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트로신테시스’, 전시 타이틀치고 낯설고 어려운 단어이다.
빛이 무지개색으로 분해되는 현상이자, 다양성을 의미하는 ‘스펙트럼(spectrum)’과 광합성처럼 아이디어와 사물을 한데 모으는 과정을 뜻하는 ‘신텐시스(Synthesis)’를 결합한 단어가 ‘스펙트로신테시스’이다. 다양성을 한데 모은다는 전시 제목처럼 74명이라는 많은 작가가 참여한 한국 최초의 대규모 퀴어 전시이다.
양면의 조개껍데기
크게 두 가지의 구성을 가진 전시의 첫 번째 테마는 ‘양면의 조개껍데기’이다. 지하 1층부터 2층으로 이어지는 첫번째 테마는 김초엽의 SF 단편 소설에서 출발하여 ‘트랜스’의 개념을 새롭게 해석하며 ‘몸’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많이 보인다. 또한 미술관의 공간은 이성애적 공간으로 규정하며 내부의 극장, 분장실, 복도, 화장실, 기계실 등 평소에 전시 공간으로 쓰이지 않았던 공간을 작품에 활용한다.
장영해, 〈blur blur〉, 2025, 싱글 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10분
생성형 AI로 인해 비디오 아트에서 언캐니의 상태에 주목하는 작품들이 요즘 많이 보이는 것 같다. 〈blur blur〉는 기술이 실제 우리가 마주하는 인물의 통합적 부분 중 특정 신체 부위나 표정 등을 선택적으로 생성해내는 것에 집중한다. AI를 통해 우리가 바라보는 신체에 대한 욕망과 시선을 엿보게 되는 아이러니, 그리고 우리가 집중하는 인간의 신체와 기술이 바라보는 신체 사이의 괴리가 작품에서 드러난다. 더불어 언캐니한 상태에 익숙해지고 있는 현재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오인환, 〈남자가 남자를 만나는 곳〉, 2026, 향가루, 410x440cm
2층에 올라가는 순간 후각이 가장 먼저 반응하게 된다. 코를 찌르는 향냄새의 출처는 〈남자가 남자를 만나는 곳〉이다. 전시가 열리는 도시인 서울의 게이바, 클럽의 이름을 전시장 바닥 위에 향가루로 쓰는 설치 연작이다. 전시가 열리는 도시마다 적힌 이름이 달라지는 장소 특정성을 지니며 서서히 타오르는 향이 연기와 냄새, 잔상으로 변하며 시각과 후각을 자극한다. 누군가에게는 익숙하지만, 누군가는 낯선 이름들이 소멸하는 과정을 통해 펜데믹 시기에 사라졌던 많은 클럽과 바들을 상기시킨다. 장소에 대한 기억을 환기하는 동시에 사라지는 작업을 통해 존재와 부재 사이를 시각화한다.
텐더: 언제든, 어디서든
두 번째 테마는 ‘텐더: 언제든, 어디서든’이다. 여기서 ‘텐더(Tender)’ 퀴어 주체/커뮤니티들이 지닌 ‘다정함’과 ‘친밀함’을 뜻하는 동시에, ‘상처 입기 쉬운’, ‘민감한’이라는 양가적 의미를 지닌다. 3층의 전시는 ‘기억’, ‘장소’, ‘형식’이라는 세 축을 통해 단순히 퀴어 경험을 재현하는 것을 넘어 퀴어 미래의 지평을 사유하게 하며 ‘다정함’이라는 적극적 실천을 제안한다.
(위) 전나환, 〈포 어 플래시(For a Flash)〉, 2021, 단채널 비디오 설치, 컬러, 사운드, 25분 24초, 은색 컨페티, 다양한 색상의 테이프
(아래) 전나환, 〈아네씨의 방〉, 2020,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15분
작품은 펜데믹으로 문을 닫은 이태원 게이 클럽을 무대로 한다. 공간 곳곳에 붙어있는 거리두기 표시와 클럽 사운드, 컨페티, 지하 냄새는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 잠시 살아나게 한다. 비디오는 ‘아네씨’의 퍼포먼스 준비 단계와 무대에 오르는 모습을 기록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사라진 바와 클럽에 대한 향수를 담은 작품들이 많은 수를 차지한다. 이 작품은 내가 가보지 않은, 지금은 사라진 공간의 감각을 그대로 체험하게 만들어 준다.
다다익선?
《스펙트로신테시스 서울》의 작품 설명란 레이아웃이 기억에 남았는데 ‘작가, 〈제목〉, 연도, 재료, 크기’ 순으로 적혀있는 익숙한 방식이 아닌 작가의 이름을 상단에 위치하여 가장 중요한 위계를 차지한다. 작가 설명도 거의 모든 작품에 적혀있는 방식을 통해 작가 본체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한국에서 최초로 열리는 대규모 퀴어 미술 전시인 만큼 최대한 많은 작가를 소개하고자 하는 데 의의를 둔 듯싶다. 실제로 개별 작품들을 통해 와닿는 주제와 메시지들은 인상적이었다. 본문에 적지 않은 작품 외에도 인상 깊은 작품들이 많다.
하지만, 이 수많은 작품을 한곳에 모아둠으로써 던지고자 하는 질문은 과연 무엇인지 의문이다. 다양성을 가진 작가들을 모아두는 것 자체가 전시의 의도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소수자성을 내세운 퀴어 작가들의 작품이 낯설지 않은 지금에서는 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어떤 뾰족한 질문이 전시 기획에서 이루어지길 기대했기에 아쉬움이 남는다. 오히려 다양한 작품들을 밀도 높게 모아두면서 개별 작품들의 인상적인 메시지가 조금 희석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럼에도 동시대에 흥미로운 작업을 이어가는 작가들을 많이 알게 됐다는 점과 더불어 많은 이야깃거리는 던져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전시는 보고 나면, ‘퀴어 작가의 작품이면 퀴어 미술이 되는지, 앞으로 한국에서 퀴어 전시는 어떻게 진행되어야 할지, 나는 이들을 어떻게 바라봐왔고, 앞으론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많은 질문이 남는다. ‘근래에 전시를 보고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한 적이 있는가.’ 되돌아보았을 때 그런 전시는 몇 없었던 것 같다. 전시에 흥미로운 작품들이 존재한다는 방증이지 않나 싶다.
마지막으로 전시 관람 계획이 있다면 시간을 넉넉잡아 가는 것을 추천한다. 4개의 층으로 이루어져있고 작품이 고밀도로 전시되어있는 것에 더불어, 직접 체험해보는 작품이나 비디오 아트가 많아 감상하는데 시간이 꽤나 걸린다.
그럼, 앞으로 한국에서도 다양한 퀴어 전시가 진행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