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춤을 보며 나는 왜 사람들은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춤을 추었을까 생각했다.
얼굴은 한 사람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지만, 동시에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를 규정하기도 한다. 신분과 나이, 성별과 사회적 위치에 따라 우리는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 행동할 수 있는 것과 행동해서는 안 되는 것을 배운다. 얼굴은 어쩌면 그러한 규칙을 가장 먼저 보여주는 표지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탈춤에서는 그 얼굴을 탈로 가린다. 자신의 얼굴을 감추는 순간, 오히려 평소에는 할 수 없었던 말과 행동이 가능해진다.
탈춤에서는 권력층이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희화화되고, 이들의 허위와 권위가 익살스럽게 드러난다. 평소라면 쉽게 뒤집을 수 없었던 신분의 질서가 탈춤 안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뒤집힌다. 탈은 얼굴을 숨기기 위한 것이면서 동시에 사회가 정해 놓은 얼굴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었던 것이다.
나는 이 점에서 탈이 가진 묘한 역설을 느꼈다. 우리는 보통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는 것을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탈춤에서는 오히려 얼굴을 가렸을 때 더 자유로워진다. 나를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더 솔직해질 수 있고, 내가 아닌 다른 인물의 얼굴을 빌리기 때문에 평소의 나를 둘러싸고 있던 규칙을 마음껏 흔들 수 있다.
탈 안에서는 누구도 완전히 자신일 필요가 없다. 그렇기에 누구보다 자유롭게 말하고 웃고 춤출 수 있다.
공연의 마지막에 배우들이 탈을 벗었을 때, 마치 마법이 풀리는 것처럼 모든 얼굴이 본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탈 안에서 마음껏 웃고 소리치고 세상을 뒤집어 보던 사람들은 다시 자신의 얼굴을 마주했다. 하지만 탈을 벗는다고 해서 탈 안에서의 자유까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잠시라도 다른 얼굴을 가졌던 경험은 내가 평소 어떤 얼굴을 쓰고 살아가는지를 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자유란 언제나 자신 본연의 얼굴을 드러내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때로는 얼굴을 가리고, 이름을 내려놓고, 내가 어떤 사람이어야 한다는 틀에서 잠시 벗어날 때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다.
탈 안에서는 자유롭다. 그리고 탈을 벗은 뒤에도, 그 짧은 자유를 경험한 사람은 이전과 같은 얼굴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