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두운 극장 안, 일렁이는 연기와 함께 등장하는 한 여자가 있다.
그 여자는 앞으로 한 시간이 훌쩍 넘는 시간을 홀로 채워나갈 것이다.
어떤 이야기를 보여줄까? 나는 기대하는 마음으로 그녀에게 집중했다. 그녀가 입을 여는 순간 연극이 시작되었다. 그녀의 이야기에 몇 번이나 깜짝 놀랐는지 모르겠다. 휘몰아치던 시간들이 끝나고 극장 안에 불이 켜졌을 때, 나는 완전히 녹초가 되었다.

연극 〈플리백〉은 성적 농담과 냉소, 파격적인 유머로 가득한 블랙코미디다.
런던의 한 골목에서 기니피그 카페를 간신히 운영하며 살아가는 주인공 ‘플리백’은 충동과 실수의 가장 친한 친구이다. ‘문제투성이’라는 뜻의 ‘플리백’. 그녀에게 그보다 더 잘 어울리는 이름은 없을 것이다.
그녀는 면접 자리에서 뜻하지 않게 상의를 벗어버리고, 성공한 언니와는 사사건건 부딪히며, 아무 남자와 잠자리를 가진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그녀의 모습은 자유롭고 재미있어 보인다. 하지만 그 안에는 친구의 죽음, 가족과의 단절, 관계 속의 공허함이 켜켜이 쌓여 있다.
연극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점은 1인극의 형식이라는 점이었다.
처음에는 한 명만 등장하면 지루하지는 않을까 걱정했었다. 그러나 걱정이 무색하게 배우의 에너지는 대단했다. 배우의 능숙하고 몰입감 있는 연기는 ‘플리백’이라는 인물을 온전히 드러내었다. 오히려 인물의 내면을 끌어내는 데 유리했다.
위에서 언급했듯 주인공인 ‘플리백’은 문제투성이다. 그녀가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연극이 끝날 때까지 쉴 새 없이 던지는 성적 농담과 자유로운 행동들에 잠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온갖 부적절한 행동을 저지르며 웃음으로 불편한 상황을 넘기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는 것 같다. 실제로 연극 중 관객에게 불쑥 내미는 말에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분명 엉망진창처럼 보이는데 어딘지 모르게 매력적이다. 그 사실을 부정할 수 없어 그녀의 이야기가 더 궁금했다.

무대 위에 놓인 여러 개의 의자는 다양한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바닥에 발이 닿을 정도로 낮은 의자, 크고 넓직한 의자, 딱 붙어 있는 두 개의 의자 등. 그 의자들은 그녀의 집이자 직장, 또는 술을 진탕 마실 수 있는 바를 연상시키는 효과적인 소품들이다.
그녀는 그 의자 위에 털썩 앉거나 기대며 자신의 실수와 충동이 섞인 생활을 여과 없이 토해낸다. 처음에는 단지 인물에 집중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소품을 최소화한 건가 생각했었다. 하지만 극이 진행되며 의자들이 단순히 공간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그녀에게 영향을 미치는 등장인물을 투영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극의 후반부에 그녀가 자신의 절친한 친구 ‘부’의 남자친구와 잠자리를 가졌다는 사실과, 상처를 입은 ‘부’가 죽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녀의 마음 깊숙이 자리 잡고 있던 죄책감이 폭발하며 자신을 둘러싼 인물들을 언급하고 의자를 쓰러뜨린다. 엉망이 된 의자들 가운데 그녀의 얼굴에서는 더 이상 웃음을 찾아볼 수 없다.
그 순간 나는 그녀의 자기혐오와 죄책감, 외로움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었다.

그녀는 깊은 결핍을 가지고 있다. 그로 인해 성적인 행위와 냉소를 멈출 수 없다. 그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어구다. 그녀는 성적 행위를 하는 그 순간만이 세상이 자신을 꽉 껴안아 주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녀의 이야기만 듣게 된다면 분명 동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행동으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의 모습을 무시할 수 없다. 그들 또한 그녀로 인해 많은 고통을 받았다. 그들의 아픔은 또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나는 ‘플리백’의 감정과 속마음을 모두 알고 있다. 그래서 그녀에게 깊게 공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그녀가 자신의 엉망인 삶을 관객에게 모두 고백했을 때, 조금이나마 부적절한 방법이 아닌 온전한 방법으로 자신의 결핍을 채웠다고 느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