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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YOURSELF: 承, 轉, 結 |
화양연화와 윙즈 시리즈에 이어 2018년 4월, 방탄소년단은 또 다른 대규모 연작 앨범 ‘LOVE YOURSELF’ 시리즈의 시작을 알렸다.
앨범 발매 이전 공개되었던 ‘Boy Meets WHAT’ 이라는 문구를 통해 예고되었듯, LOVE YOURSELF 시리즈는 WHAT의 각 철자에 대응하는 단어를 타이틀로 삼아 사랑의 기승전결을 각각 하나의 앨범으로 치밀하게 엮어냈다. 앨범의 시작을 알리는 단편 필름 ‘LOVE YOURSELF 起 : WONDER'에는 화양연화에서부터 시작되어 윙즈를 거쳐 이어진 세계관과 서사가 담겨 있다.
LOVE YOURSELF 시리즈의 첫 발을 뗀 앨범 ‘LOVE YOURSELF 承 : Her'는 사랑의 기승전결 중 승, 다시 말해 애정이 무르익고 세상이 경이로 차는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을 다양한 시선과 가사로 녹여낸 곡들을 담고 있다.
첫 번째 트랙인 ‘Intro: Serendipity’는 페니실린의 푸른 곰팡이, 즉 단 한 번의 우연한 발견으로 세상이 뒤집히는 순간에 빗대어 ‘나의 세상을 뒤집히게 만든 너라는 존재와의 마주침'을 노래한다. ‘보조개’에서는 상대의 사소하기 그지없는 보조개에마저 절대적 인력으로 이끌리게 되는 마음이, ‘Best Of Me’에서는 ‘네게 다정한 파도이고 싶었지만 정작 네가 바다인 걸 왜 몰랐을까’라고 말해야만 하는 마음이 드러난다.
그 외에도 완벽하게만 느껴지는 상대의 앞에서 스스로의 민낯을 감추게 되는 애정을 담아낸 ‘Outro: Her’, 앨범의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강렬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MIC Drop’ 등 다양한 곡이 타이틀 ‘DNA'를 뒷받침하며 앨범 전체를 유기적으로 아우르고 있다.
또한 LOVE YOURSELF 承 : Her에는 음원사이트에 정식 공개되지 않고 오직 실물 앨범을 통해서만 들을 수 있던 히든트랙이 있다. ‘바다'라는 이름을 가진 이 히든트랙에서는 사막과 바다라는 단어를 통해 여과 없이 직조해낸 날것의 고독 그리고 우울을 엿볼 수 있다.
고통을 노래할지라도 끝내 마지막에는 위안을 담아내는 방탄소년단의 다른 노래와는 달리, 바다인 줄 알았던 이곳은 사막이며 희망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절망이 있다는 말로 끝을 맺는 ‘바다'는 망망대해와도 같은 공허함을 준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기약 없는 공허함은 듣는 이로 하여금 이 근본적인 절망을 아는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구나, 라는 쓰라린 안도감을 준다.
사랑이라는 관념은 벅차오름과 충족감을 선사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지독한 고뇌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전 앨범의 분위기와는 완전히 달라진 LOVE YOURSELF 시리즈의 두 번째 앨범 ‘LOVE YOURSELF 轉 : Tear’는 그런 사랑에서 피어나는 괴로움을 노래하고 있다.
여기에서 논하는 사랑이란 단순히 연애적 감정으로 묶인 사람들 사이의 감정을 넘어서 삶 전반에 걸쳐 체득하는 본질적인 감정이며, 자연히 앨범에서 다루는 ‘사랑으로 인한 괴로움’ 역시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필연적으로 한 번씩은 경험할 수밖에 없는 부적 감정을 섬세한 깊이로 망라한다. 한없이 아끼지만 그래서 더더욱 있는 그대로의 스스로를 내보일 수 없는 심정을 담아낸 ‘전하지 못한 진심’, 줄곧 함께해 오며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믿었던 이들과 갈라서야만 할 때의 감정을 노래한 ‘Outro: Tear’가 그렇다.
수록곡 ‘134340’에서는 관계의 중심에서 밀려나 맞이하게 된 이별을 ‘태양계에서 쫓겨나 이름을 잃은 명왕성’에 빗대어, 천문학적 관념을 지극히 서정적인 가사로 탈바꿈시킨 세련된 가사가 돋보인다.
‘무너진 왕성에 남은 명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us는 u의 복수형일 뿐, 어쩌면 거기 처음부터 난 없었고’, ‘나의 계절은 언제나 너였으며’, ‘아직 난 널 돌고 변한 건 없지만 사랑에 이름이 없다면 모든 게 변한 것’이라는 가사는 계(系)에서 퇴출된 소행성과 관계(關係)에서 퇴출된 약자의 심정을 이보다 더 잘 맞아떨어질 수 없을 만큼의 정교함으로 묶어낸 표현이다.
이 앨범은 복잡하고도 무거운 감정들을 나열하기만 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그 감정들에 종국에는 온기 어린 손을 내미는 메시지까지를 담아내고 있다.
수록곡 ‘낙원'은 ‘세상은 약속과는 다르고 목적지도 없이 숨이 턱까지 넘칠 때까지 달리라 강요하지만, 실은 아무 이유도 모르는 채 달릴 필요 없고 잠시 멈춰서도 괜찮다’라는 말을 전한다. 또 다른 수록곡 ‘Magic Shop'은 ‘진심을 말해도 흉터들로 돌아오고, 힘을 내라는 말은 뻔하지만’, ‘기적 아닌 기적을 만든 것 같은 우리도 실은 모든 것이 두려웠고, 그럼에도 네가 절벽 끝에 서 있던 우리에게 위로가 되어 줬으니 이젠 우리가 네 이유가 되어 주고 싶다’라는 이야기를 전한다.
삶에는 언제나 사랑의 부산물들이 따르며 그 부산물들은 거칠고 혼란스럽지만, 그 부산물들의 종착지는 결국 다시 사랑임을 노래한다는 점에서 앨범의 깊이는 한층 더해진다.
LOVE YOURSELF 시리즈의 대장정은 마지막 앨범 ‘LOVE YOURSELF 結 : Answer’로 피날레를 장식한다. 지금까지의 앨범에서 공개되었던 모든 트랙을 담아 기승전결을 이룬 한 갈래의 이야기는 내 실수로 생긴 흉터까지도 다 나의 별자리라 말하는 ‘Answer : Love Myself'를 통해 온전히 끝을 맺는다.
트랙리스트에는 이제껏 공개된 멤버들의 솔로 곡에 더해 그간 공개되지 않았던 솔로 곡까지 등장했는데, 멤버들의 솔로 곡을 합치면 그 자체로도 기승전결의 흐름이 보인다는 점은 치밀하게 설계된 앨범의 묘미다.
보컬 라인 멤버들의 곡으로 이루어진 ‘Euphoria’, ‘Serendipity’, ‘Singularity’, 그리고 ‘Epiphany'로 이어지는 흐름은 사랑의 시작과 발전, 사랑에 잠식당하는 과정, 스스로를 옭아매는 사랑에서 벗어나 조금 더 궁극적인 형태의 ‘스스로의 삶을 향한 사랑’에 다다르는 모습을 차례로 담아낸다.
랩 라인 멤버들의 곡으로 이루어진 ‘Trivia 起 : Just Dance’, ‘Trivia 承 : Love’, ‘Trivia 轉’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통상적인 사랑의 정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무언가에 깊이 몰입하고 애정을 쏟을 때의 감각, 무언가에 또는 누군가에게 온전히 마음을 내어줄 때의 느낌, 그리고 아끼는 사람들과 더는 관계를 지속할 수 없을 때 차마 먼저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고 속을 끓이는 복잡한 감정을 표현해낸다.
수록곡 중에는 오래전 화양연화 앨범에서 공개되었던 ‘Save ME'의 음원을 역재생한 샘플링에 기반하여 작곡된 ‘I'm Fine'이 포함되어 있다. ‘Save ME'에서 노래했던 가사와 대조를 이루며 ‘네가 있어야만 온전했던 나'에서 ‘나로서 온전한 나’로 거듭나는 과정을 담아낸 ‘I'm Fine'은 그간의 행적을 함께했던 팬들에게 감동을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LOVE YOURSELF 시리즈에 담긴 노력과 고뇌 그리고 무엇보다 깊이 있는 애정은 전 세계에 속속들이 가닿아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데에 성공했다. ‘Trivia 承 : Love’의 가사처럼 진실한 마음과 사랑이 종국엔 ‘모든 모서리를 잠식해, 사람을 사랑으로 만든’ 셈이다.
MAP OF THE SOUL: Persona, 7 |
LOVE YOURSELF 시리즈의 화려한 마무리 이후 세간과 평단은 커리어의 정점을 찍은 것처럼 보이는 이 그룹이 다음으로 들고 나올 신보가 무엇일지에 집중했다. ‘이 무서울 것 없는 상승세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철저히 대중에 영합하는 곡들을 들고 올 것이다’, ‘넘볼 수 없는 입지가 굳어졌으니 이제는 자신들이 하고 싶은 대로 곡을 낼 것이다’ 등의 여러 추측이 오갔으나, 2019년 봄 MAP OF THE SOUL: PERSONA가 처음으로 공개되자 이 추측들은 저마다 반쯤은 맞기도 하고 반쯤은 아니기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온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었다 해도 결코 과장이 아닌 방탄소년단의 새 음악은, 대중의 취향에 부합하는 것도 맞았으며 방탄소년단이 하고 싶었던 대로 그들의 색깔을 낸 것도 맞았으되 근본적으로는 ‘팬들에게 보내는 찬사’였다.
타이틀 <작은 것들을 위한 시>는 거대한 명성의 아티스트 앞에서 스스로를 작은 개인에 불과하다고 느낄지도 모를, 자신이 찬사를 일방적으로 건네는 존재에 불과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를 팬들을 향해 이 모든 것을 뒤집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우리가 하늘을 높이 날고 있는 것은 당신이 준 날개 덕분이라고. 세계의, 거대한, 그 밖의 거창한 수식어들에는 관심이 없으며 우리가 처음부터 원했던 것은 오직 당신과 함께하는 것뿐이라고.
명백한 애정이 느껴지는 가사 안에서 팬들은 더 이상 작기만 한 존재가 아니게 되며, 찬사를 주는 존재에서 찬사를 받는 존재로 거듭난다. 모든 사람은 하나의 별이며 우주와도 같다는 말을 전하는 '소우주', 끝이 보이지 않던 밤 속에서 비로소 ‘네가 내게 아침을 선물했다’라고 말하는
이후에 이어진 정규 앨범 MAP OF THE SOUL: 7에서 방탄소년단 멤버들은, 더 이상 올라설 곳이 없을 것만 같은 최정상의 아티스트이기 이전에 하나의 개개인으로서 지니고 있던 인간적인 감정을 꺼내어 보여준다.
‘나는 달에 불과하고 너는 나의 지구이며, 너는 나를 아름답다 하지만 정말 아름다운 건 너’라고 말하는, 팬들을 향한 마음 (‘Moon’). 하교 버스를 타고 다니던 시절부터 함께 드라이브를 나가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함께한 멤버들이 서로를 향해 건네는, 일곱 번의 여름과 겨울보다 더 오랜 시간을 곁에 머물러 달라는 말 (‘친구’). 너무도 빨리 이 자리까지 올라왔지만 도리어 그래서 자기 자신도 모르게 커 버린 어린아이 같은 기분이 든다는 고백 (‘시차’). 숨 가쁘고 힘겹고 버겁기만 한 순간들이 기적처럼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하루가 끝나는 그 순간만큼은 잠시 스스로를 다독여 본다는 위로까지 (‘00:00’).
더불어 랩 라인 멤버들이 솔로로 들고 나온 3개 트랙은 카를 융(Carl Jung)의 분석심리학적 개념을 상징적으로 활용한 점이 돋보인다. 융의 이론에서 제시되는 자아 구성의 핵심 개념인 Persona, Ego, Shadow가 각각 하나의 트랙 제목이 되어 곡 안에 담긴 이야기를 절묘하게 함축해낸다. ‘Interlude : Shadow'의 경우 곡의 진행 방식 역시 카를 융이 제시하는 Shadow의 개념과 상통하는 부분이 있어, 이 사실을 알기 전과 후의 음악적 감상이 한결 달라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지면에 모두 담지 못할 만큼 많은 곡이 앨범 안에 담겨 있지만, 앨범의 정체성을 하나로 요약한다면 ‘We are Bulletproof : the Eternal'을 들 수 있다. 가진 것은 꿈밖에 없어 눈을 뜨면 뿌연 아침뿐이었던 과거, 기나긴 아픔과 겨울을 지나왔음에도 길었던 겨울 끝에 온 게 정말 봄인지 확신할 수 없는 지금,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가 있어 우리는 더 이상 일곱이 아니니’ 다시 겨울이 온대도 앞으로 걸어가겠다는 가사는 지금까지의 방탄소년단이 걸어온 길과 어쩌면 앞으로 걸어갈 길을 있는 그대로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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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었던 공백기를 지나 방탄소년단은 어느덧 정규 5집의 발매를 앞두고 있다. 또 다른 앨범이 세상에 공개되었을 때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어떤 결과를 낼지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일이지만, 파형(波形)을 짐작할 수 없을지언정 파고(波高)는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을 수 있다.
오랜 사막에서의 헤맴 끝에 도달한 이곳은 바다가 분명하고, 새롭게 등장할 앨범은 누구라도 높지 않다고는 말하지 못할 거대한 파도를 일으키리라는 예상을 하며 다가올 봄날을 기다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