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석에 앉아 이미 준비된 무대를 보는 일은 곧 완결된 세계를 목격하는 것과 같다. 무대 위의 세계는 이미 너무나 매끄럽고 완전하다. 하지만 무대 이면에는 그 세계가 빚어지기까지 반복된 수많은 의심이 존재한다. 공연에 있어 필연적인 '연습실에서의 시간'은 단순히 대사와 동선을 갈무리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특히 한 인간의 삶을 무대 위로 소환해 내는 작품에서 연습이란, 어떤 기억을 취하고 어떤 기록을 의심할 것인지 끊임없이 판단하고 가려내는 치열한 과정을 포함한다.

여기, 완성된 영웅의 신화 대신 그 탐구 과정 자체를 관객 앞에 꺼내놓은 연극이 있다. <자객열전 Ⅱ - 안응칠 워크숍>(박상현 작/연출, 연우소극장, 2026.7.23.~8.2.)은 1909년 하얼빈 의거 이후 안중근이 수감되었던 뤼순 감옥과 그를 연기하려는 오늘날의 연습실을 쉴 새 없이 오간다. 연습실에 모인 연출과 배우, 조연출, 그리고 무대감독은 안중근의 자서전인 「안응칠 역사」와 당시 재판 기록을 대본 삼아 워크숍을 진행하며 인물을 구축해 나간다.
하지만 토론이 거듭될수록 워크숍에 참여한 이들의 해석은 서로 충돌하고 흔들린다. 남겨진 기록들의 진실조차 불투명해지는 상황 속에서, 모두가 알고 있다 믿었던 영웅 안중근의 견고한 이미지는 점차 흐려진다.
그리고 그 흐려진 이미지의 틈새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은 영웅이라는 이름 뒤에 가려져 있던 인간 '안응칠'이다. 이 공연은 안중근의 삶을 연대기적으로 재현하는 일반적인 역사극의 문법을 탈피한다. 대신, 인물의 신념과 두려움 사이에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끝내 그를 완전히 파악할 수 없음을 깨달아가는 창작진의 치열한 탐구 과정 자체를 서사의 중심에 놓는다.
의도된 불협화음, 메타연극으로 던지는 질문
무대 위로 소환된 연습실이라는 공간은 대본을 해석하고 발화하는 인물들의 팽팽한 충돌로 채워진다. 극 중 워크숍을 이끄는 연출은 확고한 중심을 잡으려 하지만, 조연출은 그 해석에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며 긴장감을 유발한다. 그 사이에서 안중근을 연기해야 하는 배우는 엇갈리는 기록과 해석의 간극 속에서 자꾸만 길을 잃고 방황한다. 이들의 갈등은 단순한 연극 연습을 넘어, 오늘날 우리가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재단하는지 보여준다.
이러한 인물들의 충돌과 시공간의 교차를 시각적으로 풀어내는 것은 무대 중앙에 놓인 커다란 '나무판' 형태의 오브제다. 이 장치는 극의 흐름에 따라 자유자재로 변모한다. 때로는 연습실에 존재하는 하나의 장치가 되었다가, 때로는 안응칠이 선 차가운 재판장으로, 혹은 그가 넘나들던 험준한 산세로 순식간에 탈바꿈한다. 배우의 움직임과 호흡에 맞춰 유기적으로 변화하는 이 장치는 과거와 현재, 환상과 실재를 매끄럽게 연결하는 연출적 요소다.

안중근의 뤼순 감옥 시절을 재현하는 '안응칠 워크숍'이라는 극중극 구조를 끌어온 이유는 명확하다. 관객이 1909년 과거의 서사로 몰입하려는 찰나, 눈앞에서 거대한 오브제가 움직이거나 창작진의 토론이 끼어들며 무대는 다시 현재의 연습실로 돌아온다. 이러한 메타적 장치들은 관객이 영웅의 서사에 감정적으로 동화되는 일을 차단한다. 극은 의도적으로 몰입을 깨뜨리며 약소국의 폭력이 어떻게 정당성을 획득하는지, 남겨진 역사를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주목할 점은 이들의 재현이 무조건 진지하거나 비장한 방식만을 따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대신, 연습실에 모인 연출과 배우, 무대감독은 안응칠의 기억을 하나의 연극적 놀이처럼 무대 위에 펼쳐놓는다. 거창한 무대 장치 없이 단출한 연습실을 횡단하는 배우들은 단순한 소품을 활용하거나 오직 신체와 몸짓만으로 안응칠의 과거, 그리고 그의 기억 속 신부님과 어머니의 회상 장면을 그려내며 극의 스타일을 구축한다.
이때 배우들은 단순히 대본을 발화하는 것을 넘어 극을 적극적으로 유희한다. 무대감독과 연출로 분한 배우들은 무대 위에서 직접 조명의 큐나 조도를 조절하고, 타이밍에 맞추어 음향을 넣는 등 회상 장면을 주도적으로 만들어 나간다. 통상적으로 무대 뒤에 감춰져 있으리라 생각하는 기기의 조작 영역까지 극 안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사형을 앞둔 뤼순 감옥이라는 공간이 주는 무거운 압박감을 단숨에 환기한다.
기꺼이 반복하는 실패,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 연극은 안응칠이라는 한 인간의 실체에 다가가려고 애쓰는 하나의 워크숍이다. 메타연극적인 형식을 차용하여 관객이 감정적 동화에서 빠져나와, 무대 위에 등장한 '창작진'들과 함께 어떻게 역사를 기억하고 해석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기록과 기억만으로 한 사람의 실재에 온전히 가닿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타인의 삶을 무대 위에서 완벽히 재현하려는 시도는 필연적으로 실패를 품고 있다.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자기 자신'을 온전히 재현하는 것조차 어려운 일인데, 타인을 재현한다는 것은 어쩌면 닿을 수 없는 목표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건네고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자진해서 연습실로 들어간다. 이들은 파편화된 기록과 엇갈리는 기억 사이에서 '진짜'를 길어 내기 위해 기꺼이 그 실패를 반복하는 것이다.
연극 <자객열전 Ⅱ - 안응칠 워크숍>이 무대 위로 끌어올린 그 치열한 실패와 탐구의 과정은, 역사가 단지 굳어진 하나의 과거가 아니라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다시 쓰이고 사유되어야 할 현재진행형의 질문임을 증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