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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슬픔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가 - 임선우, 초록은 어디에나 [도서/문학]

임선우 - 초록은 어디에나 리뷰

by 김수민 에디터
2026.08.26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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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을 사랑한다. 한국 문학에는 여름과 초록이 많이 나온다. 나 또한 그 관념적 여름과 초록을 사랑한다. 그 이유를 물으면 뭐랄까, 초록은 생명력을 포함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초록은 어디에나>>에서의 초록은 '슬픔'을 포함한다. 슬픔이라는 감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슬픔은 우리를 어디로 데려다 놓는가?

 

 

 

# 초록은 어디에나 - <초록 고래가 있는 방>


 

책의 제목인 "초록은 어디에나"가 가장 잘 어울리는 단편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주인공은 두 명이다. 사람인 도연과 낙타 인간인 유미. 사람이 어떻게 낙타일 수 있을까? 사실 이 환상적인 설정은 '슬픔'을 말하기 위함이다.

 

<초록 고래> 라는 영화를 쓴 후 지루하다는 혹평을 들은 뒤 글쓰기를 그만 둔 채 알콜 중독에 시달리는 도연과 남편이 죽고 슬픔이 찾아올 때마다 혹이 자라 낙타가 되어버리는 유미. 두 사람은 누수를 이유로 첫 만남을 치르게 된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하나밖에 없다. 슬픔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 슬픔을 감당하지 못해 다른 개체가 되거나 술이라는 도피처를 향해 달려간다는 것. 하지만 소설의 끝부분에서 보면 두 사람은 서로의 이야기를 서스럼없이 뱉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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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을 아는가? 처음 본 사람일 경우에 자신의 비밀을 마구 이야기하게 된다는 신기한 말. 유미-도연의 관계는 이러한 관계일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책에 함께 적혀있는 박혜진의 <이 만남은 꿈이 아니다> 속 내용을 빌려, 두 사람은 서로 모르는 사람이다가 집을 바꿔 살게 된다. 유미의 집 카펫 밑에 동전이 7개 있다는 것을 도연이 알게 되고, 낙타의 공간에서 도연이 지내게 된다. 둘은 만나자마자 자신의 이야기를 마구 쏟아내는 것이 아닌,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각자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두 사람이 서로의 세계를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집은 한 사람의 세계와 같다. 그 세계를 공유한다는 건, 그 세계 속 '슬픔'을 공유한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만남은 다 낙타와 고래의 만남이다."라는 해설 속 문장처럼 술고래처럼 살아가던 도연에게 슬픔이 혹만큼 자라 결국 낙타가 되어버리는 유미가 다가온다. 슬픔이라는 공통 분모가 그렇게 작동한다. 서로를 기대게 하고, 서로를 인정하게 하며, 서로와 연결된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슬픔을 단순히 부정적 감정이라고 볼 수 있을까? 슬픔이 없다면 어떻게 되어 버릴까.

 

 

 

# 슬픔이 없는 바다에서 - <사려 깊은 밤, 푸른 돌>


 

슬픔이 없는 사람이 여기에 있다. 선영은 전 남자친구인 영하가 떠난 후부터 슬픔의 형상화인 푸른 돌을 뱉는 사람이다. 돌을 뱉고 나면 어느 정도의 시간 동안 슬픔이 사라진다. 이 소설의 초반 부분을 읽었을 떄 그렇게 생각했다. 슬픔이 사라지면 좋은 게 아닌가? 게다가 그 돌을 뱉은 채로 돌의 모양과 색을 살피며 슬픔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할 수 있지도 않은가? 하지만 소설을 점점 읽어나갈 수록 슬픔이 사라졌을 때 더욱 바다로 가라앉기도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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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선영은 영하가 두고 간 식물 장국영을 도둑맞는다. 비를 맞게 하려던 의도였는데, 밖에 내놓았다가 누군가 장국영을 납치한 것이다. 여기서 <초록 고래가 있는 방>처럼 새로운 등장인물이 한 명 추가된다. 소설을 모두 읽고 해설까지 읽고 났을 때 <<초록의 어디에나>>에서 주요 인물은 모두 2명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아무튼, 희조는 장국영을 납치한 범인이다. 하지만 장국영은 희조의 집에 있을 때 더욱 싱싱하다는 것을 선영이 깨닫게 된다. 이후부터 가해자-피해자인 구도는 제공자-보호자의 구도로 전환된다.

 

희조는 슬픔이 필요하다. 수영선수였다가 부상으로 인해 수영을 하지 못하게 되고, 경비원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밤에는 도벽이 생겨 누군가의 물건을 훔친다. 그런 희조에게 선영의 돌이 주어진다. 희조가 장국영을 납치한 것의 복수로 선영이 자신이 뱉은 돌이 담긴 화분을 그녀에게 줬기 때문이다.(잠깐 말하자면, 선영의 돌이 외부에 나오면 그 돌을 마주한 모든 사람이 우울해진다) 신기하게도 희조는 그 돌이 생긴 이후부터 도벽을 멈추게 되었다. 물론 슬픔을 겪는 것은 희조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희조는 꼭 그 시간이 필요했다. 그 돌을 베개 밑에 두고 자면 그 날은 수영선수가 된 희조의 꿈을 꿀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꿈에서 수영선수를 못하게 되거나, 타박을 당하는 등의 상황은 희조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꿈 속에서는 여전히 수영선수라는 것이 희조의 슬픔이자 기쁨이었다. 희조는 슬픔을 잊기 위해 슬픔을 찾는 사람이었다.

 

글의 앞에서 두 사람의 구도가 제공자-보호자로 전환된다고 했다. 또한, 이 글을 읽으며 선영의 돌이 누군가에게 슬픔을 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장국영은 선영 모르게 조금씩 시들고 있었다. 선영의 슬픔, 선영이 돌을 뱉는 행위의 첫 시작이었던 영하 또한 어느새 선영에게서 아무렇지 않은 일이 되어 가고 있었다. 선영이 돌을 뱉으면 신기하게도 슬픔이 사라졌으니까. 이쯤에서 한 가지 질문을 할 수 있다. 슬픔이 사라지면 어떤 감정이 남을까?

 

선영은 자신이 키우는 장국영이 오히려 희조의 집에서 싱싱하고 살아있는 듯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에어컨을 맞지도 않았는데 갈색 반점이 생기고 죽은 잎이 생기는 이유를 몰랐다. 영하로 인해 처음 돌을 뱉게 되었으면서도 영하의 행방을 알게 되자 오히려 덤덤하기도 했다. 이런 선영에게 슬픔으로 뒤덮인(선영과 반대에 존재하는 인물인) 희조가 다가온다. 게다가 그 돌을 자꾸만 달라고까지 한다. 그런 희조의 집에서 장국영은 살아난다.

 

결국 슬픔은 기쁨, 환희, 지겨움, 화남 등 모든 감정과 연결되어 있다. 슬픔이 기쁨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슬픔이 행복을, 슬픔이 안심함 같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슬픔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된 선영은 어느새 장국영에 대한 미안함까지 겪는다. 슬픔을 모르는 인간 밑에서 슬픔을 매일같이 먹어가며 살아오던 식물에게 말이다. 이 소설과 이 글을 읽은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만약에 슬픔이 뭉쳐진 돌을 뱉어서 그 슬픔이 사라진다면, 그 과정을 겪고 싶은가?

 

 

 

# 곁에 없어도 편안한 것들 - <오키나와에 눈이 내렸어>


 

이 소설 또한 두 명의 주요 인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사실 이 소설은 아직 나에게 미궁의 소설이다. 인물들의 행동에 계속해서 '왜?' 라는 질문을 덧붙이게 된다. 어느 날, 영하는 주영에게 함께 오사카로 가자고 한다. 금괴를 그 곳까지 옮겨주는 일을 해야한다고 말이다. 영하는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이고, 주영은 그런 영하를 사랑(누구나 말하는 연애적 감정인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그녀가 영하를 사랑하는 것은 분명하다)한다. 그렇기에 아무렇지도 않게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둘은 절연 테이프를 붙인 금괴 네 개를 들고 오사카로 향한다.

 

소설의 흐름은 이렇다. 아주 일상적인 배경 속에서 뜬금 없는 미션이 주어지고, 또 뜬금없이 사마귀를 키우려다 또다시 뜬금없이 그 사마귀가 죽어 묻어준다. 그리고 잠깐 사라진 줄 알았던 영하에게 주영은 어떤 감정을 느낀다. 무슨 감정일까? 위에서 언급한 소설의 흐름에서 나는 하나의 과정을 추측했다. 있던 것은 없어지고, 없었던 것이 생겨난다. 그 과정을 거치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고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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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객실로 다시 돌아왔을 때 쿠르르르르, 하는 소리는 어제와 똑같이 들려왔다. 모든 것이 지나간 다음에도 호텔이 오랫동안 같은 소리를 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자 마음이 편했다."

 

이 문장을 읽고 나서 그 고요함이 주는 안정을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우리는 무엇이 온전히 사라진 시점을 모른다. 예를 들어, 아주 꼿꼿하던 옛 빌딩이 사라지고 다른 빌딩이 들어온다고 해 보자. 그 빌딩 옆에 있던 작은 풀밭도 사라질까? 물론 밀어버리면 사라지겠지. 겨울이 와 버리면 사라지겠지. 하지만 봄이 오고, 누군가 다시 거기에 씨를 심으면 또 풀이 자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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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원리와 소설이 맞닿아있다고 생각한다. 주영은 영하가 사라진 것이라고 생각하고 영하를 보게 되면 "오로지 영하 언니에게만 할 수 있는 말을 하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영하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자, 이상하게 그 말들은 쏙 들어가고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굴러간다. 영하는 주영에게 어떤 존재일까? 갑자기 사라질 것 같더라도, 금괴를 옮기는 일을 앞으로도 계속하게 될 거라고 하더라도 옆에 있을 것 같은 신비로운 존재일까?

 

이번 소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알 수 없는 뒤죽박죽의 이야기를 하게 된 것 같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계속될 것 같은 '마음'이 한 사람을 움직인다는 것. 그 감정은 사마귀와 같은 벌레에게도, 사랑하는 어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유지된다는 것. 그리고 이것이 언젠가 일상을 연결해주는 문과 같은 통로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 마치며


 

소설을 읽고 났을 때 초록의 의미는 재해석된다. 생명력과 관념적 여름을 대표하는 상징색이 아닌 어딘가 꿈틀대는 슬픔으로. 슬픔은 어디에나 있다. 슬픔이 있을 때는 수심이 발목까지 오는 강가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이고, 슬픔이 없을 때는 바닷속에서 그곳이 바다인 줄도 모른 채로 가만히, 그저 가만히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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