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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상어의 배 속에서 돌아온 이름 - 시크릿 에이전트 [영화]

지워진 기록과 털복숭이 다리, 영화 <시크릿 에이전트>

by 이유은 에디터
2026.07.10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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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는

영화 <시크릿 에이전트>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977년 브라질. 영화는 카니발을 앞둔 헤시피로 향하는 한 남자를 따라간다. 그의 이름은 마르셀루 알베스다. 정확히는, 그가 지금 쓰고 있는 이름이 그렇다.

 

오프닝에서 그는 외딴 주유소에 차를 세운다. 주차장 한 가운데에는 어설프게 종이가 덮인 시체 한 구가 놓여 있고, 들개와 새들이 그 주위를 오간다. 곧 경찰차가 도착한다. 경찰은 시체를 살피는 대신, 마르셀루에게 다가와 괜한 꼬투리를 잡으며 신분을 캐묻는다.

 

이보다 명확한 도입은 없을 것이다. 이 나라에서 공권력이 관심을 갖는 것은 목숨을 잃은 저 시체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나가는 사람의 서류와 피다 남은 담배 한 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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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루를 연기하는 배우는 [나르코스]의 파블로 에스코바르로 우리에게 익숙한 바그너 모라다. 그러나 이번에 그는 총을 들지 않는다. 기다리고, 침묵한다. 눈빛으로 그와 그가 처한 이 시대의 브라질을 설명한다.

 

이 영화는 어쩐지 특이하다. 범죄 스릴러라는 장르와 비밀 요원에 걸맞는 총질이나 기가막힌 액션 대신 관객을 맞이한 건, 죽은 상어의 배 밖으로 튀어나온 사람의 다리 한 짝이다. 그리고 이 다리 한 짝이, 영화를 이해하는 열쇠가 되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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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복숭이 다리, 검열이 지어낸 괴물


 

극의 초반, 잡힌 상어의 몸속에서 사람 다리 한 짝이 발견된다. 몸통도, 얼굴도, 이름도 없이 오직 다리만이. 그리고 신문들은 일제히 '털복숭이 다리(A Perna Cabeluda)'에 대해 쓰기 시작한다. 여기서 많은 관객이 당황했을 것이다. 정치 스릴러 한복판에 웬 괴담인가. 그러나 이것은 감독의 창작이 아니다.

 

털복숭이 다리는 1970년대 헤시피에 실재했던 도시전설이다. 사전 검열이 서슬 퍼렇던 시절, 지역 일간지 『디아리우 지 페르남부쿠』는 검열로 잘려나간 지면을 메우기 위해 밤마다 사람을 걷어차고 넘어뜨리는 털 난 다리 한 짝의 이야기를 지어내 실었다.

 

1976년 초, 기자 하이문두 카헤루의 기사를 통해 이 다리는 헤시피 사람들의 집단 상상 속에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공포는 빠르게 번져 라디오 프로그램으로, 코르델 문학으로, 카니발 노래와 행렬로 이어졌다. 경찰이 저지른 일을 경찰이 저질렀다고 쓸 수 없을 때, 신문은 간밤에 털복숭이 다리가 또 나타났다고 썼다. 당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그 문장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말하지 않아도 짐작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털복숭이 다리는 검열이 만들어낸 부산물이며 괴물이다. 진실이 지나갈 수 없는 문 앞에서, 어떻게든 변장하고 통과한 흔적이 남은 것이다. 국가가 사람을 지우자 그 자리에는 실체모를 털복숭이 다리 한 짝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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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폐의 가장 효율적인 방법


 

다시 영화로 돌아와서, 상어의 뱃속에서 발견되긴 했지만, 잘린 다리는 명백한 살인의 증거다. 그런데 그것이 지면에 실리는 순간, 증거는 괴담이 된다. 시체는 화제가 되고, 화제가 된 것은 더 이상 추궁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다리의 기괴함에 대해 떠드는 동안, 그 다리가 그래서 누구의 것이었는지는 아무도 묻지 않는다.

 

영화는 이 시퀀스를 거의 슬래셔 무비처럼, 우스꽝스럽고 기괴하게 연출한다. 부패 경찰이나 정치적 도피자들은 계속해서 잘린 다리에 대한 괴담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며 본질을 흐린다. 진실을 알고 있는 자들은 그것을 단지 하나의 오락거리처럼 여긴다. 카니발의 성행과 시민들의 안전 또한 뒷전인 채로 카니발 사망자가 100명이 넘는다에 내기를 거는 미친 짓도 서슴없이 행한다.

 

영화 속에서 은폐의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삭제가 아니라 오락화다. 무언가를 없애거나 숨기려면 그것을 지우면 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정말로 완전히 본질을 흐리고 진실을 숨기고자 한다면, 그것을 우스운 이야기로 만들면 된다.

 

사람들은 웃으면서 잊는다. 학살은 민담이 되고, 민담은 카니발 노래가 되고, 노래는 어느새 지역의 자랑거리가 된다. 클레베르 멘돈사 필류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브라질이 기억과 불화하는 나라이며, 불편한 과거를 논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에게 망각을 부여하는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어찌보면 털복숭이 다리는 이에 완벽한 표본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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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에 없는 여자


 

그래서 이 영화의 진짜 주제는 스파이도, 추격도 아닌, 기록이다. 마르셀루는 관공서에 위장 취업하여 몸을 숨긴다. 지역민들의 신분증이 발급되고 개인 서류가 보관되는 곳이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일을 하는 틈틈이,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어머니의 기록을 찾는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그녀는 아카이브 어디에도 없다.

 

서로 많은 것을 숨긴 채 살아야 하는 시대에, 이름을 지운 채 살아가는 남자가, 애초에 이름을 가져본 적 없는 여자를 찾고 있다. 국가는 사람을 지울 수도 있지만, 애초에 기입하지 않을 수도 있다. 후자가 더 완벽한 삭제다. 지워진 것은 흔적이라도 남기지만, 기입되지 않은 것은 흔적조차 없다. 영화 곳곳에 현재 시점이 불쑥 끼어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오래된 녹음 테이프를 전사하는 사람들, 신문 스크랩을 뒤지는 사람들. 관객이 방금까지 몰입해 보던 1977년도 실은 누군가가 뒤늦게 복원해낸 조각들이었음을 영화는 숨기지 않는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목격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남아 있는 기록을 통해 재구성하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영화는 계속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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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릿 에이전트>는 친절한 영화가 아니다. 헤시피를 모르고, 1970년대의 브라질을 모르고, 털복숭이 다리를 모르는 관객에게 이 영화는 종종 불투명하다.

 

그러나 감독은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보여줄 뿐이다. 역사는 때때로 맥락 없이 도착한다. 잘린 다리 한 짝처럼, 이유도 출처도 없이. 남겨진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 조각을 붙들고, 이것이 누구의 다리였는지왜 이렇게 되었는지 찾아보고 되묻는 것뿐이다.

 

기억하는 일은 언제나 늦게 도착한다. 늦더라도 도착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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