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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기획이란 단어가 우리 삶에 관여하고 있는 부분은 꽤나 크다. 조금 과장하자면,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현대인들의 삶 어느 곳에나 ‘기획’된 것들이 존재하고 있다. 아무 생각 없이 튼 TV 프로그램, 밥친구로 삼은 유튜브 채널, 길거리를 걸어가다가 마주친 브랜드 팝업 스토어, 대문짝하게 여기 저기 붙어 있는 광고 포스터까지. 모두 ‘기획’ 단계를 거쳐 이 세상에 나오게 된 것들이다.

 

무언가를 기획하는 일은 결코 쉬운 게 아니다. 기획자는 누가, 어디서, 어떻게, 왜, 무슨 이유로, 이 기획을 접할 것이고, 이 기획이 가져오는 장점은 무엇이 있으며, 이 기획만의 특별함은 무엇인지 모두 상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들을 모두 고려했다 치더라도 상상한 대로 완벽하게 되지 않는 게 사람 일이라, 기획의 진행은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기 마련이다.

 

최근 방영되었던 TVING의 프로그램 <환승연애4>를 예시로 들고 싶다. ‘이별한 커플들의 환승 정거장’이라는 컨셉으로, 시즌 1부터 4까지 큰 화제성을 유지해 온 이 프로그램은 유독 이번 시즌에 말이 많았다. 매력 있는 출연자들을 잘 살리지 못했다는 평, 시청자들이 좋아할 부분과 아닌 부분을 구분하지 못했다는 평을 들었다. X가 두 명이라는 도파민에 치중하느라 정작 이별을 겪는 커플들만의 미묘한 감정선을 짚어내지 못했다는 말도 있었다. 한마디로 시청자들이 반기는 기획을 하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좋은 기획, 시청자들이 반기는 기획이란 어떤 것일까? 기획자로서의 우리는 어떤 시선을 가져야 사람들의 호응을 얻어낼 수 있을까? 편은지 PD의 두 번째 도서 <사람을 기획하는 일>은 이에 대한 답을 담고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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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어루만지는 일이 기획임을 잊지 말기


 

기획은 필연적으로 자본과 연결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돈을 벌기 위해서, 더 많은 화제를 불러 일으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기획이니 말이다. 우리는 때때로 이 ‘자본’이라는 단어에 파묻혀 더 중요한 것을 잊고는 한다. 모든 기획은 사람에서 출발하고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아주 명료한 사실이다.

   

 
“퇴근 후 조용히 샤워하고 집을 정리하는 영상이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화려할 것 없는 냉장고 정리, 퇴근 후 일상 및 청소 영상에 과몰입하게 되는 이유는 그것이 진짜 살아내는 삶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일상과의 연결을 놓치고 싶지 않은 나약한 존재들이기도 합니다.”
 

 

최근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는 채널의 영상들을 살펴보면, 대체로 우리들의 삶과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유튜브 채널 ‘뜬뜬’의 <풍향고>가 대표적인 예시이다. 무계획, 무어플 여행을 떠난다는 기획에서 출발한 이 프로그램은 그 어떤 여행 프로그램보다 시청자들의 공감을 일으켰다. 정말로 우리가 여행을 떠날 때처럼, 가끔은 고난도 역경도 미숙함도 있지만 그럼에도 기쁜 여정의 모습들을 여과 없이 담아냈다. 초호화 코스로 철저히 계획되어 있어 시청자들이 감히 따라하기 힘든 방송용 여행 포맷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이다. 시청자들은 출연자들의 시행착오와 웃음을 보며 그들의 여정에 공감하고, 위로 받는다. 나도 저렇게 낭만적인 여행을 떠나 보고 싶다는 꿈을 품게 되었다는 이들이 등장한다. 이 프로그램은 시청자들을 ‘설득’하여 그 세계에 몰입시키는 것에 성공한 것이다.

 

<사람을 기획하는 일>의 저자인 편은지 PD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살아내는’ 모습들을 담는 것이라고 책 속에서 말하고 있다. 우리가 닿지 못할 것들만을 자랑하듯 나열하여 보여주는 것이 아닌, 조금은 환상과 멀어져 있을지라도 구질구질하고 사람 냄새가 진하게 나는 이야기들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한다. 출연자들도, 시청자들도 결국은 사람 사는 일 다 비슷한 ‘사람’이다. 우리는 그런 사람의 이야기들을 접할 때 쉽게 마음을 열고 마음을 준다. 재벌 2세가 요플레 뚜껑을 핥아 먹는다는 이야기, 연예인들의 자취방에 놓인 손때 묻은 물품들의 이야기가 화제성을 가지는 이유다.

 

 

 

기획자는 어떤 눈으로 사람을 바라보아야 하는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기획은 사람에 대해 이해하고 사람을 담아내는 것이 필수적인 일이다. 그렇다면 기획자는 어떤 눈으로 자신의 기획 대상 사람들을 바라보아야 할까. 

답은 사랑이다.

 

사랑과 재채기는 숨길 수 없다고 했던가.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우리는 가끔 미묘한 감정들을 느끼게 된다. 아, 이 프로그램의 제작진이 정말 이 출연자에게 애정이 많구나- 라던가, 혹은 아, 이 프로그램은 출연자들을 화제성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는구나- 라던가.

 

시청자들은 생각보다 기민하게 프로그램 전반에 깔려 있는 감정을 눈치채고, 그 감정에 쉽게 동화된다. 그 말은 기획자가 작정하고 이 출연자를 사랑하기로 결심한다면 시청자들 또한 출연자들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출연자들을 ‘예뻐 보이게’ 만들겠다는 진심 어린 마음은 기획자가 꼭 지녀야 할 시선이다.

 

이 책에서 꾸준하게 말하고 있는 것처럼, 기획자는 출연자들의 모습을 아주 세세하게 들여다보고 관심을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그들의 결핍을 이해해주고 이야기를 끈기 있게 들어 주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그 속에서 숨어 있는 아이템과 정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아주 친한 친구들만이 알 수 있는 무언가의 매력을 찾아내어 밖으로 끌어 내 확장시키는 일, 출연자의 미래에 대해 함께 고민해주고 함께 나아갈 방향을 찾아 내는 일이야말로 기획자로서 꼭 필요한 과정이다. 사람을 기획하는 일은, 결국 사람을 남기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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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기획하는 일>은 기획자가 가져야 하는 시선, 기획자의 태도, 사람과 사람을 어떻게 조명해야 하는지에 대해 세세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다. 기획자가 되기를 꿈꾸는 이라면 한 번쯤 완독할 가치가 뚜렷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인 편은지 PD가 장수 프로그램 <살림남>의 연출을 맡고 있는 베테랑이기에 신뢰성 또한 뚜렷하다. 이 시대에 기획자를 꿈꾸고 있는 이들에게, 이 책을 마음 담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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