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짬뽕 같은 세상!”
일이 잘 안 풀릴 때 누군가는 ‘짬뽕 같은 세상’이라고 말하곤 한다. 시원하고 칼칼한 국물에 속이 풀리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잘못 뒤섞여 버렸기 때문이다.
1980년 5월 18일, 끊임없는 총소리와 군인들의 함성, 사람들의 눈물과 먼지투성이의 길목은 말 그대로 잘못 뒤섞여 맛이 망가진 짬뽕 같은 상황이었다. 그 비극적인 사건을 블랙코미디로 풀어낸 작품이 바로 연극 「짬뽕」이다.
「짬뽕」은 2004년 초연 이후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매년 무대를 지켜 온 극단 산의 대표작으로, 5·18 민주화운동이 짬뽕 한 그릇에서 시작되었다는 기발한 상상력에서 출발한다. 무거운 역사적 사건을 소시민들의 삶 속 유쾌함과 감동으로 풀어내며 관객들이 5·18 민주화운동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연출가 윤정환은 “5·18 민주화운동은 절대 웃기는 코미디가 아니지만, 역설적으로 엄청난 코미디라고 생각했다. 1980년 5월은 어딘가 잘못 뒤섞여 만들어진 짬뽕 같은 세상이었다. 이 아픈 역사에 담긴 사람들의 이야기를 ‘짬뽕’이라는 가벼운 소재를 통해 풀어내고 싶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실제로 관객들은 웃으며 공연을 즐기다가도 어느 순간 깊은 슬픔과 먹먹함을 마주하게 된다.
이번 공연은 나에게 첫 연극 관람이었다.
영화나 드라마 속 배우를 화면으로만 보다가 눈앞에서 생생한 연기를 마주한 경험은 무척 새로웠다. 공연장 매표소에서는 중국집 메뉴판을 연상시키는 티켓을 건네주었고, 설레는 마음은 공연이 시작될수록 더욱 커졌다.
객석의 불이 꺼지자 한 배우가 무대 위로 걸어 나와 “짜장면 드시고 싶으신 분.”이라는 첫마디를 던졌다. 배우는 객석에서 두 명의 관객을 무대로 초대해 실제로 짜장면과 짬뽕을 먹게 했고, 관객과 무대의 경계를 허무는 신선한 연출 덕분에 공연장은 시작부터 웃음으로 가득 찼다.
이후 본격적으로 막이 오르며 광주의 중국집 ‘춘래원’을 운영하는 신작로와 배달원 만식의 이야기가 펼쳐졌다.
춘래원은 ‘고생 끝에 봄이 오는 곳’이라는 뜻을 담은 신작로의 소중한 삶의 터전이며, 그는 식구들을 위해 150만 원을 모아 선물을 해 주겠다는 소박한 꿈을 품고 살아간다.
그러나 1980년 5월 17일 저녁, 짬뽕 둘과 짜장 하나, 탕수육 하나를 주문하는 배달 전화 한 통이 모든 비극의 시작이 된다. 배달을 나간 만식은 군인들과 마주치고, 국가의 명령이라며 음식을 공짜로 내놓으라는 요구를 거절하다 실랑이 끝에 총격까지 이어진다.
가까스로 돌아온 만식은 이 황당한 일을 이야기하지만 아무도 믿어 주지 않고, 방송에서는 철가방을 이용한 간첩들이 군인을 공격했다는 거짓 보도가 흘러나온다. 춘래원 식구들은 광주의 혼란이 자신들의 일에서 비롯되었다고 오해하며 혼란에 빠지고, 도시는 점점 더 큰 비극으로 치닫는다.
결국 신작로의 연인 미란은 총에 맞아 목숨을 잃고, 분노한 만식과 그를 말리려는 지나가 거리로 뛰쳐나가자 신작로 역시 “이 짬뽕 같은 세상! 만식아, 지나야!”라고 외치며 뒤를 따른다.
총성과 연기로 가득 찬 무대가 암전된 뒤 다시 조명이 켜지면, 네 사람은 마치 따뜻한 봄날 소풍을 나온 듯 웃으며 단체사진을 찍는다. 플래시가 터지는 순간 그들 위로 검은 리본 모양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행복한 미소는 영정사진 속에만 남는다.
마지막으로 홀로 남은 신작로는 천만 원이 모인 통장을 바라본다. 식구들을 위해 모았던 돈은 정작 함께 나눌 사람이 모두 떠난 뒤에야 의미 없는 숫자가 되었고, 그는 허무한 표정으로 무대 뒤편을 향해 걸어가며 공연은 막을 내린다.
공연을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정말 잘 끓여진 짬뽕 한 그릇을 본 것 같다’는 것이었다.
배우들의 연기는 국물의 깊은 감칠맛이 되었고, 유쾌한 웃음과 묵직한 감동을 함께 담아낸 연출은 칼칼한 국물처럼 오래도록 여운을 남겼다. 특히 제한된 무대 공간을 조명과 음향, 특수효과만으로 광주의 거리와 총격 현장으로 바꾸어 낸 연출은 뛰어난 몰입감을 선사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점은 5·18 민주화운동이라는 무거운 역사를 단순히 비극적으로만 그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웃음을 통해 관객의 마음을 열고, 마지막에는 그 웃음을 눈물로 바꾸며 역사의 아픔을 더욱 선명하게 전달했다. 그래서 이 작품은 단순히 재미있는 연극이 아니라 우리의 역사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드는 힘을 지닌 작품이었다.
20년 넘게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고, 재미와 감동, 깊은 여운까지 모두 갖춘 공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짬뽕」을 보지 못했다면 꼭 한 번 관람해 보기를 추천한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오래도록 마음속에 진한 여운이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