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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까르띠에가 선택한 시간의 철학자들 [패션]

'제28회 까르띠에 미래의 워치메이킹 인재상'에서 나타나는 시간 개념

by 김한비 에디터
2026.07.13 13:57

 

 

까르띠에는 지난 6월 24일, 미래의 워치메이킹 산업을 이끌 차세대 인재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제28회 까르띠에 미래의 워치메이킹 인재상' 시상식을 개최했다. 올해 행사는 스위스 라쇼드퐁에 위치한 '까르띠에 메티에 다르 아틀리에'에서 처음 열렸다. 이곳은 전통적인 워치메이킹 기술과 희귀 공예를 연구하고 계승하는 공간으로, 시상식의 의미를 더욱 깊게 만들었다.

    

이번 시상식에서는 프랑스, 스위스, 벨기에의 젊은 워치메이커와 기술자들이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뛰어난 제작 능력을 인정받으며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선택되는 순간만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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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높은 평가를 받은 작품은 벨기에 나무르의 IATA 소속 에므리크 피터스(Aymeric Peters)가 제작한 <선택된 침묵>이었다. 이 작품은 시간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기능보다, 시간을 마주하는 행위 자체에 의미를 부여한다. 시계는 평소 오후 6시에서 멈춰 있지만, 사용자가 열쇠를 꽂는 순간에만 현재 시각을 가리키기 시작한다.

 

며칠 동안 이 작품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열쇠를 꽂는 순간에만 시간이 모습을 드러낸다는 발상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시계가 없는 공간을 좀처럼 찾기 어렵다. 집과 학교, 카페, 지하철역은 물론 스마트폰과 컴퓨터 화면까지 하루 종일 시간을 보여준다. 시간을 확인하는 행위는 너무 익숙해져 의식조차 하지 않지만, 그만큼 우리는 시계가 제시하는 질서 안에서 생활하도록 길들여져 있다.

 

컴퓨터 과학자 요제프 바이첸바움은 기계가 제시하는 시간이 인간의 감각보다 우선하는 시대를 지적했다. 크리스틴 로젠은 『경험의 멸종』에서 그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사람들은 배가 고프다는 느낌을 식욕을 자극하는 요소에서 제외시켜버렸다. 대신 추상적인 모델이 특정 상태에 도달했을 때, 즉 시곗바늘이 문자판의 특정한 지점, 가령 문자판의 정오 표시를 가리킬 때 식사를 했다." (크리스틴 로젠, 『경험의 멸종』, 어크로스, 2025, p.26)
 

 

예전에 '그라피티(Graffiti)를 그릴 수 있다면 어디에 무엇을 그리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나는 도시 한가운데 있는 어느 시계탑의 시계를 검은 스프레이로 지우고, 그 시계를 훔쳐 달아나는 도둑을 유쾌하게 그려 넣고 싶다고 답했다. 그라피티가 가진 저항의 성격을 빌려 매시간, 매분, 매초에 쫓기는 현대인들에게 잠시라도 시간의 통제에서 벗어나는 상상을 선물하고 싶었다.

 

그러나 <선택된 침묵> 같은 시계가 상용화되는 세계에서는 나의 답변이 무력화될 것이다. 시간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마주할지 말지를 스스로 선택하게 만드는 방식이야말로 더 큰 자유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현재 시각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열쇠를 꽂아야 한다는 설정이 흥미롭다. 고개만 들면 언제든 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일상적인 시계와 달리, 이 작품은 사용자의 의지와 행동을 요구한다. 열쇠를 돌리는 짧은 행위는 단순히 시계를 작동시키는 과정이 아니라, 스스로 시간을 받아들이겠다고 결정하는 의식처럼 느껴진다.

 

 

 

시간이 흐르는 방식은 꼭 바늘일 필요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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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 2위를 차지한 에두아르 니코(Edouard Nicod)의 <대립의 이중성>은 바늘은 멈춘 채 구조물처럼 자리하고, 대신 무브먼트가 움직이며 시간의 흐름을 드러낸다. 또 다른 기술자 부문의 공동 2위 작품인 아담 드로슈(Adam Deroche)의 <매혹>은 바늘을 10시 10분에 고정한 대신 숫자가 움직이며 현재 시각을 나타낸다.

 

흥미로운 점은 두 작품 모두 시계의 가장 상징적인 요소인 바늘을 움직이지 않는 대상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대신 무브먼트나 숫자가 시간의 변화를 표현한다.


특히 얼음처럼 녹아내리는 <매혹>의 형상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의 <기억의 지속>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한다. 달리가 시간을 절대적인 질서가 아닌 유동적 감각으로 표현했다면, <매혹> 역시 시간을 상대적인 경험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우리는 흔히 바늘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시간이 흐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작품들은 오히려 바늘은 멈춰 있고 세상이 움직인다고 말하는 듯하다. 마치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웅크리고 있는 날에도 시간만큼은 무심하게 흘러가는 우리의 삶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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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작품들이 던지는 질문은 시간을 얼마나 정확하게 측정하느냐가 아니다. 시간을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경험하고 받아들이는가에 더 가깝다.

 

시계를 만드는 사람들은 누구보다 정교하게 시간을 다루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정작 그들이 만든 작품은 시간을 정확하게 보여주기보다, 시간이라는 개념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어쩌면 오늘날 워치메이킹은 시간을 재는 기술이 아니라, 시간을 새롭게 경험하도록 만드는 예술에 가까운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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