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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좋은 공연은 기세에서 시작된다 [공연]

학공 <한 번도 못 본 한여름밤의 꿈>과 <굿바이, 험프리>로 보는 공연의 가치

by 권혜선 에디터
2026.07.17 19:00

 

 

공연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작품을 선정하고 공감대를 형성할 작품을 만들고자 하는 작가(각색)의 고민, 지인들도 앉아 있을 객석 앞에서 연기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배우의 열정, 주어진 장비들로 최대한을 보여주기 위해 애쓰는 스태프의 노력이 모여 극장에 무대가 만들어지고 관객들이 채워진다. 모든 연극의 제작 과정이 그럴 테지만, 특히나 이것이 ‘좋은 공연’을 위한 기본 전제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이야기할 학생공연(학공)은 좋은 공연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가장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공연이다.

   

 


2025-2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레퍼토리 <한 번도 못 본 한여름밤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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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0월에 한예종에서 올린 학생 공연을 본 것이 이 글을 쓰게 된 계기였다. <한 번도 못 본 한여름밤의 꿈>은 셰익스피어의 <한여름밤의 꿈>을 원작으로 하여 대본 없이 기존 틀을 벗어난 실험적 구성, 객석을 넘나드는 전개, 한국적 요소(한복 등)의 변주가 특징으로 언급되는 생동감 넘치는 연극이다.


공연에서 배우들은 망가지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넘어, 뻔뻔하고 당당하게 B급 개그와 액션을 밀고 나간다. 정말 웃긴데, 그렇다고 우습지는 않다. 사회문제를 다루는 진지한 극, 책임감을 느끼게 하는 극들도 귀하지만, 그러다가 이런 정제되지 않은 날 것의 에너지가 느껴지는 연극을 보니 땅굴을 파다가 밖으로 나와 햇빛을 보는 느낌이었다. 상쾌했다.


다양한 형식과 담론의 탐구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단 하나다. 결국 공연은 일단 만드는 사람이 즐거워야 하고, 보는 사람이 재밌어야 한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한 여름밤의 꿈>은 연출의 의도와 그 진심을 잡고 공연까지 온 것이 느껴져 웃음이 날 수밖에 없는 사랑스러운 공연이었다.


공연에서 인물들의 사랑은 사랑의 묘약에 의해 연인 관계가 잘못 이어지기도 하고, 꽃을 보고 첫눈에 반해 사람이 아닌 것을 맹목적으로 사랑하는 웃픈 상황이 펼쳐지기도 한다. 그리고 혼란스럽게 부딪힌 끝에 잠에 들었다가 깨어나고 난 후 모두 자신의 짝을 찾아 해피엔딩이 된다. 특히 마지막 퍽들의 대사 덕분에 정말로 한여름 밤의 꿈을 꾸고 온 느낌이었다. 미흡한 것이 있었어도 용서해달라고, 잠시 한번 졸았다 깬 한여름 밤의 꿈이라 생각하라는 대사가 오직 “지금, 여기” 존재하는 예술인 연극의 본질을 떠올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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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공연이 그렇겠지만, 특히 학공은 환경상 주어지는 것들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최소한의 것들로 공연을 만들어내기 위해 고민할 때, 우리가 공연의 본질을 발견하게 된다. 학생 공연에서 발견한 공연의 매력은 재미를 위해 돌진하는 ‘기세’에 있다고 생각한다.


기죽지 않고 치열하게 고민한 자신만의 언어를 대중 앞에 당당하게 내놓는 자세가 보이면, 관객은 그것에서 흥미를 느끼고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유행하는 밈들을 적재적소에 쓸 수 있는 것부터, 현시대에 필요한 메시지를 담는 것까지 ‘동시대’와 가장 맞닿아있는 요즘 대학생의 감각, 부족한 것을 알더라도 좋은 공연을 만들고 싶다는 절박한 마음이 좋다. 오히려 이는 이미 사고가 굳어진 전문가나 제작 전문 회사에 작품을 선정해 만들 때는 접하기 어려울 때도 많다.


예시가 하나뿐이라 아직 필자의 말이 잘 와닿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좀 더 작은 광주의 한 극장에서 한 연극으로 가보자.

 

 


조선대학교 극예술연구회 제128회 정기공연 <굿바이, 험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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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험프리>는 짝사랑에 실패한 18살 청춘 '주원'의 방황을 투박하지만 진솔하게 그려낸 연극이다. 그는 재이에게 차이고 난 후, 자신의 롤모델인 영화<카사블랑카> 속 주인공 험프리가 건네는 조언을 따른다.


주원은 머릿속에는 두 가지 환상이 있다. 먼저 자신도 험프리처럼 많은 여성들의 구애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이다. 이 환상은 순간적으로 주원을 자신감 넘치고 행복하게 만들어주지만, 그럴수록 만남에 실패하기만 하는 현실과의 차이로 인해 좌절감은 더 커진다. 두 번째로 험프리와 재이가 말다툼을 하는 환상이 있다. 내면의 험프리는 과도한 희망을 불어넣고, 재이는 자신을 지루하고 별것 아닌 존재로 생각해 의기소침하게 만든다. 즉, 주원의 머릿속에서 충돌하는 험프리와 재이의 존재는 그가 자신을 마주하기까지 겪는 성장통의 상징과도 같다.


연출은 주원이 동경한 험프리라는 이상과 첫사랑 재이와의 관계의 실패라는 현실 사이의 괴리를 조명과 음악을 통해 유쾌하게 그려낸다. 험프리와 재이는 자줏빛 조명 아래 트렌치코트를 멋지게 입고 느끼한 음악과 함께 등장해, 언젠가 흑백영화 더빙에서 들어보았을 특유의 과장된 톤으로 대사를 뱉는다. 이런 뻔뻔함이야말로 무대 위에서 자기 자신을 온전히 내던지는 학생 공연만의 '기세'다.


이후 그는 여러 여자를 만나보면서도 결실을 맺기는 커녕 더 방황하게 되고, 수아와는 키스까지 하게 되면서 복잡한 연애 서사가 펼쳐진다. 하지만 들떴던 감정의 소용돌이가 잦아들자, 교실에 앉은 주원의 눈에는 자신의 친구 수아와 도하가 보인다. 영화 속 험프리는 타인의 여자를 빼앗고 다시 버릴 때도 당당했을지 몰라도, 현실 속 ‘주원’은 그와는 다른 존재다. 주원은 오랫동안 수아를 마음에 둔 도하를 응원하고, 도하의 곁에 완벽히 들어맞는 짝인 당찬 수아를 존중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이어질 뻔한 수아와의 관계를 정리하자고 말하며 험프리와는 다른 선택을 한다. 주원은 이제 영화의 주인공에게 작별을 고하고 자기 자신으로서 행동하기로 결심한다. 관찰자적 허상을 내려놓고 나서야 비로소 ‘나 자신’으로 서는 법을 배운 주원은, 이제 진짜 자신의 사랑을 시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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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사랑의 첫 번째 단계는 타인에게 나를 투영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믿고 기꺼이 타인에게 내보이는 것일 테다. <굿바이, 험프리>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며 ‘진정한 자신을 찾는 과정’을, 영화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한 청소년기 소년의 우당탕 로맨스에 빗대어 풀이했다. 두 공연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사랑 앞에 인물들이 서투르게 부딪히고 깨지는 과정 자체가 학공이기에 보여줄 수 있는 날 것의 매력과 맞닿아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모든 공연은 귀하니까, 당신에겐 '기세'면 충분하다.


 

결국 연극도 사랑을 시작할 때처럼 자신의 공연을 믿고 기꺼이 내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보다 공연을 보는 관객의 입장에서 공연의 크고 작음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대극장의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도 아쉬운 감상을 남길 때도 있고, 골목 굽이굽이 숨어있는 공연장에서 만족스러운 감상을 남길 때도 있다. 공연예술은 관객과의 합의로 가상의 공간과 상황에 빠져들 수 있는 매력적인 장르다. 그러니 공연을 만들고 관람할 때, 극장의 크기와 위치, 자본의 규모에 대해 너무 걱정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냥 내 곁에 있는 동료를 믿고, 좋은 공연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것으로 충분하다.


물론 숙련되지 않은 대학생들이 만든 공연에 부족한 점이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배우의 발음이 샐 수도 있고, 사소한 연출의 타이밍이 안 맞을 수도, 전개의 완결성이 떨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공을 포함한 모든 공연은 각자 다른 매력이 있다. 어떤 부분이 관객 하나하나에게 통할진 정말 알 길이 없다. 연극인이 되고자 자신의 철학을 관철해 만들어 내놓은,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그 공연을 울고 웃으며 보고 그리워할 관객은 늘 존재한다. <굿바이, 험프리>의 주원이 ‘자신을 긍정’하는 순간에 자신과 마음이 통하는 새로운 인연을 만난 것처럼, <한 번도 못 본 한여름밤의 꿈>의 퍽이 이 공연을 보고 나올 때 환상적인 꿈을 꾼 것으로 생각하라고 한 말에 여운이 남는 것처럼 말이다.

 

당신의 공연도 누군가에겐 아주 귀하다. 모두에겐 아니더라도, 적어도 그날 객석에 앉아 있던 누군가에게는 그럴 수 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창작자로선 두려워하지 말고 공연을 만들어보는 것, 그리고 관객으로선 편견 없이 극장을 찾아가 보는 것이다. 실전은 기세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지금 당장 인터넷이나 예매창을 들어가 당신을 기다리는 공연을 하나 예매해보자. 창작자라면 노트북을 켜고 자신만의 공연을 기획해보는 것도 좋다. 공연예술과 예술인들을 애정하는 마음을 담아 제안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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