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카모토 류이치를 모르더라도 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 메인 테마곡으로 사용되었던 ‘Merry Christmas Mr. Lawrence’, 그것도 피아노와 바이올린 버전으로 녹음된 이 음원은 분명 들어봤을 것이다. 어쩌면 가장 많은 대중이 알고 있을 거라는 점에서는 그의 대표곡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피아노라는 악기는 사카모토 류이치에게 큰 의미가 있는 악기임은 확실하다. 세 살부터 접했고, 작곡을 시작했던 악기. 『피아노로의 여정』은 바로 그 악기에 대한 사카모토 자신의 여러 가지 의견과 음악학자들과의 대화를 통한 이야기 확장을 담고 있다.
사카모토 류이치는 음악과 인생에 관해 여러 권의 도서를 집필했다. 그러나 ‘피아노’라는 하나의 악기에 대해 탐구한 것은 이 책, 단 한 권뿐이다.

1부와 2부 대부분의 부분은 대화를 그대로 옮겨 쓴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1부에서는 부제마다 사카모토의 선곡이 함께 붙어 있다. 마치 배경 음악처럼 틀어놓고 읽는 사카모토 류이치와 음악학자 이토 노부히로의 이야기는 맥락 캐치가 쉬울 뿐 아니라 청각까지 만족시키며 대담 영상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특히 지금까지 피아노 음악 전반을 다루는 책에서 주로 살펴봤던 곡은 모차르트, 베토벤이 무조건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 책의 플레이리스트는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곡이 없음에도 교과서적임과 동시에, 굵직한 작품들을 알아갈 수 있는 점도 좋았다. 클래식 애호가뿐만 아니라 클래식에 입문하려는 사람에게도 좋을 듯싶다. 피아노가 음악의 입문 악기로 유명하듯 『피아노로의 여정』은 피아노 음악의 입문 책인 것이다.
흥미로웠던 점은 ‘울림’ 그 자체와 ‘자연스러운 음악’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나 역시 음악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친구들과 가끔 악기의 터치나 소리의 선호도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사실 보통 사람들은 관리가 잘 된 스타인웨이로 대표되는 밝고 또랑또랑한 소리를 좋아하는 편이다.
그러나 『피아노로의 여정』에서 사카모토 류이치가 ‘노이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특이했다. 지속음 연주가 어려운 피아노지만, 그 피아노 소리의 울림이 점점 옅어져 자연과 합체하는 순간을 느낀다던가. 피아노의 메커니즘 자체가 내는 소리나 페달을 뗄 때 나는 소리 역시 매력이 있다고 느낀다던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조율을 하지 않은 피아노, 쓰나미가 지나간 후의 피아노까지, 사카모토 류이치는 피아노가 점점 자연으로 향하는 연결성을 느낀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도록 만드는 순간이 있었다.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의 약음, 극히 미묘한 템포의 흔들림,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희미하면서도 대담한 교류. 그들은 때로 업라이트 피아노를 사용하면서 더욱 강력한 약음기를 달아 한층 더 작은 소리, 거의 잡음에 섞여 사라질 듯한 소리를 들려주기도 했다(이러한 연주는 유튜브 영상 ‘Márta and György Kurtág play Bach-transcriptions by Kurtág’에서 확인할 수 있다). (p.138)
이러한 관점은 2부와도 연결되는데, 피아노의 메커니즘적인 부분과 노이즈가 많은 ‘로우 디피니션’에 대한 선호가 피아노의 구조와 종류, 역사에 대한 관심으로 옮겨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일반적인 관점에서는 노이즈가 적고 S/N비가 높은 음을 좋게 평가하죠. ‘하이 디피니션’이라는 건데요, 저는 그와 반대의 ‘로우 디피니션’을 선호합니다. S/N비가 점점 안 좋아져서 환경 속에 음악이 녹아드는 정도가 좋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클라비코드를 사버릴까 합니다[197~199쪽 참조]. 갖고 싶어요. (p.33)
이어서 2부에서는 피아노의 구조와 역사를 사카모토 류이치, 그리고 음악학자인 아가리오 신야와 이토 노부히로와 함께 살펴본다. 내용 자체는 꽤 깊이 들어간다고 생각할 법하지만, 역시나 대화를 옮겨 쓴 방식이라 읽기 편했다. 피아노 구조 설명 시에는 도면을, 발전 과정 설명에는 컬러 사진을 첨부하여 이해하기도 쉬웠다.
전반적으로 상당히 친절한 주석을 제공하는 것도 장점 중 하나다. 대부분 편집부에서 추가한 주석이다. 음악계에서 자주 사용하는 단어부터 시작해, 분명 유명하겠지만 잘 모르는 사람으로서는 처음 듣는 이름에 대해 어떤 사람들인지까지 상세하게 설명해 주니 편안히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 세계를 즐길 수 있었다.
가장 접하기 쉬운 악기이자, 입문은 쉽지만 고점은 높은 악기. 나는 피아노를 전공했지만, 그만큼 사실 애증의 악기이기도 했는데. 사카모토의 시선을 따라가니 새로운 생각이 불쑥 튀어나온다. 이 기회에 다시 피아노와 친해져 볼까, 싶게 만드는 그런 책을 발견한 것 같다.
피아노로의 여정
프란츠. 류이치 사카모토, 황국영 옮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