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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만화]

만화- 나나

by 문아휘 에디터
2026.09.17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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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비안, 피스톨즈, 세븐스타, 연꽃. 나나가 좋아하는 것은 언제나 한결같아서 변덕쟁이인 제겐 그런 모습도 아주 멋지게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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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은

      만화, 애니메이션 <나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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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나>는 같은 이름을 가진 두 인물의 동거 생활을 중심으로 20대 청춘의 고민, 연애, 욕망을 그려낸 애니메이션이다.

       

      코마츠 나나는 유부남인 아사노와 연애를 하였으나 그의 도쿄 발령으로 손쉽게 관계가 정리되었다는 것에 큰 상처를 받는다. 이처럼 그녀는 밝고 명랑하지만 외로움을 쉽게 느끼고 천덕꾸러기인 여성이다. 그녀는 고등학교 졸업 후  도쿄 미대 입시를 하는 친구들을 따라 성급하게 도쿄 상경을 결정한다. 한편 오사키 나나는 ‘섹스 피스톨즈’라는 밴드를 좋아하는 여성이다. 친구 노부오와 함께 밴드 공연을 보러 갔다가 야스시와 혼죠 렌의 무대를 보게 되고, 이들과 ‘블래스트’의 보컬로 활동하게 된다. 그 안에서 기타리스트였던 렌과 연인 관계로 발전하고 즐거운 생활을 한다. 그러나 도쿄에서 프로 데뷔를 앞둔 '트라네스'가 렌을 스카우트하면서 둘은 생이별을 하게 된다. 처음엔 그를 따라 도쿄로 갈까 고민도 하지만 자신의 능력으로 살고 싶지, 남의 인생을 따라가는 것은 자신 답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노래로 밥벌이를 할 수 있고 내 노래에 자신감이 생겼을 때 도쿄로 가겠다고 생각한다. 나나에게 렌과의 이별은 단순히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따라가면 당장 함께할 수 있지만, 그렇게 했을 때 자신의 삶까지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결국 나나는 렌을 붙잡는 대신 자신의 꿈을 붙잡는다. 좋아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과 그 사람의 삶을 따라가는 것은 다른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1년의 세월이 흘러 둘은 다른 목적으로 같은 기차에 앉아 함께 도쿄로 향하게 된다. 코마츠 나나는 당장 거주할 수 있는 집을 찾아다니던 차에 기차 옆자리에 앉았던 오사키 나나와 재회하게 되고 함께 동거할 것을 제안한다. 오사키 나나는 코마츠 나나를 애칭으로 하치라고 부르게 된다.


      처음에는 단순한 룸메이트였지만 이 관계는 생각보다 빠르게 서로의 삶 깊숙한 곳으로 들어간다. 하치는 도쿄에서 나나의 밴드 결성을 누구보다 열심히 도와주고 그녀의 보컬에 매료되어 인간 나나에게도, 가수 나나에게도 동경과 애정을 느낀다. 하치는 잘하는 것이 있는 것도, 그렇다 할 꿈이 있는 것도 아닌 사람이었고 꿈을 향해 노력하고 무대 위에서 빛나는 그녀를 보며 새삼 나와 그녀는 다른 세상 사람인 것 같다는 괴리를 느낀다. 나에게는 없는 것을 가진 사람, 내가 되고 싶지만 쉽게 될 수 없는 사람을 가까이에서 바라보는 마음. 그래서 나나는 하치에게 친구이면서도 동경의 대상이었고, 때로는 자신은 절대 그녀처럼 멋진 삶을 살 수 없다는 절망을 느꼈다. 하지만 동경은 언제나 조금의 열등감을 함께 데리고 온다. 나나를 좋아할수록 하치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 사람인지, 무엇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인지 더욱 모호해지고 그런 감정은 결국 자신의 삶에 대한 불안으로 이어진다.


      나나가 렌과 재결합하고 하치는 렌이 속해 있던 밴드의 리더이자 하치가 가장 좋아하던 멤버인 타쿠미와도 가까워진다. 하치는 진정으로 사랑받고 싶어 하는 여성이어서 타쿠미와 연애는 아닌 애매한 관계를 이어가게 된다. 하치에게 타쿠미는 단순히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나에게선 채우지 못할 감정의 응어리를 받아줄 누군가였다. 누군가에게 선택받고 있다는 감각은 때때로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보다 더 강한 힘으로 사람을 움직이기도 한다. 그래서 하치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서도 관계를 놓지 못한다. 사랑받고 싶다는 욕망은 너무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그 욕망이 커질수록 오히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잊어버리기도 한다. 하치는 나나를 동경함과 동시에 그녀를 통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자신과 비교하며 정서적으로 끊임없이 흔들리게 되고 생활에 갈피를 잡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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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때부터 두 사람의 관계에는 조금씩 다른 감정이 생겨난다. 나나 또한 하치가 타쿠미와 만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타쿠미가 블래스트였던 렌을 데려간 것도 모자라 하치까지 빼앗아간다는 생각이 들며 누구 하나 완전히 자신의 것이 아닌 것에 쓸쓸함을 느낀다. 나나는 하치를 독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하치에게 더 이상 자신이 가장 가까운 사람이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이 나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나나를 독점하고 싶었던 게 아니야, 나나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을 뿐이지.’


      이 말은 하치의 독백이지만 두 사람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말인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마음보다 더 깊은 곳에는 그 사람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이 있다. 나나에게 하치가 그러했고, 하치에게도 나나는 그러했다. 문제는 상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어느 순간부터 상대의 삶에 내가 차지하는 자리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상대가 나를 얼마나 필요로 하는지 확인하고 싶어지고,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주는 모습을 보면 이유 없이 서운해진다. 연인이라면 관계를 명확하게 정의할 수 있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친구인지 가족인지, 혹은 그보다 더 특별한 것인지 쉽게 이름 붙일 수 없다. 그래서 오히려 서로에게 어디까지 기대해도 되는지 알 수 없다.


      좋아하지만 소유할 수 없고, 소중하지만 붙잡을 명분은 없는 관계. 두 사람의 집착은 이런 애매한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치와 사귀던 타쿠미는 사실 바람둥이였고, 그와의 관계를 정리한 후 블래스트의 멤버 노부와 연애를 시작한 하치를 보며 타쿠미에게 하치를 빼앗기지 않았다고 안심한 나나였지만 얼마 안 가 하치가 타쿠미의 아이를 임신하였으며 함께 살던 방을 빼고 타쿠미와 함께 살게 된다. 그렇게 이 둘의 관계는 절정에 다다른다.


      나나에게 이 소식은 하치를 잃는다는 의미와 동시에 자신이 하치의 삶에서 더 이상 가장 가까운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하치에게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원하는 사랑을 선택했지만 그 선택으로 인해 가장 소중했던 사람과의 생활을 잃게 되고 그녀가 자신에게 실망하진 않았을까 자기혐오에 빠진다. 그러나 서로를 향한 애틋한 감정은 둘은 서로를 누구보다 아끼고 좋아하는 친구가 되어주겠다고 다짐하게 만들고 멀리서 서로를 바라보고 응원하는 관계가 된다.


      오히려 정말 소중한 관계일수록 상대의 삶을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붙잡아둘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그래서 《NANA》를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나와 하치 중 나는 누구에 가까운 사람인지 생각하게 된다. 나나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떠날까 봐 두려우면서도 그 사람을 붙잡기보다는 나의 삶을 선택하고 싶은 순간이 있고, 하치처럼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고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관계 속에서 내가 누구인지 잊어버리는 순간도 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어느 한쪽만으로 살아가지는 않는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하치가 되었다가, 상처받고 싶지 않을 때는 나나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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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나와 하치의 관계를 보면서 떠오르는 것은 결국 ‘시절인연’이라는 말이다. 살아가면서 어떤 사람들은 아주 짧은 시간 동안만 우리 곁에 머무르지만 이상할 만큼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때는 당연히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관계가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끝나기도 한다. 특별히 싸운 것도 아니고 누군가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각자의 삶을 살아가다 보면 더 이상 예전처럼 연락하지 않게 되는 관계가 있다. 그러나 그 시절 서로에게 가장 필요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가 이 둘의 관계에 유독 공감하게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끝난 인연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계속 붙잡고 있는 관계가 있고,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시절이 그리워지는 순간이 있다. 두 사람 관계가 독자들에게 남긴 여운은 지금까지도 나나가 사람들이 계속해서 찾게되는 만화인 이유일 것이다.


      《NANA》는 장기간 연재가 중지되어 이들의 더 깊은 내면과 숨겨진 속 사정을 모두 알 수는 없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의 관계에는 완전히 설명되지 않는 여백이 남는다. 나나의 외로움을 보며 사랑하는 사람이 떠날까 두려웠던 마음을 떠올리고, 하치의 불안정함을 보며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순간을 떠올린다. 내가 지나온 관계들 역시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하나의 시절로 남을 것이다. 모든 인연이 평생 이어질 수는 없고, 그렇다고 끝난 인연이 의미 없었던 것도 아니다. 서로를 너무 좋아하면서도 끝내 서로의 삶을 완전히 가질 수 없었던 두 사람의 관계가, 그 서툴고 어리석음이 가슴이 아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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