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페스티벌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일까.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공연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것도 물론 좋지만, 평소라면 찾아 듣지 않았을 음악을 우연히 마주하고 전혀 다른 분위기의 무대를 자유롭게 즐길 수 있다는 점 역시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사운드 플래닛 페스티벌은 지난해 롤링홀 개관 30주년을 기념해 처음 개최된 음악 페스티벌이다. 올해는 ‘My Sound, My Planet’을 슬로건으로 9월 5일부터 6일까지 양일간 인천 파라다이스시티에서 열렸다. 총 5개의 실내외 스테이지에 약 70팀의 뮤지션이 참여해 각기 다른 장르의 음악을 선보였다.
Young K, YB, CNBLUE 등이 오르는 메인 야외 무대 ‘사운드 플래닛 스테이지’를 비롯해 쏜애플, 솔루션스 등 강한 록 사운드를 만날 수 있는 ‘사운드 캠프 스테이지’, 어반자카파, 장범준, 적재 등 조금 더 감성적인 음악을 중심으로 구성된 야외 ‘브리쎄 스테이지’가 운영됐다. 여기에 디어클라우드, 이바다, 고고학 등 자유분방하고 독특한 색깔의 뮤지션을 만날 수 있는 실내 ‘크로마 스테이지’, 롤링홀의 신인 발굴·육성 프로젝트 ‘CMYK’를 통해 선발된 인디 뮤지션과 싱어송라이터의 공연이 펼쳐지는 ‘CMYK 스테이지’까지 더해졌다.
이번 페스티벌은 토요일에 방문했는데, 평소 보고 싶었던 아티스트가 라인업에 많이 포함돼 있어 공연을 보기 전부터 기대가 컸다.
한낮의 CNBLUE부터 노을 속 YB까지
메인 무대인 사운드 플래닛 스테이지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공연을 꼽는다면 CNBLUE와 YB였다.
CNBLUE는 다른 페스티벌에서 공연을 한 번 본 적이 있다. 당시 무대에서 느꼈던 에너지가 워낙 좋아 언젠가 다시 한번 보고 싶다고 생각을 했는데, 이번 사운드 플래닛 페스티벌에서 다시 만나게 됐다.
공연 시작은 오후 3시 30분. 한낮의 더위가 가장 강하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그런데도 무대 위 에너지는 조금도 지치지 않았다.
CNBLUE를 떠올리면 ‘에바뛰(에브리바디 뛰어)’를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쉴 틈 없이 관객을 향해 “에바뛰!”를 외치고, 관객을 뛰게 만들고, 그렇게 돌아온 호응을 다시 에너지 삼아 열정으로 무대를 가득 채운다. 이전 공연에서도 느꼈지만, 관객들과 함께 호흡하고 노는 ‘공연’이라는 특성을 잘 이해하는 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무대 자체를 정말 좋아하고 즐긴다는 것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날 가장 기다렸던 무대는 단연 YB였다.
어렸을 때부터 노래를 좋아해 언젠가는 꼭 한 번 현장에서 공연을 보고 싶었던 아티스트 중 하나였다. 그만큼 기대가 머리끝까지 차 있었는데, 막상 공연을 보고 나니 그 기대마저 넘어설 만큼 전율과 감탄으로 가득한 무대였다.
YB는 등장부터 관객을 압도했다. 무대에 올라 한마디를 뱉는 순간부터 특유의 야생동물 같은 아우라와 장악력이 느껴졌다. 마침 공연이 시작될 무렵 노을이 지고 있었는데, 그 시간대의 풍경과 록 사운드가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공연이 진행될수록 하늘은 점점 짙어졌고, 그만큼 무대도 함께 깊어지는 것 같았다.
강렬한 록 사운드를 지나 ‘박하사탕’, ‘나는 나비’처럼 익숙한 곡들이 이어지면서 분위기는 점점 고조됐다. 그리고 완연하게 어둠이 내려앉은 뒤 들려온 ‘흰수염고래’는 앞선 무대와는 또 다른 분위기를 만들었다. 노을에서 밤으로 넘어가는 시간과 음악이 자연스럽게 맞물리는 순간. 그 풍경까지 더해져 더욱 잊기 힘든 무대가 됐다.
서로 다른 음악의 색깔을 가진 다섯 개의 스테이지
이번 페스티벌에서 특히 좋았던 점은 다섯 개의 스테이지가 단순히 공연 장소만 다른 것이 아니라, 각각의 음악적 색깔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인천공항에서 셔틀을 타고 파라다이스시티에 도착해 공연장으로 걸어갈 때부터 CMYK 스테이지의 음악이 들려왔다. 아직 본격적으로 입장하기도 전인데 음악이 먼저 관객을 맞이했다. CMYK 스테이지는 신인 인디 뮤지션과 싱어송라이터를 만날 수 있는 개방형 무대로, 페스티벌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공간처럼 느껴졌다.
적재와 장범준의 공연을 보기 위해 찾았던 브리쎄 스테이지는 또 다른 분위기였다. 잔잔하고 감성적인 음악을 중심으로 조금 더 여유롭게 공연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적재의 섬세한 기타와 편안한 보컬은 야외 공간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졌고, 장범준의 익숙한 노래들은 저마다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며 분위기를 한층 달궜다.
실내에 마련된 크로마 스테이지로 들어가면 분위기가 또 완전히 달라진다. 크로마 스테이지에서는 W24의 무대를 봤는데, 야외 페스티벌을 즐기다 갑자기 홍대의 어느 클럽 공연장으로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라 색달랐다. 하나의 페스티벌 안에서 이렇게 가지각색의 무대가 펼쳐지고 있다는 점이 특히 크로마 스테이지에서 느껴졌던 것 같다.
어느 스테이지냐에 따라 전혀 다른 공연장을 찾은 것처럼 분위기가 바뀐다는 것. 강렬한 록부터 감성적인 싱어송라이터의 음악, 개성 강한 인디 음악까지, 다섯 개의 스테이지를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각기 다른 음악의 색깔을 찾아다니는 과정인 페스티벌이었다.
이름 그대로, ‘사운드’ 페스티벌
페스티벌의 이름이 ‘사운드 플래닛’인 만큼, 만족스러웠던 부분 역시 사운드였다.
야외 공연은 공간 특성상 소리가 퍼지거나 음질이 깨져서 음악의 디테일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때가 있다. 현장의 열기는 좋은데 정작 공연 자체의 소리는 아쉽게 들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번 페스티벌에서는 야외 스테이지에서도 밴드의 악기와 보컬 소리가 잘 전달됐고, 덕분에 관객의 함성이나 현장 분위기, 실제 공연의 사운드까지 어우러지는 무대를 즐길 수 있었다.
실내와 실외 스테이지가 함께 운영되면서 각각의 공간에 어울리는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야외에서는 넓게 퍼지는 밴드 사운드와 함께 페스티벌 특유의 개방감을 즐기고, 실내로 들어가면 보다 밀도 높은 사운드와 클럽 공연 같은 분위기를 만날 수 있었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한자리에서 만난다’는 페스티벌의 특징이 단순히 라인업에만 머무르지 않고 공간과 사운드에서도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었다.
기다리는 시간까지 공연이 되는 타임테이블
사실 페스티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래도 아티스트와 동선, 타임테이블이다. 보고 싶고 궁금한 아티스트가 많아야 페스티벌에 관심이 생긴다. 반대로 아무리 보고 싶은 아티스트가 많아도 공연 시간이 지나치게 겹치거나 스테이지 사이를 이동하기 어렵다면 그 아쉬움은 페스티벌 전체에 대한 평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사운드 플래닛 페스티벌의 타임테이블은 꽤 만족스러웠다.
한 스테이지에서 다음 공연을 준비하는 데 약 30분 정도의 세팅 시간이 있었는데, 그 사이 다른 스테이지의 공연이 마치 테트리스처럼 맞물려 있었다. 무대 세팅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대신 다른 공연장으로 이동해 새로운 무대를 보고, 다시 원래 보고 싶었던 스테이지로 돌아오는 식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러한 구조 덕분에 보고 싶던 아티스트의 공연만 보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스테이지 사이를 이동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다른 아티스트와 음악을 만나게 됐다. 어쩌면 이런 운영 방식이 ‘사운드 플래닛 페스티벌’이 추구하는 음악적 가치를 보여준 것이 아니었을까.
롤링홀은 인디 음악씬의 성장과 활성화를 위한 플랫폼으로서, 신인 인디 뮤지션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이어왔다. 여러 장르의 음악과 새로운 뮤지션을 발견하게 하는 이번 페스티벌의 운영 역시 이러한 롤링홀의 방향성을 페스티벌만의 재미로 잘 풀어낸 것 같았다.
다양한 무대와 각기 다른 분위기, 짜임새 있게 맞물린 타임테이블, 그리고 무엇보다 이름에 걸맞게 좋았던 사운드까지. ‘My Sound, My Planet’이라는 슬로건처럼, 좋아하는 음악을 따라 나만의 행성을 찾아다니는 하루였다. 그리고 그 사이 미처 몰랐던 또 다른 음악의 행성을 발견할 수 있었던 페스티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