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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밤. 하늘을 올려다보면 밝게 빛나는 별이 보인다. 공해와 소음으로 가득한 도시에선 쉽게 눈에 들어오진 않지만, 사실은 ‘수없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정도의 별들이 우리의 머리 위를 밝히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매번 큰 의식 없이 이 풍경을 지나친다. 가끔 간절히 바라는 것이 있을 때도, 우리는 둥글게 떠오른 달님에게 소원을 빌지 그 주위에 흩뿌려진 작고 무수한 별님에게 무언가를 기대하진 않는다.

 

하지만 알고 있는가? 바로 그 별이 우리들의 가장 먼 조상이라는 것을. 인간 개별은 각자 모체의 태를 빌려 태어났지만, 인간이라는 종 자체는 별의 무덤에서 함께 태어난 공통된 별의 자손이라는 것을. 칼 세이건이 선언했듯이, “우리는 별의 먼지로 이루어져 있다”라는 것을.

 

밤하늘을 올려보며 별을 찾을 때마다 우리는 결국 고향을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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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가득한 우주를 찍은 모습 (출처 : NASA)

 

 

약 137억 년 전, 대폭발이 일어났다. 우리가 지금 몸담고 사는 우주는 그렇게 탄생했다. 그 당시 우주에 존재하던 것이라곤 수소와 헬륨뿐이었다. 지금도 태양은 여전히 98%가 수소와 헬륨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현재의 우주에는 그 두 가지 초기 원소뿐만 아니라 탄소, 우라늄, 칼슘 등 총 92개의 자연 원소가 존재하고, 그중 일부는 우리의 몸을 구성한다.

 

이들은 어디에서 와 마법처럼 우리를 탄생시켰을까? 그 답은 별에서 온다.

 

별의 내부는 초고온과 초고압 상태를 유지하고, 이는 자연계에서 원자가 생성되기 위한 조건에 부합한다. 결국 초기엔 수소와 헬륨으로만 구성되어 있던 별은 내부에서 반복적으로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며 천천히 둘보다 더 무겁고, 더 복잡한 구조를 갖춘 원소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때 우리에게도 익숙한 한 현상이 이 신기한 활동과 동시에 일어난다.

 

마치 우리네와 같이, 별은 나이가 든다. 우주적인 존재인 만큼 단위가 아득할 뿐, 태어나는 모든 존재는 자연스럽게 늙고, 죽는다. 우주는 광활하지만 자연은 무한한 법. 별 역시 이 생명의 순리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죽음의 순간에 어떤 별들은 고요히 사라지지만, 어떤 별들은 강렬한 잔상을 남긴다. 그들은 수명을 마치는 순간 폭죽처럼 폭발하고, 마치 민들레 홀씨를 바람에 날리듯 우주 공간으로 그때껏 속에 품고 있던 원소를 퍼뜨린다. 만들어진 원소들은 사방으로 흩어지는 동시에 점점 모이며 새로운 별이나 행성을 탄생시킨다. 그리고 어쩌면 몇십억 년 뒤에 그 행성에서 살아 숨 쉬게 될 어떤 생명체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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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명을 다해 폭발하는 별의 모습 (출처 : NASA)

 

 

결국 우리는 모두 한때 별의 일부였다. 때문에, 간혹 SF 작품들에서 머나먼 우주 저편에서 처음 만난 외계 생명체가 사실은 우리와 같은 조상을 둔 유전적으로 먼 친척 격이라는 설정이나 우주 공간을 거대한 잉태에 비유하는 묘사를 선보이는 것도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공상과학이 아니라 아주 오래된 역사책을 읽은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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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래비티> 중 주인공을 우주 속 태아로 표현한 장면

 

 

최근에는 신기하게 우주와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지난 11월에는 누리호 4차 발사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고, 12월에는 우리나라 민간 기업 이노스페이스의 첫 상업용 발사 시도가 있었다. 독자 개발된 이 ‘한빛-나노’는 이번에는 아쉽게도 실패로 돌아갔지만, 겨우 첫 번째 도전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앞으로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개인적으로도 오래 독서를 쉬었다가 작년 가을쯤 처음 집었던 책이 우주를 다루는 SF 소설 <프로젝트 헤일메리>였고, 며칠 전에는 영화 <그래비티>를 다시 보았다. 그리고 이 글을 쓰던 도중 잠시 집 앞에서 밤하늘의 풍경을 찍었는데, 놀랍게도 생각지도 못한 오리온자리가 사진에 담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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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비티>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지구에서는 사랑하는 딸을 사고로 잃고 우주에서는 집으로 귀환할 방법을 잃어 망연자실한 주인공에게, 동료의 환영이. “계속 살아서 뭐 할 거야? (What’s the point of living?)” 그러게. 우리는 대체 뭐 하러 계속 사는 걸까? 이 말도 안 되게 넓은 세상에서, 외롭게 홀로 나고, 겪지 않아도 될 온갖 고난을 겪으며. 하지만 환영은 이어 말한다. “중요한 건 지금 당신의 선택이야. 계속 가기로 했으면 그 결심을 따라야지. 두 발로 딱 버티고 서서 제대로 살아가는 거야. 집에 갈 시간이야.”

 

'그래비티'는 중력이라는 뜻이고, 중력은 ‘질량을 가지고 있는 모든 물체가 서로 잡아당기는 힘’이라는 뜻이다. 그렇게 지구가 자신의 몸 위에 얹혀사는 모든 작은 것들을 끌어당기는 동안, 우리 역시 질량을 가진 물체로서 무언가를 끌어당긴다. 바로 ‘나’와 같은 별의 자손인 ‘너’를. 그리고 그것을 사람 간의 중력이라는 뜻에서 인력이라고 부른다. <그래비티> 속 주인공은 지구의 궤도에 오른 뒤엔 무사히 귀환하지만, 그녀를 그 궤도까지 올려준 것은 동료였다. 한 번 힘을 받으면 다른 작용을 받기 전까진 그저 무한히 나아갈 수밖에 없는 우주에서 길 잃은 그녀를 다시 찾아 데려온 것도, 우주복 산소량이 부족해 패닉에 빠지자 괜찮다며 달랜 것도, 막막하기만 한 앞길을 비춘 것도 모두 주인공 곁의 다른 사람이었다. <그래비티>는 결국 사람 간의 중력을 이야기하는 영화다.

 

사람들은 막막한 일이 있을 때마다 하늘을 올려다본다. 하지만 그곳에 있는 별은 너무 멀다. 우리에겐 훨씬 더 가까운 별이 있다. 내 안에, 그리고 내 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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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이한별
별을 보고 고향을 떠올리거나 아득한 소망을 기원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별이 내 안에 존재한다는 말은 나를 내가 살릴 수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왠지 울컥했어요. 우주에 관심이 있어도 어려운 용어들이 나오면 읽기를 멈추게 되는 데 다음에 이어지는 문장이 궁금해서 읽는 속도가 빨라진 글은 오랜만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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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06 12:54:24 1
두링
안녕하세요, 한별님! 글을 쓰고 올리면서도 댓글이 달릴 거라곤 생각지 못했는데 이렇게 따뜻한 댓글 남겨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아무래도 과학 분야다 보니 한별님이 생각하신 대로 어려운 표현들은 최대한 줄이고 대신 인문학적인 얘기를 해보려고 했어요. 불교에서 부처는 유일신이 아니라고들 하죠. 깨닫지 못했을 뿐 사실은 외부가 아닌 우리 모두의 안 각각에 부처가 있기도 하고요. 내 안에 이미 답이 있다면 굳이 먼 곳을 헤맬 필요가 있을까요? 별을 올려다 보며 아득한 소망을 기원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내가 그 별로 이루어진 존재이니, 결국은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스스로 쟁취해내는 것이죠. 한별님 말씀대로 나를 내가 살리는 것이 되기도 하고요! 덕분에 새로운 생각을 해볼 수 있어서 정말 좋았어요. 댓글을 늦게 발견해 답글이 늦었는데 언젠가 읽어 주셨으면 좋겠네요. 감사합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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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16 20:53:31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