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에 앉아 있는 사람이나 관객석에 앉은 사람이나 꽤 많은 관심을 쏟고 있으면서, 일단 모른 척을 해야 한다. 아닌 척을 예의상 해 놓고도 어떻게든 닿기 위해 별의별 구애의 소리를 낸다. 아, 이런 웃픈 아이러니가 다 있나? 우리는 서로의 어디에 닿고자 하는 걸까?
오후 2시 40분. 객석 1층 C구역 12열 08번
서울시향 서포터즈를 하니 오픈리허설을 볼 기회가 생겼고, 이번이 그 두 번째였다. 3시부터 리허설이 예정되어 있으니 그보다 조금 이른 2시 35분쯤, 롯데콘서트홀로 향하는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실었다.
7월 23일의 오픈리허설 때와는 다르게 이날은 시작 전부터 거의 두 배 정도로 번잡했다. 무대 위 단차를 살펴보니 단원들의 의자도 그때보다 훨씬 빽빽하게 놓여 있었다.
리허설에 필요한 인원이 아직 다 모이지도 않았는데, 어느 곡의 결말부나 클라이맥스에서 나올 게 분명해 보이는 오르간 소리가 청아하게 ‘완-------’ 하고 울리고 있었다. 처음 들었을 때는 ‘와! 신기하다’였는데, 그걸 한 열 번 정도 듣고 나니 아직 공연을 제대로 보지도 않았는데 이미 결말까지 미리 본 듯했다. 이제 집에 가도 될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같이 리허설을 관람한 또 다른 서포터즈가 기지개를 켜다가 저도 모르게 오르간 소리를 따라 했으니 말 다 했다.
보통 리허설을 관람할 때면 객석 1층, 그러니까 무대와 거의 평행한 좌석이 아니라 한 층 높은 곳에서 무대를 살짝 내려다볼 수 있는 상석 중의 상석에 모여 앉게 된다. 그런데 이날은 진짜- 이렇게 지휘자와 작곡가를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재미난 포인트가 많았다.
보통 우리가 듣는 곡의 주인은 이미 세상을 떠났거나 적어도 그 자리에 없으니, 무대 위에서는 지휘자와 단원들 사이에서만 소통이 오간다. 그런데 이날은 곡의 주인인 이하느리 작곡가가 리허설 때부터 진짜 거대한 크기의 악보-거의 신문지 정도의 사이즈-를 들고 다니면서 계단을 몇 번이고 오르락내리락했다.
그러다가 우리가 앉아 있는 좌석 바로 뒤편까지 올라와 지휘자와 “여긴 어때요? 소리가 너무 큰 것 같진 않아요? 조금 더 자연스러워야겠죠? 어떤 것 같아요?” 하며 온갖 커뮤니케이션을 나누셨다. 내가 지휘자의 뒷모습은 많이 봤지만, 그렇게 정면 얼굴을 오래 본 건 처음이었다.
비단 이하느리의 곡뿐만 아니라 ‘법열의 시’를 리허설할 때도 최수열 지휘자가 웨인린 부악장과 몇 마디를 주고받더니, 음악이 시작하자마자 우다다- 우리가 있는 좌석 라인 앞쪽까지 뛰어 올라와 사운드를 체크하고 다시 내려갔다. 아, 이 자리가 정말 상석이구나.
그걸 체감하면서도, 진짜- 이날 리허설은 생동감이 넘쳤다. 사람이 끝도 없이 객석과 무대 위를 오갔고, 비워졌던 자리가 채워졌다가 다시 또 비워졌다. 피아노가 없던 자리에는 어느새 건반 악기가 들어와 있었고, 관계자 몇 명만 드문드문 앉아 있던 객석도 몇 시간 뒤면 사람들로 빼곡하게 채워질 것이었다.
이 오후와 저녁의 일을 모두 흥미롭게 구경할 수 있는 자리에 앉아 있던 나는, 한밤에 조금 더 가까워진 시간대에는 또 어디에 앉게 될까 궁금해졌다.
오후 7시 22분. 객석 1층 B구역 03열 03번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제21번 C장조, K. 467
1악장. 피아노가 등장하기 전에 단원들이 먼저 길을 터놓으며 ‘시작’하는 구간이 있다. 나는 이때부터 음이 조성되고 있구나, 이게 어디선가 저절로 흘러나오는 소리가 아니라 사람으로부터 유도되어 ‘모여든’ 소리구나, 그러니까 지금 단원들이 만들어내고 있는 사운드구나. 그걸 인지할 수 있어서 기뻤다.
뭐 이런 게 기쁜가 싶겠지만, 내가 공연을 자주 보지 않았을 때에는 음악가들이 당장 내 눈앞에서 ‘클래식 연주’라는 걸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어리둥절한 채로, 혹은 그저 흥미진진한 채로 멀뚱멀뚱- 어디를 바라봐야 할지도 모르고 가만히 앉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생각해 보니 알아서 내 초점을 잘 찾는다.
관중의 박수 소리가 딱 멎고 지휘자가 포디엄에 기쁜 표정으로 올라서면, 나는 곧 ‘모차르트’가 온다는 것을 기억해 두고 지휘자가 있는 방향을 바라본다. 한 번은 내게 활을 움직이는 오른팔이 잘 보이는 방향으로 등을 지고 앉아 있는 바이올리니스트들의 뒷모습과 옆모습에 시선을 두고, 그다음에는 안경을 피아노 오른편에 올려 둔 채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협연자의 뒷모습으로 눈을 옮긴다.
그러다가 한 번씩 오후 2시의 일을 생각하기도 한다. 아까 리허설 때보다 조금 더 자라났네, 음악. 확실히 본공연은 본공연이구나.
급하게 로비까지 뛰어왔던 내 친구는 어떤 느낌일까? 클래식 공연장에 와본 적이 없거나 정말 오랜만에 이런 공연을 보면, ‘와, 뭔가 방금까지 밖에 있었던 곳과는 다르다’는 그 느낌이 있는데 친구도 그것을 느끼고 있을까? 궁금했지만 그의 감상을 방해할 수는 없으니 가만히... 나타날 피아노를 기다렸다.
크리스티안 베자위덴하우트 피아니스트의 손 아래를 바라봤다. 어, 조금 더 누르고 있구나.
무대와 가까운 자리, 거의 3열 정도에 앉으니 그의 손가락 지문이 닿는 바닥면이 흰 건반을 어떻게 터치하고 있는지, 어느 정도 깊이까지 누르는지, 손 모양은 어떤지가 다 보였다. 내가 C구역, 그러니까 그보다 위쪽에 있을 때에는 그가 정말 피아노를 웬만해서는 잘 건드리지 않는 사람처럼 보였다.
이 악기가 얼마나 값진지 누구보다 많이 다뤄 본 사람이니까, 건반을 꽉꽉- 빈틈없이 누르기보다 딱 필요한 만큼만, 손가락 지문 끝에 가볍게 실은 압력으로 ‘모차르트’했다. 그러니까 명품 주얼리숍에서 흰색 면장갑을 끼고 상품을 꺼내 보여주는 사람의 손 모양처럼 불필요한 터치를 하지 않는다.
소리도 매한가지다. 너무 모나지도, 그렇다고 지나치게 천진난만하지도 않은 모차르트가 거기 있었고, 내게는 흠잡을 곳을 굳이 찾아낼 필요조차 없을 만큼 적절한 21번이었다. 모차르트는 바이올린보다는 피아노려나 싶은 생각이 들면서도, 협연자를 감싸 안고 있는 현악기들을 듣다 보면 아, 쉽게 판단할 수가 없다.
그의 건반 위에서 특이했던 건 특유의 ‘한 걸음’이었다. 내가 예습했던 음원에서는 듣지 못했던 순간이었다. 현악기가 연약하게 좌우로 이리 갔다 저리 갔다를 두어 번 하고 나면, 피아노가 또랑거리며 적당한 경사면을 따라 올라간 뒤 ‘따라라란’을 두 번 정도 들려준다. 그런데 두 번째 ‘따라라란’이 이상했다. 중간의 ‘라란’이 앞의 ‘따’와 마지막 ‘란’보다 유달리 붙어 있었고, 높낮이도 묘하게 달랐다.
앞은 높고 뒤는 낮은 채로 그 소리가 내 앞에 나타났을 때! 나는 마음의 눈을 부릅떴다. 뭐야, 다른 곳에서는 안 그랬는데! 아, 되게 절묘하고 특유하다! (즐거워하는 중)
리허설에서 만났던 모차르트는 유려하기도 유려했지만 조금 조심스러워 보였는데, 본공연에서는 그보다 조금 더 ‘어른’이 되어 있었다. 이런 얼굴도 있구나.
2악장. 나는 여기에서 어떤 ‘서사’나 ‘서정성’이 더 강조될 줄 알았다. 그러니까 조금 더 느긋하게 흘러가면서 하나하나 충분히 느끼도록 붙잡아둘 거라고 생각했는데, 최수열 지휘자와 크리스티안 베자위덴하우트 사이에는 “뭐, 딱히 그렇게까지 다 느끼고 갈 필요 있겠어요?” 싶은 기류가 흐를 정도로 오히려 순조로웠다. 그래서 조금 더 별다른 생각 없이 ‘음표’만 즐길 수 있겠구나 싶었다.
더군다나 여기서는 내가 아까 재미있게 들었던 ‘라란’들이 약간 더 여유로워진 채로 등장하고, 높이의 역할도 앞과 뒤가 서로 바뀌어가며 연주된다. 뭔가 이 악장을 듣는 내가 애써 ‘편안함’을 느끼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 애초에 편안한 줄도 모르고 태어난 음악이 “뭐, 이 정도가 특별한 일인가요? 기본적인 거 아닐까요?” 하는 애티튜드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러니 좀처럼 자리를 잡지 못하고 기본 베이스가 ‘불안형’인 사람도 저절로 분위기에 휩쓸려 차분... 해진다. 편안함을 넘어선 ‘공백’ 안에 그냥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가뿐함이 거기 있었다. 어우, 편해!
3악장. 그러니까 3악장은 뭐, 말할 것도 없고 나는 그냥 오른쪽으로 고개를 기울여 좌석에 거의 기대다시피 한 채 구경하고 또 구경했다. 아니, 건반이랑 현악기가 동시에 춤을 추는데 내가 뭐 말 꺼낼 일이 있는가?
너무 조용해질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지나치게 어리숙한 아이의 얼굴이 엿보이지 않아서 좋았다. 뭐랄까, 나도 가끔은 순수한 게 좋긴 한데 너무 티 없이 맑은 것보다는 그냥 어른들끼리 앉은 채로 본론 위주의 대화를 할 수 있어도 기쁘지 않은가? 가벼운 스몰토크나 농담도 조금 하면서.
딱 그 정도의 즐길 거리와 유쾌함을 주고, 다정하고 깔-끔하게 끝났다. (오호호)
이하느리, As if…… II (스크랴빈의 정원)
그러니까 이번이 As if 시리즈의 두 번째고, 내가 더하우스콘서트에서 들었던 게 As if의 세 번째와 네 번째였구나. 2026년 3월 9일의 나는 이날에도 세계 초연된 As if… III (Deluxe) for Mixed Quartet를 들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
첼리스트의 활은 어디로 갔나. 체엥거리는 기타, 뚱땅거리는 피아노, 동동거리는 북소리, 깨갈대는 클라리넷. 기억하고 있던 것보다 ‘부드럽게’ 들려서 유리잔 안에 갇힌 기분으로 어지럽게 감상했다.
피아노 건반 위에는 종이로 만든 배 모양 같은 물체가 출항했고, 첼로에는 형형색색의 더블클립이 달려 있었다. 나중에 왜 저걸 달았는지 여쭤봐야지, 생각했지만 내향인은 그냥 마음으로 삼켰다.
이유가 있겠지. 동굴 안에 회색 돌멩이가 왜 거기 있느냐고 묻지 않겠다. 첼리스트가 현을 활로 막 때리고 ‘쉬잇’ 소리도 내는데 이유가 어디 있나.
받아들여!
그때의 이하느리 작곡가는 공연이 시작되기 전부터 악기들이 놓인 곳 이곳저곳을 오가셨는데, 이날 리허설 때도 그렇고 As if…… II가 연주되기 직전에도 무대를 잠깐씩 오갔다. As if…… II가 다 끝난 뒤에는 훌쩍 무대 위로 올라와 최수열 지휘자와 사이즈가 모의고사 시험지 봉투만 한 거대한 악보의 양 끝을 사이좋게 한쪽씩 붙잡고 관객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러고는 다시 훌쩍 객석 1층 B구역 좌석으로 쏙 들어가 앉았다.
아마 이날 공연장에서 롯데콘서트홀 스태프분들만큼이나 이동 동선이 다양하지 않았을까 싶다. (아하하)
그건 그렇고, 몇 개월 만에 As if를, 그것도 서울시향이 위촉하고 서울시향이 연주하는 As if…… II로 다시 듣게 되다니 뭔가 감회가 새로웠다. 솔직히 그날 이후로 이하느리 작곡가의 곡을 또 들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이번에는 아예 롯데콘서트홀 한가운데에서 다시 만났다.
특히나 악기는 이렇게 연주되고 이런 소리가 나야 한다는 규칙을 깨뜨려도 ‘들을 만한 현대음악’이 있다는 사실을 체감했다기보다, 그냥 이하느리의 세계관 자체가 롯데콘서트홀 안에서 발발했다고 느꼈다.
전체적으로 보면 우주 비행 중에 만난 사파리 체험 같기도 하고, 물속에서 나누는 대화 같기도 했다. 애초에 귀가 멍멍해진 상태에서 악기들에 입이 달려 있다면, 쉬는 시간마다 딱 저렇게 저들끼리 떠들지 않았을까?
그래서 ‘이게 뭐지?’라고 물으며 밀어내기보다 어느 순간 그 반복되는 형태를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흑백의 빽빽한 격자무늬로 뒤덮인 거대한 구체 하나가 나를 향해 밀려오더니, 피부를 숙- 통과해버리는 것 같다.
그러다가 갑자기 악기가, 한참의 쉬는 시간이 끝난 뒤에야 내놓는 ‘내가 아는 소리’를 낸다. 그게 너무 스무스하게 이어져서 아까 리허설에서 “조금 더 자연스럽게 이어 붙여 보자”고 했던 부분이 여기였던가 싶었다.
그렇게 악기들이 한바탕 일을 마치고 나면 이번에는 여기가 컴퓨터 본체였던가 싶은 소리가 등장한다. 우주 함선의 조종칸에서 날 법한 합성음과 게임 속 장난 같은 일들이 이어지는데, 장면 전환이 잦은 만큼 지루할 틈이 없다.
어느 시점부터는 뒷배경의 크로마키마저 보라색이었다가 초록색이었다가, 다시 흰색과 검은색의 조합 사이로 돌아오는 것 같다. 그런데 나는 그걸 이상하게 여길 줄도 모르고 그냥, 이거지- 이 세상이지, 하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게 이하느리의 능력치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일단 악보. 저 거대한 악보가 괜히 거대한 게 아니다. 세상보다 더 큰 선 하나를 끌어왔나 보다.
스크랴빈, 교향곡 제4번 ‘법열의 시’, Op. 54
제목의 ‘법열’은 설법을 듣고 진리를 깨닫는 기쁨을 뜻하지만, 스크랴빈이 이 곡에서 말하고자 했던 것은 조금 다르다고 한다. 단순히 무언가를 깨닫고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창조적 정신으로 자신의 신성을 깨우치고 초월적인 존재에 이르는, 일종의 ‘무아의 황홀경’에 가깝다.
그래, 인간이 창조적 정신으로 뭔가를 깨우치고 초월적인 존재에 이르러 자기 존재조차 잊어버린 채, 정신이 어지러울 만큼 마음이 달뜨는 경지. 이날 공연이 말하고 스크랴빈이 바랐던 ‘법열’이 그런 것이었다면, 나는 귀로 서울시향의 ‘스크랴빈’을 담으면서도 내가 하는 예술을 눈앞에 가장 크게 두려고 애를 썼다.
그러니까 나도 ‘법열의 시’를 듣는 와중에 어떤 ‘창조적 정신’을 깨우쳐야 할 것 같은데, 막상 나는 제1바이올린의 까만 연미복 뒷모습과 지휘자가 단원들을 바라본 채 지휘봉을 움직이는 모습, 보면대 다리 사이로 보이는 첼로 한 대와 시선 너머에 자리해 눈에는 보이지 않는 관악기의 움직임을 귀와 눈으로 따라가기 바빴다.
내가 나만을 생각하기에는 지휘자와 제1바이올린, 그 너머의 첼로가 만들어내는 눈앞의 삼각형이 지나치게 선명했다. 리허설에서 담아두었던 사운드보다 훨씬 커다래진 그들의 모습을 그저 얌전히 따라갔다.
이상하게도 별다른 문장이 머릿속으로 굴러 들어오지 않았다. ‘아, 이게 스크랴빈이구나.’ ‘아, 누가 이런 포인트에서 잘하고 있구나.’ 그런 생각조차 제대로 시작되지 않았다. 그냥 우르릉거리면 우르릉거리는 대로, 한쪽 구석에서 휘몰아치면 휘몰아치는 대로, 관악기 한 대가 쾡쾡한 소리를 내면 또 그냥 내는 대로 따라갔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뭐, 눈을 뜬 채로 하는 명상인가 싶기도 하다. 그런데 오히려 ‘법열의 시’가 흘러가면 흘러갈수록 그들의 기골이 점점 장대해지는 모습을 반강제로 목격하는 기분에 더 가까웠다.
나는 그냥 여기에 앉아 있을 뿐이고, 눈에 보이는 대로 ‘관조’할 뿐이었다. 무대에 뭔가를 바라지 않고, 무대도 내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은 채로 그저 서로에게 귀를 기울인다. 눈 한 번 제대로 마주치지 않은 채 각자의 위치에 앉아 있으면서도 말이다.
그러니까, 참 신기하지 않은가? 무대에 앉아 있는 사람이나 관객석에 앉은 사람이나 꽤 많은 관심을 쏟고 있으면서, 일단 모른 척을 해야 한다. 아닌 척을 예의상 해 놓고도 어떻게든 닿기 위해 별의별 구애의 소리를 낸다.
아, 이런 웃픈 아이러니가 다 있나? 우리는 서로의 어디에 닿고자 하는 걸까?
아무 생각도 못 한 채 앉아 있으면, 내가 우연히 딱 짚어 두었던 구간의 아주 작고 보기 좋은 ‘회오리’가 두 번 지나간다. 그리고 미처 이어 붙이지 못했던 현의 가락이 높-게, 높게 날아오를 때까지 길-게, 길게 마주 보았다.
공연을 다 끝내 보내고 나서도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장면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물론 곡도 곡이지만 아마 As if…… II와 ‘법열의 시’ 사이에 놓여 있던 잠깐의 시간이겠다.
조명이 몇 개 정도 꺼지면서 오케스트라 단원들 위로 약간의 어둠이 드리워졌을 때의 그 분위기. 마치 발레나 뮤지컬 공연 안에서 볼 수 있는 한 장면처럼, 사람들은 적당한 어둠과 공간 안에 숨어서 노래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분위기 자체가 굉장히 영화적이었다. 그냥 저대로 공연을 진행해도 좋겠는데? 싶을 정도로 마음에 드는 비주얼이었다. 오렌지색이랑 검은색이 만나면 저렇게 예쁘구나...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공연이 모두 끝난 뒤에는 최수열 지휘자의 다정한 지목이 있었다. 단원들을 한 명 한 명 일으켜 세워 관객들에게 소개하는 시간이 이날 공연에는 꽤 충분히 주어졌다. 덕분에 나는 조금 전까지 어둠 속에서 소리를 만들고 있던 사람들의 얼굴을, 내 시야에 들어오는 만큼 꼭꼭- 담아 볼 수 있었다.
아, 나는 역시 미소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