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다’라는 것. 비교가 되는 두 대상이 서로 같지 않다는 것. 이 개념에 대한 논의는 정말이지 수없이, 아주 오랫동안 현실과 미디어를 가리지 않고 이루어져 왔다. 하지만 이 모호한 구분에 대한 명확한 답은 아직도 내려지지 않은 상태다.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그 누구와도 같지 않은 고유한 ‘나’가 되는 것인데, 우리는 이 ‘다름’을 우선시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결국 같은 인간이라는 종으로서의 ‘같음’을 우선시해야 하는 걸까?
오는 7월 22일에 개봉하는 박세영 감독의 신작 영화 <지느러미>는 바로 그 모순을 날카롭게 꼬집고 있다. 유전적 돌연변이 ‘오메가’와 인간이 공존하는 근미래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하는 이 SF 영화는 오메가의 몸에 돋아나는 기이한 ‘지느러미’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갈등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크기변환][포맷변환]티저 세계관 포스터_01_대장벽.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607/20260718202525_sgepzbnx.jpg)
![[크기변환][포맷변환]12.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607/20260718202530_ibotpwab.jpg)
오메가의 몸에 돋아나는 지느러미는 마치 물고기의 몸에 달린 그것과 같다. 그것이 왜 생겨나는지, 어떠한 방식으로 피어나는지에 대한 설명은 작품 내에서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처음부터 끝까지 그저 오메가라는 돌연변이로서 존재할 뿐이다.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도 역시, 그들이 어쩌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원래는 어떤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었는지 설명하고 합리화하는 과정은 주어지지 않는다. 오메가와 인간이라는 이분법적인 상황이 이미 정해진 상태로, 그저 던져진다. 이에 대해 고찰하는 것은 온전히 관객의 몫이다.
“난 푸른 바다를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하늘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검은 빗방울이 입 안으로 떨어졌다. 뚝. 뚝. 뚝.”
오염된 바다를 막고 있는 4,000km 장벽에 둘러싸인 근미래 통일 대한민국.
유전적 돌연변이로 인해 지느러미가 생겨난 ‘오메가’
‘오메가’를 감시하고 노동을 착취하는 ‘인간’
어느 날 오메가 한 명이 구역을 이탈하고, 공무원 ‘수진’이 뒤를 쫓게 되는데...
사람의 몸에 물고기의 지느러미가 돋아나고, 그 지느러미에는 독성이 생기고, 다리가 변형되고, 소리를 지르는 것만으로도 치명적인 공격을 가할 수 있는 오메가는 단순한 돌연변이를 넘어 제거해야 할 위협적인 존재로 여겨진다. 붙잡힌 오메가들은 끝없는 노역에 동원되고, 그 과정에서 죽거나 사살될 시에는 투박한 봉투에 싸여 그저 바다로 던져진다. 이 비인도적인 처우에 관해 의문을 가지는 인간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인간이지만 이들은 인간이 아니니까. 지느러미가 돋아난 괴물이니까. 나와는 ‘다르니까’.
영화 속 신입 공무원 ‘수진’ 역시 초반에는 남들과 같았다.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대해 질문을 던져볼 생각은 하지 못한 채, 오히려 정부로부터 오메가들을 관리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부여받았다. 그런 그녀의 시선을 끈 것은 비슷한 또래의 다른 소녀 ‘미아’였다. 오메가 중 한 명인 ‘고우’가 몰래 탈출하는 모습을 발견한 수진은 그의 뒤를 쫓다 우연히 미아를 마주치고, 그때부터 은밀히 그녀를 미행한다.
![[크기변환][포맷변환]2.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607/20260718202726_hgbvcmxw.jpg)
미아는 오메가다. 본래라면 바로 잡혀갔어야 하지만 그녀는 몰래 인간들 틈에 섞여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설정을 알지 못하는 상태로 영화를 보면, 그녀는 그저 우리 관객과 같은 평범한 젊은 여성일 뿐이다. 낚시터 가게에서 열심히 일하고, 손님들을 응대하고, 가끔은 피아노 학원에 들러 연주도 하고, 하루의 마지막엔 집으로 돌아간 뒤, 이런 하루를 반복한다.
독이 든 지느러미로 누군가를 위협하는 일도, 소리를 질러 인간의 귀를 터뜨리는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사실 미아뿐만이 아니다. 작품상에는 그 어떤 오메가도 그런 행동을 하는 모습이 비치지 않는다. 우스운 일이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오메가는 위험한 존재로 분류되어 ‘정당한 제재’를 받고 있는데, 정작 그 진실은 이렇게나 실체 없다니.
자신과 별다를 것 없이 살아가는 미아를 계속 지켜보며, 수진은 점차 오메가에 대한 자신의 인식을 바꿔 간다. “그렇게 위험한 것 같지는 않은데.” 오메가를 혐오하는 자신의 엄마에게 직접적으로 이런 말을 던져볼 정도로.
하지만 미행의 어느 날, 자신이 줄곧 의심하던 미아가 결국 오메가로 확정나는 순간, 수진은 끝내 자신의 선배들에게 미아를 신고하게 된다.
![[크기변환][포맷변환]5.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607/20260718202633_qlfqklhz.jpg)
![[크기변환][포맷변환]KakaoTalk_20260718_201811144.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607/20260718202652_aulvawen.jpg)
상영이 시작하기 전 박세영 감독과 주연 배우들의 무대인사가 먼저 있었다. 박세영 감독은 이 자리에서 이번 <지느러미>는 보기 불편한 영화임을 먼저 밝히며, 몇 년 전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할 당시 그 시대 상황에 영감을 얻어 만든 작품이라고 이야기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감독이 어떤 의미에서 그런 말들을 했는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지느러미>는 보기 불편한 영화다. 첫째, 상당히 화려한 영상 효과들 때문에. 둘째, 나와 우리 주변의 부도덕을 꼬집는 따가운 메시지 때문에.
코로나 바이러스 당시, 감염자들은 한순간에 기존의 인간들과 다른 그룹으로 분류되어 다른 취급을 받고, 정부로부터 ‘공식적인 감시’를 받았었다. 그들이 어느 곳에 들르고 각 공간에서 얼마나 오래 머물렀는지 등 개인적인 동선은 모두 인터넷을 통해 공개되었고, 필요시에는 영상이나 사진으로도 공개되었으며, 그 정보는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욕하기 좋은 심심풀이’가 됐다. 해당 조치가 옳은지 그른지에 대한 가치 판단은 하지 않기로 한다. 그러나 이런 모습들이 관객들로 하여금 <지느러미> 속 오메가들을 떠올리게 하기에는 충분하다.
그러나 재미있는 점은 사실 이쪽과 저쪽의 구분이라는 것이 너무나 모호해 누구도 명확한 구분을 정의내리지 못하고, 또 누구나 그 선을 넘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은 멀쩡하던 사람이 바로 다음 날이면 감염자가 될 수 있고, 혹은 오메가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어제와 오늘의 차이는 무엇인가? 그 짧은 사이에 세상에 뒤바뀌기라도 했을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결국 무의미한 그 ‘구분선’, <지느러미>는 그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