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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그녀의 이름은 플리백 - 연극 '플리백'

상실과 욕망에 관한 솔직하고 발칙한 고백

by 이하영 에디터
2026.08.06 14:50

1. 플리백Fleabag_통합.jpg

 


나에게 현대에 공연되는 해외 라이선스 연극은 대체로 이런 인상이다. 소수자의 위치에 있는 주인공이 자조적인 유머와 자기파괴적인 행위를 거침없이 보여준다. 때로는 관객을 자극적이고 불편하게 만들며, 휘몰아치는 감정 한가운데에서 극적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예의와 체면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와 미국이나 유럽의 개방적인 문화 사이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그 문화적 차이만큼이나 낯선 배경과 인물에게 감정적으로 몰입하는 일 역시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그만큼 새로운 서사적·감정적 충격을 주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쉽게 만들어지기 어려웠을 작품, 혹은 만들어지더라도 쉽게 무대에 오르기 어려웠을 작품.


<플리백>은 한 여성이 무대 위를 홀로 활보하며, 노골적인 성적 농담을 던지고, 자신의 욕망과 실패와 자기혐오를 웃음거리로 만든다. 페미니스트와 비(非)페미니스트 사이에 명확한 경계를 긋기보다 스스로를 ‘형편없는 페미니스트’라 부르며, 여성 그 자체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렇게 파격적인 작품이 한국에서 공연될 수 있는 시대임에 감사하다. 그리고 객석을 채운 관객들이 2030 여성의 범주를 벗어나 있다는 점 또한 놀랍다.

 


플리백_김히어라_공연사진 (12).jpg

 

 

 

문제투성이 그녀


 

연극의 주인공, 그녀의 별명은 ‘플리백’이다. ‘플리백(Fleabag)’은 지저분하고 누추한 사람, 문제투성이라는 뜻한다. 사회에서 그녀는 문제투성이로 낙인찍혔고, 그녀 스스로도 자신을 그런 존재로 규정한다.


그녀는 자신의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마치 ‘스탠드업 코미디’처럼 이야기하는 습관을 가졌다. 가장 비참한 순간에도 자신을 웃음거리로 만든다. 상처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보이는 자기방어적 기제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그녀 주변 사람들은 웃고 있는 얼굴 너머, 누구보다 관계와 연결을 갈망하는 그녀의 상태를 좀처럼 알아채지 못한다.


무엇보다 그녀의 농담은 반복적으로 자기 자신을 깎아내리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먼저 자신을 비하함으로써 타인이 자신에게 가할 비난을 선점하는 것이다.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지 못하니 결국 타인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확인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생긴다.


그러나 자기파괴와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서 비롯된 성적 충동은 그녀에게서 친구와 가족, 그리고 끝내 자기 자신마저 빼앗아간다. 여성들과의 연대에서도 밀려난 그녀는 자신을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는 남성들에게 휘둘리며 왜곡된 방식으로 자아를 형성한다.

 

 

 

남자들


 

그녀는 관계의 단절이나 외로움, 상실을 경험할 때마다 술을 마시고 남성을 만나 성관계를 갖는다. 자신을 욕망하는 남성의 시선을 통해 자신의 가치까지 인정받고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그녀 역시 남성들의 성적 욕망이 어떤 방향을 향하는지 알고 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이 ‘그녀’인지, 그녀가 가진 여성의 몸인지 그 차이를 모르는 것이 아니다. 관계가 끝나는 순간 남성들이 보여주었던 욕망 역시 사라진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자신에게 남은 유일한 가치가 육체뿐이라고 여기기에 그것을 내어주면서라도 타인에게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으려 한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성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갖게 된다. 남성은 결국 자신의 육체를 욕망할 것이고, 관계의 목적은 육체를 탐색하고 소유하는 것이며, 성적 욕망을 제거한 애정이나 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리고 스스로 그러한 믿음을 전제한 채 남성들을 대하면서 진정한 관계에 도달하는 데 번번이 실패한다.


남성들과 맺는 불안정한 관계는 여성들과의 관계에서도 실패를 경험하게 한다. 그렇게 외딴섬처럼 남겨진 그녀에게도 한때 유일한 친구가 있었다.

 

 

플리백_공연사진_김주연 (12).jpg

 

 

 

친구 부


 

부와의 관계는 남성의 성적 판타지와 욕망으로 오염된 껍데기뿐인 관계와 달랐다. 두 사람은 서로를 진심으로 생각하고, ‘사랑할 만한 것’의 감정을 주고 받았다. 극이 진행되는 동안 그녀는 끊임없이 부를 그리워하며 두 사람이 나누었던 순수한 애정의 형태를 되짚는다. 공허해질 때면 이제는 영원히 받지 않을 부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 녹음된 목소리를 듣고, 자신이 부에게 선물했던 기니피그를 바라보며 그 애정을 추억한다.


음식을 제대로 할 줄 모르고, 매일같이 지루한 회사생활을 하기 싫어서 시작한 카페가 기니피그 카페가 된 것은 그녀가 부에게 기니피그를 선물했기 때문이다. 무심코 부엉이를 좋아한다고 말했다가 평생 부엉이 선물만 받게 된 탓에 오히려 부엉이를 싫어하게 된 부에게, 그녀는 새로운 동물인 기니피그를 선물한다.


부는 매우 기뻐한다. 그들은 서로의 상처와 욕망을 알고 있다. ‘혐오적인 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함께 노래를 보르거나 의미 없는 장난을 친다. 그리고 ‘사랑할 만한 것’을 찾아 서로를 보듬고 위로한다. 그녀에게 부는 자신의 육체를 내어주거나 스스로를 웃음거리로 만들지 않아도 사랑받을 수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녀의 고백


 

그러나 이 관계마저 그녀의 성적 충동으로 인해 망가진다. 그녀는 부의 남자친구와 잠자리를 갖고, 그 사실에 충격받은 부는 남자친구의 관심을 되돌리기 위해 사고를 위장하려다 예상하지 못한 죽음을 맞는다.


그녀에게 남은 것은 이제 자신이 부에게 선물했던 기니피그뿐이다. 살아 있는 기니피그는 부의 음성메시지처럼, 사라진 존재와의 연대가 아직 어딘가에 살아 있다고 믿게 하는 흔적과도 같다.


그런데 카페에서 한 남성과 성관계를 갖던 중, 남성이 갑자기 나타난 기니피그에 놀라 그것을 걷어찬다. 그녀는 순간 공포와 슬픔에 휩싸인다. 부가 사고를 당해 누워 있을 때도 그녀는 이와 비슷한 처참함을 느꼈을 것이다. 자신이 불러들인 남자 때문에 기니피그가 다친 것처럼, 부의 죽음 역시 자신의 잘못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결국 그녀는 기니피그가 더 이상 고통받지 않도록 자신의 손으로 그 작은 몸의 뼈를 으스러뜨린다. 울부짖는 그녀는 완전히 파괴된 것처럼 보인다. 자신에게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연대의 흔적을 자신의 손으로 부수면서 이제 그녀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 같다.


남성의 성적 욕망의 시선 아래 놓인 여성. 동시에 잘못된 관계 맺기와 성적 충동으로 인해 여성들의 연대에서도 밀려난 여성. 그녀는 타인에게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으려 할수록 오히려 육체와 내면 양쪽에서 무너져간다. 그녀를 구원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어 보인다. 이제 남은 육체마저 파괴된다면 그녀가 완전히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처럼 느껴진다.

 

 

플리백_공연사진_김규남_7.jpg



하지만 그녀는 카페가 문을 닫은 이후에도 다시 살아갈 힘을 내고, 돈을 벌기 위해 면접을 보러 간다.


이 연극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가 관객에게 직접 발화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그리고 관객인 우리는 그녀의 결핍과 슬픔, 실패와 잘못, 농담과 자기혐오까지 그녀의 모든 것을 지켜보고 듣는다. 어쩌면 그녀는 말을 하고, 누군가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조금씩 일어날 수 있던 게 아닐까.


사람은 수없이 많은 잘못과 실수를 저지른다. 연필 뒤꽁무니에 지우개가 달린 것도 그런 이유일 테니까.


너는 어떻게 살았니? 무엇이 너를 불행하게 만드니? 누군가 이상행동을 한다면, ‘문제투성이’라고 규정하기 전에 무엇이 그를 그렇게 행동하게 만드는지 들어달라는 말이다.


초연 당시 전세계적으로 화제를 불러 일으켰고, TV 시리즈로 제작되어 각종 시상식을 휩쓴 이 작품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9월 6일까지 공연될 예정이다. 참고로 한국 초연이자 세계 최초 공식 라이선스 공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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