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헬스키친(Hell’s Kitchen)>의 한국 라이선스 초연이 2026년 7월 24일부터 11월 8일까지 GS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뮤지컬 <헬스키친>은 팝스타 앨리샤 키스의 음악과 삶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으로, 앨리샤 키스의 히트곡인 Fallin’, No One, If I Ain’t Got You를 비롯한 다양한 노래와 'Kaleidoscope'를 비롯해 이 작품을 위해 새롭게 작곡된 곡으로 넘버가 구성된다. 1990년대를 배경으로 18세 소녀 앨리가 이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뉴욕 맨해튼의 헬스키친에서 ‘자유와 사랑, 정체성을 찾아가는 성장 서사’라고 설명되는 이 작품은 2024년 브로드웨이에서 크리스토퍼 디아즈(Kristoffer Diaz)의 극본과 마이클 그라이프(Michael Greif)의 연출을 거쳐 초연되어 토니 어워즈와 그래미 어워즈에서 상을 받는 등 평단과 관객층의 관심을 동시에 얻었다. 제작사 에스앤코의 라이선스 수입으로 한국에서는 비영어권 최초로 라이선스 공연이 진행되며, 오루피나 협력연출과 양주인 음악감독이 한국 라이선스 초연에 참여한다.
뮤지컬 <헬스키친>은 앨리샤 키스의 음악과 삶에서 영감을 얻은 반-자전적 작품으로, 이 작품의 18세 소녀 앨리는 앨리샤 키스의 청소년 시절을 기반으로 한 캐릭터다. 이 작품의 배경이자 제목인 ‘헬스키친’은 맨해튼의 서쪽에 있는 지역으로, 1950년대 푸에르토리코 이민자와 아일랜드계 백인 사이의 갈등을 다룬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와 유사한 공간적 배경을 공유하고, 1990년대 기준으로 노동자 계층과 빈곤층, 갱단이 밀집한 지역이다. 이러한 헬스키친의 한 아파트에서 자라난 ‘혼혈’의 앨리는 이 곳의 환경을 염려하는 백인 싱글맘 저지의 과보호 속에서 답답함을 느끼며 자유를 꿈꾸고, 저지는 앨리가 청소년 시절에 흑인 가수 데이비스를 만나 혼전임신을 한 자신의 과거를 답습할까봐 걱정한다. 앨리는 엄마 저지와 갈등하던 도중 우연히 아파트 공용공간인 ‘엘링턴 룸(Ellington room)’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미스 라이자 제인을 만나면서 음악의 매력에 빠지며 라이자 제인에게 피아노 수업을 받는다. 앨리가 적극적으로 대시한 첫사랑 넉과의 관계는 1막 내내 순탄하게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1막 후반부 나이를 속인 앨리와 저지의 불안으로 인한 경찰의 개입으로 인해 넉은 부당하게 ‘위험군’으로 낙인찍히며 본보기로 잠시 유치장에 갇혔다 풀리게 된다. 이는 부당한 공권력으로 인해 쉽게 ‘범죄자’라는 낙인이 찍히고, 단순한 오해로도 총에 맞는 등 실제 사법적으로도 차별받는 위치에 놓여 있던 흑인 남성을 향한 인종적 편견으로 인한 사회적 불평등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1막은 헬스키친이라는 도시에 내재된 인종-계급적 균열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며, 불화와 폭력의 이야기가 곳곳에서 산재해 있다. 급변하는 청소년기를 겪는 앨리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인종적 긴장과 공권력과의 불화 속에서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모순을 경험하고, 넉과의 교제를 반대하는 어머니 저지와 갈등을 겪으며 대화를 거부하기도 한다. 엄마 저지와의 말다툼 끝에 뺨을 맞고, 넉과 친구들이 경찰에 끌려가는 등 ‘어른의 감정’인 불합리성과 불안함을 인지하고 직면하기 시작한 앨리는 라이자 제인을 통해 이러한 감정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방법을 배운다. 1막 후반부 라이자 제인이 피아노를 치며 아들의 죽음을 비롯해 인종차별과 혐오의 역사, 그리고 이로 인한 폭력의 경험을 고백하는 장면은 음악과 서사가 결합해 강렬한 정동을 유발하는데, 그는 이때 앨리에게 흑인 음악과 여성 피아니스트들의 계보와 함께 세상을 바꾸는 힘은 내면에서 비롯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도시 공간에 내재되어 있는 불화와 폭력이라는 주제가 예술과 공동체의 가치와 교차하며, 예술을 통해 상처를 치유하거나 에너지를 전유하는 힘을 서서히 배우기 시작한 앨리의 모습이 표현된다.
2막은 봉합과 화해, 소통의 이야기로 전환되며 새로운 관계가 전면화된다. 미국의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며 음악을 하는 ‘떠돌이 뮤지션’ 아버지 데이비스는 엄마 저지의 연락을 받고 다시 나타나 다시 앨리와 연결되며 가족의 관계가 갈등을 겪고 회복되는 양상을 보인다. 앨리에게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숨긴 채 앨리를 지도한 라이자 제인의 장례식 장면은 집단적인 축제처럼 연출되며, 라이자 제인을 만나지 못했지만 앨리의 아버지 자격으로 장례식에 참석한 데이비스가 연주를 맡아 아파트의 주민들은 음악과 춤이라는 매개를 통해 서로 교감할 수 있게 된다. 이는 공동체적 열광을 통한 애도가 나타나는 장면으로, 앨리는 이를 통해 예상치 못한, 하지만 숙명적인 이별과 애도의 방법에 대해 배우게 된다.
앨리와 첫사랑 넉의 관계는 넉이 아틀란타로 이사하면서 자연스럽게 정리되고, 저지와 앨리의 관계는 갈등을 거쳐 다시 복구된다. 불화와 갈등, 이별이라는 부정성은 어쩔 수 없이 삶에 내재한 것이라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앨리의 ‘성장’이란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과 사건들을 경험하고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지 배우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모녀 서사, 사제 관계, 연인 관계, 부부와 부녀의 다양한 이야기가 교차하며 앨리는 관계에 내재한 균열과 폭력적인 역사가 만들어 낸 잔해와 파편을 예술적으로 전유하는 방법을 배운다. 앨리는 라이자 제인의 가르침대로 음악을 통해 자기 목소리를 찾고, 흑인 음악의 유산을 이어받아 성장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 작품은 ‘현재의 자신’을 형성한 것과 유산으로 받은 것의 근원을 탐색하는 극으로서, (<맘마미아>의 도나와 소피를 연상시키는) 저지와 앨리의 모녀 관계와 라이자 제인과 앨리의 사제 관계가 작품을 이루는 핵심 축으로 기능하며 여성 간의 관계와 연대의 조건, 차이와 연결을 복합적으로 다루며 대극장 ‘여성 서사’의 계보를 잇는다.
<헬스키친>은 앨리샤 키스의 음악을 통해 개인의 성장 서사와 흑인 문화의 유산을 교차시키며, 갈등과 화해, 상실과 애도를 통한 내면의 성장을 담아낸 작품이다. 이 뮤지컬이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는 뮤지컬임에도 기존의 작품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이 있다면 결말이 ‘신파’ 코드로 흐르거나 혹은 (실제 모티브가 된 앨리샤 키스의 모습처럼) 대단한 성공을 이룬 주인공의 미래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앨리의 성장은 특정한 사건으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앨리 자신의 나레이션을 통해서 여전히 크게 바뀌지 않은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속에서 가족과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한 데이비스, 서로를 더욱 이해하게 된 저지와 앨리 등 관계에서 발생하는 세밀한 변화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는 서술 속에서 함축적으로 제시된다. 또한 이 작품은 ABBA의 음악을 활용해 모녀 관계를 중점적으로 전면화한 뮤지컬 <맘마미아>처럼 주크박스 뮤지컬의 문법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앨리샤 키스의 음악을 극적 서사와 정교하게 조화시키며, ‘love looks better’과 ‘No one’ 같은 노래가 앨리와 저지 사이의 모녀 관계의 갈등과 화해의 굴곡을 담는 넘버로 기능하는 등 기존의 팝송이 가지는 가사의 의미를 또 다른 맥락으로 변화시킨다.
의문점이 있다면 앨리샤 키스의 대표곡이자 이 작품의 ‘킬링 넘버’인 ‘If I ain't got you’가 흘러나오는 장면이다. 딸 앨리를 위해 다시 뉴욕으로 돌아온 데이비스는 피아노를 치며 앨리의 어린 시절 앨리를 위해 만들었던 이 노래를 부르고, 앨리 역시 어린 시절 데이비스와 함께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같이 이 노래를 부른다. 하지만 이때 한국에서 공연되는 라이선스 공연임에도 불구하고 이 장면에서만 원어인 영어를 그대로 사용한다. 물론 이 넘버에 사용되는 곡은 굉장히 유명한 곡이고, 영어 역시 어려운 단어가 등장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의무교육을 마친 관객층이라면 영어의 해석은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이 공연이 한국에서 진행되는 한국어 공연임을 고려하면, 그리고 영어를 완전히 해석할 수 없는 일부 관객층을 생각한다면, 이 넘버만 원어로 진행되고 번역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은 문제적이다. 유명세로 인해 이미 원어로 ‘각인된’ 팝송이기 때문에, 그리고 이것이 수반하는 다양한 정서적인 효과로 인해 번역하지 않았다고 말하기에는 같은 주크박스 뮤지컬이자 유사하게 유명한 팝송이 활용된 <물랑루즈>가 (익숙한 영어 가사라는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특정 가사를 제외하고 한국어로 번역했다는 점에서 이러한 <헬스키친>의 결정은 납득하기 어렵다. 물론 뮤지컬은 의도적으로 특정한 넘버의 가사나 대사를 번역하지 않는 경우도 존재한다. <헤드윅>에서 헤드윅이 이츠학과 밴드 멤버들에게 내뱉는 독일어,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스페인어(특히 스티븐 스필버그 버전의 리메이크 영화에서 추가된 넘버인 ‘La Borinqueña’), <에비타>의 스페인어 같은 사례가 그러하다. 하지만 <헬스키친>의 경우 이러한 맥락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결정은 더욱 의문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 이 작품에서 흥미로운 점은 뮤지컬 <멤피스>에서도
이어졌던 한국 라이선스 공연에서의 ‘인종’ 재현에 관한 것으로, 영미권 작품에서 ‘인종’이
작품의 중요한 테마가 되는 극이 한국에 라이선스로 수입되면 톤다운, 톤업 메이크업, 가발 등으로 ‘백인’과
‘흑인’을 구분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인종다양성이 부족한 동아시아 뮤지컬 시장의 특수성과 ‘블랙
페이스’ 같은 문제적인 관습을 피하면서 동시에 캐릭터의 인종적 설정이 무엇인지 관객에 이해가 갈 정도로
‘표현’해야 하는 극적 연출에 대한 필요가 만나면서 생긴
우회적인 차선책으로 인식된다. (자세한 이야기는 <멤피스> 관련 기사 참고) 이때 뮤지컬 <헬스키친>의 특수한 점은 앨리의 두 친구 중 하나인 ‘타이니’ 역에 실제
뮤지컬 <헬스키친>에서 주인공 앨리 역을 맡은 김수하는 팝송을 기반으로 한 넘버를 자유자재로 소화하면서도 춤 실력까지 겸비해 무대를 장악한다. 그는 능청스러운 연기와 함께 실제 앨리샤 키스의 어린 시절을 연상시키는 몸을 기울이는 포즈까지 구현해내며, <렌트>의 미미와 <틱틱붐>의 수잔이라는 동시대의 뉴욕을 배경으로 한 작품에서 주연을 맡아 열연한 경험을 기반으로 실제 공연의 배경이 되는 1990년대 뉴욕에서 살아가는 앨리라는 캐릭터를 그대로 구현한다. 앨리의 어머니 저지 역의 최현선은 ‘모성’이라는 가치에 녹아든 ‘유사성’에서 비롯된 불안과 통제 성향, 그리고 사랑 같은 현실적인 감정을 복합적으로 표현하며 앨리와의 갈등과 화해를 자연스럽게 표현했고, 피아노 연주를 통해 처음 등장하는 앨리의 피아노 스승 라이자 제인 역의 정영주는 (실제로 과거에 맡기도 했던 <빌리 엘리어트>의 미세스 윌킨슨처럼) 특유의 카리스마를 기반으로 앨리를 음악적 성장으로 이끄는 스승 역할을 강렬하게 소화하며 존재감을 각인시킨다. 앨리의 아버지 데이비스 역의 케이윌과 앨리의 남자친구 넉 역의 박광선 역시 풍부한 보컬을 기반으로 전체 서사에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다. 기타 조연과 앙상블이 공통으로 참여하는 이 작품 내부의 다양한 스펙타클과 그 의미 역시 주목할 만한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