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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게임 음악 오케스트라를 보러 갔다!

 

사실 오케스트라라는 것을 참으로 오랜만에 본다. 못 해도 10년은 넘었을 것이다. 어릴 때 피아노를 좋아하셨던 어머니를 따라 피아니스트의 연주회나 오케스트라를 몇 번 본 적 있지만, 그때의 나에게 큰 감흥을 주는 이벤트는 아니었다. 흠결 없고 아름다운 오케스트라 연주를 듣는 것과 집에서 클래식 음악을 듣는 것이 주는 감동이 어떻게 다른지, 그런 걸 잘 몰랐다. 오히려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너무 완벽해서 어린 아이에게는 똑같이 느껴졌을 수도.

 

성인이 되고 오케스트라 연주를 본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어릴 때의 감상이 남아 있어서인지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다만 게임 음악 오케스트라라는 점에서 이스포츠를 즐겨 보는 내가 조금이라도 아는 영역이라 재밌게 들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나름, 어릴 때 그냥 오케스트라를 볼 때보다는 개인의 장벽이 좀 허물지 않았나. 게임이라는 것 자체가 대중 친화적인 분야이니, 오케스트라나 게임에 대해 깊은 이해가 없는 나도 잘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글을 쓰는 것만큼이나 글 쓸 때 들을 음악도 까다롭게 골랐는데, 그렇게 알게 된 음악 중엔 게임 음악이 꽤 많았다. 음악이 나의 감정선이나 무드를 연결해 준다고 생각해 많은 음악을 찾아다녔고, 그러다 게임 음악을 알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테일즈위버라는 게임이 있는데, 나는 이 게임은 몰랐지만 이 게임의 음악인 Reminiscence나 Second Run은 닳도록 들었다. 그만큼 게임 음악이 서사나 감정을 전하는 데 중요하고, 꽤나 고퀄이라는 걸 익히 알고 있었기에 기대하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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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은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우선 결론부터 말하자면, 너무 좋았다. 왜 엄마가 연주회를 좋아했는지 알겠다. 그래서 왜 나를 데리고 다녔는지도. 그 사람들의 호흡이라든가 하모니라든가, 다 같이 같은 음을 낼 때 여러 명이 함께 같은 동작을 하고 같은 순간에 바뀌는 것, 그런 것들이 너무 감동이었다. 모두 제 소리를 은은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내어 하모니를 이루는 것이 아름다웠다. 이런 걸 느끼게 되었다니, 어른이 된 걸까 역시.

 

특히 게임을 잘 모르는 나여서 걱정도 했는데, 걱정이 필요 없었다. 내가 보러 가기 전에 셋리스트에서 아는 게임은 리그 오브 레전드밖에 없었다. 그마저도 나는 게임을 보는 사람이지 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내가 느낄 수 있을까 싶었다. 캐릭터의 서사도 잘 모르고 관계성도 모르니까 감정을 느낄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그런데 정말, 좋았다. 일단 각 게임을 모르는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연주하는 배경에 각 게임의 캐릭터와 스토리가 담긴 영상이 재생되었다. 물론 게임마다 영상 퀄리티의 편차는 좀 있었는데, 각 게임 제작사에서 따로 수급이 된 것 같았다. 영상을 통해 게임의 캐릭터들이 나와 그들의 여정과 상호작용을 담은 영상이 있어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특히 원작 게임을 좋아하는 덕후들에게는 이 부분이 주요 포인트가 될 것 같았다. 일부 게임은 영상이 반복되거나 단일 이미지 위주로 가기도 했지만, 오히려 게임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호흡이 느리고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편이 이해도를 높일 수 있어 그 역시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리고 인상적이었던 건, 각 게임을 설명해 주는 것뿐만 아니라 이 오케스트라의 전반적 운영 자체가 게임처럼 진행됐다는 점이다. 이번에 진행된 오케스트라 공연의 제목이 'Level Up'인 만큼, 이 오블리주 앙상블이 오늘 셋리스트를 모두 진행하면 레벨업할 수 있다는 서사였다. 오블리주 앙상블의 각 인물이 캐릭터로 등장해 화면 내에서 우리와 함께 여정을 떠났다. 즉, 이들의 여정을 관객인 우리가 지켜보는 셈. 스테이지는 3개로 나뉘어 있었고, 연주가 끝날 때마다 스테이지를 깨는 방식이었다. 애니메이션도 귀여웠고, '게임 음악 오케스트라'라는 취지에 충실해서 몰입하기도 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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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가 다르면, 선율도 다르다


 

듣다 보니, 게임의 장르마다 음악의 결이 달랐다. 게임의 장르가 곧 음악의 장르가 되는 느낌?

 

우선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음악은 라그나로크의 타이틀곡이었다. 라그나로크는 RPG 게임이라고 한다. RPG는 Role-Playing Game으로, 플레이어가 세계관의 스토리를 따라가며 성장하는 게임이다. 라그나로크는 판타지 세계의 주인공이 되어 넓은 대륙을 탐험하고, 사람들과 교류하며 성장하는 게임. 치열한 전투보다는 세계를 여행하는 느낌이 메인인 게임이라, 플레이어가 오랜 시간 그 세계에 머물러야 한다. 그래서인지 타이틀곡도 마냥 우리가 생각하는 게임 특유의 밝고 리드미컬한 느낌이 아니었다. 서정적이고 몽환적이었다. 드라마틱하면서도 약간 잔잔하고, 무거운 느낌도 있는. 서사를 하나도 모르는 나도 감정에 빠질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반대로 모두의마블이나 브롤스타즈의 노래는 참 귀엽고 통통 튀었다. 특히 첫 곡을 모두가 한 번쯤 들어봤을 모두의마블로 시작해 경쾌하면서도 오케스트라만의 차별성을 드러내며 관객들의 귀를 깨우고, 그 후 브롤스타즈를 연결해 리드미컬함을 이어가면서도 서사를 조금씩 넣는 게임의 특성을 반영했다. 특히 브롤스타즈는 귀여운 캐릭터들이 나와 3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정신없이 치고받는 모바일 게임이라고 하는데, 확실히 전투의 느낌이 났다. 통통 튀는 선율들이 마치 캐릭터들의 액션을 표현한 것 같았다.

 

이렇게 게임의 장르적 성격이 선율의 질감으로 선명하게 번역되는 감각이 제일 잘 느껴진 건 발로란트였다. 발로란트는 FPS 게임, First-Person Shooter 게임으로 1인칭 슈팅 게임이다. 플레이어 시점에서 총이나 무기를 들고 싸우는 총게임인데, 시야가 한정적이니까 긴장감이 높아진다. 이런 게 음악으로 잘 표현됐다. 특히 발로란트는 메들리를 연주했는데, 게임 내의 여러 음악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면서 스토리의 기승전결을 담은 것 같아 좋았다. 또 발로란트는 하나의 풀 서사 영상이 재생되었고, 노래가 끝날 즈음 주인공이 직접 프로게이머로 데뷔해 게임장에 들어서며 영상도 같이 끝났는데, 몰입도 훨씬 좋았고 발로란트라는 게임에 흥미를 가지기에도 좋았다.

 

이 외에도 리그 오브 레전드 음악 중 Legends Never Die를 연주할 때는 초대 가수와 함께하기도 했고, 이터널리턴은 협약을 맺어 추후 게임에 출시될 노래를 미리 들려주기도 했다. 모험적이고 웅장한 동시에 아름답고 섬세한 선율이라, 나중에 게임에서 들으면 어떨지 궁금해졌다. 관객으로 하여금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해 좋았다. 특히 초대 가수를 부를 때는, 하나의 게임처럼 흘러가는 이 오케스트라에서 오블리주 앙상블이 체력이 고갈되어 서포터가 등장하는 것으로 구성했는데, 이런 세심함이 이 공연을 더 즐길 수 있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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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입장벽을 낮춘다는 것


 

연주에 오롯이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스토리가 있는 게임의 특성과 현장감으로 압도하는 오케스트라의 강점이 훌륭히 시너지를 내어 관객으로 하여금 뜻깊은 시간을 누릴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게임에 대해서도, 오케스트라에 대해서도 진입장벽을 낮춰 주기에 너무 좋은 기획이었다. 특히, 비단 음악 자체뿐만 아니라 음악과 어우러지는 영상은 어떻게 기획하는 것인지, 이 셋리스트는 어떻게 구성된 것인지, 행사 전반의 톤앤매너는 어떻게 어우러지게 만든 것인지 많은 생각이 들어서, 이 기회로 게임 산업에 관심을 가지게 될 정도로 나에게 인상적이었다.

 

이번 공연은 신한투자증권이 한국메세나협회와 협력해 자립준비청년들이 전문 음악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희망 Dream 자립준비청년 클래식 앙상블 활동지원사업'의 일환이라고 한다. 자립준비청년 연주자들이 중심이 되어 구성된 클래식 앙상블 '오블리주 앙상블'이 첫 지원 대상이 되었다고. 너무 좋은 취지에, 좋은 공연이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무료로 진행되었는데, 덕분에 나처럼 해당 분야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도 진입장벽을 낮추고 산업에도 상생할 수 있는 좋은 사업인 것 같다. 앞으로 이런 사회공헌 활동을 하는 좋은 프로그램이 더 활발히, 많이 생기길 바란다.

 

인상 깊었던 음악은 오케스트라가 끝나고 찾아보기도 했다. 아, 근데 역시 그 오케스트라의 웅장함이나 켜켜이 쌓이는 선율들의 감동이 덜해서 아쉽더라. 이 또한 게임 음악 오케스트라의 강점을 느낄 수 있는 지점이었다. 오블리주 앙상블이 최초로 '게임음악 전문 앙상블'을 지향해 본다고 했는데, 이처럼 트렌디한 문화 장르의 혼합이 더욱 흥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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