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에는 저스틴 테일러, 2025년에는 토마스 던포트와 함께 내한해 한국 관객들을 매료시켰던 바이올리니스트 테오팀 랑글루아 드 스와르트. 그가 이번에는 자신이 이끄는 프랑스 바로크 앙상블 ‘르 콩소르(Le Consort)’와 함께 다시 한국을 찾았다.

공연 시작 전, 테오팀 랑글루아 드 스와르트(바이올린), 소피 드 바르도네슈(바이올린), 아나 살젠스타인(첼로), 저스틴 테일러(하프시코드)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들 표정에는 약간의 흥분과 장난기가 어려 있어 아직 첫 음이 시작하지 않았음에도 무대가 기분 좋은 에너지로 가득할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소박하고 내밀한 아름다움
두 명의 바이올리니스트 테오팀 랑글루아 드 스와르트와 소피 드 바르도네슈는 공연의 첫 곡인 퍼셀의 「여왕의 탄식(The Queen's Dolour, Z.670)」을 연주하며 무대로 천천히 걸어 나왔다. 한 걸음씩 조심스럽게 무대를 향하는 두 사람의 차분한 움직임은 곡이 품은 내밀한 슬픔과 묘하게 어울렸다. 음반에서 듣던 것과는 다르게 거트현의 소리는 생각보다 힘을 뺀 듯 가늘고 섬세했지만, 밀도가 낮다기보다는 오히려 소리의 날카로운 모서리를 모두 곱게 다듬은 듯 부드럽게 느껴졌다.
영국 바로크 특유의 소박한 비애감과 아름다움이 짙은 마테이스의 「마니에라 이탈리아나」와 「안단테 말린코니코」에서는 음 하나하나를 오래 음미하듯 연주하고 있는 소피 드 바르도네슈에게 특히 눈길이 갔다. 그녀의 연주는 약간 절제되어 있지만, 보다 자유롭고 힘있게 흐르는 테오팀의 선율을 견고하게 받쳐주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내밀하면서도 소박하게 시작해 후반부로 갈수록 특유의 경쾌하고 힘찬 박자감과 역동성을 뿜어내는 선율 위에서, 두 사람은 같은 지점에서 호흡하며 마치 다정한 대화를 나누는 듯 자연스러운 흐름의 연주를 이어갔다.
투각, 유려하고 우아한
영국을 떠난 음악은 프랑스로 향했고, 그곳에는 르 콩소르가 특히 애정을 품고 있는 장 프랑수아 당드리외(J. F. Dandrieu)의 소나타가 기다리고 있었다. 활력과 정념이 소용돌이치는 이탈리아적 요소, 장엄하면서도 우아한 프랑스풍 양식이 혼합된 이 소나타에서 바로크 악기의 음색은 유난히 마음을 건드렸다. 온도와 습도에 예민한 거트현은 연주자들이 곡과 곡 사이마다 음정을 다시 맞춰야 했지만, 소리가 손에 잡힐 듯 생생하면서도 금세 사라질 것 같은 연약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 마음을 간질이는 듯했다.
비킹구르 올라프손의 피아노로 익숙했던 라모의 「부드러운 탄식(Les Tendres Plaintes)」도 거트현을 타고 흐르니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피아노가 매끈하게 이어 붙였던 선율이 작고 다정한 한숨 같았다면, 이들의 바이올린에서 나오는 소리는 더 깊은 곳에서 끌어올린 슬픈 탄식에 가까웠다. 하지만 동시에 아름답고 우아한 느낌이 압도해 연주를 듣는 동안에는 괴로움에서 은은한 즐거움을 발견하게 된 사람이 되어버린 듯한 이상한 느낌에 빠지기도 했다.
몽테클레르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탄식」에서는 이들의 영리한 연출력이 돋보였다. 무대가 아닌 객석 왼편에서 연주를 시작한 소피 드 바르도네슈는 연주를 하며 어둠 속에서부터 천천히 무대 위로 걸어 나왔다. 멀리 떨어져 있던 두 개의 바이올린 소리는 조금씩 거리를 좁히기 시작해 그녀가 무대에 도착할 때쯤엔 하나의 호흡으로 포개져 콘서트 홀 전체를 두 개의 바이올린 소리가 감싸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사실 소규모 앙상블의 소리가 콘서트홀이라는 거대한 공간을 온전히 채울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없지 않았는데, 이러한 창의적인 연출은 그런 우려를 완전히 씻어냈다. 바로 이런 점이야말로 오직 이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신선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설득 없는 순수, 그리고 광기의 춤
아나 살젠스테인 연주한 달라바코(Dall'Abaco)의 카프리치오는 이번 내한 공연을 통틀어 개인적으로 가장 아름다웠던 찰나였다. 평소 좋아하던 크리스틴 폰 데어 골츠의 연주가 영혼 깊은 곳에 호소했다면, 살젠스탱의 연주는 아무런 설득이 없는, 어떤 무목적성을 띠고 있었다. 그런데 오히려 그 목적 없이 말을 건네는 소리는 음악 속으로 침잠하고 싶은 강렬한 욕구를 이끌어냈다. 그녀의 연주를 들으면서 나는 시선을 위로 향했고, 나의 옆사람은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서로 다른 모습이었지만, 자기만의 방식으로 그녀의 음악에 다가가고 있었다. 모든 불순물을 걷어낸 채로 음악에 어떤 식으로든 접촉해 보고 싶은 마음, 그녀는 그런 마음을 이끌어내는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는 걸 새삼 깨달은 순간이었다.
마지막 곡인 비발디의 작품으로 넘어가기 전, 저스틴 테일러의 짧은 즉흥 연주가 있었다. 집요하게 파고드는 듯한 타건은 단단한 표면을 조금씩 파내는 조각칼을 떠올리게 했다. 음 하나가 지나갈 때마다 정교한 투각이 새겨지는 듯해서, 그 빈 공간은 프랑스 조각에서 볼 수 있는 유려하고 섬세한 장식의 모습을 띠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잠깐 동안 불러일으켰다.
마지막을 장식한 비발디의 '라 폴리아(La Follia)’는 회화적인 색채와 폭발적인 에너지가 공존하는 거대한 그림이었다. 멤버들의 풍성하고 화려한 연주는 마치 작은 불씨 하나가 변주를 거듭할수록 점차 불꽃이 되고, 마침내 거대한 화염이 무대를 가득 메우듯 에너지를 증폭시켜 나갔다. 겹겹이 쌓인 선율이 거대한 캔버스를 향해 색을 흩뿌리듯 무대도 어느새 한 폭의 추상화가 되어 있었다. 비발디가 심어 놓은 날것의 에너지가 결코 무뎌지지는 않았지만, 그 광기의 느낌마저도 르 콩소르는 섬세하고 우아하게 표현해 냈다. 영국에서 시작해, 프랑스, 이탈리아를 가로지르며 이들은 어떤 곡이든 풍부한 상상력과 표현력을 통해 가장 우아하고 다채로운 춤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이번 르 콩소르의 첫 내한 공연을 설명하는 하나의 문장을 만들라면, '젊은 감각이 만들어낸 독창성과 신선함’이라고 말하고 싶다. 단순히 연주자들의 나이를 의미한다기보다 거침없는 연주, 이따금씩 보여주는 재치, 콘서트홀의 경계를 허문 무대 연출, 그리고 청중의 마음을 가볍게 두드리는 다정한 소통까지, 무대 위 모든 순간에 깃든 생동감에서 엿본 독창성과 신선함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바로크 음악을 깊이 사랑해 온 애호가에게도, 혹은 고음악의 세계가 낯설고 아득했던 이에게도 똑같은 크기의 흥분과 몰입을 이끌어냈다고 생각한다.
재치와 유연함 그리고 신선함이 가득했던 이번 무대는 옛것이 언제든지 다시 살아나 (어떠한 모습으로든) 현대를 일렁이게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준 순간으로 기억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