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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갸루(ギャル)’는 소녀라는 뜻의 영어 ‘Girl’을 일본식으로 발음한 단어로, 까만 피부, 과장된 아이라인, 화려한 속눈썹, 밝은 염색 머리 등을 특징으로 하는 스타일이다. 1990년대 일본에서 시작된 이 문화는 젊은 여성층을 중심으로 형성되었고, 2000년대 한국에서도 잠시 유행한 바 있다.


그러나 2010년대 한국 TV 프로그램 〈화성인 바이러스〉를 통해 ‘한국 갸루족’이 소개되었을 당시에는 비판적인 시선이 더 많았다. 고갸루(교복과 루즈삭스, 갈색 머리가 특징), 히메갸루(공주풍 스타일), 오네갸루(성숙하고 심플한 언니 갸루) 등 다양한 하위 스타일로 세분화되어 있었음에도, 갸루는 과장되고 단편적인 이미지로만 소비되며 ‘무분별한 일본 문화 모방’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로 인해 갸루는 커뮤니티나 동호회처럼 비교적 폐쇄적인 형태로 향유되는 문화로 남았다.


하지만 몇 년 전 갸루피스가 밈처럼 유행하면서, 최근에는 2000년대 향수를 자극하는 갸루 메이크업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번에는 다소 다른 흐름이다. 과거와 달리 긍정적인 반응 속에서, 갸루 컨셉은 하나의 유행으로 확산되고 있다.

 

아직 갸루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면 요즘 핫한 갸루걸들을 살펴보자.

 

 

 

1. 짜잔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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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유튜브 크리에이터. 약 59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그는 2000년대를 떠올리게 하는 복고풍 콘텐츠를 주로 선보인다. 특히 갸루 메이크업과 스타일을 전면에 내세운 콘텐츠가 특징이다. 핑크색으로 가득 찬 방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는 짜잔씨. 초기에는 오네갸루의 시크한 스타일을 중심으로 했다면, 최근에는 핑크빛이 강조된 히메갸루풍 콘텐츠까지 확장하며 다양한 갸루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2. ‘K-갸루’ 이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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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주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갸루 메이크업을 자연스럽게 소화하며 화제를 모았고, 이러한 반응에 힘입어 ‘K-갸루’라는 컨셉으로 다양한 갸루 스타일의 콘텐츠를 선보일 것을 예고했다. 그의 갸름한 얼굴형과 큰 눈은 화려한 갸루 메이크업과 잘 어울린다. 여기에 특유의 쾌활하고 자신감 있는 에너지가 더해지며, 갸루 컨셉의 매력을 한층 배가시킨다.

 

 

 

3. 키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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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가 공개한 일본 리얼리티 〈불량 연애〉에 출연 중인 키짱. 〈불량 연애〉는 전직 폭주족, 야쿠자, 소년원 출신 등 어두운 과거를 가진 이들이 사랑을 찾는 특이한 컨셉의 연애 프로그램으로, 한국 넷플릭스에서도 높은 순위를 기록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키짱은 과거 갸루 패션 매거진 'Egg'의 모델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메이크업 강사이자 인플루언서로 활동 중이다. 그의 화려하고 매력적인 갸루 스타일은 시청자들의 마음까지도 빼앗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연예인과 인플루언서들이 갸루 스타일을 시도하며, 갸루 컨셉은 다시 유행의 전면에 등장했다. 왜 지금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걸까?


현재의 갸루는 과거의 일탈적이고 비주류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꾸미기를 좋아하고 트렌디한 미적 감각을 지닌 ‘따라 해보고 싶은 아이콘’으로 재해석되고 있다. 갸루가 지니고 있던 사회적 반항성은 덜어내고, 미적 이미지와 컨셉이 중심이 되어 소비되는 중이다.


또한 유행은 언제나 순환적이다. 특히 코로나 시기를 기점으로 Y2K가 유행한 이후, 복고는 과거에 대한 향수를 전면에 내세우며 형태를 바꿔가며 지속되고 있다. 디지털 카메라의 인기와 같은 레트로 무드 열풍은 이를 잘 보여준다. 최근 갸루 역시 이 흐름 속에서 나타났다.


여기에 일본 문화에 대한 친화적인 환경도 한몫한다. 〈귀멸의 칼날〉이 2025년 국내 누적 관객 수 1위를 기록하고, 〈주술회전〉 또한 상위권에 오르며 일본 애니메이션은 더 이상 서브컬처가 아닌 대중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이처럼 일본 문화 전반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들면서, 갸루 역시 애니·오타쿠·서브컬처 이미지와 같은 층위에서 자연스럽게 소비되고 있다.


자신만의 취향과 개성이 중요해진 지금, 마이크로한 취향을 깊이 있게 탐구하는 Z세대에게 갸루는 컨셉이 분명한 매력적인 콘텐츠다. 특히 갸루 스타일은 ‘세미 갸루’처럼 중화 가능한 형태로도 소비될 수 있다는 점에서, 콘텐츠적 재미를 넘어 실제로 따라 해보고 싶은 유행으로 확산되고 있다.


과몰입과 확실한 컨셉이 강점이 되는 요즘 콘텐츠 환경에서, 갸루는 강한 시각적 미감과 짧은 맥락에서도 이해 가능한 이미지로 경쟁력을 갖는다. 또한 자기애가 강한 갸루의 캐릭터성은 자기 확신과 자기 표현을 중시하는 Z세대의 트렌드 키워드와도 자연스럽게 맞물린다.


현대는 스스로를 하나의 브랜드처럼 관리하고 표현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다. 자기 표현의 방식은 유연해졌고, 각자의 개성이 비교적 쉽게 받아들여진다는 점에서는 분명 긍정적이다. 하지만 동시에 빠르게 소비되는 강렬한 이미지와 미적 완성도에 집착하다 보면, 정작 자신의 내면이나 감각을 잃어버리기 쉬운 환경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갸루 트렌드는 흥미롭다. 외형적인 스타일뿐 아니라, 자기 자신을 긍정하고 당당하게 드러내는 태도, 눈치를 보지 않는 자기애가 부수적으로 소비되고 있다. 스스로 편안하고 즐거운 상태를 유지하며 자신만의 컨셉을 만들어가는 것. 갸루를 단순히 외적 컨셉으로만 따라하는 것이 아닌, 그 안에 담긴 태도까지도 수용한다면 나만의 균형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사진 출처. 짜잔씨, 이미주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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