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짬뽕 한 그릇에 담긴 서글픈 봄 - 연극 짬뽕

글 입력 2024.05.13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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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가정의 달이다. 많은 가족들이 행복하게 웃음 짓는 달로 기억되지만 100년도 채 되기 전의 대한민국에서는 가족들 사이에서 울음소리와 슬픔이 난무했던 달이기도 하다. 2024년 5월 대학로에서는 1980년의 5월이 무대 위에서 재현되고 있었다.


내가 극장을 찾은 것은 폭우가 쏟아지던 날이었다. 골목길 사이로 들어가 건물들 사이 계단 아래로 내려가면 아늑하고 소박한 작은 극장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극장의 한편에는 배우들의 포토엽서가 벽에 붙어있었고, 그 아래에는 연극 '짬뽕'의 포스터와 대본집 등 20년 역사가 전시되어 있었다.

 

조금 이른 시간에 극장에 방문했기에 실시간으로 관객들이 들어오는 모습을 마주할 수 있었는데, 백발의 노인부터 20대의 커플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들이 관객석을 가득 채웠다.


벌써 20주년을 맞이한 짬뽕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겪었던 아픔을 보다 유쾌하게 풀어낸 연극 작품이다. '5.18 민주화운동이 짬뽕 한 그릇 때문에 일어났다'라는 독특하고도 황당한 문구와 함께 소개되었던 이 연극에 대해 처음에는 의문점이 많았다.

 

정말 '짬뽕 한 그릇' 때문에 5.18이 일어났다고 스토리가 진행되는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과 함께 연극은 막이 올랐다.

 

 

연극[짬뽕] 공연사진 (2).jpg

 

 

연극 짬뽕은 그 시절, 지극히 평범한 인물들이 주인공이다.

 

성공하겠다는 일념 하에 악착같이 살아온 신작로, 해맑고 사랑스러운 다방 아가씨 오미란, 언제나 사장님과 투닥거리지만 그래도 춘래원을 아끼는 춤 좋아하는 배달부 백만식, 신작로와 함께 중국집을 운영하는 작고 귀여운 순이까지, 이 네 명의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중국집 춘래원은 항상 넷의 투닥거리는 소리들로 가득 찼지만 작고, 소박하고, 정겨운 곳이었다.


그런데 이야기는 전화 한 통으로 인해 이상하게 흘러가기 시작한다. 가게가 마감할 즈음에 온 전화는 값비싼 탕수육까지 포함하고 있었다. 신작로는 기꺼이 주문을 받아 배달부 백만식은 배달을 가게 되었지만 가던 중, 군인 두 명을 조우하게 된다. '국가의 임무를 수행 중'이라며 배달 중인 짬뽕을 놓고 가라는 그들의 억지 속에서 백만식은 자신이 배달해야 하는 음식을 지키기 위해 그들과 다투게 되고, 그 결과 총성이 울려 퍼지게 된다.


악착같이 돈을 벌어 넷이서 행복하게 살겠다는 신작로의 꿈은 그때부터 차츰 무너지기 시작한다. 중국집 밖에서는 최루탄에 괴로워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고, 라디오와 TV에서는 '빨갱이'를 잡아들이겠다는 국가의 공포스러운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 모든 일이 백만식이 짬뽕을 군인들에게 주지 않고 몸싸움을 벌인 결과라고 생각하게 된 신작로는 이후 엄청난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심지어 그는 자다가 악몽을 꾸게 된다. '춘래원'은 고난 속에 봄이 오길 바라는 신작로의 꿈이 담겨 있는 곳이었지만, 그의 악몽 속에서 '춘래원'은 곳곳이 '빨갱이'라는 증거가 놓인 곳일 뿐이었다. 중국집의 붉은 소품은 빨갱이라는 증거가, 짜장면을 만들기 위한 밀가루는 국민들을 혼란시키기 위한 마약의 은어가 되는 온갖 억지 속에서 신작로는 거짓 자백까지 하게 된다.


1980, 대한민국 국민들은 서울의 봄을 꿈꾸었다. 그건 봄이 오길 바라는 '춘래원'의 신작로와 그의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끝끝내 봄은 오지 않았고 대신 대한민국은 피로 붉게 물들게 되었다.

 

남녀노소 모여있는 관객석을 즐거운 웃음과 슬픔의 눈물로 가득 채운 웰메이드 연극 짬뽕의 20년을 축하하며 글을 마친다.

 

 

포스터.jpg

 

 

[김푸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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