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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뤼순의 서른 한 살 청년, '자객열전 2: 안응칠 워크숍'

워크숍이라는 액자를 통해 안중근이라는 거울을 관객 앞에 세워두는 무대

by 이유빈 에디터
2026.08.06 13:02

위대한 영웅의 서사는 언제나 사후적으로 완성된다. 그렇다면 완성된 신화를 걷어내고 남은, 행동하기 직전의 그는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을까. 연극 <자객열전: 안응칠 워크숍>이라는 제목과 마주했을 때 가장 먼저 다가온 감각은 기묘한 낯섦이었다.

 

이는 '안응칠'이라는 본명 뒤에 가려져 있던, 불안하고도 치열했던 한 인간을 그려내려는 의도적인 균열에서 기인한 감각이었다. 그렇게 이 연극은 그가 행동에 이르기까지 겪었을 무수한 번뇌의 시간으로 관객을 초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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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기획은 극중극이라는 워크숍 형태의 메타 구조를 통해 구체화된다. 무대 위 인물들은 안응칠을 연기하는 정돈된 배역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연극을 준비하며 끊임없이 질문하고 토론하는 배우들이다. 그로 인해 관객은 안중근의 완결된 재현을 보는 것이 아니라, ‘안중근이라는 인간에 닿으려 애쓰는 사람들의 분투’를 목격하게 된다. 이 이중의 틀은 처음엔 다소 낯설게 느껴지지만, 곧 이 작품을 관통하는 가장 핵심적인 방법론임을 깨닫게 된다.

 

워크숍 속 배우들은 자료를 검토하고 상충하는 해석들을 날것 그대로 부딪치며 하나의 완결된 장면을 해체하는 동시에 다시 쌓아 올린다. 그들은 어느 순간 안중근을 냉철한 계획가로 그렸다가, 다시 멈추고 논쟁을 벌인 뒤엔 순간의 결단과 울분에 이끌린 인물로 연기하기도 한다. 완성된 안중근을 보여주는 대신, 안중근에 도달하지 못한 채 자꾸 다시 시도하는 사람들을 보여준 것이다.

 

이는 마치 안중근에 대한 논문을 써 내려가는 치열한 과정과도 같았다. 확신을 품고 세운 가설이 다른 사료와의 대치 속에서 무참히 무너지면서도, 그 붕괴된 자리에서 기어이 새로운 가설을 세워내는 것처럼 말이다.

 

'어떻게 그에게 다가갈 것인가'라는 질문 자체를 무대에 올려둔 이 불편하고도 날카로운 형식은, 역설적으로 이 극이 역사적 인물을 제대로 다루고 있다는 증거로 작용한다.

 

이 치열한 되묻기의 시간 속에서 나를 가장 강렬하게 사로잡은 것은 뤼순 감옥에 갇힌 '서른한 살'의 안응칠이었다. 워크숍 속 배우의 입을 통해 그의 나이가 지금 객석에 앉은 나의 나이와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인생의 가장 찬란하면서도 불안한 시절을 지나며 자신 앞에 놓인 생과 사의 선택을 마주해야 했던 한 명의 청년이 눈앞에 서 있었다. 그 순간 내가 바라본 것은 나와 같은 나이에 역사의 무게를 홀로 견뎌내야 했던 실존하는 한 인간이었다.

 

그렇다면 인간은 도대체 무엇으로 인해 자기 삶 전체를 걸면서까지 어떠한 실천에 이르기도 하는가? 단지 '투철한 애국심'이나 '숭고한 신념'이라는 거창한 단어 몇 개로 설명하기엔 한 인간이 품은 내면은 너무나 복잡하다. 그렇다고 '시대적 상황과 소명'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하기에는, 그 엄혹한 시대를 건너며 그가 느꼈을 두려움과 갈등, 개인적 분노와 신앙적 번뇌, 동양평화에 대한 사상적 열망을 지나치게 수동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인간의 행동은 어느 하나의 명확한 이유로만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때 극중극이라는 워크숍의 해체적 형식은 우리에게 한 가지 진실을 확인시켜 준다. 우리가 역사 속에서 '동기'라 부르는 것은, 결국 행동이 남긴 흔적을 더듬어 사후적으로 재구성한 서사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행동은 찰나에 일어나지만, 동기는 언제나 사후적으로, 그것도 잘 짜인 이야기의 형태로 완성된다.

 

사마천이 《사기》 <자객열전>을 집필할 때도 그러했을 것이다. 그는 이미 죽은 자객들의 마음으로 직접 들어갈 수 없었다. 단지 남겨진 기록과 정황이라는 조각들을 이어 붙여 가장 정직하고 처절한 인간의 이야기를 재구성했을 뿐이다. 이 연극 역시 감히 안중근의 마음을 곧바로 재현하려 들지 않는다. 대신 그 마음에 닿으려는 치열한 시도와 필연적인 실패의 과정 전체를 워크숍이라는 정직한 틀 안에 담아낸다.

  

그래서 이 연극이 무엇이었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이건 안중근에 대해 무언가를 설명해 주는 무대라기보다, 워크숍이라는 액자를 통해 안중근이라는 거울을 관객 앞에 세워두는 무대였다고. 그렇기에 극 중 대사 한 줄이 알려준 서른 한 살이라는 숫자와, 객석에 앉아 있던 지금 여기의 서른 한 살이 두 겹의 무대를 사이에 두고 잠시 마주 보았던 시간이었다.

 

그는 총을 들었고 나는 아직 아무것도 들지 않았지만, 그 차이가 신념의 크기 때문인지 아니면 단지 시대가 나에게 그런 선택을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극장을 나선 지금도 나는 여전히 답을 갖고 있지 않다. 다만 어떤 질문 하나를, 무대 위에서 흘러나오던 그 짧은 대사와 함께, 오래 품고 돌아왔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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