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름의 냉면처럼, 겨울의 호빵처럼 여름에 여름의 소설을 읽으려다가 반대로 겨울이 담긴 소설을 읽기로 했다. 겨울을 사랑하지 않기에 사랑하는 여름에 겨울의 소설을 읽으면 조금이라도 겨울이 좋아질까 싶었다.
가끔 삶은 지독하게도 정반대의 감각이 찾아온다. “도대체 조앤 디디온의 <<푸른 밤>>이, 죽은 가족을 향한 애도의 글이, 왜 봄에 읽기 좋은 산문인 걸까.”라는 문장에서 다시 한번 양극단에 있는 상황-감각의 위태로움을 느낀다. 슬픔에 묻혀 울지 않기 위해 빠른 비트의 음악을 듣는다든지, 여름에 겨울통이 온다든지 그런 위태로운 일 말이다.
소설에는 주요 인물이 두 명 나온다. 노인이 싫고 무리가 싫고 마음에 없는 표정이 싫은, 싫은 게 많은 동아와 어떤 힘든 일도 묵묵히 해내는, 무엇이든 사랑하는 인하가 있다. 두 사람은 소랑도서관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에서 처음 만났다. 참여자가 이야기 속 주인공이 되고, 그림을 그려 글과 함께 묶은 뒤에 이야기 책을 만드는 프로젝트다. 성격부터 하는 일까지 모두 다른 두 사람이 사랑을 하는, 끊임없이 사랑을 하는 이야기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이 소설을 관통하는 무시무시한 ‘겨울통’이 있다. **통이라는 말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통증처럼 찾아와 누군가를 괴롭게 하는 상황. 그것처럼 겨울통은 이유 없이 찾아와 한 사람의 삶을 망가뜨리는 병이다.
겨울통은 누구든 걸릴 수 있는 흔한 병이다. 소설 속 도서관 관장이 이미 걸렸다는 것을 반영하면 겨울통을 겪는 사람들은 한 부위 혹은 전신에서 차가움을 느끼고, 얼음 깨지는 듯한 소리를 듣고, 결국 그 부위가 훼손되어 잃게 되거나 혹은 전신이 물로 변해버린다. 정확히 말하면 어떤 액체의 형태로 변해버린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겨울통은 어떻게든 찾아올 수 있다. 마치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나를 통증으로 밀어넣는 사랑 혹은 슬픔처럼.

“사람들이 다 떠나갔어요. 나도 사람들을 떠났고요. 하지만 떠났던 아내는 돌아오더군요. 그 사람은 나를 돌봐줬고 외롭지 않게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줬습니다. 나는 도서관장이었는데요. 제대로 책을 익어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이미 겨울통에 걸렸던 도서관 관장의 말을 인용한다. 그는 이미 팔 한 쪽을 겨울통 때문에 잃었다. 모든 사람이 겨울통에 걸린 그를 떠나갔지만 그의 아내만 돌아왔다고 한다. 그녀는 운명처럼 다가온 통증을 뚫고 외롭지 않게 그를 돌보았다.
나의 판단에 의하면 사랑은 못된 운명을 꺾어버릴 수 있는 유일한 수단, 다르게 말하면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죽은 가족을 향한 애도의 글 – 생명력이 가득한 봄, 겨울통 – 여름의 사랑. 반대되는 개념 속에서 둘은 고무줄처럼 팽팽하게 맞선다.
소설 후반부에서는 동아가 전신 겨울통에 걸린 뒤 스스로의 상실감으로 휘감기는 내용이 이어진다. 사실 동아와 인하의 사랑은 마치 동아의 일방적인 사랑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모든 것을 사랑한 인하의 사랑과 모든 것을 싫어한 동아의 사랑은 흑과 백처럼 대비되기 때문이다. 말을 하지 않으면 사랑이 표현되지 않는다는 말이 익숙한 만큼, 말을 하지 못하는 인하의 사랑 방식은 낯설었다. 누군가에게 기대는 것보다 스스로 선 채로 버티는 게 익숙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랑의 질량은 보이지 않기 때문일까. 인하의 사랑은 동아가 겨울통에 걸리면서부터 극대화되어 표현된다. 잠재되어 있던 인하의 사랑이 동아를 다시 살리는 방식으로 드러난다. 겨울통에 걸린 동아를 위해 인하는 온갖 정보를 찾아보고, 그를 담을 수 있는 욕조를 준비한다. 어느새 액체가 되어버린 그를 욕조에 담아 캠핑을 나서고는 그를 다시 태어나도록 돕는다. 마치 “번데기 같은 피부 아래 모든 것이 다 녹아 액체로 변한 뒤 새롭게 생성”(<작가의 말> 중)될 수 있도록 욕망하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 인간이 번데기 속 액체가 된 것처럼 변해버리는 것, 그 안에서 기질과 성질이 동일하게 남게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주어진 운명을 사랑이 이겨내는 것은 가능하다. 인하가 결국 동아를 재탄생시킨 것처럼. 관계에 지쳐서 혼자 우뚝 남게 된 사람에게 없으면 안 될 사람이 생기고, 싫은 게 많던 사람에게 읽고 싶은 사람이 생기는 것처럼 말이다. 삶은 늘 일반적이지 않고, 끊임없이 운명이 끼어든다. 그리고 그 운명을 뚫을 수 있는 것은 사랑이라고 불리는 기적이다.

"물고기가 바닥의 작은 돌을 삼켰다 뱉을 때 하얗게 변하는 것. 서로의 몸이 닿는 부분이 환해지는 것. 인하의 명치에 이마를 대고 파묻히듯 가만히 있는 것. 그리고 느껴지는 것들. 그 어둠. 그 먹먹함. 두 팔에 힘을 주어 인하를 당기고 또 당겼다. 피부에 멍이 들고 뼈가 상하지는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그들을 껴안고 있는 사랑을 비집고 겨울통이라는 운명이 다가왔다. 그리고 훼손된 사랑은 액체가 되어 쥘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사랑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 힘껏 서로를 끌어안을 줄 아는 사람들 앞에서 그것은 완전한, 새로운 사랑이 될 준비를 하는 과정이 되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