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오지, 탐험, 환경보호, 생명, 다큐멘터리. 단어가 하나씩 나열될 때마다 우리는 당연하다는 듯이 하나의 존재를 떠올려간다. 속이 빈 노란색 네모를 상징으로 내세우는, 자연에 대한 끊임없는 기록을 이어나가는 그곳, 내셔널지오그래픽.
비가 많이 내리는 7월의 여름날, 그들의 가장 거대한 기록을 담은 특별 전시가 열리고 있다는 소식에 충무아트센터 갤러리에 다녀왔다.
바다. 그것은 어떤 존재일까.
지구는 82억 명이나 되는 인류가 발 딛고 살아가는 거대한 행성이다. 수많은 생명체를 받쳐주는 육지는 작은 우리의 눈에는 너무나 광활하게 비치고 실제로도 그러하지만, 사실 땅은 지구 표면의 약 30% 정도 면적에 지나지 않는다. 이 행성 표면의 절반을 훌쩍 넘는 70%를 차지하는 것은 다름 아닌 바다다. 오늘날까지 인간이 제대로 파헤치지 못한 깊은 비밀을 품고 있는 미지의 공간.
그런 바다를 인류에게 끝없는 자원을 공급해줄 천연 보고(寶庫)로서 바라보아야 할지, 혹은 언제 위협을 가해올지 모를 위험천만한 가능성으로 바라보아야 할지에 대한 논의는 아주 오래전부터 끝없이 이어져 왔다.
어쩌면 그 둘 중에 답이 있을지도, 혹은 그 둘 모두가 답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그 무엇보다도 선행되어야 하는 명제가 있음을 우선 기억해야 한다. 바로 바다는 ‘보존되어야 하는 공간’이라는 것. <내셔널지오그래픽 특별기획: OCEAN 가장 거대한 기록>은 그 점에 착안해 출발한다.
Intro : 왜 바다일까?
처음 들어서자마자 아주 근본적인 질문과 마주쳤다. 당연한 물음임에도 미처 예상치 못해 덜컥 걸음이 멈췄다. 개인인 나는 바다에 관한 이야기를 좋아해서 이곳에 와있지만, 애초에 이 전시가 사람들 앞에 주최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길은 결국 바다로 이어진다.” 전시장 벽에 쓰인 글은 명료한 말투로 해답을 던지고 있었다. 앞서 지구 면적의 70%를 차지한다고 말했던 바다에는 지구 생물종의 80%가 살아가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우리가 마시는 산소의 절반 이상이 바다에서 만들어지고, 인류의 생존을 결정짓는 기후와 음식 역시 이곳에서 장대한 영향을 받는다.
개인의 영역을 넘어선 종(種), 더 나아가 자연의 한 축을 담당하는 존재인 바다는 아주 오랫동안 다양한 전문가들에 의해 탐사되고 기록되어 왔다. 이제는 우리가 그들이 쌓아온 이야기를 통해 바다를 인식하고 세상을 이해해야 할 때다.
Change : 아리엘의 시선으로 바라본 바다의 변화
퍼블위즈가 주최한 특별 전시는 6년 만에 돌아온 대규모 해양 체험전으로, 내셔널지오그래픽이 오랫동안 기록해온 200여 점의 사진과 탐사 영상들을 세 파트에 걸쳐 소개한다.
눈여겨볼 점은 이번 전시에는 내셔널지오그래픽뿐만 아니라 디즈니와 픽사 역시 참여했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작품들은 단순히 시간순으로 나열되는 대신 각 챕터별로 선정된 영화 캐릭터들의 이야기와 엮여 색다르게 구성되어 있었다.
첫 번째 구역인 Change는 <인어공주>의 주인공 아리엘의 무대다. 이곳에서는 ‘변화’라는 뜻의 이름대로 바다가 과거부터 현재까지 어떻게 바뀌어왔는지를 사진을 통해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관람객들의 탄성과 공감을 끌어낸다.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과거'의 바다는 아름답다. 그 단어 하나면 충분하다. 잔잔한 너울, 찬란히 부서지는 햇빛, 한데 모여 살아가는 생명체들. 가끔은 거친 풍랑과 치열한 삶의 전투가 벌어지기도 하지만, 결국은 그 역시 자연의 아름다움의 일부다.
남방가오리들이 흰 모래 위를 미끄러지듯 스치고 있다. 그들의 머리 바로 위에는 수면과 노을 지는 하늘이 있다. 깨끗하고 투명한 수질 덕분에 물속을 헤엄치고 있는 가오리들이 마치 하늘을 날고 있는 듯이 보인다.
수백에서 수천 마리에 이르는 홍학들이 구애의 춤을 추고 있다. 사랑하는 짝을 찾는 움직임들이 모이자 재미있게도 하트 모양이 만들어진다.
바다를 이루고 있는 생명체들이 만들어내는 하모니를 구경하며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과거를 지나 '현재'에 도착하게 된다. 우리가 사랑했던 바다의 모습이 변화하기 시작한 곳으로. 그리고 우리가 주목해야 할 곳으로.
매년 1400만 톤의 플라스틱이 바다로 흘러들고 있고, 2050년에는 바다 속 플라스틱의 수가 물고기의 수를 넘어설 것으로 예측된다. 사진은 트리니다드섬의 마투라 해변에서 갓 태어난 새끼 장수거북들이 플라스틱 쓰레기를 헤치며 바다로 나아가는 장면이다.
새하얗게 물든 산호들. 언뜻 보기엔 아름다워 보이지만 사실 해양 산성화로 인해 죽음을 맞이한 모습이다.
과거의 아름다웠던 모습이 점점 지워지고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는 분명히 귀 기울여 들어야 할 문제다. 하지만 단순한 문제 인식에서 끝난다면 영원히 바뀌는 것은 없다. 바다의 '미래'를 보살피는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온두라스 카요스 코치노스 지역에서 자라고 있는 맹그로브 묘목들. 1998년 당시 허리케인 ‘미치’로 생태계가 훼손된 후 주민들은 나무를 심으며 다시금 환경을 가꾸고 있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사진작가 마틴이 ‘스카’라고 이름 붙인 수컷 북극곰이 꽃밭에 누워 쉬고 있다. 이 평화가 미래의 바다에서도 유지될 수 있을지, 그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
Act : 모아나의 용기를 가지고 행동할 수 있다면
자신의 부족을 책임지고 구하기 위해 두려움을 무릅쓰고 먼 항해를 나섰던 <모아나>의 모아나. 사람들을 구하고, 바다를 구하고, 결국 영화가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있도록 만들었던 건 거창한 무언가가 아닌 한 사람의 용기와 행동이었다.
2003년 남아프리카공화국 해안에서 찍힌 이 사진은 빠르게 퍼지며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마치 상어가 사람을 따르는 듯 함께 물을 가르는 모습이 공포를 넘어서는 공존의 힘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이 챕터에는 직접 행동에 나섰던 여러 내셔널지오그래픽 전문가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자신이 어떤 일을 하는지, 그 일을 왜 하는지, 그리고 이 전시를 보는 우리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Life : 니모가 알려주는 공존의 아름다움
전시의 마지막 챕터인 Life의 주인공은 <니모를 찾아서>의 어린 물고기 니모다. 자신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품을 떠나 더 넓은 세상으로 떠났던 니모. 그는 그때까지 알지 못했던 곳들을 탐험하며 얼마나 많은 생명이 이 드넓은 곳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지를 깨닫고, 자신을 위해 두려움도 무릅써줄 소중한 친구 말린도 만난다.
예쁜이줄무늬꼬마새우가 레오파드곰치의 몸에 붙어 있는 죽은 피부 조직과 기생충을 떼어먹고, 곰치는 그런 새우를 기다려주고 있다. 이 순간의 둘은 마치 니모와 말린 같은 사이다.
멕시코에 있는 산 이그나시오 석호에서 만날 수 있는 쇠고래는 인간에게 먼저 다가와 신체 접촉을 하는 독특한 행동을 보인다. 이는 쇠고래 종만의 독특한 문화로, 인간과 고래 사이의 신뢰를 보여준다.
OUTRO : 함께 살아가는 것
‘경험하지 못한 바다’를 보여주는 <내셔널지오그래픽 특별기획: OCEAN 가장 거대한 기록>은 여기에서 끝이 난다. 그러나 전시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영원히 끝나지 않는 종류의 것이다.
‘왜 바다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해 변화, 행동, 생명, 공존으로 이어지기까지. 이 모든 흐름은 결국 '함께 살아간다'는 궁극적인 가치로 이어진다. 상대를 희생시키면 내가 더 많이 얻을 수 있다는 경쟁 논리는 이곳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같이 이기거나, 같이 지거나. 바다에서 태어나 바다로 돌아가는 우리에게는 공동체만 남아있을 뿐이다.
아득한 바다의 역사에 비하면 짧은 관람이었지만, 지금껏 인식하지 못했던 새로운 모습의 바다가 마음속으로 들어차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10월 11일까지, 위대한 기록을 담은 이번 전시는 충무아트센터 갤러리에서 열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