어디에서 만들어지는 걸까.
작품 자체에서 만들어지는 것일까. 아니면 누가 그것을 발견하고, 누가 그것을 이야기하고, 누가 그것을 예술이라고 인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일까.
에드가 흥미로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오랫동안 예술계 밖에서 살아온 사람이다. 젊은 시절 시를 썼지만 결국 뉴욕의 우체국에서 일하며 수십 년을 보냈다. 그러던 그에게 젊고 부유한 예술가들이 찾아온다. 그의 시를 읽고 그에게 새로운 이름을 부여한다. ‘잊힌 시인’이었던 에드는 그들의 세계에 들어오는 순간 ‘천재 시인’이 된다.
그렇다면 에드의 시가 갑자기 좋아진 것일까.
작품은 그대로인데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영화는 이 간극을 통해 예술의 가치가 얼마나 쉽게 사람과 환경에 의해 만들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렇다고 글로리아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그녀 역시 인정받고 싶어 하고 자신을 연출한다. 다만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그녀는 실제로 무대에 선다는 것이다. 배우로 살아남기 위해 현실과 타협하면서도 계속 노래하고 연기한다. 영화 역시 글로리아를 다른 모임의 구성원들과 달리 ‘예술 그 자체를 살아가는’ 인물로 설명한다.
그래서 오히려 글로리아 같은 사람은 바보가 되기 쉽다.
돈이 되지 않아도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고, 명성이 보장되지 않아도 무대에 선다. 반면 누군가는 직접 예술을 하지 않으면서도 예술가의 자리를 얻을 수 있다. 예술을 만드는 사람보다 예술을 둘러싼 환경을 가진 사람이 더 쉽게 주목받을 수도 있다.
결국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더 재능이 있는가가 아닐지도 모른다.
누가 예술가라고 불릴 수 있는가.
새로운 것을 만들고 있는 사람보다 이미 만들어진 예술을 잘 알아보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주목받고, 작품보다 그것을 둘러싼 돈과 관계가 더 큰 힘을 발휘한다면 예술가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나의 사적인 예술가>는 젊은 예술가들의 허영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 허영이 유지될 수 있는 세계를 바라본다. 새로운 예술을 만들겠다고 모인 사람들이 과거를 쫓고, 누군가의 이름을 다시 만들어내며, 그 과정에서 자신들의 예술적 감각을 증명한다.
이 영화는 그 다음 질문까지 생각하게 만든다. 예술가는 스스로 예술가가 되는 것일까, 아니면 누군가가 예술가라고 불러줄 때 비로소 예술가가 되는 것일까. 누군가의 작품을 발견하고, 그에게 의미를 부여하고, 그의 이름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과정이 예술가를 만들어낸다면, 그 이름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예술가는 누가 정해주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