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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지난달 23일 개봉한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이 빗발치는 혹평에 시달리고 있다. 누적 관객 수는 약 97만 명 수준으로 손익분기점인 600만 명에 크게 못 미치는 성적이다. 정부가 할인권까지 배포했으나 큰 혜택을 받지 못했다.


‘원작 손상’, ‘무리한 설정 압축’, ‘캐릭터 붕괴’가 주된 단점이다. 돈을 내지 않고 봐도 시간을 버리는 영화라는 반응까지 있으나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사람들 군중 심리가 강하다. ‘전지적 독자 시점’은 내가 처음으로 본 웹소설이다. 실사화 소식에 당연 궁금증이 일었다. 혹평에도 불구하고 극장으로 향했다. 주관적인 감상은 다음과 같다.


생각보다 재밌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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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 나라 일본은 애니메이션과 만화의 강국답게 실사화가 자주 이루어진다. 원작 고증을 치밀하게 하는 편이며 주로 원작 팬과 특정 장르 팬 중심 소비가 이뤄진다. 반면 한국은 각색을 통해 새로운 작품으로 재탄생시키는 경우가 많다. 드라마 ‘미생’의 성공 이후, 원작을 기반으로 하는 콘텐츠 제작이 활발해졌다. 이미 검증된 스토리와 원작 팬층, 초기 화제성이 강점이 되어 기존 IP 기반 콘텐츠를 중심으로 미디어 산업 시장이 변화했다.


현재는 오리지널 IP 콘텐츠를 찾기가 힘들 정도로 웹툰이나 웹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콘텐츠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을 맡은 김병우 감독은 ‘신과 함께’ 시리즈와 같은 성공을 꿈꿨다. 영화 ‘신과 함께’는 원작을 대폭 각색해 성공을 거둔 사례다.

 

 

 

원작 기반 콘텐츠는 어떻게 성공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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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콘텐츠는 각 장르의 문법에 맞는 각색이 필요하다. 즉 원작을 그대로 살린다고 좋은 콘텐츠가 될 수 없다. 예로, ‘치즈인더트랩’이 있다. 조회 수 11억 뷰를 기록한 인기 웹툰 ‘치즈인더트랩’은 드라마와 영화로 제작되었다. 드라마는 원작자를 무시했다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나쁘지 않은 성적을 기록했으나, 원작 팬들의 드림 캐스팅으로 제작된 영화는 원작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갔음에도 누적 관객 수 22만 명으로 흥행에 실패했다.


웹툰과 웹소설이 특수성을 띠는 서브컬쳐 영역에 있다면 드라마나 영화는 대중성이 강한 미디어다. 웹툰이나 웹소설은 장르적인 특징을 바탕으로 자세한 심리묘사나 구체적인 설계가 가능하다. 하지만 드라마나 영화는 타겟층이 광범위하기 때문에 다양한 관객층을 포용할 수 있도록 대중적인 맥락 안에서의 해석이 필요하다.


‘신과 함께’는 해당 세계관을 처음 접하는 관객도 몰입할 수 있도록 각색되었고 이러한 전략이 먹혀들었다. ‘전지적 독자 시점’도 대중성을 고려하고 제작되었다. 그러나 각 콘텐츠는 상반되는 성적을 거둬들였다.

 

 

 

‘신과 함께’는 성공했는데, ‘전독시’는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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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이후 미디어 소비 양상에 큰 변화가 생겼다. 취향의 마이크로화가 이루어지면서 ‘마이너함’이 트렌드가 되었다. 현 시점 대중 콘텐츠는 서브컬쳐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최근, 영화 ‘F1 더무비’는 한국에서 마이너하던 ‘F1’이라는 스포츠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렸다. 메인컬쳐와 서브컬쳐의 경계가 흐려지고 개성이 매력이 되는 시대다. ‘전지적 독자 시점’(이하 ‘전독시’)의 경우를 보자. ‘전독시’는 방대한 세계관과 촘촘한 서사로 두터운 팬층을 지닌 작품이다. 특히 작품의 메시지와 더불어 각 캐릭터 간의 관계성이 두드러진다. 하지만 영화는 원작이 가진 강점을 대부분 놓치고 있다.


영화 내내 감독은 ‘평범한 사람들이 힘을 합쳐서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앞으로도 함께하기로 했다’(노컷뉴스 김병우 감독 인터뷰 中)라는 구심적인 메시지를 플래시백과 노골적인 대사로 전달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요소가 생략되거나 변질된다. ‘이 손 놓고 꺼져’ 대신 ‘유중혁 개새끼야’를 외치는 김독자라니.


감독은 원작 팬을 자처하나 과연 원작을 읽고 만든 작품인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만약 정말 원작을 읽었다면 전략상 실패에 가깝다. 음악에는 동일성 유지권이라는 게 있다. 즉 재창작할 때 중요한 테마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 영화에서 일반 대중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중화시키려고 노력한 의도는 엿보인다. 그러나 원작자를 대변하는 원작 팬들이 원작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며 혹평을 쏟아낼 만하다.


이제는 덕후의 시대다. 원작 팬을 고려하지 않은 작품은 대중적인 성공을 얻을 수 없다. 게다가 ‘전독시’는 한국 설화를 바탕으로 하는 ‘신과 함께’보다 특수성이 강하다. 결국 ‘전독시’는 대중도 원작 팬도 설득하지 못하는 애매한 위치에 멈춰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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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진은 한국판 마블 시리즈를 꿈꿨는지도 모르겠다. 작품은 관객에게 그 자체로 인상을 남기지만 사실상 하나의 작품이 세상에 나오는 데까지 수많은 이해관계가 있다. 작품에 필요한 인력 모두가 원작을 읽는 일은 불가능하고 잘될 만한 작품을 발굴하고 제작하는 비즈니스적인 측면에서 제한이 있다.


캐스팅도 CG도 예산 내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특히 캐스팅이 제일 까다로웠을 것 같은 유중혁에 무려 ‘왜 그래, 막시무스’라는 명대사를 소유한 이민호를 섭외한 데 칭찬한다. 대역을 쓰지 않았다는 배우들의 액션 장면이나 전체적인 미장센은 볼만 하다. 전개 속도도 적절하여 러닝타임 동안 몰입감이 좋다.


영화적 완성도로만 따지면 나쁘지 않다. 아직 한국 영화 산업 내 고예산 판타지 영화가 흔하지 않으니 초창기 작품으로서 퀄리티도 납득할만 하다. 팝콘 먹으면서 시간 때울 영화로 제격이다. 1편이 흥행에 실패했으니 속편 제작은 불투명해졌으나 아직 영상화되지 않은 이후 장면들이 궁금해진다.


나처럼 전형적인 한국 가족 영화의 진부함을 싫어하는 관객이라면 정부 지원 할인 쿠폰 혜택을 톡톡히 받고 있는 ‘좀비딸’보다 ‘전지적 독자 시점’을 추천한다. (‘좀비딸’ 또한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다. 세상에. 이 글과 별개로 원작 IP에만 의존하는 한국 미디어 산업의 안일함에 기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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