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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AI 이후의 세계를 경험한 사람들 - 먼저 온 미래 [도서]

탁월함을 인공지능에게 양보할 때, 인간은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할까?

by 방지수 에디터
2026.09.11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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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 교보문고 인문교양 대상, 장강명 [먼저 온 미래]


       

      책 [먼저 온 미래]가 교보문고 '인문교양 대상'에서 1위를 차지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실 그게 아니었다면 읽어 보지 않았을 것 같다. 나는 주로 문학이나 에세이를 읽는 편이기에.

       

      다른 독자들도 나처럼 비문학보다 다른 분야를 더 선호하는 듯하다. 교보문고에서 '인문교양 대상'을 새롭게 연 이유도 상반기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10위 내 경제/경영을 제외하고 비문학 도서가 한 권도 없어서였다.

       

      [먼저 온 미래]의 표지에는 "AI 이후의 세계를 경험한 사람들"이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AI에 관해 이야기하는 책은 많기에 오히려 잘 읽지 않았었다. 다들 비슷한 이야기를 할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먼저 온 미래]가 그 많은 AI 관련 서적들, 그리고 다른 인문 분야 책들을 제치고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한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했다. 사람들은 이 책에서 어떤 새로운 이야기를 발견한 것일까.

       

       

       

      책의 표지를 보고 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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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표지에는 정사각형 모양의 작은 창문이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선 건물 사진이 담겨 있다. 책 제목의 ‘미래’라는 단어가 주는 도시적인 느낌 때문에 건물 사진을 표지로 정한 것이 아닐까. 읽기 전 나의 추측은 그러했다.


      [먼저 온 미래]는 장강명 작가가 전현직 프로기사 30명과 바둑 전문가 6명을 만나 알파고 이후 바둑계에 ‘먼저 온 미래’를 돌아보고, 인공지능이 문학계를 비롯한 여러 업계에 가져올 변화를 전망한 르포르타주다.


      내용을 조금 읽고 나니 표지가 다르게 보였다. 표지 속 어떤 창문은 하얗고, 어떤 창문은 어둡다. 바깥 풍경이 유리창에 비치면서 창문이라는 ‘칸’을 저마다 다른 색으로 채운 것처럼 보인다.


      이는 바둑판 위에 놓인 백돌과 흑돌을 은유한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표지의 선택이 더욱 절묘하게 느껴졌다.

       

       

       

      바둑계에 먼저 온 미래


       

      2016년 3월 9일부터 15일까지 열린 이세돌 9단과 구글 딥마인드의 바둑 AI 알파고의 대국을 기억하는가? 다섯 번의 대국에서 이세돌은 한 차례 승리하고 네 차례 패했다. 다수의 예상과 달랐고, 그렇기에 더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더 이상 인간의 바둑은 인공지능보다 우위에 있지 않았다.

       

      강력한 바둑 프로그램들이 나왔고, 바둑계의 풍경이 완전히 바뀌었다. 프로기사들은 바둑 AI 프로그램들을 내려받아 훈련을 시작했다.

       

      바둑 AI 프로그램이 제시하는 새로운 포석(초반에 돌을 놓아 진영을 만드는 일. 또는 그렇게 만들어진 진영)을 'AI 포석'이라고 불렀고, 그것을 최대한 능숙하게 구사하는 것이 랭킹을 끌어올리는 지름길이 되었다.

       

      'AI 일치율'이라는 개념도 생겼다. 어떤 인간 기사가 인공지능이 추천한 수대로 돌을 둘 확률을 가리키는 말이다. 'AI 일치율이 높다'라는 말은 곧 그 기사가 강하다는 뜻이었다.

       

      2019년 말 이세돌 9단이 프로바둑계에서 은퇴했다. 그는 TV 토크쇼에 출연해서 이렇게 말했다.

       

      "어린 시절, 바둑은 예술과 같은 것으로 배웠다. 바둑은 돌이 만드는 하나의 작품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게(인공지능과의 대결이) 무슨 작품이 되겠나. 제가 배웠던 예술 그 자체가 무너져 버렸다. '더 이상은 하기 쉽지 않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둑 중계, 해설, 관전 문화, 교육 방식도 완전히 바뀌었다.

       

      바둑 경기 중계에는 실시간으로 AI가 계산한 승률을 함께 보여준다. 이제 바둑 경기 해설가들은 경기에 개인적인 해석을 덧붙이는 것을 어려워한다. 해석의 방향이 AI가 계산한 승률과 다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바둑 AI 프로그램이 보급된 뒤 학원과 개인 과외, 지도 대국의 수요는 당연히 떨어졌다. 학생들이 AI의 수가 더 '옳은 것'임을 알고 있기에, 바둑 선생님들은 더 이상 권위적일 수 없다.

       

      알파고 이전에는 인간 최강자끼리 바둑을 두는 동안 그 대국에 대해서는 당사자인 두 대국자가 가장 잘 알았다. 알파고 이후에는 반대가 되었다. 해설을 맡은 프로기사나 그 해설을 듣는 시청자들은 인공지능 덕분에 실시간 형세와 다음에 두어야 할 수를 훨씬 더 정확히 안다.

       

       

       

      인간이 고유하게 가진 것을 팔아야 하는 시대


       

      앞으로는 프로기사들이 팬들에게 승부 이상의 재미를 보여줘야 한다는 의견에 다수의 기사가 동의하는 듯하다.

       

      스포츠 분야를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서사' 때문이다.

       

      인공지능은 바둑을 두면서 당황하지도, 화를 내지도, '아차'하는 표정을 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감정이 있고, 드러내고, 그것에 서로 영향을 받으며 시합을 치다.


      바둑에서도 인간 기사의 절대적 탁월함이 아닌, 그들이 시합을 통해 만들어내는 서사에 주목하자는 의견이다.

       

      탁월함을 인공지능에게 양보할 때, 인간은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할까?

       

      바둑계가 비교적 먼저 AI의 영향을 받았지만, 다른 분야에서는 그러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을까?

       

      출판업을 하던 민음사가 민음사TV로 인해 자신도 모르는 새 영상 제작사가 되었고, 민음사TV가 책이 아닌 콘텐츠를 일종의 낚시 상품으로 유튜브에 올려놨음도 엄연한 사실이다.

       

      민음사TV가 유튜브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낚시 상품은 바로 직원들의 사적인 얘기다. 가방 속 물건이 뭔지, 신입사원 시절에 어떤 실수를 했는지, 오늘 점심은 뭘 먹을 건지 등등.


      인공지능이 문학 출판계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하면 어떨까? 인간 소설가의 영역은 인공지능이 잘하지 못하는 일로 축소된다. 그런 때 인공지능이 팔 수 없는 나만이 팔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장강명 작가는 '자신의 사생활'일 것이라고 답한다.


       

      모차르트가 시장에 내놨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마이클 잭슨은 시장에 내놔야 했고, 테일러 스위프트는 더 그러하다. 우리는 테일러 스위프트의 남자친구들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으며, 그런 가십은 '스위프트노믹스'의 일부다. 거기에는 그사이에 발전한 미디어 기술이 큰 영향을 미쳤다. 그렇다고 테일러 스위프트가 그 미디어 기술로 인해 마이클 잭슨이나 모차르트보다 더 적게 일하고 더 높은 삶의 질을 누리는 것도 아니다.

       

      - 장강명, [먼저 온 미래], 267쪽

       

       

      이렇듯 사람들은 인간이 만들어내는 이야기, 서사, 사생활에 관심이 많고, 이는 (아직은) 인간의 고유한 것이기 때문에 AI 시대에 더욱 가치 있을 것이라는 게 작가의 전망이다.

       

       

       

      우리의 미래 


       

      장강명 작가는 이 책을 통해 AI가 가져올 미래를 '막연히' 예측하지 않았다. 이미 그 미래를 먼저 통과한 바둑계 사람들이 겪는 상실과 적응, 그 과정에서 새롭게 생겨난 질문에 관해 이야기한다.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가 AI로 완전히 대체된다면 어떨까. 내가 쓴 글보다 AI의 출력물이 독자의 마음을 움직일 확률이 더 높다는 계산을 마주한다면, 나는 내 문장을 모두 지워야 할까?

       

      그런 미래에서 살아 남고 싶은 나는 어떤 글을 쓰게 될까?

       

      탁월함을 AI에게 내어주게 된 미래에 내가 가진 경쟁력이 '인간다움'일 거라는 말이 전혀 반갑지 않았다. 인간다움이 본격적으로 상업적 가치를 지니게 된다면, 나는 어떤 삶을 가치 있다고 여기게 될까?

       

      아이돌 산업을 보면 사람들은 '서사'가 있는 인물들에게 더욱 열광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쩌면 그들의 실력보다 중요한 것은 대중에게 인식되는 그들의 이미지라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연습생 시절의 고난, 실패를 딛고 일어선 과정, 멤버들과의 관계까지 한 사람의 삶은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가 된다.

       

      이런 상황을 바둑계를 넘어 다른 분야까지도 마주한다고 하니 그제서야 아이돌 산업이 비정상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음이 느껴지기도 했다.

       

      인간다움이 경쟁력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의 경험과 감정, 심지어 상처까지도 끊임없이 보여주고 증명해야 한다는 뜻일지 모른다. 비단 연예인, 인플루언서 뿐만 아니라,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들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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