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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2020년대 멜로드라마 속 질병과 사랑 [드라마/예능]

멜로드라마 서사의 변화와 현대인의 욕망

by 김한비 에디터
2026.09.11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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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죽음을 넘어서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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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를 살펴보면 당대 사회의 변화와 현대인의 욕망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최근 드라마에서 질병을 가진 주인공이 등장하는 방식은 과거와 다른 모습을 보인다.

       

      2024년에 방영된 <눈물의 여왕>과 <엄마친구아들>의 여성 주인공들은 불치병과 그에 준하는 암 질환을 경험하지만, 결국 이를 극복하고 사랑의 결실을 맺는다. 물론 시한부 주인공을 내세운 신파 멜로드라마는 이미 20여 년 전부터 존재했다.

       

       

      신파 멜로드라마는 “한 사람의 죽음이 예정되어 있는 상황, 두 남녀의 진한 사랑과 행복한 한 때를 보여주는 장면,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는 장면 등의 반복되는 관습을 가지며, 이에 속하는 작품으로는 <내 머리 속의 지우개>(이재한, 2004), <너는 내 운명>(박진표, 2005), <내 사랑 내 곁에>(박진표, 2009) 등을 꼽을 수 있다."

       

      윤성은, "한국 멜로드라마의 변형 양상 및 요인에 관한 연구 - 2000년대 이후의 작품을 중심으로", 2012

       

       

      그러나 과거의 멜로드라마에서 질병이 사랑의 비극을 완성하는 장치였다면, 최근의 드라마에서 질병은 오히려 사랑의 힘을 증명하는 장치가 된다. 죽음이라는 한계를 극복함으로써 사랑의 결실을 더욱 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변화는 남성의 구원 방식에도 나타난다. 과거 멜로드라마의 남성이 부와 능력, 사회적 지위를 통해 여성을 구원하는 존재였다면, 최근의 남성 주인공은 그러한 경제적 능력보다 변하지 않는 마음과 다정함을 통해 사랑을 증명한다.

       

      이는 멜로드라마가 보여주는 이상적인 사랑의 모습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랑의 대상에게 필요한 것은 더 이상 막대한 부나 높은 사회적 지위만이 아니다. 오히려 힘든 순간에도 곁을 지키고, 상대의 취약함을 받아들이며, 관계를 쉽게 포기하지 않는 견고한 사랑이 더욱 중요한 가치로 제시된다.

       

       

       

      2. 신체적 질환에서 정신질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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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한 변화는 정신질환을 가진 주인공의 등장에서도 이어진다. 최근에는 ‘외모정병’(외모+정신병을 의미하는 인터넷 신조어), ‘멘헤라’(멘탈헬스(メンヘル)+er을 의미하는 일본의 인터넷 신조어), ‘성인ADHD’ 등 정신건강의학과와 관련된 단어들이 10대와 20대 사이에서 비교적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있다.

       

      과거에는 정신질환이라는 말 자체가 무겁고 숨겨야 할 것으로 받아들여졌다면, 이제는 인터넷과 대중문화 속에서 일상적인 언어로 [그러나 너무 가볍게] 소비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정신질환에 대한 수용은 멜로드라마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사이코지만 괜찮아>(2020), <다 이루어질지니>(2025), <이 사랑 통역되나요?>(2026), <오늘도 매진했습니다>(2026) 등에서는 정신적 상처나 질환을 가진 여성 주인공이 등장한다.

       

      특히 <다 이루어질지니>의 여성 주인공은 <사이코지만 괜찮아>의 여성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지닌 인물로 묘사되며, 두 작품 모두 사랑을 경험하면서 진정한 감정을 깨닫고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주목할 점은 정신질환이 더 이상 극히 예외적인 인물의 특성으로만 다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격장애나 수면장애와 같은 문제들이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에게도 자연스럽게 부여되고, 그것을 가진 인물이 사랑하고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이 하나의 서사로 받아들여진다. 이는 정신질환이 우리 사회에서 이전보다 더욱 가시화되고, 일상적인 경험의 일부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오늘도 매진했습니다>와 <이 사랑 통역되나요?>는 이러한 변화를 더욱 흥미롭게 보여준다. 앞선 작품들과 달리 두 작품의 여주인공은 평소의 말투나 표정만으로는 자신의 문제를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낮에서 밤으로 시간적 배경이 바뀌면서 감춰져 있던 내면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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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도 매진했습니다>의 여성 주인공은 과거의 상처와 불안, 스트레스로 인해 밤마다 심한 불면증을 겪고, 수면제의 부작용으로 몽유병까지 경험한다. <이 사랑 통역되나요?>의 여성 주인공 역시 밤이 되면 어린 시절 겪었던 트라우마의 잔상이 나타나며 낮과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두 작품의 여주인공은 마치 밤이 되면 마법이 풀리는 신데렐라처럼 낮의 모습과 다른 자신을 드러낸다. 또한 현실적인 일상과 대비되는 '덕풍마을'과 '이탈리아'라는 공간은 각각 인물의 내면을 드러내는 특별한 세계로 기능한다. 그리고 이 숨겨진 모습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 남주인공이라는 점에서도 두 작품은 닮아 있다.

       

      이때 남성 주인공은 여성 주인공의 취약한 모습을 발견한 뒤 그것을 외면하지 않고 곁을 지킨다. 특히 <오늘도 매진했습니다>의 '매튜'는 '예진'의 수면 건강을 살피기 위해 자신의 집을 내어주고 함께 생활한다. 과거 멜로드라마에서 남성이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를 통해 여성을 구원했다면, 최근의 남성 주인공은 상대의 가장 취약한 모습을 받아들이고 일상을 함께 견디는 존재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신데렐라 서사와도 구별된다. 과거의 신데렐라가 가난한 여성이 왕자와의 결혼을 통해 새로운 세계로 이동하는 이야기였다면, 최근의 멜로드라마에서 여성 주인공이 얻는 것은 신분 상승이나 경제적 안정만이 아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고, 자신의 상처를 이해하며, 쉽게 떠나지 않는 사람과의 관계가 제시된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를 바라보면서 한 가지 의문도 생긴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여성 주인공이 다시 유약하고 의존적인 모습으로 돌아간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3. 돌봄을 받는 여성과 사랑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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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대에 방영된 <괜찮아, 사랑이야>(2014), <킬미, 힐미>(2015), <하이드 지킬, 나>(2015)에서는 오히려 남성 주인공이 정신질환을 가진 인물로 등장했다. <괜찮아, 사랑이야>에서는 조현병을, <킬미, 힐미>와 <하이드 지킬, 나>에서는 해리성 정체감 장애를 앓는 남성 주인공이 등장한다. 이때 여성 주인공은 남성의 상처를 이해하고 돌보는 역할을 맡는다.

       

      반면 2020년대의 작품에서는 그 역할이 뒤집힌다. 여성 주인공이 상처와 불안을 가진 존재로 등장하고, 남성 주인공이 그 곁에서 그녀를 돌본다. 즉, 여성은 ‘돌보는 주체’에서 ‘돌봄을 받는 주체’로 이동한다.

       

      이를 여성 주인공의 주체성이 약화된 것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오랫동안 여성에게 요구되어 왔던 돌봄과 공감, 희생의 역할에서 벗어나 여성 역시 취약할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존재임을 서사의 중심에 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취약성을 받아주는 유일한 공간이 사랑의 관계로 한정될 때에는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이해받고 싶다’는 욕망이 ‘사랑받아야만 회복할 수 있다’는 낭만적 환상으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 주인공의 상처를 해결하는 방법이 사랑하는 남성의 이해와 헌신에만 집중된다면, 취약성을 드러내는 것과 별개로 여성의 회복에 대한 주체성은 오히려 약화될 수 있다.

       

      따라서 최근 멜로드라마의 정신질환 서사는 양면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정신적 고통을 숨겨야 하는 결함으로 취급하지 않고 관계 속에서 이해받을 수 있는 경험으로 그려낸다는 점에서는 분명 이전보다 변화한 모습이다. 그러나 동시에 사랑만을 유일한 치료와 구원의 방식으로 제시하는 순간, 현실의 복잡한 정신건강 문제를 낭만적인 관계의 문제로 단순화할 위험도 존재한다.


       

       

      4. 우리가 사랑을 통해 원하는 것



      그럼에도 최근 멜로드라마의 변화는 현대인의 욕망을 읽어낼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2020년대 멜로드라마에 정신질환을 가진 주인공이 증가한 현상은 단순한 소재의 유행으로만 볼 수 없다. 정신질환이 우리 사회에서 더욱 가시적이고 자연스러운 경험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변화, 그리고 그와 함께 고립과 불안 속에서 누군가와 연결되고 이해받고 싶어 하는 현대인의 욕망을 반영한 결과로 볼 수 있다.

       

      동시에 남성 주인공의 모습도 달라졌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의 부와 능력으로 여성을 구원하는 왕자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상대와 비슷한 위치에서 그의 곁을 지키고, 상처를 받아들이며, 부드럽고 다정한 태도로 사랑을 증명한다. 이는 현대인이 꿈꾸는 사랑의 형태가 ‘나를 더 나은 세계로 데려가 줄 사람’에서 ‘내가 무너졌을 때에도 함께 있어줄 사람’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더 많은 돈이나 더 높은 지위만이 아니라, 나의 가장 취약한 모습까지도 받아줄 수 있는 견고한 관계인 것이다.

       

      물론 현실에서 정신적 상처는 사랑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때로는 전문적인 치료와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고, 한 사람의 헌신만으로 감당할 수 없는 문제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멜로드라마가 반복해서 사랑과 회복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그만큼 오늘날의 사람들이 연결을 갈망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최근 멜로드라마에서 말하는 사랑은 누군가를 완전히 구원하는 일이 아니라, 구원할 수 없는 순간에도 서로의 곁에 남는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꿈꾸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로도 사랑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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