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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사람이 일구어가는 미술의 의의 - 세상에 순수한 미술은 없다 [도서]

미술의 '네 번째 탄생'을 이야기하다.

by 정예진 에디터
2026.09.17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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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에 대해 무지했던 나로서는, 미술의 가치는 영구히 보존되어, 미술의 변모라는 중요한 변곡점도 기존 주류의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미술의 가치는 철저하게 바래지 않고 유지될 지라도, 미술이라는 장르를 이끌고 널리 퍼뜨리는 주체는 지속적으로 탈바꿈되고 있었다.


      “우리는 지금 미술의 주체가 ‘인간의 손'에서 '인간의 데이터와 알고리즘의 협업’으로 이동하는 과도기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과거, 사진이라는 결과물은 미술적 가치를 담은 작품이 될 수 없었다. 기계를 통해 찍은 것이 어떻게 예술 작품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수많은 비난이 있었고, 비난을 향한 논리적 반박도 오랫동안 전통적 미술의 흐름을 고수했던 예술가들에 의해 무너지게 되었다.


      하지만 ‘사진’을 통한 결과물은 현재 예술이라는 광범위한 행성에서 하나의 조각으로 크게 각광받고 있다. 과거에는 결코 변모할 수 없을 것 같았던 미술이 조금씩 모습을 달리하며 시대의 흐름에 편승하고, 현재까지 진화되어 왔다.


      미술은 몇 번이고 단절되기도 하고 혁신을 통해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의 눈앞에 등장하기도 했다. 사람은 금세 미술의 등장과 쇠퇴라는 패턴에 적응하고 이를 토대로 자신만의 예술을 가꾸어, 아름다운 작품으로 승화시킨다.


      현재 많은 예술가들은, 21세기라는 혁신적 시대에 걸맞게 본격적으로 프로젝션 맵핑 그리고 가상현실, 증강현실을 활용한다. 이러한 기술을 토대로 ‘회화적 환영’이라는 예술적 경험을 보다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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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답은 없다.


       

      흔히 시장 가치와 미술사적 가치는 동등하지 않다고 한다. 동시대에 두 작품이 월등한 평가를 받았을지라도, 금전적으로 환산되는 경제적 가치는 큰 차이가 있다. 재스퍼 존스의 <깃발>과 앤디 워홀의 작품이 대표적인 예시로, 시장에서의 가치는 앤디 워홀 쪽이 현저히 높다.


      “시장에서만큼은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 색이나 구도 이 잘 어우러지고, 많은 사람이 원하는 바를 갖추었다면 매력적인 작품이라고 지칭하겠습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미술 시장에서 정답은 없다는 것이다. 수많은 이들에게서 여러 가지의 답안이 도출될 뿐이며, 개괄적으로 수학 공식과도 같은 ‘정답’을 표하기에는 미술이라는 방대한 틀을 묵살하게 된다. 이는 미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행위와 별반 다를 바가 없다.


      ‘미술’이라는 광대한 용어를 되짚었을 때,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적으로 떠올리곤 했다. 근래에는 경제적 가치를 중시하는 예술가가 속한 미술적 흐름이 대부분이다. ’이와 같은 예술가가 녹여낸 미술은 ‘진정성’을 내포한다고 정의할 수 없지 않을까?‘라는 문득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색채를 활용하는 방법이나, 경매의 방법, 예술가로서의 꿈을 키우는 과정 등 수없이 많은 것이 변해왔고 미술계에서 ‘상업적 가치’라는 강력한 평가의 기준이 새롭게 뿌리내리고 있다.


      하지만 미술적 가치가 있는 작품만이 그 시대를 대표할 수는 없다. 결국 미술이라는 것은 그 시대의 흐름을 간과하여 도출되는 예술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경제적인 측면 혹은 팬데믹 같은 파급력 있는 사회적 반향과 나란히 하게 된다.


      작품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은 너무 많은 점을 등한시하게 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 그리고 이 시대를 둘러싼 종교와 문화, 교육, 경제 어쩌면 사회적 교류까지 이 모든 것을 한데 통틀어 작품을 해석하는 데 일조해야만 한다. 때로는 그 작은 조각 조각이, 커다란 파문을 일으킬 수 있다.


      이는 책 제목 『세상에 순수한 미술은 없다.』를 관통한다. 미술의 순수성을 고결한 가치로 삼고 작품을 작품 자체로 바라보는 감상만을 이어가는 것은, 아무것도 남지 않은 텅 비어버린 소홀한 비평이 되어버린다. 고전 미술은 태초부터 상업적이었다.


      우리는 미술을 풍부하게 인식하기 위해 작품을 작품 자체로 감상하는 것보다, 시대적 배경이라는 작품의 외부에서 자료를 그러모은다.


      “미술적 가치가 있는 작품만이 그 시대를 대표하지는 않습니다. 상업성을 띠는 작품도 사회적, 경제적 상관관계와 얽혀 미술 생태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씁쓸하지만 미술의 고귀함을 이야기할 때, 순수성의 언급은 철저히 제외되어야 할지 모른다. 르네상스 시대의 미술은 ‘종교’와 서로 깊이 얽혀있었다. 미켈란젤로가 그린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 기운의 <아담의 창조>는 당시 많은 사람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경외감을 불러일으켰고, 이는 결국 신에 대한 경외를 촉진하였다. 과거 르네상스 시대에서 ‘그림’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의 중대한 매개체였다.


      종교와 불가분의 관계였던 미술이란, 부와 막강한 권력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한 왕과 사제, 수많은 권력자들 그리고 신흥 상인계급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로 굳혀졌다. 미술의 순수성이란, 사람의 이기심에 따라 아름답게 포장된 일종의 모순일지도 모른다.

       

       

       

      모습을 달리하는 미술


       

      한 때 굉장히 잘나갔던 전쟁화는 지금 거의 거래되지 않는다. 어떠한 시대를 살고 있느냐에 따라 비싸게 거래되는 작품이 있으며, 혹은 반대로 이전 시대보다 훨씬 값싸게 거래되는 작품도 존재한다.


      시대라는 배경 속에 자리한 다양한 정치, 경제, 문화가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한 작품의 특정한 가치만을 고수하는 것은 빛바래져 왔다. 미술 생태계는 사람이 만들어내고 무너뜨리는 모든 영역에 의해 구축되고 끊임없이 성숙해 간다.


      미술은 혁신적 시도를 통해 더 나은 모습으로 변모할 수도 있는 반면에, 으레 역사가 그러하듯 유사한 양상을 되풀이되기도 한다. 변천하는 역사를 근원으로 두고, 새로운 점을 배우고 수정하면서 예술가는 미술시장의 한가운데에 자리 잡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미술은 전통을 혁신하며 단절하기도 하지만 전통을 존중하며 천천히 진화하는 우리의 마음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미술의 가장 큰 매력은 하나의 커다란 주제를 수없이 많은 양상으로 녹여낼 수 있다는 점이다. 구석기 시대 동물 벽화에서는 당시 사람의 무의식을 현세대 사람이 전해 받아 사고의 폭을 넓혀갈 수 있었다. 또한 이집트 고분과 조각상을 통해서 삶과 죽음에 대한 사유, 내세에 관한 염원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사람은 살아있는 한 죽음이라는 그림자를 꺼릴 수밖에 없다. 죽음은 불완전한 덩어리로 늘 곁에 실재하기 때문에 거부할 수 없는 숙명이 된다. 미술은 죽음을 재현하거나 기억하기 위한 ‘메멘토 모리‘를 지속해 왔다.


      ‘스틸 라이프’라고 일컫는 생명이 멈춘 상태를 그린 정물화는 현세대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죽음의 이치를 깨달을 수 있는 이론적 기반을 마련하곤 했다. 그토록 유명한 고흐의 <해바라기>에서도, 표면적으로 작품 자체만을 감상한다면 아름답게 피어있는 해바라기 정도로 느낄 수 있겠지만 시들어가는 꽃, 완전히 스러진 꽃 그리고 피어나는 꽃, 활짝 핀 꽃이라는 각기 다른 것이 조화를 이룬다. 죽음이라는 숙명이 담겨 있는 ’스틸 라이프‘를 가늠할 수 있는 것이다.


      과거 미술은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다. 앞서 언급하였듯, 신흥 상인은 대체로 많은 미술 작품을 사들이기 바빴으며 높은 권력을 차지한 지배층은 모두 자신들의 세력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미술을 적극 활용하였다. 종교의 경외심 또한 그러했다.


      더 이상 미술은 부유층과 밀접하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부유층만이 예술적 가치를 누리고, 상업적 가치를 향상하는 등 미술의 발전 자체를 좌지우지하지 할 수는 없다. 현대의 미술은 전시회 관람 등 사람을 주도적으로 모이게 하고, 머물게 하며, 수없이 많은 감상평을 생산하게 한다.


      자기 PR이 중요한 시대의 흐름에 따라, SNS의 발달로 불특정 다수의 사람은 스스로를 증명하고 차별화하기 위해 미술을 향유한다. 개개인의 미적 관점을 확고하게 보듬을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하자, 미술은 가치표현의 세련된 수단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미술의 순수성이란 지나치게 축약된 한 줌의 조각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렇기에 사라져도 변함이 없고, 이러한 조각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미술의 실체에 대한 부정과 나무만을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좁디좁은 시야로 이어진다.


      미술의 순수성은 없었고, 먼 훗날에도 없을 것이다. 사람 한 명 한 명이 미술에 관하여 바라는 안목과 몇 번을 다듬어서 조각낸 통찰이 깃든 신념만이 미술의 진화를 추진하고, 미술의 세계에서 넘칠 정도로 흘러나오는 철학이라는 관념을 체화할 수 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말처럼 인간의 삶은 유한하지만,

      작품은 남아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생산하고, 개념을 완성하고, 해석을 불러일으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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