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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매일 똑같이 출근하는 길도 버스 창문에 기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곤 한다. 길눈이 어두운 탓에 늘상 가는 길도 새롭게 보이는 걸 수 있겠으나, 어쨌든 서울, 그리고 한국이라는 나라는 태어나 평생을 살아도 적응하기 능숙해질 것 같지가 않다.


가끔 명동이나 안국을 가서 여행자인 척 즐겨볼 때가 있다. 길거리 야시장이 즐비한 명동 거리에서 계란빵을 사서 여행자들 사이를 거닐거나 안국에서 한국의 얼이 남아있는 곳곳을 누비다 보면 잠시 한국에 여행 온 기분이 든다. 꽤 많이 즐겁다.


그렇지만 반복되거나 여행하는 기분의 일상을 살면서 내내 즐겁기만 한 건 아니다. 퇴근길에는 한강 대교를 건너며 반짝반짝 빛나는 불빛으로 가득한 야경을 보는 기회가 있지만 매번 감동하기란 어렵더라. 지친 몸을 겨우 지고 집에 가는 지하철 안의 사람들은 모두 획일화된 표정을 짓고 핸드폰만 들여다본다. 나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나 여행자로서 한국에 머무는 기분은 이미 경험해 봤다. 물론 모두가 각자의 경험치와 사연을 가지고 한국에서 살아가지만 여기, 감히 경험해볼래야 경험할 수 없는 시작을 안고 한국에 발을 디딘 여성이 있다. 바로 탈북민 ‘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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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선’은 북한에서 태어난 중국에 머물렀다가 남한에 도착한 21살 여성이다. 어머니의 약값을 마련하기 위해 떠나왔지만 대한민국 국민으로 인정받고 살아가기 위한 여정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었다. 탈북민에게 엄격한 잣대를 요구하는 국정원의 조사를 거쳐 탈북민을 위한 정착 지원 기구 ‘하나원’에서 일종의 적응 기간을 거친 후에 ‘진짜’ 사회로 나가 한국에서 삶을 꾸린다.

 

 


“힘든 건 상관없습니다. 해내면 됩니다.”


 

한국으로 오게 된 시작은 어머니의 약값이었지만, 그저 돈만 버는 비교적 순탄하게 정해진 길을 택하기보다는 ‘간호사’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공부까지 병행하는 혜선의 다짐은 주변의 우려를 일삼는다. 하나원을 떠나며 나타나는 도심의 풍경을 보는 혜선의 얼굴에 약간의 설렘이 그려진 것도 잠시, 돈을 벌기 위해 간절한 심정으로 일을 하고 수업을 들으며 혜선은 감당해 내기는 벅찬 일들을 담담히 마주한다. 그렇지만 실제로 혜선의 속이 얼마나 타들어 가고 있었을는지는 유추할 수 없이 안타깝다. 영화에 삽입된 컷들로 이어지는 일련의 몇몇 사건들 후에는 지하철 한 칸에 사람 사이 끼어 앉아 있는 혜선이 나온다. 그때 혜선의 얼굴에 포개진 걷히기 힘들 무거운 자국을 보는 것이 괴로웠다. 실제로 지하철에서 종종 본 타인의 표정이었고 혹 나도 그런 표정을 지었을 성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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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는 특정한 사건들을 확대한다거나 중심축으로 다루지 않는다. 단편적으로 지나가게 두는 방식으로 장면을 나열한다. 이로써 악역과 피해자로 한정될 수 있는 이야기를 단순히 거기서만 맴돌게 두지 않는다. 어떤 사건인지 보다도 중요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혜선이 한국에서 적응하고 정착하고자 했던 의지다.


영화를 보는 내내 안타깝고도 기특했던 건 혜선의 적응에 대한 열의였다. 잘살아 보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다는 걸 퀭하고 체념한 눈빛 속에서도 알아챌 수 있었다. 결코 쉽게 무너지거나 포기하는 선택지는 없을 거라는 일념. 화장을 해본다거나 알바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옷 쇼핑을 하고 수업 중 쉬는 시간에는 용기 내 앞자리 친구에게 말을 걸어보는 것 등이 ‘탈북민’으로서가 아니라 그저 ‘한 사람’으로서, 특히나 ‘다른 한국의 20대 여성’처럼 뭐든 해보려는 용기로 봤다. 과대 해석 한 걸 수도 있겠지만 이런 걸 느끼고 나서부터는 혜선을 탈북민이 아닌 또래 친구로 바라보게 됐다.


그러나 혜선과 나를 한데 묶어준 건 ‘여성’이라기 보단 ‘한국에서 살아감’이라는 현재 상황이었다. 한국에서 삶이 혜선의 어깨를 무겁게 짓무르던 것들은 혜선이 탈북민이라거나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겪은 것들이 아니었다. 그저 한국에서 살아간다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차별이었고 멸시였고 망신이었다. 탈북민이라는 특수한 경우는 그런 일에 노출이 더 쉬울 뿐이다. 이런 걸 깨달은 직후엔 절로 민망해졌다. 영화 속 일이 낯선 일이 아니라 너무도 자연히 팽배하고 있는 현상이라는 게 이 나라에 뿌리내리고 사는 시민으로서 수치심이 들었다.

 

 


덴마크 감독이 탈북민 시선으로 담아낸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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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코리아>는 덴마크 영화감독 프레드릭 쇨베른이 연출했다. 주로 환경을 담아내는 다큐멘터리를 다뤄서인지 도입부부터 그가 한국을 담아낸 미장센에 이목을 집중시킬 수밖에 없었다. 특히 그가 풀샷으로 담아내는 한국의 모습이 인상 깊었는데, 내가 바라보는 한국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여행자의 마음으로 한국을 탐방하다 보면 찰랑찰랑 빛이 안 나는 풍경이 없지만,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갈 때는 빽빽하고 높게 지어진 건물에 와르르 삼켜질 듯이 무겁고 차갑게 느껴지기도 한다. 덴마크 감독이 탈북민 혜선의 시선으로 담아낸 한국이 내가 본 한국과 비슷하다.


영화 초입에는 산 너머에 서울 도시가 비치는 장면이 나온다. 이야기가 전개되지도 않았는데 영화 색감이 산뜻한 것과 달리 뭔가 단절되어 있다는 감상을 저버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극 마지막에 혜선과 보미, 숙희가 같이 등산을 통해 정상에 오른 장면에서 다시 한번 산과 그 너머의 서울 풍경이 한 프레임에 담겼다. 등산하며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는 보미와 숙희의 말에 영화 말미에서야 겨우 웃음을 지어 보이는 혜선은 “풀숲에 사는 독사로 살라”는 엄마의 말보다는 이젠 “앞으로만 나아가겠다”라고 새로이 방향을 설정한다. 잔뜩 긴장한 채로 살아가는 독사보다 아주 약간은 여유를 품어보기로 한 혜선의 마음이 장면에 녹아든 양 산과 함께 있는 도시 풍경은 그제야 조화로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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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심히 우려된 것이 있다. 혜선은 ‘조금만 버티면 된다’라고, ‘이제 거의 다 왔다’ 같은 말을 다시 볼 수 없는 엄마에게 전하지만, 인생은 얄궂게도 힘든 일이 하나 끝난다고 완전히 없어지는 건 아니다. 죽는 순간까지도 결말은 정해져 있지 않으니 이어질 고통을 무한으로 겪게 될 혜선의 모습이 선해서 오지랖 섞인 걱정이 들었다.


여태껏 탈북민에 관해 접한 것들은 분단된 민족 사이의 물리적이고 심리적인 거리감을 좁혀주지 못했다. 탈북민에 대해 딱히 긍정적이지도 부정적이지도 않았다. 그저 나와는 크게 상관없는 이야기라 생각하고 말았다. 그러나 <하나 코리아>가 전하고자 했던 마음과 그 마음이 그대로 서려 있는 극을 보고 나니 탈북민이 친근해지기까지 했다. 거리낌 없이 외국인 친구를 사귀듯이, 아니 그냥 친구를 사귀듯이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을 심었다. 낯선 곳에 정착하고자 부단히도 노력하는 혜선을 매일 밤 나를 지탱하는 마음으로 응원했다. 그리고 이 영화의 실제 모티프가 된 분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끈기와 용기에서 비롯되는 사람의 위대함에 한 번 더 박수 치게 됐다. 희망이 만들어낸 판타지 소설이 아니라 실현할 수 있는 다큐멘터리적인 영화여서 안심했다. 그리고 아주 많이 반성했다. 한국에서 살아가며 반성할 수 있는 모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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