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모두에게 같은 계절이 아니다
여름이 시작되면 SNS에는 각종 피서와 휴가 관련 영상으로 넘친다. 요즘 인기 있는 바다와 계곡이 어디인지 끊임없이 알려준다. 입맛을 돋우는 상큼한 과일들이 나를 현혹한다. 마트에서는 당도별로 수박을 판매하는 공간이 나뉘어 있다. 시식 코너에서 판매원이 하염없이 수박 속을 자른다.
사계절 중에서 주위 풍경의 색채가 가장 진해지는 여름. 누군가는 생명력을 얻었고, 누군가는 잃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여름은 길어지고 있고, 뉴스에서는 전국 폭염과 열대야가 지속된다. 이번 여름이 제일 시원할 것이라는 사실을 믿고 싶지가 않다. 100퍼센트에 육박하는 습도 때문에 어항 속에서 허덕인다. 생기가 넘치는 여름이지만, 누군가는 폭염과 불쾌지수, 에어컨 전기요금 폭탄을 떠올리며 넌더리 친다.
같은 여름인데 왜 이렇게 다를까?
누군가에게 여름은 가장 반짝이는 계절이다
나의 여름은 추억이 가장 많이 쌓인 계절이다.
여름방학이면 매번 동해에서 수영하며 모래사장을 파고 놀던 때가 떠오른다. 2010년대의 초등학교 시절을 보낸 입장에서 그 당시의 여름을 회상하면 불쾌지수 없이 쾌적하다. 에어컨은 필수가 아니었고 선풍기로만 버틸 수 있었다. 폭염이라는 단어는 들어본 기억이 드물며 열대야는 없었다. 낮엔 땀 흘리며 동네 놀이터에서 뛰어놀았고 밤이 되면 창문에서 시원한 여름밤 향이 들어왔다. 가벼워진 옷차림과 귀청이 떨어지도록 우는 매미 덕분에 ‘여름이 왔구나!’ 느낄 뿐이다.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나날들이 반복되다가 한 차례 장마가 시작된다. 장마철에는 서늘해서 바람막이처럼 겉옷이 없으면 추웠다. 비가 그치고 이파리가 생기를 잃으며 바싹 마르기 시작한다. 여름이 아무 탈 없이 무사히 넘어갔다. 폭염이 사람들의 일상을 위협하지 않았다. 여름을 좋아할 수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누군가에게 여름은 버텨야 하는 계절이다
우리 집은 남들보다 에어컨을 늦게 구매한 편이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던 2019년도에 에어컨 없이 잘 지냈다. 그러나 열대야에 지고 말았다. 보름 동안 이어지는 열대야는 일상을 망가트렸고 삶의 질을 떨어트렸다. 계절로 인해 생활 습관이 변했다. 에어컨이 없는 야외는 도통 나갈 엄두가 안 났다. 차라리 에어컨이 빵빵 나오는 회사에 취직이라도 했으면 출퇴근을 제외하고 온종일 쾌적한 환경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취업 준비생들에게는 여름은 지옥의 시간을 버티는 시간이다. 여름이 끝나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린다. 집에서 공부하거나 노트북 작업을 할 때마다 에어컨을 틀기 아까워서 집주변 무료 작업 공간을 찾는다. 다행히 청년들을 위한 무료 이용 센터와 도서관이 있었다. 그곳은 나에게 천국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습도가 하나도 없는 서늘한 공기가 몸을 움츠리게 만든다. 이젠 냉방병과의 싸움이다.
여름에는 적이 많다. 더위와 추위를 모두 잘 타는 체질을 가진 사람들에게 한국의 사계절은 롤러코스터와 같다. 날씨에 영향받지 않고 온전히 일상을 보낼 수 있는 봄과 가을은 한없이 짧다. 동남아보다 습하고 러시아보다 추운 한국에서 살려니 옷장이 꽉 차고 넘친다. 여름에는 어느 시설에 가든지 간에 겉옷은 필수다. 수족냉증은 필수로 찾아오고 급격한 온도변화로 두통까지 늘 함께한다. 요즘 현대인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은 우양산과 핸드 선풍기가 아닐까?
일기예보보다 한 걸음 빨리 내리는 집중 호우는 우리를 번거롭게 한다. 우리 동네는 폭우로 난리인데 한 정거장만 가면 그곳에는 햇볕이 내리쬔다. 뜨겁게 달궈진 걸 식히느라 지구도 고생하고 있다.
여름이 변한 걸까, 우리가 변한 걸까
어렸을 적에 여름은 지금과는 완전히 달랐다. 그때의 에어컨은 사치품이었고, 지금은 생존을 위한 필수품이다. 이산화탄소 증가로 지구온난화 현상이 지구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 우리의 삶을 이롭고 편리하게 만들었던 산업화 과정들이 우리를 공격하고 있다.
잠깐의 평온함은 저물고 온 세상이 폭염에 시달린다. 하지만 단순히 날씨 때문에 여름이 좋았던 것은 아니다. 어릴 때는 책임질 만한 것들이 별로 없었고 부모의 울타리 속에서 보호받으며 살았다. 지금은 부모의 울타리를 벗어나 문을 만들어서 원할 때마다 왕래할 수 있다. 대신 그만한 대가가 따른다. 지금은 취업 걱정과 돈, 일, 전기요금, 건강까지 신경 써야 한다. 같은 여름이지만, 나와 사회가 달라졌고 기후는 급변하고 있다. 내가 그리워하는 여름은 아무 걱정 없이 뛰어놀았던 그 시절의 푸름이었다.
우리는 모두 다른 여름을 살아간다. 날씨가 이토록 다변했어도 여름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직 있다. 여름을 좋아하는 사람이 이상하거나 틀린 게 아니다. 계절은 같지만, 사람마다 살아온 환경과 기억이 다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좋아하는 계절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먼저 떠오른 건 여름의 추억이었다. 드넓고 푸른 바다에 몸을 맡겼던 순간은 어느덧 수평선 너머로 사라졌다. 이제는 당연하다는 듯이 가을과 겨울이 좋다고 답한다. 여름을 좋아한다고 스스럼없이 대답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그 사람이 어떤 환경에서 살아왔는지가 궁금하다.
여름을 좋아한다는 당신에게 이렇게 되묻고 싶다.
"당신은 어떤 여름을 살아왔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