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명성황후> 30주년 기념 공연은 2025년 1월 21일부터 3월 30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된 후 지방 공연들이 예정되어 있다. 뮤지컬 <영웅>의 제작사이기도 한 에이콤(ACOM)에서 1995년 12월 30일부터 을미사변 100주기를 맞이해 초연을 올린 이 작품은, 어느덧 2025년 30주년을 맞이했다. 이문열의 희곡 「여우사냥」을 원작으로 하는 <명성황후>는 지금까지 가장 오래 공연되고 있는 창작 뮤지컬로서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에 한국 작품 최초로 진출하기도 했다. 현대적인 연출이나 서사적인 신선함 대신 고전적인 연출과 옛스러운 의상, 고어(古語)가 많이 사용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초연 당시 송스루(sung-through)로 시작되었지만 대사가 점점 추가되어 송스루에 가까운 형식으로, 대사와 연출을 통해서 텍스트의 깊이나 중층성을 추구하기보다 텍스트의 표면과 의미가 일치하는 ‘모노톤’의 느낌을 주기 때문에 오히려 현재 뮤지컬의 트렌드를 따르기보다 고전적 오페라의 형식에 가깝다. 이를 증명하듯, 주연인 명성황후와 고종 역은 성악을 많이 쓰기 때문에 성악을 전공하거나 성악 캐릭터를 많이 맡아 온 배우들이 맡는 경우가 많다.
이번 뮤지컬 30주년 기념 공연을 앞두고 뮤지컬 <명성황후>는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에서 활동하는 ‘뮤지컬 크리에이터’와 제휴하여 뮤지컬 컨텐츠가 만들어졌다. 이 과정 속에서 퀴즈나 ‘밈 따라하기’ 같은 현대적인 감각의 마케팅 감각이 동원되었고, 작품 속 ‘실제 부부 페어’로 유명한 김소현 배우와 손준호 배우가 tvn 예능 <놀라운 토요일>에 작년에 이어 2번이나 출연하기도 했다. 이러한 제작진의 시도가 결과적으로 홍보에 도움이 되어 지방 공연이 매진되고, 원래는 열려 있지 않았던 세종문화회관의 3층 객석이 개방되며 이 작품은 이례적인 흥행을 맞이했다. 전반적인 캐스팅 역시 기존에 배역을 맡았던 배우들은 물론 신선한 느낌을 줄 수 있는 새로운 배우가 추가되어 적절한 느낌을 준다.
뮤지컬 <명성황후> 30주년 공연이 주목받은 지점 중 하나는 화려한 캐스팅이다. 먼저, 명성황후 역의 김소현 배우는 20주년부터 참여하여 이 역할로 제 5회 예그린어워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고종 역의 손준호 배우와 ‘실제 부부 케미’로 주목받았으며 <놀라운 토요일>에서 같이 부른 ‘백성이여 일어나라’의 편곡 버전이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에서 주목을 받으면서 뮤지컬에 익숙하지 않은 어린 층에게도 닿아 작품의 인지도를 높이는 것에 기여했다. 신영숙 배우는 1999년 <명성황후>의 손탁 역으로 데뷔한 이후 20주년 공연부터 명성황후 역할을 맡아 왔으며, 이번 시즌에 새롭게 합류한 차지연 배우는 서울예술단의 창작가무극 <잃어버린 얼굴 1895>에서 명성황후를 연기하며 같은 인물에서 따온 다른 두 캐릭터를 연기하게 되었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 고종 역의 강필석은 갑신정변을 배경으로 하는 뮤지컬 <곤 투모로우>에서 고종과 애증의 관계인 김옥균을 연기한 경험이 있고 이번 시즌의 새롭게 홍계훈을 맡은 백형훈 역시 <곤 투모로우>에서 고종의 명을 받아 김옥균을 암살하는 명을 받지만 갈등하는 ‘한정훈’ 캐릭터를 맡은 적이 있다. 이 외에도, 고종 역의 새로운 얼굴 김주택은 바리톤으로, <오페라의 유령>과 <그레이트 코멧>을 거쳐 세 번째 뮤지컬 작품으로 <명성황후>를 선택했다. 지난 시즌에 이어 꾸준히 참여한 홍계훈 역의 박민성과, 이 작품에서 최연소 대원군과 고종을 두루 겪고 이번 시즌에 홍계훈을 맡은 양준모 역시 익숙한 듯 새로운 캐스팅이다. 그리고 이 작품은 뮤지컬 <영웅>과 같은 제작사이기 때문에 조연이 겹치거나,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느낌을 준다.
‘미화’와 역사 사이에서: 역사와 뮤지컬 <명성황후>의 관점
뮤지컬 <명성황후>는 대중적으로 크게 이름이 알려진 작품이지만, 최근 들어 명성황후에 대한 대중적 인식이 변화하면서 이 작품이 견지하고 있는 역사관이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역사를 소재로 다룬 매체나 작품들 중에서는 역사 인물들에 대한 미화로 지적받는 작품들이 많지만, <명성황후>에서 유독 그러한 비판이 거세고 실질적으로 작품의 흥행에 잠재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유는 아무래도 작품의 배경이 지금 현대 사회와는 어느 정도 시간적 거리가 있는 전근대 시기가 아닌, 지금의 한국을 있도록 한 근현대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미화’ 논란을 의식해왔는지 왕비의 친척들인 민씨 가문에 대한 비판이 다른 극 속 인물들의 입을 빌려 작품 내부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하는데, 이로 인해 극 자체는 전반적으로 대원군의 집권과 쇄국 정책, 임오군란, 개화 정책, 갑신정변 (시기), 을미사변을 다루는 연대기적인 작품으로 느껴진다. 그렇지만 이를 ‘역사 교육 교재’로 쓰기에는 임오군란 이후의 왕비의 행적에 대해서 사료와 다른 부분이 많은데, 예를 들어 실제 역사에서 임오군란으로 인해 충주로 피난 간 이후 만난 진령군의 존재가 극에서는 임오군란 이전 수태굿 장면에만 등장하며, 정작 명성황후에 대한 비판 중 하나인 진령군의 횡포는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왕실의 일에 초점을 맞추려고 하다 보니 갑신정변 같은 중요한 사건이 크게 드러나지 않고 언급으로만 넘어가기도 한다.
작품이 보다 새로운 세대의 포스트모던한 역사 인식을 반영하려면 ‘미화 논란’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채 역사 속 명성황후와 민씨 일가의 부정부패를 단순히 작품 속에서 백성들과 일본인들, 혹은 대원군 세력에 의해 대사로 표현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작품은 여전히 왕실의 이야기와 그 당시 열강들의 힘겨루기 속에서 어느 나라를 동맹으로 선택해야 할지 고뇌하는 조선이라는 나라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으며, 그 속에서 역사적 하위주체는 지워져 있고 ‘민중’, ‘서민’이라는 상상적 존재는 단순히 역사적 사건을 서술하기 위한 해설의 목소리로만 존재한다. 이 작품은 필연적으로 ‘거대담론적’인데, 작품 속 캐릭터들이 말하는 명성황후나 조선이 혼란스러운 국제 사회 속에서 앞으로 어떤 ‘노선’을 타야 할지 대한 평가가 어떠하든지 간에 정치 권력의 교체나 영웅적 인물의 부흥이 시대와 어떻게 경합하는지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그러하다. 이는 창작가무극 <잃어버린 얼굴 1895>이 왕비의 세력에 의해 어머니와 마을 사람들이 죽은 사진사 ‘휘’를 일종의 나레이터로 내세우고, 김옥균 등의 급진 개화파를 포함하여 조선 사회의 다양한 정치적 입장들을 대변하는 인물들에게 모두 발언권을 주는 것과 대조적이다.
다음으로, 근대성에 대한 모순적인 인식은 이 작품을 보는 현대의 관객들이 더욱 물음표를 띄우게 만든다. 전근대적인 전제 군주제를 기반으로 하는 인물들을 내세우면서 이 작품의 타겟으로 민족이라는 근대의 발명품을 소환하는 모순을 보여준다. 창작할 때 현재 사회에 민족이 하나가 되어 나아가는 국가주의적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했던 것 같지만 (물론 이러한 ‘절대 균열되지 않는, 하나의 순수한 동일성으로 이루어진 국민’이라는 관념 자체도 전체주의나 타자에 대한 배제로 흐를 수 있기 때문에 문제적이다), 하필 이를 위해 선택된 대상이 전제군주제의 상징인 황후이기 때문에 봉건 시대를 살던 역사적 인물이 근대 국가에서 가질 수 있는 상징성을 감안하더라도 기묘하다. 그리고 이러한 상징의 불가능성은 19세기 말과 지금 이 시대의 충분한 시차가 확보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복잡한 내적 모순에도 불구하고 그 스펙타클에는 감탄할 수밖에 없는 마지막 넘버 ‘백성이여 일어나라’ 가사 속의 ‘백성’이 지칭하는 대한제국(물론, 대한제국 선포는 을미사변 이후인 1897년에 이루어졌다)의 ‘신민’이 과연 지금 군주 없는 민주공화정이 들어선 ‘시민’과 등치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이 창작진들의 다음 작품 <영웅>을 포함하여** 여러 독립운동을 묘사한 창작물들이 ‘애국심’이라는 키워드로 과거의 경술국치 이전 조선이라는 황제의 나라와 현재 한국을 잠재적으로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했던 것은 일제에 대한 저항을 (연극 <빵야>에서 묘사된 것처럼 공산주의 계열의 저항 운동이나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를 다룬 창작물처럼 아나키즘 계열의 저항과 그와 관련된 운동가들, 그리고 탈식민적 혼종성을 마치 없었던 것처럼 배제하면서) 단순히 단일 민족국가의 회복으로 의미화하는 것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명성황후>의 시작 장면 속 화면에 1945년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로 인한 2차 세계대전의 종전이 묘사되고, 이 ‘컷’은 식민지 조선의 독립이라는 의미와 등치된다. 그런데 이를 단순히 한 민족국가의 ‘독립’으로 의미화하는 <명성황후>에서는 누락된 국제 정치의 맥락과 이념의 문제가 탈색되고 이는 그 이후에 있을 근현대사의 비극을 자연스럽게 은폐하게 될 수밖에 없다. 이 모든 일들의 기원이 된 제국주의 질서와 그러한 논리에 기반이 된 근대적 위계를 문제시하지 않는다면, 국가를 단일하고 동질적인 민족으로 상상한다면, 여전히 억압은 지속될 것이다. 당연하게 여겨지는 전제를 의문시하지 않는 창작물은 예술이 가질 수 있는 가치 중 특정 부분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는데, 바로 이러한 특성이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취약성이다.
* 사실 이러한 근대성에 대한 인식/들은 현재 한국의 복잡한 지정학적 위상과 결부된 것으로, 이는 식민지를 경험한 사회가 겪는 전형적인 혼란에서 기인한다. 지금 현재 한국에서는 ‘친일’이 극우가 된 뉴라이트의 노선이기 때문에 오히려 일본 제국주의 세력에 의해 죽은 조선의 왕비라는 이미지 자체가 그와 반대항에 있는 것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 물론 다행히도 <영웅>은 <명성황후>처럼 전제군주제 속 왕족이 주인공이 아니라 제국주의적 침략을 가속화시킨 조선의 총독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며 ‘동양 평화’에 대해 더 넓은 시각으로 생각했던 안중근 의사가 주인공이기 때문에 뮤지컬 <명성황후>와 비슷한 논란은 피해갈 수 있게 되었지만.
명성황후 재현의 여러가지 지점들
뮤지컬 <명성황후>에서 명성황후는 조선의 ‘국모’이자 신체 자체가 국가와 동일시된다. 작품 속 이러한 구도 내에서 제국주의적 야망을 가진 일본의 명성황후 살해 후 시체 방화는 제국주의적 폭력을 상징하며, 명성황후라는 여성으로 상상되는 국가에 대한 유린이자 상징적인 ‘어머니’의 몸을 살해한 것과 같은 을미사변의 재현은 곧 폭력의 재현이며, 일제에 식민 지배를 받게 될 조선의 위태로운 상황을 예고한다. (긍정적인 가능성이든 부정적인 전형성이든 식민 지배와 피식민 상태를 젠더화해 표현하는 것은 흔한 비유다.) 또한 왕비의 캐릭터는 전통적인 여성상의 외피를 하고 가부장적 질서를 체화하고 있지만, 국정에 개입하고 왕인 고종의 영역에 자연스럽게 ‘침투’하고 있다. 외국에서 온 조선 주재 공사의 부인들과 교류하며 국제 사회에서 정치적 세력을 확장하려고 하고, 일본 공사 이노우에가 정치를 고종과 같이 논하고 있지만 발(簾) 뒤에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왕비를 칭찬하듯이 비꼬는 장면에서 언급되는 것처럼 그러한 가부장적 질서마저 정치의 영역에서 자신의 목적을 위해 자유자재로 이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명성황후의 행동은 소위 ‘근대화’가 이루어지던 구한말이라는 맥락과, 여성의 공식적인 정치 개입인 수렴청정(垂簾聽政)이 이루어질 수 있는 왕실의 웃어른인 대비 상태가 아니고 공식적으로 왕비의 상태일 때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기존 조선시대 왕실 여인의 정치 개입과는 이례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아무리 선해를 하려고 의도적으로 노력해봐도 기존의 틀 자체가 주는 한계는 어쩔 수가 없다. 능동적 행위성이라는 일종의 ‘주체성’으로 명성황후라는 여성 캐릭터를 읽으려고 한다고 해도 그러한 ‘주체성’이 위치한 맥락은 사회적 구조와 유리된 것이 아니기에, 결국 그러한 주체화는 마치 현대 사회의 ‘신자유주의 주체성’처럼 통치성 규범을 어느 정도 수용하는 것을 통해 가능해진다. 명성황후의 모습이 가부장제의 성역할 규범 속에서 ‘비-여성적’이면서 ‘과잉-여성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고, 그의 적극적인 행위성 자체가 신분 사회 속 통치할 수 있는 계층에 있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대를 잇는’ 왕비의 의무라는 가부장적 규범을 다하지 못함을 비난하는 대원군 세력과 절망하는 왕비의 장면은 창작가무극 <잃어버린 얼굴 1895>에서도 비슷하게 등장하지만, <잃어버린 얼굴 1985>에서는 이러한 고통이 척(훗날의 순종)을 출산한 후에도 민자영에게 육체화된 트라우마의 경험으로 남는다면, <명성황후>에서는 결국 이러한 위기와 불안이 원자(훗날의 순종)를 출산하고 고종에게 사랑을 받음으로써 자연스럽게 해소된다는 점이 문제적이다. 경직된 형식 속 이러한 이야기의 흐름은 ‘대’를 이을 수 있는 아들(세자)과 남편(왕)의 관계를 경유해야만 실질적인 권력의 유지가 보장되는 전근대적인 왕실 규범, 혹은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이분화된 젠더 구조와 위계적 가족 제도를 기반으로 한 근대 가부장제에 대한 의문과 비판적 시각을 잠재적으로 은폐한다. 또한 <명성황후>에서는 더욱 흥미로운 캐릭터가 될 수 있었던 여성, 무속, 정치 개입이라는 키워드로 동시에 묶이는 진령군 캐릭터를 단순히 ‘수태굿’ 장면이라는 하나의 스펙타클에만 사용한다는 점도 아쉽게 느껴진다.
전반적으로 뮤지컬 <명성황후>를 포함해서 사실 명성황후를 다룬 드라마 <명성황후>,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 드라마 <녹두꽃> 같은 사극 매체들과 극예술 작품들을 보면서 느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명성황후를 재현하는 것의 어려움이다. 민씨를 ‘조선의 국모’로 여기며 국가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기존의 전통적인 역사 서사와 민씨를 ‘외세를 끌어들여 나라를 망친 악녀’로 위치시키는 남성-젠더로 상상되는 민중서사, 그 두 가지의 한계를 모두 극복하고 명성황후를 재현할 수 있는 창작물은 어디에 있을까? 아니면 ‘명성황후를 재현하는 것의 불/가능성’을 주요 주제로 내건 <잃어버린 얼굴 1895> 마지막 장면에서 그동안 자신의 어머니를 죽게 한 명성황후를 원망하던 휘가 민자영과 궁녀들, 그리고 선화의 혼을 배웅한 후 결국 ‘그 여인’(명성황후, 민자영)을 찍은 ‘사진’을 태워버렸듯이 ‘완벽한 재현’은 애초에 불가능한 것일까?
그래도 변화하는 뮤지컬 <명성황후>, 앞으로는?
뮤지컬 <명성황후>는 초연되었을 시점부터 30주년을 맞이한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변화해온 작품이다. 전반적인 무대 연출에 새로운 영상 기술을 활용해 더 현대적인 감각에 맞게 바꾸어나가고 있고, 어려운 단어인 고어를 순화하거나 익숙한 단어로 대체하며 대사도 조금씩 수정했다. 구성에서는 1막에서 처음 등장하는 장면인 미우라와 낭인들이 무죄 선고를 받는 장면의 연출이 지속적으로 변화했고, 넘버의 구성 또한 ‘어두운 밤을 비춰주오’, ‘백성이여 일어나라’ 같은 유명한 넘버들을 제외한 다른 넘버들 몇몇이 삭제되거나 부활하는 등 각색과 수정의 역사가 길다. 예를 들어, 명성황후와 고종, 홍계훈 3명이 같이 부르는 넘버인 ‘운명의 무게를 견디리라’는 18년도 공연에서 처음 등장한 이후 20~21년도 공연에서는 삭제되었다가 이번 공연에서 다시 부활한 바 있다. ‘참요’(‘이상하다 눈꽃 날리네’)와 어린 왕비를 담당하는 아역의 활용 역시 시즌마다 달라지고 있으며, 이번 시즌에서는 삭제되었고 참요는 궁녀 역할의 앙상블이 대체한다.
또한 대중적으로 변화된 감각에 맞추어 일본 상인들이 게이샤들과 놀며 조선에서 이익을 취하고 있음을 말하는 장면(‘왜상과 게이샤’)이 예전부터 삭제되고 일본 상인들에게 수탈당하는 조선 백성들을 홍계훈이 도와주는 장면으로 변화하며 대사들이 옮겨갔다. 무엇보다, 30주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주연 여성 배우의 캐스팅 역시 윤석화, 이상은, 이태원 같은 현재 원로 배우의 반열에 든 여성 배우에서 김소현, 신영숙, 최현주, 차지연 같은 실력과 인지도, 좋은 평판을 겸비한 후세대 여성 배우로 자연스럽게 세대 교체가 이뤄지기도 했다.
한국 뮤지컬 장(場)이라는 작품이 배치된 맥락 속에서 뮤지컬 <명성황후>는 그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든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든 기념비적인 작품이며, 유명한 대극장 여성 주연극 중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은 극 중 하나다. 2024년을 마무리하고 2025년의 새 분기를 시작하는 현재 시점에서 작년의 뮤지컬계의 여성 주연 작품을 돌아본다면, 창작 뮤지컬 <홍련> 초연의 성공과 재연의 흥행 기조가 유지된 라이선스 뮤지컬 <리지> 3연의 모습은 중소극장의 ‘여성 서사’ 열풍에 대한 마니아층의 선호와 수요를 반영한다. 반면 공연예술 마니아층만으로 그 수요가 다 구성되기 어려운 대극장에서 여성 캐릭터와 여성 배우의 지위는 여전히 작품의 주변부와 중심부를 오가고 있으며, 여성 배우가 주가 되는 대극장 뮤지컬은 마니아층 뿐만이 아니라 대중적 인지도 확보도 중요한 관건이 되고 있다.
2024년 대극장 뮤지컬에서는 소위 ‘머글극’으로 통했던 라이선스 뮤지컬 <시카고>가 릴스와 쇼츠, 알고리즘을 타고 마니아층의 호응과 대중적 관심을 동시에 얻은 신시컴퍼니의 캐시카우로 확고하게 자리잡았으며, 쇼노트의 라이선스 뮤지컬 <이프덴>은 초연에서 호평받은 무대 연출을 굳이 수정하는 ‘디메릿’을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 반면 2016년 초연되었던 창작 뮤지컬 <마타하리> 4연은 지난 22년도 3연에서 작품 대대적인 리뉴얼을 거쳤지만 배우의 추락 사고 같은 잡음들로 작품의 내실을 다지지 못했음을 증명하며 오히려 경제적 가치와 대중적 관심을 잃었다는 것이 이번 공연 실적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실질적인 객석 수나 공연장의 특성에 따라 차이가 있기에 뮤지컬 시장을 중소극장과 대극장으로, 혹은 라이선스와 창작으로 단순하게 분절하는 것은 무리일수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현재 대극장에서 여성 주연 창작 뮤지컬의 지속은 잠재적으로 취약성을 안고 있고 흥행은 조건적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명성황후> 30주년 공연은 변화하고 있는 대중의 역사 인식과 예술적 감각에도 불구하고, 광활한 세종문화회관에서 이루어지는 서울 공연은 물론 수많은 지방 공연에서도 대중적 관심을 받으며 관객들을 극장으로 끌어 모으고 있다. 그렇지만 작품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뮤지컬 실력과 대중과 마니아층 모두의 호감을 두루 겸비한 여성 주연 배우들의 존재, 안정적인 실력을 가진 조연 배우들과 앙상블들, 그리고 마케팅 같은 작품 외부적인 관객 유인 요인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한다면 <명성황후>가 내재적 취약성을 어떻게 극복하고 계속해서 올라오는 작품이 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뮤지컬 <명성황후>를 한국 뮤지컬사의 계보에서 볼 때 브로드웨이에 처음 진출한 창작 뮤지컬이라는 호명은 포스트제국주의 시대에 ‘글로벌’이라는 이름의 서구의 인정을 추구하는 후기식민지의 감각과 욕망이 문화라는 영역에서 반영된 한국 뮤지컬 장의 모습을 반영하기도 한다. 하지만 ‘최초’라는 내력이 주는 명성에만 안주한다면 급변하고 있는 한국 및 세계의 뮤지컬 시장의 관객들이 느끼는 새로운 감각을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 생물이 살아가는 자연 세계에서 외부적인 불안정성이 항상 존재하는 환경 속에서 개체는 자기 자신을 변화시켜야 살아남는데, 이러한 법칙은 공연이라는 광의의 ‘문학’이자 ‘상품’에게도 적용된다. 그런데 뮤지컬 <명성황후>는 그 텍스트의 큰 줄기가 유지되는 한 거시적이고 급진적인 변화는 어려워보인다. 30주년을 맞이한 상황 속에서 이를 고려한다면, 주연 배우의 인지도와 방송 마케팅이라는 가변적인 요인에 기대지 않고 앞으로 이 극의 수명을 연장시키기 위해서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가? 그리고 전통적인 것, 혹은 역사를 현대적인 방식으로 읽는 것의 어려움 뿐만 아니라 이러한 독해를 유도하도록 창작 혹은 각색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뮤지컬 <명성황후> 30주년 기념 공연은 여러 질문들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