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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사후세계에 관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사후세계에 대한 담론은 늘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나는 그 이야기에 질릴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언제든 기꺼이 참석할 의향이 있다. 그러니 나를 빼놓고 사후세계를 논하는 건 상상만으로 꽤 섭섭한 일이다. 과연 사후세계는 존재할까? 사후에도 세계가 있다면 죽음을 죽음이라 칭할 수 있을까? 사후세계는 죽음 뒤에 뒤따르는 게 아니라 그저 또 다른 세계인 거 아닐까?


흔히 사후세계를 떠올리면 천국과 지옥의 이분법으로 나눈다. 누군들 천국에 가고 싶지 않겠느냐만 천국은 당도하기 너무 어려운 곳이고 지옥은 단 한 번의 실수로도 빠지기 쉬운 곳이라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천국의 기준치는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질 않아 너무도 높은 반면 지옥은 발 한번 삐끗하면 쉽게 통과할 수 있다. 그리하여 천국과 지옥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우리는 선한 사람이 되려 노력하는데, 그 노력은 허망할 만치 쉽게 무너지고 잦은 불안감을 불러일으킨다. 급기야 천국과 지옥은 태초부터 정해져 있다고 느끼게 해 종국에는 ‘에라 모르겠다.’의 심정으로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국내에서 엄청난 흥행을 보여준 웹툰 원작 영화 ‘신과 함께’나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본 미국 드라마 ‘굿 플레이스’ 모두 사후세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지금까지 사후를 다룬 드라마들은 ‘업보’의 성격이 강했다. 현실에서의 삶이 내세를 결정하고 각 인물은 본인이 어쩌다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었는지, 지옥을 탈출하려면 과거의 자신을 어떻게 보완하는지 고뇌하며 사후세계 시스템을 이해한다. 허구를 통해 죽음 뒤 이야기를 보여줌으로써 어떤 현재를 일구어 나가야 하는지, 아직 늦지 않았으니 삶의 방향성을 다시 설정해보길 권하는 이야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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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원’은 초점을 조금 다른 데에 둔다. 사후세계를 현재가 결정하게 두지 않는다. 사후세계를 어떻게 보낼지에 대한 결정권은 오직 죽은 후에야 가능하다. 그리고 가장 놀라운 것은 천국과 지옥이 아닌 어떤 ‘영원’에 대한 선택권을 인물들에게 부여한다. 모든 사람은 죽고 나면 죽음 이후의 평생을 어떤 영원에서 보낼지 선택하는 시간이 주어진다. 일주일 동안 영원의 시스템 속에 살면서 죽음을 자각하고 앞으로 어떤 세계에서 살아나갈지 오로지 본인의 선택에 따라 결정된다. 어떤 영원이던 자신의 의지로 선택할 수 있기에 이는 자유로운 듯 보이지만 역시 어딘가에서의 영원한 머무름을 일주일 만에 선택하기는 여간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영화는 ‘조앤’이라는 여성이 65년을 함께 살아온 남편 ‘래리’와 67년 전 전쟁에 의해 사별한 첫사랑 ‘루크’ 중에 누구와 어떤 영원을 보낼지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로맨스에 초점을 둔 영화처럼 보이지만 로맨스만 언급하기에는 이 영화가 아깝다. 말 그대로 로맨스는 거둘 뿐. 조앤은 래리와 루크 사이에서 혼란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영원을 책임질 결정을 해야 한다. 조앤과 래리, 조앤과 루크 각각의 데이트는 장단점이 확실하고 그것은 일종의 행복감을 보장 해주지만 동시에 안타까움을 일으킨다. 어쨌든 일주일 뒤에는 포기해야 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어떤 결정을 하든 후회를 피할 수 없기에 조앤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머리를 싸맨다.


이미 맛본 사랑의 친근함과 미래를 함께해보지 못한 사람과의 설렘 사이에서 고통스러워하던 조앤은 결국 아무도 선택하지 않고 친구와 파리행 영원 기차로 올라탄다. 그 시간, 아무도 고르지 않은 조앤의 선택을 존중하며 래리와 루크는 같이 회포를 푸는데 그들의 대화 속에서 래리는 돌연 무언가 깨닫는다. 죽음 이후에 영원을 결정하는 승강장에 올 때 각 개인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의 모습으로 온다. 조앤, 래리, 루크 모두 젊은 시절의 모습을 했기에 굳이 생각해 볼 겨를이 없었는데 당시 조앤의 모습은 아름답고 고상한 긴머리였다. 이를 눈치챈 래리는 조앤이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 자신이 아닌 루크와 함께했을 때임을 깨닫고는 파리행 기차에 올라탄 조앤에게 달려가 루크를 선택하라는 진심을 전한다. 래리와 함께할 때 조앤은 늘 짧은 머리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많은 이들은 망설임 없이 루크를 선택했다가도 래리에게 조금은 마음이 기울었을 것이다. 래리에게 최우선의 행복은 본인이 아닌 조앤의 행복이었기에 이 말을 전할 때 래리는 섭섭하긴 해도 왠지 후련해 보인다. 상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건 그런 순간의 자각이 일으키는 행동력이다. 깨닫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깨달음만으로는 사랑이라 말할 수 없다. 깨달음은 사랑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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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리 덕분에 자신이 원하는 것이 뭔지 깨달은 조앤은 루크와의 영원을 선택했지만 영원에 도착한 이후 어딘가 불안하고 초조해 보인다. 드디어 이룬 행복도 잠시, 밤마다 기억을 꺼내볼 수 있는 아카이빙룸에 가서 래리와의 추억에 잠기고 만다. 래리에 대한 사랑을 묻어놓은 채 루크와 새로운 삶을 꾸려나가기가 영 고통스러웠던 조앤은 도박을 건 탈출을 감행한다. 그저 마음이 이끄는 대로. 맞는 방향인지 아닌지는 깊이 고민하지 않은 채로. 도망치는 내내 그동안 영화 전개에서는 볼 수 없었던 조앤의 개운한 표정이 보였다.


영화를 보자마자 한 생각은 삼각관계에서 비롯된 ‘나라면 [누구]를 택할 것인가’였다. 그리고 곧장 든 생각은 ‘나라면 [어떤 영원]을 택할 것인가’였다. 이 생각은 ‘과연 영원이 무조건 좋은 것이며 필요할까’라는 생각의 종착지로 이어졌다. 누구와 어떤 영원을 살아갈지보다 중요한 건 영원을 누릴 준비가 잘 되었는지다. 영원의 존재가 확실하지 않은 채 영원을 떠올리며 사는 삶 속에서 영원의 역할은 누군가에겐 덧없을 수도, 누군가에겐 삶의 동력이 될 수도 있다. 영원은 때때로 삶을 무력하게 만들지만 때로는 희망의 기운으로 가득 차게 해준다. 역할로서의 영원은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영원 자체를 누릴 수 있는 건 어째 좋지만은 않아 보인다. 현재의 선택이 책임지는 영원은 최고의 천국이 될 수 있지만 무한한 지옥이 될 수도 있다. 그 가능성은 영원을 살면서 자주 엎치락뒤치락할 것이니 이것만 고려한다면 천국과 지옥도 선택 가능한 것이리라.


하지만 애석하게도 완전한 천국도 완전한 지옥도 존재하지 않는다. 죽어보지 않았지만, 사후세계를 경험해 본 적 없지만, 현재를 사는 내가 자신 있게 주장할 수 있다. 모든 걸 자유자재로 주무를 수 있는 신조차도 죽음 이후의 시스템 체계를 완벽하게 설계할 순 없다. 애초에 불가능하다. 어찌저찌 만들었대도 오류는 자꾸 생겨날 것이며 인간의 어리석고 다정한 마음들을 신이 감히 통제할 순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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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영원을 선택하지 않고 승강장에 남아 시스템의 직원이 될까? 영원을 선택하는 게 현명한 선택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지금껏 해온 이야기에 반할지는 몰라도 이왕 그런 세계 속에 떨어졌다면 어쨌든 나는 다른 이들처럼 어떤 영원이든 선택했을 것이다. 영원조차 영원하지 않으리라는 생각과 함께. 그럼 영원의 무게에 깔리지 않을 수 있고 조마조마하며 영원의 현재를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바람을 빌어본다. 현실에서 사는 것과 똑같이 죽음을 걱정하면서. 영원 이후의 세계를 떠올리면서. 그리고 내 선택에 확신할 수 있는 단 한 가지는 내 우선순위는 늘 나일 것이다.

 

후회가 최소화되는 선택도 후회를 동행한다. 어느 쪽이든 후회가 동반된다면 그 기준의 비중을 어떤 남자냐에 할애하기보다는 더 다양한 기준들로 이기적인 계산을 해보고 싶다. 하지만 막상 내가 조앤의 입장에 처하면 똑같은 고민을 하게 되겠지. 영원 이하에 두는 생각들은 언제나 나를 갈대 같고 연약한 사람으로 만든다. 이토록 변덕스러운 이로 만드는 영원이 그럼에도 영원히 밉지 않은 건 영원은 나를 언제나 부풀게 해주기 때문이다. 영원을 떠올릴 때면 내게 부여되는 산뜻한 위대함이 있다. 그리고 그 위대함은 나를 작은 동시에 크게 만들어준다. 영원에 관한 이야기를 할 적에는 온통 추상 투성이지만 나는 그 추상의 세계 속에서 언제나 자유롭게 유영할 자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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