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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역사와 문화를 통한 성공적인 도시 재생의 길 [공간]

그 길에서 한국 도시 정책의 미래를 보다

by 서연화 에디터
2026.09.16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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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흔히 전통을 오랫동안 이어져 온 공동체적 관습이나 문화로 이해하며, 박물관이나 문화재 속에만 존재하는 것처럼 여겨 우리의 삶과는 동떨어진 개념으로 받아들이곤 한다. 하지만 20세기 후반 이후 확산된 탈근대주의의 영향으로, 전통의 범위는 특정 문화재를 넘어 지역 전체의 역사적 및 문화적 분위기, 근대 문화유산, 시민들의 삶터까지 확장되고 있다. 이는 역사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만들어 나가는 동적 과정이며, 문화재 역시 단순한 보존의 대상이 아니라 현재 속에서 창조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대상임을 시사한다.

       

      그러나 우리의 도시 재생 정책은 여전히 ‘헌 것’을 허물고 ‘새 것’을 보급하는 데 치중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외면하는 낡음이 오히려 훗날 정체성과 자부심의 토대가 될 수 있음에도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바꿔나가야 하는가? 저서 <역사와 문화를 활용한 도시 재생 이야기>는 다양한 실례를 통해 이 물음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제시하며, 전통과 현대를 조화롭게 이어갈 도시 재생의 길을 모색하도록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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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저서는 도시재생사업단 소속 14인의 연구진이 집필한 것으로, 역사와 문화에 대한 우리의 의식과 관심의 우선순위가 변화해야 함을 일깨우고자 한다. 저자들은 의식의 전환이 결코 쉽지 않음을 전제하며, 세계 각국의 성공적인 도시 재생 사례 12가지를 제시해 독자가 그 필요성을 직접 체감하도록 유도한다. 이 12가지의 사례는 네 가지 범주로 정리되어 소개되고 있으나, 구체적인 시사점은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각 범주별 사례를 함께 살펴보며, 우리나라의 도시 재생이 나아가야 할 네 가지 지향점을 도출해 보고자 한다.

       

      그 첫 번째는 “역사 지역·지구를 활용한 도시 재생”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일본 가나자와 시의 역사적 수변 공간 재생이 등장한다. 가나자와 시는 오랜 역사를 지닌 건축물 및 도시경관을 보유하고 격조 높은 문화를 지닌 소도시이다. 도시의 경쟁력을 되찾고자 법과 다양한 조례를 통해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관리가 소홀했거나 훼손된 수변 공간을 비롯한 역사적 도시경관 전반의 인프라를 재생하였다. 동시에 오랜 전통을 지닌 공예 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며 지역 경제의 활력을 되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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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처럼 특정 건물에 국한하지 않고 지역 전체의 인프라, 전통 산업까지 포함한 종합적 접근은 도시 재생의 범위를 크게 확장시켰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여전히 단일 문화재 보존이나 단순 복원에 치중하는 경향이 강해 전체 역사 지구를 형성해 보전하는 데에는 익숙지 않다. 따라서 가나자와의 사례는 ‘단편적 시각에서 종합적 시각으로의 전환’을 보여주는 사례로, 역사적 건축물 보존을 넘어 도시 속에서 역사가 살아 숨 쉬도록 만드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역사 활용형 도시 재생임을 시사한다.

       

      두 번째 지향점은 “역사적 건축물을 활용한 도시 재생”이다. 대표적 사례로 미국 오리건 주 포틀랜드의 맥주 공장 구역 재생을 들 수 있다. 이 지역은 근대 시기 병기창을 매입해 맥주창고로 사용하거나, 일부는 쉐보레 자동차 판매점으로 바뀌는 등 여러 변화를 겪다가, 20세기 말 생산 시설이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면서 쇠퇴하였다. 이후 민간 개발업자인 거딩·에드렌 개발 회사가 개발을 주도하며 본격적인 재생이 이루어졌다. 개발 과정에서 맥주 공장, 병기창, 쉐보레 자동차 판매점 등 근대 건축물들이 역사적 가치가 크다고 판단되어 보존·정비되었고, 친환경적인 설계 기법이 적극 도입되어 친환경 녹색도시 조성을 지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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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틀랜드의 사례는 ‘재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지나치게 해체되어 온 우리의 역사·문화 자산을 되돌아보게한다. 특히 근대에 대한 매우 협소한 정의 탓에 근대의 산물은 보존의 가치가 있는 자원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한 채 파괴되는 경우가 많았다. 문화재 자체가 부족한 현실에서, 도시 재생에서 중요한 과제는 역사·문화 자산의 저변을 넓히는 것이다. 포틀랜드의 경험은 근대 생활문화 자원을 창의적으로 활용함으로써 도심 속에서 향수와 추억의 대상을 지켜나가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세 번째로는 “커뮤니티를 활용한 도시 재생”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일본 나가하마의 마을 만들기가 등장한다. 나가하마는 교외화 현상으로 인해 20세기 말 급격히 쇠퇴하였으나, 지역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계기로 도시 재생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구로카베, 나가하마 마치즈쿠리㈜, 중심시가지 활성화협의회 등 다양한 주민 조직체가 협력하여 재생 사업을 주도하였으며, 민간 협의체와 공공기관 간의 협력 또한 활발히 이루어졌다. 이를 통해 지역의 역사·문화·자연 자원을 활용한 독창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창출되었고, 일관된 도시계획 구상과 정책 방향에 따라 하드웨어(물리적 환경 개선)와 소프트웨어(기술, 상업 활성화) 양 측면에서의 통합적 지원도 이루어졌다.

       

      이러한 “참여적 관리”가 원활히 작동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서두르지 않는 점진적인 투자와 추진”이 필수적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주민 참여 기반의 도시 재생 정책이 시도되고 있으나, 지역 재생에 관한 관심과 점진적 접근 방식이 충분히 정착되지 못한 탓에 단기 성과주의에 매몰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지역만의 역사와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일은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고, 단기간에 구체적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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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천천히, 그러나 체계적이고 명확한 역할 분담을 바탕으로 주민 주도의 동력이 안정적으로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 나가하마의 사례는 바로 이러한 점을 상기시킨다. 즉, 느린 사업 속도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공공기관, 주민, 민간 조직, 전문가 집단 간의 협동 체계, 지역 공동체의 삶에 대한 중·장기적인 비전, 그리고 다양한 사회 측면을 아우르는 통합적 도시 재생 계획임을 잘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것은 “지역문화를 활용한 도시 재생”이다. 대표적 사례로 소개되는 곳은 영국 게이츠헤드이다. 한때 탄광촌이었던 게이츠헤드는 20세기에 들어 산업구조 변화와 정부 정책의 영향으로 쇠퇴의 길을 걸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로 개최한 국제가든 페스티벌에 이어 공공예술 프로젝트인 ‘북쪽의 천사’가 큰 성공을 거두면서 문화예술에서 도시의 비전을 발견했고, 역사·문화 도시로서 방향 전환에 나섰다.

       

      특히 시의회 리더들의 주도 아래 타인 강 유역을 중심으로 발틱현대미술관, 게이츠헤드 밀레니엄브리지, 세이지 뮤직센터 등을 건설하는 ‘게이츠헤드 키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문화예술도시로 거듭났다. 그 성공 요인으로는 장기적 안목을 가진 공공기관의 접근,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비전, 최고 수준의 전문가들의 자문, 그리고 건축물, 미술관, 뮤직센터가 단순 시설에 그치지 않고 질 높은 시민 참여형 프로젝트를 통해 꾸준히 주민들에게 신뢰와 소속감을 전달해 온 점을 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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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이츠헤드의 부상은 문화를 중심으로 한 도시 재생의 힘을 보여준다. “단순히 대형 건축물 몇 개를 건설하고 주택을 공급한다고 도시를 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라는 말처럼, 도시 마케팅에서 핵심은 ‘획일적 관리’가 아닌, ‘차별적 특화’에 있다. 게이츠헤드는 주민들과 10년에 걸쳐 열린 태도로 소통하며 지역 예술·문화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했고, 그 신뢰를 바탕으로 다시 10년간 본격적인 재생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성급히 서두르지 않고 공동체적 지역 콘텐츠를 하나씩 만들어 나갔으며, 일련의 작은 성공들이 모여 오늘날의 게이츠헤드를 이끌어냈다. 이러한 점에서, 주민과의 장기적 신뢰 구축과 지역문화의 점진적 개발이 예술·문화를 활용한 도시 재생의 핵심임을 확인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 사례는 일회성 문화예술 이벤트나 형식적 정책, 주민들과의 소통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우리나라의 문화도시 재생사업에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도시 재생이란 누구를 위한 정책이며, 누구에 의한 정책이어야 하는가? 게이츠헤드는 이를 통해 지역문화를 활용한 도시 재생에서 가장 본질적인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함을 일깨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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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처럼 역사·문화 지구 전체와 근대 생활문화 자원을 보존하는 도시 재생, 지역 커뮤니티, 즉 민관 협력의 활성화를 통한 도시 재생, 그리고 지역문화·예술을 함께 형성해 나가는 도시 재생의 네 가지 정책의 흐름을 대표적인 성공적 사례와 함께 살펴봄으로써, 한국의 도시 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탐색해 보았다. 그러나 저서 <역사와 문화를 활용한 도시 재생 이야기>는 한국 도시 재생 정책이 역사·문화를 어떻게 활용하며 나아가야 하는지 그 구체적인 답을 제시해 주지는 않는다. 사례를 통해 지향점을 간접적으로 보여줄 뿐, 현실을 마주하고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는 것은 오로지 독자의 몫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다양한 성공 사례를 체계적으로 분류하여 집약적으로 제시한 연구는 이 책이 발간된 지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찾아보기 어렵다. 더욱이 오늘날 도시 정책의 패러다임이 활발히 변화하고 있음에도, 저서가 지적한 우리나라 도시 재생의 본질적 문제들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역사·문화 자산을 보전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문화·예술 자산을 발굴해 나가야 할까?

       

      정해진 답은 없지만, 저서가 제시하듯 “도시계획이 개발 중심에서 벗어나 역사·문화 환경을 보존하는 방향”에 그 실마리가 놓여 있다. 결국 역사·문화재의 보호 및 보존은 도시계획 및 개발 정책과 이분법적으로 나뉘어서는 안 되며, 양자가 조화를 이루어야만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앞으로도 꾸준한 실증적 사례 연구를 통해 방향을 점검하고, 이를 현실에 적용하며 직접 부딪히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그 답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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