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샤의 집』은 마치 잔잔한 여행 다큐멘터리처럼 이야기가 펼쳐진다.
"지금부터 타샤의 집을 소개합니다"라는 내레이션이 들리는 듯한 분위기. 사진과 글이 어우러져 마치 타샤 튜더의 공간을 영상으로 감상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집과 그녀의 삶을 서술하는 글에는 그녀의 삶에 스며든 따뜻함으로 채워져 있었다.
건물에 사람의 성격이 배어난다는 말이 있다. 『타샤의 집』은 그 말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소박하고 아기자기하지만 단단한 느낌, 섬세하지만 자기만의 고집이 묻어나는 집. 그런 집에서 살았기 때문에, 타샤는 동화작가가 되었던 걸까. 그런 삶을 살았기에 동화보다 더 동화 같은 이야기를 남길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타샤 튜더는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동화 작가이자 화가다. 사실 이번 책을 통해 처음 그녀를 알게 되었지만, 글과 사진만으로도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감성을 지녔는지를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었다.
타샤는 모든 것을 손수 만들어간다. 잿물을 저어 만든 세탁 비누, 밀랍을 녹여 만든 향기로운 양초, 해마다 으깨어 담근 병조림, 그리고 손수 바느질한 평상복까지. 정원, 생활, 음식, 의복 그 어느 하나 그녀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이 없다. 그렇게 그녀는 자신만의 삶의 방식과 루틴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이런 삶을 보며 생각했다.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해나가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고요한 단단함. 타샤는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는지를 알았던 사람이다. 그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살아가는 공간을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나가는 것. 그녀의 삶은 그 단순하지만 분명한 진실을 보여준다.
책 『타샤의 집』 p.194
복잡한 도시 속 바쁜 현실을 보내다 보면, 지금 이 순간을 벗어나 조용한 곳으로 떠나고 싶은 충동이 든다. 사람 많은 지하철역, 시끄러운 알림들, 해야 할 일이 쌓인 메모들 속에서 문득 도망치고 싶어진다. 『타샤의 집』은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마다 상상 속으로 그려왔던 공간을 그대로 옮겨둔 것 같았다.
나는 늘 이런 공간을 꿈꿨다. 어느 한적하고 조용한 동네 속 뒷산을 배경으로 나무와 꽃이 어우러진 오두막. 은은한 바람에 꽃 내음이 담기고, 새소리가 배경음처럼 잔잔히 깔리는 공간. 그곳에서 책을 읽고, 음식을 만들고, 글을 끄적이고. 그렇게 ‘아무 일도 아닌 일’을 하며 머물고 싶은 공간. 책 속의 집은, 내가 오랫동안 상상해왔던 ‘떠나고 싶은 곳’과 닮아 있었다.
나는 요즘,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쉽게 떠올리지 못한다. 바람 앞의 등불처럼 흔들리며,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그런 내게 이 책은 묘한 위로를 건넸다. 행복이란 결국 복잡하지 않다는 것. 남에게 보이기 위한 삶이 아니라, 내가 나를 아끼는 방식이 삶을 따뜻하게 만든다는 것.
책 속에는 타샤의 삶의 태도를 엿볼 수 있는 문장들이 곳곳에 배어 있다.
- "타샤는 유용한 쓰임새가 없는 장신구나 물건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녀는 늘 용도에 맞게 바구니를 사용하고, 따라서 바구니를 소중히 여긴다."
- "아무리 바쁜 일이 있더라도, 방금 어디 다녀오는 길이든 어디 갈 예정이든 티타임을 잊는 법이 없다."
이런 문장을 읽으며 떠오른 장면이 있다. 예전 <홍김동전>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홍진경이 했던 말이다.
“저를 우습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정말 많을 거에요. 그런데 저는 제가 다른 분한테 우습게 보이던 아니던 사실 이런식으로 자존감을 갖는 편이에요. 남한테 보여주는 자동차, 옷, 구두보다도 혼자 있는 거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제가 늘 베고 자는 베개의 그 면, 내가 맨날 입을 대고 먹는 컵의 디자인, 내 집의 정리 정돈, 여기서부터 자존감이 시작되는 것 같아요.”
그 말처럼, 진짜 자존감은 남이 아닌 나를 대하는 태도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남들의 보기에 좋은 삶이 아닌, 내가 나를 아끼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삶. 그런 일상들로 채워가는 것이 비로소 행복에 가까워지는 길이라는 것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이 내용이 책 『타샤의 집』 속 타샤가 삶에 대해 가지는 태도와도 깊게 맞닿아 있다는 걸 느낀다.
작은 물건 하나, 짧은 티타임 하나에도 깃든 그녀의 애정과 단정함은 우리가 삶을 대하는 방식에 대해 조용한 질문을 던진다.
책 『타샤의 집』 p.49
『타샤의 집』은 어쩌면 우리 모두가 한 번쯤 꿈꿔봤던 삶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현실적이지 않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은 조용히 이야기한다. 당신의 속도대로 살아도 괜찮다고. 바쁘지 않아도, 거창하지 않아도, 화려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누군가에게는 그저 예쁜 집 이야기일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이 삶에서 잠시 길을 잃은 사람에겐,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작은 실마리를 건네주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