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소개를 쓰겠다고 호기롭게 나섰다. 학생 때도 나에 대해 쓰는 것은 나름대로 잘하는 편이기도 했고,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적어도 분량을 채우는 것에 있어선 자신이 있었으니까. 여전히 속에는 하고 싶은 말들이 많으니 잘 꺼내어 다듬기만 하면 이번에도 쉽게 쓸 수 있지 않겠느냐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러나 노트북 앞에 앉았을 때, 조금 (많이) 후회했다. 덩어리진 것들을 꺼내려고 애쓰다 보면, 자꾸 스스로 만든 벽에 부딪혀 튕겨 다시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이 글을 쓰겠다고 다짐하자마자 떠오르는 '아, 이래서 요즘 에세이를 못 썼지!'라는 기억. 결국 몇십 번을 뒤엎었다가 이렇게 써보기로 한다.
Ⅰ.
사실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를 뿐, ‘어떻게’ 써야 할지는 안다. 자신을 소개할 때는 ‘자아, 정체성’이 담겨야 하고, 그 정체성이란 나를 설명할 때 결코 빠질 수 없는 조각들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누구에게나 끝내 부서지지 않을 한 조각의 마음이 언제까지고 남아 있으리라는 걸 아는 것, 그 조각을 쥐고 저도 갈 수 있을 때까지 가보려고 합니다.”
- <파과>, 구병모 작가의 말
문화예술과 그것을 세상에 내놓는 소통은 언제나 나의 큰 조각이었다. 어쩌면 나 자신보다도. 그 사실이 너무나도 당연할 정도였다. 힙합부터 클래식까지 모든 음악을 귀에 달고 살았고, 첫 무용 공연을 본 이후로 현대무용과 발레도 본격적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미술과 글쓰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
지금처럼 기록의 형태로 남기기 전엔 ‘그림’을 그리며 ‘창작하는 나’가 더 크고 중요한 조각이었다. 초등학교 미술 시간에 과자봉지를 스케치해 채색하던 순간이나, 더 거슬러 유치원 때 불만족한 그림을 수습해 보겠다고 종이를 가져와 잘라 붙이던 열의가 왜 자꾸 기억 끝에 맴도는 것인지. 더 나아가 중학생 때는 이제 진짜 직업인으로서 미술을 해야겠다 싶어서 입시 미술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하루에 3시간, 길면 6시간 동안 붓을 잡고 연필을 깎고 팔레트를 닦고 구도를 고민하는 시간이 행복했다.
계속해서 미술을 할 줄 알았는데, 그러지는 못했다. 거창한 사유는 없었고 그저 때가 되면 다시 붓을 잡을 줄 알았는데 그렇게 되지는 않더라. 그 안일함인지 뭔지 모를 것 때문에 과거부터 성인이 되어서까지도 미술에 대한 결핍이 꽤 심했다. 다행이라면 다행인 것은, 앞서 말한 것처럼 미술이란 큰 조각 근처에는 다른 예술 조각들도 많았고, 창작뿐만 아니라 향유도 즐겨 했다는 것.
Ⅱ.
19년도 첫눈이 오던 서울, 두산아트센터에서 첫 뮤지컬 인생작이 되어준 <팬레터>라는 작품을 만났다. 좋아하는 이유를 자세히 말할 순 없지만, 살아온 인생과 나 자신을 관통하는 예술이라 마음이 쓰였다. 해당 작품을 보고 넘버들을 들으면서 용기를 얻었고, 세훈처럼 잘못을 고백하고 사과할 수 있었다. 조금은 솔직하게 자신을 직면하는 사람으로 변화하기도 했다. 그때부터 예술을 ‘믿었다.’ 이후로도 나를 이해해줄 예술을 찾아 부지런히 보고 썼다. 좋은 예술들을 많이 만났다. 말하자면 끝도 없을 정도로 울고 웃으면서, 단단해지는 내가 꽤 마음이 들었다.
“그날 내 옥상문을 열어줘서 고마웠어.”
- 연극 <유원>의 유원 대사 중.
수직 낙하하여 일어나지 못할 순간에도 예술만큼은 나의 편이 되어주었다. 힘든 시기를 어떻게 버텼냐고 물으면 음악이 떠오르고, 결정적인 순간을 어떻게 이겨냈느냐고 묻는다면 연극이라 답할 것이다. 바로 그때 연극<세일즈맨의 죽음>을 보고, 뮤지컬 <시지프스>의 뫼르소 독백을 보고 경탄하며 그 배경이 된 카뮈의 소설 <이방인>을 읽었다. 나의 닫힌 마음의 문은 그것들을 접하며 기적적으로 열렸다. 타인의 기대에서 벗어나 스스로 길을 찾아가는 ‘비프’와 부조리 속에서 삶에 대해 생생한 자각을 하는 ‘뫼르소’를, 나는 <팬레터>의 ‘정세훈’만큼이나 딱 필요한 시기에 만났던 것이다.
<팬레터>, <세일즈맨의 죽음>, <이방인>이라는 ‘세 조각’은 예술이 사람을 구원할 수 있음을 확신하게 해주었다. 나 역시 구원받았으므로. 그리고 계속해서 공연에 대한 글을 쓰는 이유에도 그 경험이 담겨있다. 나는 나를 살린 예술이 다른 이들에게도 의미 있게 다가갔으면 한다는 마음으로 쓴다.
Ⅲ.
“구원은 셀프”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사실 그 말에 누구보다 동의하지만 동시에 누구보다 싫어하기도 한다. “구원까지 바랄 사람이 ‘셀프’로 그게 가능했다면 애초에 그러고 있겠냐”라는 다소 삐딱한 반문이 자동응답처럼 마음속에서 이루어질 때가 많다. 그러나 알고 있다. 내가 아닌 외부에 구원의 전부를 맡겨버리는 것만큼 구원으로부터 멀어지는 길은 없다는 것을.
“이것이 나의 전부는 아니다. 지금 난 영화를 너무 사랑하지만 언제든지 우린 이별할 수 있고 그것에 대해서 상실감을 갖지 말자.”
- <씨네21> 1321호, '김혜리의 콘택트' (구교환) 인터뷰 중
구교환 배우의 ‘영화’가 내게는 각종 예술을 의미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연극과 뮤지컬처럼 그 순간에 만나 평생을 가는 공연들은 참 소중하다. 그런데도 체력적으로, 심리적으로 몰아붙이다 보니 꽤 힘들어서 문득 두 달 정도 관극을 쉬었다. 일주일에 세 번까지도 보던 것을 한 달에 0~1번으로 줄였다. 멍때리는 시간이 늘어난 것 외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연극을 공부하고 연극을 사랑하지만, 이것이 내 삶의 전부가 아니며 그렇게 두어서도 안 된다는 생각을 ‘제대로’ 해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어느 시점부터 깨달았다. 예술로는 나를 전부 설명할 수가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는 것을. 예술은 삶에 도움이 되는 동반자이지, 내 삶을 살아주는 존재가 아니다. 내가 주체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자, 벌떡 일어나 나의 의지로 ‘나의 것’을 찾기 위해 애써보게 되었다. 조금 더 건강하게 좋아하는 일을 해보려고 한다. 후회 없이 나의 예술을 사랑하되 그것과 나를 동일시 하지 않기로, 얽매이지 않기로. 내 삶의 중심에 예술이 아닌 ‘나’를 둔 채로 말이다. 그리고 이제 나의 글쓰기는 연극을 보는 관객뿐만 아니라 창작진들에게로 향한다. 단순한 관객을 넘어 관객과 창작진 사이에서 소통을 돕고, 창작을 응원하는 동료가 되고자 한다.
Fin.
언제나 나를 대신 설명해 줄 무언가가 있었다. 주로 예술이었고, 고맙고 사랑하는 인연이었고, 어떤 글이기도 했다. 그 존재에 대해 이렇게 꺼내어 놓는 것조차 내게는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최선을 다해, 용기를 내어 ‘예술을 사랑하는’이라는 수식어를 가져와 지나온 '나'를 소개했다.
잘 살고 싶고, 잘 쓰고 싶다. 공연예술을 진지하게 공부하고 글을 쓰면서 그 마음은 더 커져 왔다. 살아오면서 스스로 정체성을 정의하는 방식도, 그 내용도 많이 변해왔다. 돌이켜보면, 나라는 존재는 확정된 순간보단 단단하게 정해질 순간을 바라보며 흔들리던 순간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 내 앞의 수식어는 앞으로 바뀔 것이고, 당연히 살아가면서 바뀌어야만 한다. 그것은 ‘예술을 사랑하는 나’를 부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 수식어에 집착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의 나에게 건강하게 나를 사랑하고 정의하는 방식은, 거창해지지 않고 그저 하루하루 하고 싶은 것들을 해내며 살아가는 것이다. 세상 앞에 꾸미지 않은 나를 내놓고, 마음을 담은 글을 내놓고, 진솔한 대화를 기대하는 말을 내놓으면서. 이 글에서 선언하자면 내 앞의 수식어는 이제 없다. 나는 나를 다른 어떤 것도 아닌 ‘나’로 설명하고 소개하기 위한 방법을 찾을 것이다.
여전히 무언가로 나를 설명하는 것이 관성이 된 탓에, 덕분에 앞으론 ‘자기소개’를 쓰기가 많이 어려워질 것이다.
그러나 후회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