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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이 공연이 없어도 사랑을 사랑이라 말할 수 있기를 - 음악극 ‘브로크백 마운틴’ [공연]

기억의 파편을 쥐고 뒤늦은 맹세를 하는 마음에 대하여

by 권혜선 에디터
2026.09.11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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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5일, <브로크백 마운틴>을 보고 돌아오는 길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공연을 보는 중보다 후가 더욱 그러했다. 글을 써서 내놓는 일이 원래 어려움을 겪는다고는 하지만 이번만큼은 정말 그만두고 싶기도 했다. 내용을 정리하면서도 장면들이 떠올라 속절없이 무너지는 마음을 다잡아야 했고, 그 슬픔과 견디는 과정이 버거웠다. 쓰지 않고 덮어둘까 잠시 고민하기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반드시 기록하고 싶은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때문에 조심스럽게 한 글자 한 글자씩, 지난 시간 동안 겪어오고 지켜본 삶과 사랑을 곱씹어보며 이 글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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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극의 성격을 짚고 넘어가고 싶다. <브로크백 마운틴>은 음악극이며, 기억극이고, 퀴어극이다. 대본 앞 ‘작가 노트’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1. 본 연극은 ‘기억극’으로, 인생의 강렬하고 생생한 시기를 되돌아본다. 기억은 시적 허용을 많이 한다. 어떤 세부 사항은 생략되고, 다른 것들은 기억이 닿아있는 대상의 감정적 가치에 따라 과장된다.

       

      2. 여기서 음악은 공간의 광대함과 시간의 흐름뿐 아니라 물리적 풍경과 인물 내면 풍경 속에 공존하는 아름다움과 잔혹함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다.

       

       

      필자는 ‘1번’에 주목했다. 관객으로서 공연을 보며 떠올린 ‘회고’, ‘회귀’라는 키워드와 작가 스스로 이 연극을 ‘기억극’으로 정의했다는 점이 맞닿아 있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핵심이란 생각이 들었다. 공연은 젊은 시절의 에니스가 사랑한 잭, 에니스와 결혼했던 알마, 그리고 에니스가 혼자 견딘 시간들을 그리고 있다. 연출은 그 시간의 흐름 속에서 ‘중년 에니스’에게 ‘기억’을 ‘회고’하는 역할을 부여한다. 같은 배우가 에니스의 두 시기를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중년 에니스를 ‘따로’ 캐스팅한 것은 분명 이유가 있다. 젊은 에니스 역을 포함한 타 배우들이 연기하는 순간에도 중년 에니스는 무대 위를 서성이고, 사람들을 바라보고, 무언가 행동한다.

       

       


      Ⅰ. 중년의 에니스가 머무르는 기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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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장에 들어오면 공연 시작 전부터 객석을 기준으로 왼쪽에 중년 에니스가 소파에 앉아 있는 것이 보인다. 그는 이후로도 주로 그 공간과 소파에 머물며 무대를 떠나지 않는다. 관객은 십 대 후반부터 사십 대 초반까지 에니스의 기억을 ‘그와 함께’ 돌아보게 된다. 무대 위의 공간이 그의 머릿속이라고 생각하면 쉬울 것이다. 본격적으로 공연이 시작되면 에니스가 잭과 처음 만났던 순간이 눈앞에 펼쳐진다. 첫마디는 인사로 시작한다. “안녕.” 에니스 델마와 잭 트위스트, 두 사람은 여름의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처음 만났다. 성향이 다른 두 사람은 함께 산에 머무르고 일을 하며 서서히 가까워진다.


      산에서의 밤은 춥고 고독하지만, 동시에 아름답다. 제목부터 브로크백 ‘마운틴’인 이 공연에는 직접적으로 산이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조명과 음악으로 산의 이미지를 충분히 구현하고 있다. 에니스와 잭의 일상에는 산의 존재가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다.


      어느 날 잭이 에니스의 텐트를 가로채 먼저 잠에 들었을 때, 에니스는 그를 타박하면서도 밖에서 대충 담요를 덮고 자는 것을 택한다. 펴지도 않고 덮어둔 담요를 지켜보고 있던 무대 위의 중년 에니스는 담요를 펴서 다시 온몸을 덮어준다. 중년 에니스는 젊은 에니스와 잭이 잠들어 있는 사이에 꺼진 불을 지피거나 불 위에 주전자와 프라이팬을 올려두기도 한다. 과거(젊은 시절) 산에서 에니스가 해온 것 그대로, 에니스가 없거나 잠들었을 땐 중년의 에니스가 그렇게 한다. 어쩌면 에니스에게는 과거의 자신 역시 보살피고 싶은 대상이 아니었을까.


      담요를 덮어주던 때에, 볼라디어와 연주자들의 노래와 음악이 시작된다. 중년 에니스의 방이 치워지고 서서히 무대 전체가 밝아지며 '색'으로 공간이 가득 찬다. <브로크백 마운틴>이 더 슬프게 느껴지는 이유는 이전과 같아질 수 없는 그 공간이 ‘너무나도 아름다워서’이다. 조명으로 구현된 브로크백마운틴의 동화적 색감은, 이루어질 수 없는 비극적인 결말과 역설을 이룬다.

       

       


      Ⅱ. 그들에게 허락된 유일한 '브로크백 마운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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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을 한 병씩 들이킨 밤에 두 사람의 잊을 수 없는 관계가 시작된다. 잭은 에니스에게 텐트 안으로 들어와서 자라고 하지만, 술에 취한 에니스는 밖에 누워 주정을 부린다. 추위에 몸부림치던 에니스를 결국 잭이 텐트 안으로 들어오게 한다. 텐트 안의 따뜻한 조명이 공간을 감싸고, 두 사람은 서로 몸을 겹친다. 섹스와 키스, 신음. 두 사람의 정사는 노골적이지만, 동시에 오랫동안 은근하게 묘사된다. 텐트 안에서의 시간은 텐트 밖에서 직접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중년 에니스의 기억을 돌아보며 그려지는 이 장면은 텐트를 사이에 두고 그림자를 비추는 식으로 보인다. 그래서 두 가지 특징을 가진다. 1) 명확하지 않고 2) 강렬하다. 본디 시각이 제한된 상태에서 장시간 보여주는 청각적 자극은 더 강렬하게 감각된다. 연출은 에니스에게 이 날이 강렬했음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애정의 시작을 단순히 설명만 하고 넘어갈 생각이 없었다.


      ‘브로크백 마운틴’은 잠시나마 자유로운 낙원이 되어주었다. 그 누구의 눈치도 ‘견딜’ 필요가 없는 곳, 두 사람만이 자리한 산에서 잭과 에니스는 마음껏 ‘순간’을 누린다. 그러나 산에 오르면 내려가야 한다는 말이 있다. 결국 이별은 예견되어 있던 것이었다. 잭과 에니스의 관계는 처음 그 사랑이 시작된 ‘브로크백 마운틴’의 운명과 닮아있을지도 모르겠다. 떠나는 날이 찾아오자 텐트는 다시 철거되고, 조는 앞에 서서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며 화를 내고 있다. 마치 두 사람의 첫 만남 때와 유사한 구도와 상황은 하나의 수미상관을 통해 작은 마침표를 찍는다. 이야기의 한 부분이 끝났음을 알리고 있는 것이다. 에니스를 붙잡아보려는 잭의 시도는 상처만 입은 채로 끝이 난다. 결국 잭이 떠나고, 에니스는 그가 간 방향을 한참 바라보다가 주저앉아 구역질하기 시작한다.


      에니스는 그 자리에서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 가방에 넣고 결혼식 복장을 꺼내 입는다. 오른편에서 알마가 나와 결혼 서약을 하고 부케를 던지는 등 두 사람의 결혼식이 펼쳐진다. 잭과의 추억이 담긴 옷을 가방에 ‘넣고’ 알마와의 결혼식 옷을 ‘꺼내는’ 행위가 에니스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과거를 정리하고 새롭게 나아가려는 ‘몸부림’ 같았다. 이 사회가 수용하는 틀에 몸을 넣어보려는 ‘정상성’을 향한 몸부림, 아직 실체가 없는 감정을 벗어나 보려는 몸부림 말이다.

       

       


      Ⅲ. 돌이킬 수 없는 사랑의 유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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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두 사람이 헤어지고 4년의 시간이 흘러 알마와 가난하지만 화목한 결혼생활이 이어지던 어느 날, 에니스는 잭으로부터 지나가던 길에 자신의 집을 들르겠다는 편지를 받게 된다. 약속 날짜가 되자 에니스는 일까지 쉬어가며 그를 기다리고, 만나자마자 둘은 사랑을 나누기 바쁘다. 서로를 향한 마음은 숨기려고 해도 눈빛에서, 행동에서 전부 느껴진다.


      잭이 감정을 밖으로 표출하는 인물이라면, 에니스는 감정을 안으로 삼키는 인물이다. 잭은 함께 하고 싶다며 이혼하고 목장을 운영하는 방법을 제안했지만, 에니스는 거절한다. 이유야 수천수백 가지가 있겠지만 본질적으로는 에니스의 내면에 죽음에 대한 공포가 크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남자 둘이 함께 사는 것이 금기이던 시대에, 함께 목장을 운영하며 살다가 폭행당해 사망한 한 남자를 본 기억은 크나큰 트라우마가 되었다. 그런데 동성을 사랑하는, 그것도 진심으로 사랑하는 자신을 마주하니 두려우면서도 떨칠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죽어야 할 사람’이라는 시대가 만든 자책감 속에서, 에니스는 자꾸만 자신의 마음을 알아가는 것을 유예한다.


      유예의 끝에는 돌이킬 수 없는 결말이 남았다. 가정을 이유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이유로, 본질적으론 사회적 시선과 죽음의 공포를 이유로 에니스는 진심을 마주하는 것을 미루고 말았다. 추울 때만 외딴곳에서 만나고, 이제는 8월을 넘겨 11월에 보자고 말하면서 말이다. 그런 에니스를 두고 잭은 “너는 날 짧은 목줄에 묶어두고 질질 끌고 다녔어.”라고 울분을 토한다. 그것이 에니스에게 있는 잭과의 마지막 순간이다.


      에니스는 반송된 편지로 인해 잭의 사망 소식을 알게 되었다. 잭의 아내는 한적한 도로에서 타이어를 점검하다가 죽었다며 담담하게 사실을 전달한다. 소식을 듣던 에니스가 “그 사람들이 죽인 거야!”라고 발작하듯 외친다. 죽음의 공포와 트라우마로 잭을 밀어냈는데, 정작 자신은 남아 있고 잭이 떠나버렸다. 자신의 사랑을 갈구하며 견디는 시간을 살아온 잭에게 제대로 보답하지도 못한 채로, 만남을 미루던 것이 마지막 편지가 된 채로. 안타깝게도 후회는 언제나 느리지만 분명하게 다가와 가슴 깊숙한 곳을 찌른다. 아무리 견딘다고 해도 에니스도 이를 피할 수는 없다.


       

       

      Ⅳ. 하나의 사랑과 반쪽짜리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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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니스는 잭의 유언대로 유해를 브로크백 마운틴에 뿌리기로 한다. 유해를 찾으러 간 잭의 부모 집에서 에니스는 잭의 어린 시절이 간직된 방에 들어가게 된다. 의자 하나가 놓여있고, 잭의 유품들을 보관해 둔 상자가 그 위에 놓여있다. 네모반듯한 작은 공간 안으로 에니스가 들어간다. 작은 공간감 때문에 잭이 에니스를 안아주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혹은 반대로 그 안에 갇혀버린 답답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곳에서 발견한 옷 하나를 중년 에니스가 방에 걸어둔다. 에니스는 둘이 싸우고 피를 닦아주던 흔적이 소매에 남아 있는 그 옷에 얼굴을 파묻었다. 마치 잭이 브로크백 마운틴을 떠나기 전, 에니스의 파란 셔츠에 그랬던 것처럼. 이곳에도 수미상관의 완결성이 숨어 있다. 또 하나의 이야기가 끝나가고 있다는 신호다. 소리 없이 다가오는 확정된 헤어짐을 견디는 것, 그것이 관객의 마음이 무너지게 만든다.


      브로크백 마운틴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잭의 유언은 그의 아버지의 거절로 이루어지지 못한다. 가족무덤에 묻을 것이라는 이유였다. 그러면서 잭의 아버지는 "걔 인생은 늘 그래 늘, 반쪽이야. 반쪽! 하나도 이뤄진 게 없었어."라고 말한다. ‘반쪽짜리 인생’. 결과적으로 잭은 죽음마저도 반씩 흩어졌다. 반은 부모에게로, 반은 아내에게로. 에니스에게로는 돌아오지 못했다. 온전히 하나가 되지 못하면서도 갈구한 한 남자의 사랑에 대하여, 그리고 그 사랑을 알면서도 보답해 줄 수 없었던 한 남자의 눌러 담은 진심에 대하여 감히 상상해 본다.


      두 사람을 반으로 가른 것은 ‘시대’였다. 시대라는 말이 거창하기는 하지만 정말 그러했다. 그 ‘시대’를 만드는 것은 그 속에 존재하는 ‘개인’이다. 쌍안경을 들고 둘의 관계를 다 지켜보았다고 말하던 조의 경고, 목장을 운영하며 함께 살던 두 남자의 비극적 최후를 목격하게 한 아버지, 두 사람의 관계를 더럽다고 외치던 알마, 그리고 사람들의 숨 막히는 시선과 죽음의 위협. 그것이 잭과 에니스가 함께 할 수 없었던 이유다. 춥고 외딴곳에서 만나야만 했던 이유다.


       

       

      Fin. '여전히 필요한 이야기'가 지닌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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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리하자면 음악극 <브로크백 마운틴>은 ‘에니스의 기억’ 그 자체다. 잭은 기다리고 에니스는 떠나는 순간들이 축적되어 흐르다가 흩어졌다. 우두커니 서서 영원히 잠든 잭을 에니스는 말없이 안아주곤 떠난다. 이제 한쪽은 죽었고, 한쪽은 죽지도 못한 채 그 긴 시간을 버텨야 한다. 중년의 에니스는 ‘고칠 수 없는’ 세월을, 브로크백 마운틴에서의 기억으로 '견디며' 살아갈 것만 같다.


      분명 <브로크백 마운틴>의 이야기는 낡았지만, 여전히 유효하다. 사실 사회에 메시지를 던지는 공연은 늘 존재했고, 퀴어 서사를 지닌 공연의 수도 결코 적지 않다. 그럼에도 이 공연이 가지는 시대성은 유의미한 씁쓸함을 남긴다. 공연을 다시 떠올리며 이들의 이야기가 안타까웠고, 슬펐고, 조심스러웠다. 잭과 에니스가 무대 밖을 떠나서도 어딘가에서 살아 숨 쉬고 있을 것이라 여겨졌으므로. 왜 ‘여전히’, ‘아직도’ <브로크백 마운틴>은 이 시대에 유효한 이야기가 되는가.


      ‘퀴어’가 극을 관통하는 주 서사일 경우 어쩐지 공개적인 평론이 조심스러워진다. 필자의 공감이 당사자성의 일반화가 되지 않을까, 극에 대한 분석이 대상화나 평가가 되지 않을까 우려되기 때문이다. 부족한 이 글이 현존하는 잭과 에니스에게 상처가 되지 않았기를 바라며, 끝으로 이 말을 덧붙이고 싶다. 누구나 인생에는 성공보다 실패의 시간이 더 많다. 그리고 실패를 기억하는 방식이 삶을 결정한다. 당신은 실패의 기억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는 ‘값진 것’이 있는가. 에니스는 그토록 사랑하는 값진 것을 포기하는, 포기해야만 하는 시대를 살아온 사람이었다. 사람이 아닌 시대가 고쳐져 에니스가 견디지 않고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기를, 온전하게 사랑을 사랑이라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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